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1화 (11/500)

11화. 임원 상여금이 너무 많아(2)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나는 전산 정보를 열었다.

세무대리인 이봉한을 검색하자 그의 이름으로 신고 된 세목과 회사들이 주르륵 떴다.

소득세만 해도 1년에 150건, 법인세도 50건 정도 신고한 세무사 사무실이었다.

이봉한의 세무사 등록번호로 검색해 나가던 나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태일기업.

주방용품, 특히 그릇을 주로 판매하는 도소매 회사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멋모르고 취업한 곳이기도 하다.

처음엔 상품을 싣고 나르는 창고 알바를 하러 갔다가 내가 정리한 물류 기록지를 본 총무부가 눈독 들여 정직원으로 취업하게 된 것이다.

총무부라는 특성상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지만, 분위기도 좋았고 일도 어렵지 않았다.

그땐 다닐 만했는데…….

씁쓸함을 느끼며 태일기업의 과거 재무제표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지직.

주파수가 맞지 않는 TV 화면을 보는 느낌이다.

아니,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낀 느낌일까.

눈이 아닌 머릿속에 희뿌옇게 무언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분명 탈세액이 떠오를 때와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평소와는 뭔가 달랐다.

평소엔 사람을 보거나 회사를 인식하면 바코드처럼 명확한 숫자가 뇌리에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엔 형태가 되지 않은 여러 숫자가 두서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의아함에 신고서와 부속명세서 전부를 띄웠다.

느낌이 좀 더 명확해졌다.

이상하다.

분명히 횡령했던 낙하산 상무는 조사받고 짤렸을 텐데.

혹시 내가 해고당한 후에도 또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나는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과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과장이 미미하게 눈썹을 꿈틀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조사해 보고 싶은 회사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조사 대상은 여러 방법으로 선정된다.

일반 과에서 넘기든, 랜덤으로 선정되든, 아니면 프로그램에서 붉은 글씨로 확인 요망이라고 뜬다.

그걸 배정하는 것이 조사과장인데 반대로 내가 일거리를 물어온 것이다.

그러나 과장은 하던 일을 접고 손짓했다.

“읊어봐.”

명확한 증거를 가진 건 아니다.

다만 무언가 탈세가 이루어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예전에 그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과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복수나 사심은 안 돼. 눈이 흐려지기 쉬워. 하지만 네가 그런 이유로 들이밀었을 것 같진 않군.”

어제 과장이 근거과세 원칙을 강조했을 때부터 짐작했다.

그는 원칙적인 사람이다.

나는 준비해 온 말을 꺼냈다.

“저는 그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일하는 임직원의 정확한 인원수를 압니다. 개중엔 주민등록번호만 올려두고 월급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죠.”

“계속해 봐.”

“그리고 이게 근로소득 지급명세서입니다.”

소득 종류는 많다.

하지만 근로자가 유리 지갑이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에서 인건비 내역을 꼬박꼬박 신고할 뿐더러 매년 2월 연말정산을 한다.

소득 내역이 매우 투명하게 집계되는 것이다.

내가 가져온 것은 바로 그 연말정산의 결과물이었다.

근로자의 세전 월급과 상여금이 적나라하게 쓰여 있는 자료다.

“월급이 많은 순으로 정렬되어 있습니다만 위에서 8명이 임원입니다. 상여금이 과다하게 많지 않습니까?”

연봉이 1억인데 상여금이 2억이다.

과장이 종이에 쓰여 있는 숫자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상여금이 차등 지급이군.”

“네. 제가 일할 때도 그랬습니다. 특별한 공로가 있거나 매출이 늘어서 상여를 받는 게 아닙니다.”

“대차대조표.”

“예.”

혹시 몰라 가져온 대차대조표를 건네자 과장이 자산 목록 중 어느 하나에 동그라미를 쳤다.

주임종 단기채권이다.

“이게 뭔지 알지?”

“주주, 임원, 직원에게 빌려준 돈을 말합니다. 주로 가불금이죠.”

“원칙상은 그렇지.”

말투를 보아하니 뭔가 더 말하길 기다리는 눈치다.

나는 공무원 면접 전에 잠시 다닌 세무사사무실에서 어깨너머로 본 것을 떠올렸다.

“몇 년 전 퇴직금 중간 정산에 조건이 붙었죠?”

