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첫 번째 조사(1)
조사과장과 헤어진 후 나는 곧바로 제보자가 말한 마트로 향했다.
동네 슈퍼 정도를 상상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엄청나게 컸다.
주차장에는 차가 대여섯 대 서 있고 그 사이로 아저씨들이 지게차로 박스째 물건을 실어 날랐다.
“과일 사 가세요, 과일! 현금 결제하시면 에누리해 드려요!”
현금을 유도하는 호객행위는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들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왜 두 과장이 탈세액이 꽤 될 것이라고 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규모는 확실히 크지만 다른 슈퍼와 다를 바가 없었다.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은 사실 다른 업종도 꽤 하는 일이다.
특히 노점상, 식당, 구멍가게 등에서 카드를 내밀면 난색을 표하는 모습을 꽤 볼 수 있다.
내가 소득세과에 있을 때 언뜻 듣기로는 이런 곳은 조사를 나가도 굳이 이득이 없다고 했다.
규모가 작기에 탈세액도 크지 않고. 막상 조사를 나가면 영세상인 죽인다고 반발도 크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매출액 100억짜리 법인이나 들여다보는 것이 나았다.
그래도 나보다 훨씬 오래 일한 과장 둘이 입을 모아 말했으니 탈세액이 꽤 되긴 할 것이다.
나는 상황을 살펴볼 겸 마트 앞으로 다가갔다.
가판대 위의 과일을 살펴보는 척하며 드나드는 손님의 수를 셌다.
생각보다 많다.
낮인데도 이 정도라면 나중에 저녁때가 되면 장 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아, 거기 과일 막 그렇게 만지지 마세요. 살 거예요?”
손님이 많아서인지 가판대의 아주머니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손님 하나가 멋쩍게 과일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서 나는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결제하는 손님 딱 열 명만 살펴보자.
음료수 하나를 꺼낸 뒤 계산대 옆의 과자 코너를 서성였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열 명이 계산하고 마트를 나가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카드를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현금 우대라고 해도 카드가 한 명도 없다니.
나는 그제야 음료수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1,200원입니다.”
“카드인데요.”
“그럼 1,320원 주셔야 해요.”
“어, 카드는 왜 가격이 달라요?”
계산원이 내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생이 뭘 모르나 본데 장사하는 사람은 세금 낼 게 많아요.”
“이해가 안 되는데요. 다른데도 다 세금 내면서 장사하잖아요. 뭐 여기만 세금 내나요?”
“학생, 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바쁘니까 안 살 거면 그냥 가요.”
계산원 말대로다.
직원과 싸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서 싸우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장을 만나기 전에 좀 더 지켜보고 싶었다.
나는 카드를 내밀고 계산한 후 영수증을 받았다.
판매대에 쓰여 있는 음료수의 가격표는 이미 찍어 둔 후다.
설령 조사 나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가격표를 내일 당장 바꾼다고 해도 증거 하나는 확보한 것이다.
혹시나 무언가 보일까 싶어 마트 내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숫자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한 불쾌감이 떠올랐다.
냄새가 난다.
대충 한 바퀴 돌고 나서 머릿속으로 간략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소득세과에 있을 때 다른 직원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일단 식당이나 가게에 조사 나가면 꼬박 하루 종일 계산대 옆에 앉아서 매출을 봐 봐. 그 금액에 영업일 곱하면 대충 1년 매출이야.’
본격적으로 하는 매출 추정은 내일 아침 마트가 문 여는 시간부터다.
오늘은 최대한 둘러봐야 했다.
특히나 탈세범들은 세금에 반감이 심하기 때문에 끽소리 못할 정도로 명확하게 과세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카드가로 산 음료수를 들이켜며 주차장에 나왔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있을 때였다.
문득 마트 입구에 서성거리는 아주머니 한 명이 보였다.
