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첫 번째 조사(2)
영진마트 사장 정영진은 사장실 소파에 앉아 돈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캬. 진작 이렇게 할걸. 왜 멍청하게 세를 주고 있었나 몰라.”
기존에 장사하던 마트 사장을 쫓아내고 정영진이 사업자 등록을 냈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 만류하는 목소리가 컸다.
동네 장사라 기존 사장이 쫓겨난 것을 알면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그래서 정영진 사장은 아예 대범한 수를 뒀다.
가격을 확 낮춘 것이다.
잠깐만 고생하면 동네 슈퍼가 다 망하고 이 지역 유일한 마트가 된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어차피 싸면 다 올 거 아냐? 동네 사람들이고 뭐고 냄비 근성이라 그런 거 모른다니까.”
정영진은 콧노래를 부르며 현금을 셌다.
다른 마트들은 워낙에 카드 결제하는 사람들이 많아 버는 족족 세금으로 낸다는데 영진마트는 오히려 현금이 더 많았다.
워낙에 싼 값으로 파는지라 처음엔 이게 남을까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인건비도 줄이고 사대보험과 세금도 안 내다 보니 의외로 꽤 남았다.
게다가 본인 땅이라 월세가 안 나간다.
부동산이 갑인 대한민국에서 매달 월세를 내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큰 금액이 절약된다.
“이 동네 슈퍼 몇 개 남았더라. 어차피 못 이기는 거 알면서 빨리 접지. 그래야 가격을 올릴 거 아냐.”
사장이 투덜거리며 현금을 갈무리했다.
“은행에 넣으면 국세청 놈들이 추적할지도 모르니까 따로 보관해야지. 내가 생각해도 참 머리가 좋아. 이래야 돈 버는 거지, 암.”
기분 좋게 웃으며 금고를 잠갔다.
사장 혼자 이용하는 사장실을 나가자 마트 사무실이었다.
사장실보다 좁은 사무실엔 경리 하나가 출근해 발주 검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 철제 의자에 불안한 얼굴로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사장을 보자 벌떡 일어났다.
“사장님. 저, 월급…….”
“월급? 저번 달 월급 이미 다 주지 않았나?”
“아뇨, 3달 지나면 최저임금 맞춰주신다고 했잖아요.”
“아. 벌써 수습 기간 끝났어?”
마트에 웬 수습 기간이 있냐마는 이것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현지야. 근태 기록 줘 봐라.”
“네.”
느려 터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20대 초반 여대생이 근무 기록지를 건넸다.
“어디 보자…… 두 달 전에 아프다고 조퇴했었네?”
“두 달 전이요? 아. 그때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에이, 이럼 못 쓰지. 그때 얼마나 바빴는데. 영미 씨 갑자기 조퇴해서 나까지 내려가서 일했잖아.”
“아파서 그런 건데요. 꾀병도 아니고.”
항변하는 여직원에게 사장이 인상을 팍 썼다.
“여기 안 아픈 사람 있나? 다들 아픈데도 참고 일하는 거야. 왜냐, 내가 빠지면 다른 사람에게 폐가 가니까. 영미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해이해.”
“그럼 저 3개월간 일한 거 돈 제대로 쳐 주세요.”
“우리 마진도 얼마 안 남는 거 알잖아. 안 되겠네. 영미 씨 오늘부터 나오지 마.”
“사장님!”
“이제 우리 직원 아니니까 함부로 사무실 들어오면 안 돼. 자자, 외부인 출입금지.”
정영진 사장은 여직원을 억지로 떠밀어 사무실 밖으로 밀어냈다.
“아, 사장님. 돈은 주셔야…….”
힘에 부쳐 사무실 밖으로 밀려 나온 여직원이 문득 낯선 남자들이 복도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중 가장 어려 보이는 20대 남자가 물었다.
“여기 직원분이세요?”
“예, 맞는…….”
“아니에요. 방금 해고당한 사람이 무슨 직원이야!”
여직원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을 했다.
남자는 여직원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고 있던 사장의 팔을 억지로 떼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관계자시군요. 잠시 기다렸다가 여기 담당자한테 자세한 내용 말씀해 주세요. 잘 처리될 겁니다.”
남자가 가리킨 곳에는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당신 누구야?”
그제야 수상쩍은 걸 느낀 사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젊은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가 호감 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서류가방에서 빳빳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용산 세무서 조사1과 신재현입니다. 조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
아침 9시 영진마트 앞.
주차장에는 납품업체 사람들과 마트 직원들이 한데 모여 물건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언뜻 봐도 직원만 대여섯 명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옆에 서 있는 황민우 서기에게 말했다.
