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0화 (10/500)

10화. 임원 상여금이 너무 많아(1)

용산 세무서 본관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곳.

본관이 온갖 납세자와 손님으로 북적거린다면 별관은 고즈넉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낡고 고독한 외관과는 달리 별채 안은 부산스럽기 그지없었다.

약 20명의 직원들이 자리한 조사과 사무실.

나는 그중 가장 안쪽에 있는 과장실에 들어가 있었다.

“사전 통지 없이 조사에 들어간 덕분에 증거 인멸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CCTV와 포스 기록을 확보해 매출액을 추산했습니다.”

과장은 책상 앞에서 보고를 올리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손을 놀렸다.

할 게 뭐 그렇게 많은지 연신 서류를 훑어보고 도장 찍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과연 내 말을 듣는 건가 싶었지만 간혹 말을 멈추면 눈길이 슬쩍 내게 닿았다.

“다행히 매출액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자료가 남아 있었습니다. 직원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일부러 고화질로 설치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저희가 추산한 총 매출액은 약 9억입니다.”

-사각사각

과장이 이번엔 도장이 아니라 붉은 펜을 들어 서류에 표시했다.

이 서류는 결재 완료된 것들과는 다르게 책상 한 귀퉁이에 올렸다.

“노동부 근로 감독관에게 협조 공문을 보내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도 함께 적발했습니다.”

나는 힐끗 내가 올려 둔 결재 서류를 바라보았다.

과장이 결재 서류 표지를 열더니 빠른 속도로 훑어 내려갔다.

결정 통지서에는 납세자에게 고지할 금액 416,422,580원이 적혀 있었다.

내가 영진마트의 사장에게서 본 숫자와 정확히 일치한다.

같은 팀이자 선배인 황민우에게 검토해 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었다.

세금 계산을 끝냈을 때 나온 금액을 보자마자 쾌재를 불렀을 정도다.

“근로 감독관이 실적 올려서 좋아하겠군. 사대보험은 과태료고 근로 기준법은 벌금이니.”

“감독관이 호언장담했습니다. 빨간 줄 그어 주겠다구요.”

과장이 나를 한차례 바라보더니 다시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

다른 서류를 볼 때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고 있었다.

손에 땀이 흥건히 뱄다.

세법은 이게 어렵다.

계산 과정을 따라 내려가며 어떤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했다.

위에서 뭔가 숫자가 하나라도 틀리면 산출되는 세액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다.

당연히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과장은 결정문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며 숫자를 가늠해 보았다.

-톡, 톡.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적막한 가운데 과장이 도장을 들었다.

서류 가장 앞의 결재란에 도장을 꾹 눌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과장은 서류를 덮더니 툭 던지듯 입을 열었다.

“국세부과의 원칙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기억을 더듬어 대답했다.

“실질 과세의 원칙, 신의 성실의 원칙, 근거 과세의 원칙, 조세 감면의 사후 관리입니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막상 입을 열자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국세기본법 다 맞겠답시고 달달 외웠던 보람이 있었다.

과장은 내게 서류를 텁 내밀었다.

“근거 과세의 원칙 잊지 마. 우리는 납세자의 적이 아니야. 세원은 항상 명확하고 누가 보아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과장의 눈빛이 강렬했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탈세범을 잡는답시고 날뛰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역시 무조건 때리는 건 아니다.

나는, 세무 공무원은 납세자의 적이 아니다.

탈세범의 적일 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과세를 목표로 하겠습니다.”

조사과장이 대답 없이 다시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도 같았다.

***

조사과 사무실 안에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다들 제 일을 하느라 바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온 신경이 과장실에 쏠려 있었다.

모니터만 켜져 있는 빈자리.

그 자리의 주인은 지금 과장실 안에 들어가 있었다.

흘끔흘끔 과장실을 쳐다보던 한 직원이 황민우에게 물었다.

“1년 차라며? 어떻게 조사과로 왔대요?”

그가 황민우에게 물은 것은 황민우가 지난 며칠 신입과 함께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민우는 미간을 좁힐 뿐이었다.

“뭐 들은 얘기 없어요?”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뒷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 하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1년 차면 이제 세법의 세나 제대로 알려나? 윗분들도 너무하시네. 어떻게 공무원 된 지 얼마 안 된 애를 조사과로 보내냐.”

