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서내 이동
“서내 이동 말입니까?”
한 서로 발령되고 나면 처음은 민원실에서 한 달 근무하고 소득세과나 법인세과 재산세과 등으로 이동된다.
물론 여기에 인맥이 작용하곤 한다.
서 내에서 이동이 빈번한 건 납세자와 유착을 피하기 위함이라 서장이 과를 옮겨 주겠다고 한 건 월권이 아니었다.
“내 밑으로 올래?”
내가 고민하는 눈치자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슬쩍 제안했다.
재산세과라 함은 어느 서든 기둥이나 다름없다.
타 과도 중요한 건 맞지만 재산세과는 양도세, 상속세, 증여세를 다루므로 부자들이 주 상대다.
당연히 만반의 준비를 해서 신고하기 때문에 그들과 투덕거리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경험을 해 보고 싶었다.
“조사과로 보내 주십시오.”
내 말에 재산세과장이 아쉬운 얼굴을 했다.
“아이구, 결국 거기로 가는구만. 근데 괜찮겠어? 거기는 일반적인 납세과랑은 달라.”
조사과.
세목 가리지 않고 포괄적으로 조사한다.
세무조사가 들어왔다 하면 보통 조사과의 조사를 말했다.
일반 납세과에서 납세자에게 소명 요구를 하고 과세를 때리기도 하지만 포괄적인 조사가 필요하면 조사과로 넘겼다.
한마디로, 수상한 걸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과로 업무량과 압박도 엄청났다.
“거기 힘들 텐데. 재산세과도 경험은 충분히 할 수 있어.”
“함 과장. 벌써 잊었습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허락한 게 5분 전입니다.”
재산세과장이 자꾸 설득하려 들자 지켜보던 서장이 말렸다.
“쩝. 그야 그렇긴 한데.”
“말씀은 감사합니다. 근데 제 목표는 조사국이라서요.”
“어휴, 그 힘든 데를…… 평범한 놈은 아니다 했더니만.”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 스스로 험난한 길 걷겠다는데 선배가 당연히 응원해 줘야지. 그래, 열심히 해 봐. 조사과장 놈이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되겠지만 나쁜 놈은 아니니까.”
“어려움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우리 서를 위한 일이니 우리 나름대로도 움직일 겁니다.”
두 상사의 듬직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조질 놈은 꼭 조지겠습니다.”
***
소득세과 사무실로 돌아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자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던 여선배가 말을 걸었다.
계장에게 대들었을 때 날 말리던 여선배다.
“신재현 씨. 진짜 조사과로 가세요?”
“네. 그렇게 됐네요.”
과장도 계장도 없고 거기다 직원도 한 명 빠진다.
소득세과 분위기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이렇게 갑자기요?”
“아, 인수인계는 하고 가겠습니다. 웬만한 건 다 끝내 놨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을 흐리던 선배가 우물쭈물하며 다가왔다.
“재현 씨가 보기엔 제가 많이 한심했겠죠.”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과장님 아는 데라고 그냥 모르는 척하라고 하고. 저도 처음 들어올 땐 신재현 씨처럼 꿋꿋했는데. 어느 샌가 구부러졌더라고요.”
“선배님. 어쩔 수 없었잖아요. 힘이 없었으니까. 그런 상황을 만든 놈이 개새끼인 거죠.”
“재현 씨…….”
“앞으로 제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선배 아직 공무원 생활 한참 남았잖아요.”
그녀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대로 할게요! 재현 씨도 조사과 가서 기죽지 말고 해요!”
한 번 굽혀 본 사람이 다시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응원했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은 어려운 결심이니까.
나는 내 물건을 담은 상자를 들고 일어서서 소득세과 직원들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끔 놀러 와요, 재현 씨!”
여선배 혼자만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반응 없는 사무실에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려던 때였다.
-드륵.
하나둘 직원들이 멋쩍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기다리는데 직원들이 나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신재현 주무관 님.”
1, 2계 합쳐 스무 명도 넘는 직원들이 나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과장이나 계장이 다른 부서로 옮길 때나 해주던 존경이 깃든 인사다.
그동안 내심 서운하기도 했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단숨에 모든 악감정이 날아갔다.
이 안에 김계현 소득세과장에게 포섭된 뿌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만큼은 의심을 거두고 나 역시 허리를 굽혔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가 고개를 들고 소득세과를 나설 때까지 그들은 일어선 채 나를 배웅했다.
***
용산 세무서 조사과는 건물 밖에 있었다.
아니, 용산 세무서 부지 안에 있는 것은 맞지만 본관과는 아예 다른 건물을 쓰고 있었다.
일단 현관으로 나온 후 건물을 빙 둘러 안쪽으로 들어가자 자그마한 건물 한 채가 보였다.
벽에 붙은 낡은 패널에는 화살표와 함께 ‘조사과’라고 쓰여 있었다.
이 서에 발령받고 나서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조사과 건물이다.
외부인이 많이 들락거려 항상 북적대는 본관과는 달리 조사과는 입구부터 조용했다.
마치 다른 세계 같다.