“어제 노동부에 공문 보내셨죠?”
“네. 근로 감독관 한 명 파견 나오기로 했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서 있자 과연 저 멀리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40대 여성이 한 명 보였다.
그녀는 오자마자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갖고 온 서류에 침을 묻혀 넘겼다.
“사대 보험 신고 된 사람이 어디 보자, 네 명입니다. 일용직 근로 내용 확인 신고 들어온 게 두 명이네요.”
그러더니 그녀는 건축물 대장도 꺼냈다.
“매장 면적이 넓네요? 허메, 아무리 봐도 네 명 각이 안 나오는데. 근로자 5인 이상이면 걸리는 게 많아서 4명만 신고했구만.”
한 회사에서 5명 이상 고용하게 되면 연차, 해고 제한, 연장수당 등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때문에 일부러 정규 근로자 신고는 4명만 한 것이다.
“세무서에 신고 들어온 인건비 내역도 그렇습니다. 올해 초 연말정산 내용 보니까 4명이에요.”
“조사관님들 오늘부터 매출액 계산하실 거죠? 후딱 고지하러 가셔야겠네.”
근로 감독관은 익숙한 눈길로 안을 휙 훑어보더니 마트 뒤로 향했다.
현장 조사를 꽤 돌아본 경력자 같았다.
마트 뒤, 자그마한 공터에 고급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고 뒷문이 나 있었다.
“이런 마트는 2층 아니면 뒤에 따로 사무실 내거든요. 이리로 들어가세요.”
근로 감독관의 안내에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성이 들려왔다.
남녀가 다투는 소리다.
월급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근로 감독관의 얼굴이 싹 변했다.
“악질이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직원이 떠밀리듯 나왔다.
나는 그녀를 달랜 후 근로 감독관에게 넘겼다.
노동법과 사대 보험에 관해선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이다.
자, 첫 조사다.
나는 작게 숨을 들이쉰 후 사장과 마주 보았다.
난데없이 방해받아 인상을 찌푸린 그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문득 스쳐가는 아홉 자리 숫자.
416,422,580.
탈세액이 4억이나 되네.
나는 작게 숨을 내쉰 후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며 인사했다.
“용산 세무서 조사1과 신재현입니다. 조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순간 사장의 얼굴이 싹 굳었다.
그러나 원래 안색을 되찾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는 어디선가 들은 지식을 주워섬겼다.
“세무조사? 그거 나올 땐 원래 사전에 통지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영세 상인한테 너무하네.”
5억이나 탈세한 놈이 영세는 무슨.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으면 사전 통지 없이 조사할 수 있습니다.”
사장이 얼굴을 구기더니 내 손에서 공문을 빼앗듯 낚아챘다.
“조사1과 7급 신재현, 8급 황민우. 두 사람 이름 기억해 둘 겁니다. 어디 털어먹을 데가 없어서 영세업자를 털어먹을라 그래?”
“영세업자요? 사장님. 어디 한번 까볼까요?”
처음 마트를 들어서며 느꼈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분노와 부당함이었다.
나는 철제 의자를 끌어다 테이블 앞에 놓고 손익계산서를 턱 내려놓았다.
선빵필승.
기선제압이 먼저다.
“사장님. 인건비가 9600만 원이네요.”
“아. 직원들 인건비 신고 안 했다고 그러는 겁니까, 지금? 그건 탈세가 아니지. 오히려 적게 신고한 건데.”
사장이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거만하게 말했다.
“내가 한번 제대로 신고해 볼까요? 남는 것도 없는데. 아마 손실 나서 세금 낼 것도 없을걸?”
말하는 데서 여유가 느껴졌다.
아마 세무사에게서 상담을 받던가 했을 것이다.
그의 말이 맞다.
매출이 3억이어도 인건비와 물건값을 빼면 손실이니 낼 세금이 없지.
그러나 내가 물어뜯을 부분은 그게 아니다.
“인건비 신고는 제 알 바 아니에요. 그건 저기 노동부 근로감독관이랑 얘기하시구요.”
“뭐?”
사장에게서 미세한 당혹감이 느껴졌다.
“사장님. 적정 인건비라는 게 있습니다. 보통 매출액의 30~40%를 인건비로 써요. 정규직, 알바 가리지 않구요.”
“그, 그래요?”
“마침 딱 작년 매출 3억에 인건비 9600만 원이면 32%더라구요. 적정하죠?”
“거 봐요. 적정하잖아요. 사람 놀라게 만드네.”
“아니죠, 사장님.”
나는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띄웠다.
어제 오후 마트에 들어와 찍은 것이었다.