“워낙에 중간 정산이랍시고 회삿돈을 빼먹는 놈들이 많아서.”

퇴직금은 퇴사할 때 받는 것이지만 급전이 필요하면 회사에서 미리 주기도 한다.

다만 악용되는 사례가 많아서 아예 조건을 못 박아 두었다.

집을 이사할 때, 본인이나 가족이 아플 때 등 목돈이 필요할 때는 중간 정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중간 정산을 해 주는 회사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퇴직금을 미리 땡겨 받는 거니 문제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태일기업의 경우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퇴직금의 기준액은 최근 3년간의 급여인데 여기에 상여금이 포함된다.

태일기업은 상여금을 퍼주다 보니 중간정산 시기만 잘 잡으면 퇴직금이 훅 늘어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퇴직금 중간정산은 엄연히 세법상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리과 직원들이 어떤 머리를 쓰느냐 하면…….

“손익계산서상 퇴직 급여라는 항목으로 넣어두면 들키기가 쉬우니 자산 중 주임종 단기 채권에 숨겨 둔다고 하더군요.”

회계 용어 중엔 생소한 것이 많았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용어도 많고.

그중 하나가 주임종 단기 채권이다.

“태일기업의 주임종 단기 채권은 10억을 돌파했어. 불법적인 중간 정산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과장이 계정과목 또 하나를 짚었다.

“이어서 가지급금. 이건 회사에서 돈이 나갔는데 사용처를 밝힐 수 없을 때 쓰는 계정이다. 이것도 10억에 육박하는군.”

과장이 서류를 내게 돌려주었다.

이게 모두 임원들이 회사에서 야금야금 빼먹은 돈이나 다름없다.

나는 저 회사에 있을 적에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면서 온갖 편법을 동원해 돈을 빼 가는 것을 보았다.

“해 봐. 단순히 봤을 때 이 정도니 파면 더 나올 것 같군.”

“감사합니다, 과장님.”

“어제 한 말 기억하나?”

“예. 과장님이 무엇을 우려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사심은 배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과세하겠습니다.”

***

“신재현 주사보님. 업무 받으셨어요?”

과장실에서 나오자 내 옆자리의 황민우가 물었다.

그는 어제 술을 퍼마신 탓인지 한쪽 관자놀이를 짚고 있었다.

“지시사항 주세요. 이번에도 혼자 하지 마시고.”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선배다 보니 뭘 어떻게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어색한 미소를 짓자 그가 내 책상을 들여다보았다.

“태일기업? 지난 5개년 치 재무제표 뽑고, 결산서 뽑고. 조사 세목은 법인세죠? 사전 통지문 제가 작성해서 보낼게요.”

“아, 예.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별거 아닌 것 같은 자질구레한 서류 업무지만 시간이 꽤 걸린다.

그가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총무과 전화번호가 기억에 선했다.

“네. 태일기업 총무과입니다.”

전화 너머로 익숙한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용산 세무서입니다.”

“어, 세무서요? 무슨 일이세요?”

허둥지둥하는 목소리다.

나도 옛날엔 저랬지.

워낙에 찔리는 게 많다 보니 세무서에서 전화만 오면 긴장하곤 했다.

“임원 상여금을 규정한 이사회 결의서가 필요해서요.”

“이, 이사회 결의서요?”

여직원이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게……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어디 보자, 지금 9시 반이니까 10시까지 주실 수 있나요?”

원래 있던 걸 찾아서 주는 거라면 30분씩이나 걸리지도 않는다.

5분이면 되지.

그러나 역시 여직원은 당황한 목소리였다.

“제가 권한이 없어서. 자, 잠깐만요. 부장님 연결해 드릴게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전화 연결음이 귀를 때렸다.

“전화 바꿨습니다. 총무부 부장 박인철입니다.”

역시 익숙한 목소리다.

통장 내역을 보며 질문하는 나에게 모르는 척하라며 차게 말했던 그 목소리.

“예. 안녕하세요. 임원 상여금 이사회 결의서 있으시죠? 좀 보내 주시겠습니까?”

“이사회 결의서는 왜 그러시죠?”

“상여금을 지급한 근거를 알고 싶어서요.”

“흠. 실례지만 조사관님 성함이…… 어느 과 어느 분이시죠?”