손님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가 했는데 길가가 아닌 마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엔 원망이 깃들어 있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아주머니는 고민을 거듭하더니 이윽고 마트 주차장에 발을 디뎠다.
“이 아줌마 또 왔네!”
“아이쿠!”
그리고 주차장에 있던 아저씨에게 밀쳐졌다.
“오지 말라니까 자꾸 와요!”
“이거 너무 하잖아요. 어떻게 장사를 이렇게 해요?”
“아줌마,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
“아니 좀 들어봐요. 갑자기 떡 하니 마트 차리더니 물건을…….”
“아, 글쎄 가시라니까요. 사장님 나오면 큰일 난다고요!”
“나오라 그래요. 사장 나오라고 해요!”
“어허, 참나.”
마트 주차장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것을 보는 눈빛이었다.
“나도 곤란하니까 가세요, 가!”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주차장 밖까지 쫓겨난 아주머니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더니 뒤돌아 터덜터덜 걸었다.
나는 마시던 음료수병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아주머니는 길을 따라 걷더니 골목으로 들어갔다.
주택가 깊숙이에 자그마한 가게가 하나 있었다.
마트와는 불과 5분 거리다.
장사는 해 본 적 없는 나라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마트가 있는 한 여긴 망한다.
과연 10평 남짓한 가게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계산대에 앉은 아주머니는 반쯤 풀린 눈동자로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마트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비닐봉지를 든 사람들이 간간이 가게 앞을 지나쳤다.
예전에 실사 조사를 다녀왔던 소득세과 선배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조사 나가면 당연히 다 숨기지. 그니까 들어가기 전에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돼. 누가 드나들진 않았는지, 뭘 버리진 않았는지.’
마트에 무슨 대단한 탈세가 있겠냐 싶었지만, 아주머니가 문전박대 당한 게 신경 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아. 어서 오세요.”
얼마나 손님이 없었는지 내가 들어가자 아주머니가 넋을 놓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아까 마트에 있었는데요.”
“아……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봐 버려서.”
나는 안색이 어두워진 아주머니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래서 따라오셨구나. 이 동네에선 저 마트 유명한데.”
“할인해서 싸게 팔아서요?”
“아유, 아니에요. 얼마나 악질인데.”
내가 묻자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탄하기 시작했다.
“그 마트 때문에 슈퍼 여럿 죽어 나갔어요. 저 골목 너머에 있던 구멍가게도 며칠 전 문 닫았고.”
“마트에 손님이 몰려서 그런가요?”
“그 정도가 아니에요. 동네 슈퍼들이 1500원에 팔면 거기는 1400원에 팔아요. 우리가 또 1300원으로 내리면 거기는 1200원으로 내려요.”
“예? 그러면 남긴 남습니까?”
내가 어이없어하며 묻자 아주머니가 목소리 톤을 올렸다.
“그게 아주 작정했어요! 거기 원래 마트 자리가 맞는데 장사가 잘되니까 세입자 쫓아내고 자기가 직접 하더라구요. 그때부터예요.”
그제야 나는 마트 주인의 속내를 이해했다.
주변 상권의 씨를 말려 버리고 혼자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형마트도 아닌 이상 관련 법의 적용도 받지 않을 것이고.
싸게 팔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리고 주변 슈퍼가 모두 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마진을 올려 받으면 해결이다.
“나는 단골손님들 덕에 어찌 저찌 버텼는데 우리 가게도 슬슬 문 닫아야 해요. 여기 닫고 나면 남는 건 길 건너 슈퍼 하나뿐인데…….”
아주머니의 한탄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트 직원들은 어떻습니까?”
아까 분명 제보자가 마트의 전 직원이라고 했다.
나도 내부 고발을 해 봐서 잘 안다.
직원이 참다못해 부당함을 호소할 때는 이미 안에서 곪을 대로 곪았다는 뜻이다.
제보자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대우가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거기 직원 수시로 바뀌어요. 보니까 한 달 쓰고 바꾸고 그런 것 같던데.”