법인세, 소득세, 부가세, 상증세 만이 아니다.

절차와 원칙을 명시한 국세기본법, 징세 과정을 규정한 국세징수법 등.

다양한 세법을 알고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며 실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야 하는 곳이 조사과다.

“혹시 무슨 대형사고 쳐서 알아서 그만두라고 힘든 데 보낸 건가?”

“신종 책상 빼기예요? 그럴 거면 민원실 보내지.”

“황민우, 같이 다녀 보니까 어때. 잘 따라오긴 해?”

같은 조가 된 황민우는 지난 며칠을 떠올렸다.

조사과로 오자마자 나간 조사다.

조사가 뭔지는 알더라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를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짐 덩어리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그 신입이었다.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료 직원들을 향해 황민우가 입을 열었다.

“나이 많고 선배인 사람한테 지시 내리는 걸 어색해 하더라구요. 그것만 익숙해지면 될 것 같아요.”

신입이지만 직급으로 따지면 엄연히 상관이다.

물론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긴 하지만 업무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신입이어도 7급인 신재현이다.

“잘 따라오냐고 물어봤더니 웬 지시야. 아는 게 없는데 지시를 내리고 말고 할 게 있어?”

뒷자리 직원이 어리둥절할 때, 조사과 문이 벌컥 열리더니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땅딸막한 키의 그는 들어오자마자 누구를 향해서랄 것도 없이 소리 질렀다.

“시, 신재현인가 하는 저 7급 저거 완전 또라이야! 소득세과 날려 먹은 게 저놈이래!”

조사과 내에 있던 모든 직원들의 경악한 시선이 반질반질한 중년의 머리 위로 꽂혔다.

***

과장실을 나오자 분위기가 굉장히 미묘했다.

들어갈 때와 다른 어색한 공기에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는 시선까지.

계장은 아예 나를 대놓고 쳐다보며 연신 이마를 어루만졌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배정된 내 자리는 황민우의 바로 옆자리였다.

서류를 정리하는데 문득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건너편 자리의 직원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치자 얼떨결에 인사했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던지듯 물었다.

“또라이예요?”

“예?”

“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멀뚱멀뚱 시선만 교환하고 있자 건너편에서 남자의 등을 퍽퍽 때리는 소리가 났다.

“그게 아니잖아. 아이고 진짜. 인사가 먼저지.”

“아, 그렇지 참. 여기 다 와 봐! 신입 왔잖아!”

“용산서 최고의 또라이?”

“거기 2과도 안 바쁘면 잠깐 와라!”

건너편 남자의 외침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어쩌다 보니 신입이 선배 직원들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자리가 만들어졌다.

자리를 깔아 줬으면 응답을 해 줘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호기심과 기대 어린 눈빛이 몰려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소득세과에서 조사1과로 이동하게 된 신재현입니다. 방금 한 선배님께서 용산서 최고의 또라이라고 하셨는데요.”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파라는 뜻이죠? 칭찬으로 듣고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존경을 담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야. 물건이네.”

“안 봐도 알겠다. 알아서 잘하겠는데. 역시 조사과엔 저런 놈이 와야지.”

선배 조사관들의 덕담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보니 한 남자가 내 어깨에 손을 짚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자다.

“소득세과에서 과장하고 계장 날렸다던데 진짠가?”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멋쩍게 웃자 중년 남자가 내 등을 퍽퍽 때렸다.

“잘했어! 그 새끼들은 공무원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워! 신문에 용산서 이름이나 오르내리게 하고 말이야.”

직원들도 계장의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나저나 용케 모가지 날렸네. 아무도 못 건드렸는데.”

“계장님, 찔리시는 거 아니죠?”

내 왼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직원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사무실에 깔렸다.

“할 일은 다 했나?”

그리 크지 않은데도 귀에 직접적으로 꽂히는 목소리였다.

내 자리에 모여 떠들던 직원들이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직원들의 고개가 동시에 한쪽으로 돌아갔다.

“과, 과장님!”

“최우현. 추가 자료 받았나? 성민지, 세무 대리인과 약속 잡아. 질질 끌면 변명할 시간만 줄 뿐이야. 김세환. 기자가 냄새 맡은 것 같으니까 외부에 유출 안 되게 관리해.”

“넵.”

“알겠습니다.”

“네, 과장님.”