어쩔 줄 몰라 하던 여직원과는 달랐다.

침착하게 내 관등성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예전 해고당할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쯧쯧. 사람이 알고도 모르는 척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고개를 들이미니까 눈 밖에 나지. 네 탓이다.’

“조사관님?”

눈을 감았다 떴다.

그는 내 조사 대상 기업의 직원일 뿐이며 나는 이제 그의 부하가 아니다.

“용산 세무서 조사1과 신재현입니다.”

“아, 네. 신재현 조사관님…… 네?”

부장이 당혹스러워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아는 분 같아서 그러는데 혹시 제가 아는 그 신재현 씨가 맞습니까?”

“맞을 겁니다, 부장님. 오랜만이네요.”

“이야!”

부장이 난데없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신재현이! 그 신재현 맞아? 와…… 진짜 반갑네. 아까 어디라 그랬지. 조사과? 신재현이 출세했네!”

내가 예전에 태일기업에서 일했던 그 직원임을 알자마자 부장의 자세가 확 바뀌었다.

조사관을 대할 때의 조심스러움은 없다.

아예 내가 자기 부하인 줄 아는 모양새였다.

“신재현이 그렇게 쫓겨나고 나서 이 악물고 공부했구만. 그래, 고졸이 할 게 뭐가 있겠냐. 요즘 세상에 공무원이 최고지. 안 그래?”

“총무부 박인철 부장님.”

“그래그래, 듣고 있다. 인마.”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일부러 날 깔아뭉개기 위한 단어 선정이다.

이게 기선제압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노회한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나는 이를 뿌득 갈았다.

여기서 휘말리면 안 된다.

“앞으로 15분 드리겠습니다. 임원 상여금이 정확히 명시된 지급 규정 이사회 결의서를 팩스로 보내 주십쇼.”

“에헤이, 다 알면서 그러네. 우리 얼마나 바쁜지 모르…….”

“앞으로 10분 드리겠습니다. 이사회 결의서에 주총 결의서 보내 주십쇼.”

“어허, 신재현…….”

나는 부장의 말을 의도적으로 끊으며 시간을 줄였다.

부장이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기선제압을 시도해 왔다.

“앞으로 5분 드리겠습니다. 이사회 결의서에 주총 결의서까지 보내 주세요.”

“자, 잠깐…….”

-탁!

전화기를 쾅 내려놓자 옆에서 열심히 타자를 치던 황민우가 슬금 내 눈치를 봤다.

잠시 후,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네, 조사 1과 신재현입니다.”

“아, 신재현이. 너무한 거 아니야? 우리 사이에 막 그러면…….”

-뚝.

들을 필요도 없다.

부장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끊어 버리자 이번엔 다시 전화기가 울리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후,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총무부 박인철 부장 바꿔주세요.”

총무부 여직원에게 부탁해 전화를 연결한 나는 통보하듯 말했다.

“5분 지났는데 자료가 안 들어오네요?”

“거참, 찾고 있는데 성격도 급하네. 세상 물정 모르는 티 내고 그러면 안 돼.”

“세상 물정 모르는 건 부장님인 것 같군요. 부장님, 아직도 제가 부장님 부하인 것 같습니까? 조사과라는 이름이 만만해 보여요? 부장님 대응이 좀 이상하네요. 뭔가 보내 주시기 곤란해서 덮으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그게 아니라.”

“오늘부로 세무조사 사전 통지문 나갈 겁니다. 그리고 결의서는 보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전화 너머로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렸다.

일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건지, 아니면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억누르고 있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통보했다.

“부장님 말씀하셨듯이 제가 그 기업 잘 아는데, 좀 수상쩍네요. 사본이 아니라 원본을 직접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의서는 팩스로 보내지 말고 원본 들고 세무서로 들어오세요. 오늘 안에 부탁드립니다.”

“이……!”

부장이 뭐라 말하기 전에 나는 전화를 뚝 끊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 길길이 날뛰는 부장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세무서, 그것도 조사과의 요청이니 서류를 안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류를 갖고 세무서를 오자니 오히려 기선제압을 당해 지고 들어가는 꼴이니.

“주사보님. 왠지 즐거워 보이시네요?”

“네. 탈세범들 때려잡을 생각 하니까 즐겁네요.”

“아…… 그게 조사과의 의의이자 보람이죠.”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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