이걸 잘만 이용하면 될 것 같은데.
뇌에 간질간질하게 떠도는데 막상 구체적으로는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내 얼굴을 본 아주머니가 아차 했다.
“처음 보는 사람 붙잡고 너무 한탄만 했네요.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어쩌면 큰 도움을 주신 걸지도 몰라요.”
“예?”
어리둥절해 하는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슈퍼를 나왔다.
도로 큰길의 마트로 돌아와 보니 어쩐지 아까보다 손님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본격적으로 매출 규모를 조사하면 꽤 탈세액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아까 제보자 앞에서 두 과장은 대체 뭘 보고 바로 탈세액이 꽤 될 거라고 단언한 거지?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지만, 제보자의 말을 잘 곱씹어 봐도 그리 힌트가 될 만한 언급은 없었다.
기껏해야 금고에 현금이 있었던 정도?
현금.
이게 힌트가 될 수 있나?
고민하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조심스레 받아 보니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재현 주사보님 맞으십니까?”
“예. 누구시죠?”
“지금 어디 계세요?”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다니.
꽤 마이페이스인 사람이다.
“어디 계시…… 아, 거기 계시는구나. 확인했습니다.”
“……?”
자기 할 말만 하더니 전화가 뚝 끊겼다.
어이없어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빵, 하고 가벼운 클랙슨 소리가 났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더니 운전석에서 웬 남자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주사보님, 타시죠.”
“누구시죠?”
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묻자 남자가 피식 웃으며 운전석에서 내렸다.
“조사1과 8급 황민우 서기입니다. 오늘 갑자기 이동하셨다면서요? 과장님한테 연락받고 부랴부랴 뛰어나왔습니다.”
30대 초반쯤 되었을까.
밝고 말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다.
8급은 공채가 없으니 그는 9급으로 들어와 승진 시험을 봤다는 말이 된다.
즉 나보다 몇 년을 더 공무원 일을 한 선배라는 뜻이다.
나이도 나보다 많고 경력도 나보다 많아서일까.
그는 얕잡아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단 타시죠.”
황민우의 말에 조수석에 타자 그가 냅다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아무리 급하셔도 그렇지 재무제표도 안 갖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내가 실무 경험이 없어서 실수한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가 날 보던 눈빛이 왜 가벼웠는지 짐작이 갔다.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서류를 받아서 하나하나 넘겼다.
종합소득세 신고서, 조정계산서, 그리고 재무제표.
그리고 맨 뒤에 첨부된 부가세 신고서를 본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왜 두 과장이 대번에 탈세라고 단언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카드 및 현금영수증 매출액이 1년에 1억 원.
현금 매출액이 연 300만 원이라고 신고되어 있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1년에 현금 수입이 300만 원이라니. 거짓말도 정도껏 쳐야지.”
내가 자료를 훑어보는 동안 황민우가 차를 마트 안 주차장으로 몰았다.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던 그가 내 혼잣말을 듣더니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첫 조사라고 들었는데. 감이 좀 잡히시나 봐요?”
나는 아까 관찰했던 마트 계산대를 떠올리며 말했다.
“매출 누락 확실합니다. 그것도 꽤 많을 거예요.”
“뭐야, 생각보단 잘하고 계셨나 보네. 그럼 어떻게, 바로 칠까요?”
황민우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손익계산서를 넘겼다.
인건비 항목에 내 눈길이 잠시 멈췄다.
“이거다.”
머릿속이 시원하게 밝아졌다.
아까 떠오를 듯 말 듯 간질간질했던 것이 이제야 형태가 된 느낌이다.
“매출 조사는 내일 아침 일찍 시작합시다. 그리고 하나 더, 고용센터에 협조 공문 보내 주세요.”
“노동부요?”
내가 씨익 웃자 그가 감을 잡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로 감독관 파견해 달라고 하세요. 양쪽에서 공략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