모든 조사과 직원이 무슨 업무를 하는지 유일하게 파악하는 게 과장이라더니.

어떤 직원이 현재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어야 나오는 지시사항이다.

단 몇 마디 말로 분위기를 날카롭게 세운 과장은 도로 과장실로 들어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바짝 얼어붙은 직원들을 스윽 둘러보더니 내게 시선이 머물렀다.

“새 직원도 왔으니 저녁에 고기나 먹고 가라.”

“과장님! 소고기 먹어도 됩니까?”

나와 비슷한 나이 대의 직원이다.

과장의 입가가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지만 저건 분명히 미소였다.

“내가 청장 되면.”

***

5시 반쯤 사무실을 나간 과장은 손에 카드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서장에게서 얻어낸 집행비였다.

그리고 모두 일을 미뤄 놓고 칼퇴근.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아 술이 한 바퀴 돌자 어색함도 많이 사라졌다.

술잔을 채우고 비우고, 고기를 굽는 동안 조사과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조사과는 탈세 의혹을 조사하다 보니 업무 강도도 높고 멘탈도 갈려 나간다고 들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본 조사관들은 평범한 직장인 같았다.

일반 과인 소득세과에 있을 땐 굉장히 악명 높은 과였는데.

“자, 제 잔도 받으세요!”

술이 약한지 이미 반쯤 취한 황민우가 병을 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더니 공손하게 양손으로 병을 잡고 내 잔을 채웠다.

“7급은 행동대장이고 8급과 9급은 손과 발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뛰겠습니다.”

처음 나간 조사에서는 뒤에서 구경만 하더니.

1년 차가 조사과라니,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내 팀원이 지금은 먼저 내게 잔을 내밀고 있었다.

인정받은 느낌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무릎을 꿇고 공손히 받았다.

고개를 돌리고 시원하게 원샷하려던 순간이었다.

막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가 시선 끝에 걸렸다.

딱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정장을 걸친 40대의 남자다.

그는 먹이를 찾는 살쾡이처럼 식당 안을 휙 둘러보더니 우리가 앉은 테이블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우리 쪽을 가리키던 남자가 계산대로 다가가더니 지갑을 꺼냈다.

나는 얼른 술잔을 비우고 남자를 가리켰다.

“어! 계산하는데요!”

“뭐?”

“아이 씨, 진짜.”

허겁지겁 고기를 입안으로 밀어 넣던 조사과 직원들이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계산해 주지 마세요! 안 돼요, 안 돼!”

“결제 취소하세요!”

직원들이 우르르 계산대로 몰려갔다.

“누구십니까? 왜 계산하세요?”

“아, 용산 세무서 앞 골목에 사무실 낸 세무사 이봉한이라고 합니다. 지나가다 조사관님들이 식사하신다고 들어서요.”

적대감이 깃든 질문이었지만, 남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연습한 듯한 미소였다.

“새로 직원분 오셨다구요. 저희 세무사는 과세관청과 납세자 사이의 완충재 아니겠습니까. 고생하시는 조사관님들께 마음을 표현하고자…….”

“아니, 됐어요. 마음 안 받아도 됩니다. 이분이 우리 과 말아먹으시려고 작정했나.”

“아, 조사관님. 문제 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카드 말고 제가 현금으로…….”

“이봉한 세무사님. 진짜 큰일 나고 싶으세요? 그냥 가세요. 우리 서 며칠 전에 난리 난 거 모르세요?”

어떻게든 식대를 결제하려는 세무사와 그걸 막으려는 세무서 직원들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소득세과의 과장과 계장이 검찰에 출두한 사건을 언급하고 나서야 세무사가 물러섰다.

그는 아쉬운 듯 품에 봉투를 집어넣으며 몇 번이고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예. 가세요. 얼른.”

식당 밖으로 세무사를 밀어내고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직원들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옆자리의 황민우에게 물었다.

“저 사람, 우리 과랑 무슨 관계 있습니까? 왜 식대를 내요?”

“저런 사람 많습니다. 어떻게든 접대하려고 하는 거죠.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알려 주거나 봐달라는 뜻으로.”

김영란법이 생기고 공무원에게 접대는 금지되었는데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구나.

나는 고기를 욱여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아!”

세무사 이봉한.

내가 일했던 기업의 법인세 신고를 맡았던 세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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