“마트 계산대에 세 명. 정리하는 직원들 셋. 외부 가판대 및 정리 직원 하나. 배달 직원 셋. 총 10명입니다.”
“그니까 그 인건비 다 제대로 신고하면 영업 손실 난다니까요. 세금 안 낸다니까?”
“사장님은 방금 자진납세 하신거나 다름없습니다.”
사장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실수를 했나 싶을 것이다.
“사장님. 자선사업 하세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당연히 돈 벌려고 이 짓…….”
“그렇죠? 직원 10명이면 단순 계산해도 2억 4천이던데 매출 3억이잖아요. 보니까 다른 소득도 없으시던데. 마이너스가 심한데 생활비는 어디서 나서 먹고 삽니까?”
“아니, 그렇게 많이 손실 나는 건 아니고. 그냥 허리띠 졸라매면서 먹고 살 정도로…….”
사장이 횡설수설하는 것을 보며 부가세 신고서를 꺼내 내밀었다.
“우리나라는 카드 보급이 굉장히 잘 되어 있습니다. 카드 쓰면 금융사에 바로 통보가 가는데, 금융사가 자료를 바로 우리 국세청에 넘기거든요? 마트 같은 경우 평균적으로 카드 대비 현금 사용량이 약 3%에 그칩니다. 시골 같은 경우는 10%까지 올라가기도 하죠. 영진마트도 카드 매출 3억에 현금 매출 900만 원. 3%예요.”
“그, 그렇습니다.”
이젠 사장도 눈치 챘을 것이다.
비율이 평균적이라고 읊어주는 게 무조건 합법이라는 뜻이 아님을.
“대충 보니까 여긴 오히려 반대던데요. 카드 결제하는 사람보다 현금 내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아, 잘못 보신 겁니다. 여기도 거의 카드예요.”
갑자기 공손하게 존대하며 양손을 젓는 사장을 보며 이번엔 동영상을 틀었다.
“자, 궁금하실 테니 빨리 넘길게요. 약 10분간 찍은 영상인데 10명 중 카드 결제 딱 한 명 있죠? 단순 계산하면 현금 계산이 카드 결제의 10배라는 뜻이네요. 그쵸?”
“아니. 이건 또 언제 찍으셨어. 그때만 잠깐 그런 거예요. 실제론 현금이 카드의 두 배밖에…… 헙.”
급히 입을 막고 눈알을 데굴 굴리던 사장이 뒤늦게 뭐라 말하려 했다.
“카드의 두 배면 6억. 1년 매출 총 9억이네요?”
나는 서류를 정리하며 빙긋 웃었다.
“사장님. 사실 이런 말 다 필요 없습니다. 지금부터 이틀간, 계산대 옆에 저와 여기 황민우 서기가 영업하는 내내 서 있을 겁니다.”
“그거 영업방해 아닙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기만 하는데요. 그게 가장 깨끗하고 명확한 방법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옆에 공무원 서 있으면 직원들이 어떻게 일을 합니까.”
“아, 그렇겠군요. 그럼 이렇게 하죠. CCTV와 포스기에 찍힌 매출액 제공해 주십시오.”
“아…….”
사장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다.
“자자, 10시부터 영업 시작이죠? 황민우 서기님. CCTV 영상 확보 부탁드립니다. 포스기는 제가 볼게요.”
황민우가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사무실 한쪽에 설치된 CCTV 화면으로 다가갔다.
“오. 웬일이야. 아주 깔끔하게 다 보존되어 있는데요?”
나도 슬쩍 들여다보자 과연 고화질 영상이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사전 통지 없이 온 보람이 있다.
얄짤 없이 하루 종일 계산대 옆에 서서 매출액 추산해야 될 줄 알았더니.
이러면 포스 기록도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잘됐네요. 싹 수거합시다.”
“악, 잠깐만! 안 돼! 안 된다고!”
나는 벌떡 일어선 사장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다시 앉혔다.
“다른 조사가 더 남았는데요. 근로감독관님!”
사무실 밖에서 여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년 여성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사대보험 미가입, 일용직 미신고, 근로계약서 미작성, 최저임금 위반. 감독관님, 이거 어느 정도까지 때리실 겁니까?”
엄격한 세법과 달리 사대보험의 경우 공단 지사마다, 직원마다 매기는 과태료 정도가 달랐다.
처음 걸린 경우 경고로 끝내기도 했다.
하지만 근로 감독관은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인건비 미지급, 퇴직급여 미지급도 심각하더군요. 사장님, 이거 밀린 돈 납부하는 걸론 안 끝나요. 빨간 줄 그어질 겁니다.”
사장이 넋 나간 듯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