처음 용산 세무서에 발령받았을 때처럼 긴장감이 스쳐 갔다.
막 사무실 문을 열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안에서 후다닥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부딪힐까 싶어 옆으로 비켜나자 불투명한 유리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조사과 건물을 나가려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마른 체격에 큰 키, 어딘지 초췌해 보이는 인상이다.
날카로운 눈빛이 재빠르게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새로 온다던 1년 차 주사보인가?”
인상만큼이나 날카로운 목소리다.
그는 나를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따라와.”
아직 사무실 구경도 못 해 봤는데?
하지만 내게 명령할 정도면 최소한 내 선배나 상사 정도는 될 것이다.
나는 사무실 문가에 대충 짐을 내려놓은 채 서둘러 뒤를 쫓았다.
뭐가 그리 급한지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었다.
직급도, 직책도 모르는 그 남자가 간 곳은 본관 건물이었다.
한달음에 입구 계단을 건너뛴 그는 1층 민원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 조사과장님 오셨네?”
민원실 안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그 안쪽에는 작은 상담실 같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푸짐한 인상의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단한 건도 아닌데 과장이 직접 왔어? 내가 알아서 접수해서 넘길 텐데.”
탈세 제보 접수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서면 접수라면 세무서 운영지원과장의 업무다.
나는 새삼스럽게 조사과에서 만나 여기까지 함께 온 깡마른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이 사람이 과장이었구나.
그는 다짜고짜 따라오라 손짓해 놓고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제보자한테 직접 듣고 싶어서요.”
“뭐, 그래요. 같이 들어갑시다.”
두 과장이 앞서 상담실로 들어갔고 나는 얼른 뒤따라갔다.
4명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 건너편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갑작스레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자 여자가 긴장한 얼굴을 했다.
“제보자인 최민지 씨예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 조사과장이 제보자 앞에 앉았다.
나는 조사과장 뒤에 자리를 잡았고, 두 과장은 주섬주섬 서류와 녹음기를 꺼냈다.
“탈세 제보는 중요한 사안이라 녹음하겠습니다. 제보자분의 신원은 절대 노출되지 않습니다. 녹음에 동의하십니까?”
잠시 생각하던 제보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녹음기의 버튼이 눌리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가벼운 신상 조사였다.
제보자의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을 물어본 후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됐다.
“탈세한 사람은 누굽니까?”
“마트 사장이에요. 거기는 카드로 하면 정가를 받고 현금으로 하면 깎아주거든요.”
묵묵히 듣는 조사과장과 다르게 운영지원과장은 의아한 표정을 했다.
이런 곳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길가의 노점이나 동네 골목상권, 그리고 지하상가 가게들도 흔히 현금을 주면 싸게 판다.
이런 곳은 워낙 많기 때문에 제보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혹시 마트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채권자라거나 경쟁자라거나.”
운영지원과장의 질문은 그의 푸짐한 인상과는 다르게 꽤나 뾰족했다.
“관계라니…….”
“제보가 들어온 이상 저희는 조사에 착수합니다. 그런데 간혹 제보를 복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분이 계셔서요.”
“지금 제가 마트 망하게 하려고 이런다는 얘기예요?”
제보자의 목소리가 커지자 조사과장이 손짓으로 운영지원과장을 제지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제보자에게 말했다.
“망하게 하려고 하는 제보도 상관없습니다. 저희 조사과는 탈세범 잡는 게 목적이에요. 정말 탈세가 맞다면 성심성의껏 조사할 겁니다.”
“탈세 맞아요.”
제보자가 단호한 얼굴을 했다.
“그럼 증거가 있습니까?”
제보자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반투명한 창문 틈으로 한 남자가 금고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는 사진이었다.
다음으로 넘기자 금고 안이 살짝 보였다.
5만 원짜리 현금다발이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제대로 찍은 사진은 없습니까?”
“그게 다예요…….”
제보자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사과장은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더니 제보자를 가리켰다.
“이 마트 직원이십니까?”
“예? 아니 그걸 어떻게…….”
“외부인은 보통 마트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선생님이 거래처 직원이라면 사무실을 알겠지만, 외부인을 앞에 두고 현금이 든 금고를 열 리가 없죠. 사무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직원이라 의심받지 않은 것 아닙니까?”
제보자가 뜨악한 얼굴을 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무슨 이유에서든 탈세는 조사합니다. 다만 직원이 탈세 제보를 하는 경우는 딱 하나에요. 부당한 처사를 당했을 때. 맞습니까?”
“……네. 월급을 제대로 안 줘서요. 근데 금고엔 돈을 쌓아 놓고 있잖아요.”
“혹시 직원은 몇 명 있었습니까?”
“글쎄요. 열다섯 명 정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 서류 작성을 부탁드립니다.”
제보자에게 서류 몇 장을 넘긴 후에 두 과장은 상담실을 나갔다.
따라 나가자 둘은 민원실 깊숙한 곳에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확신은 없는 상태에서 제보한 것 같지?”
“네. 보통 내부자가 제보하러 올 땐 장부나 거래 내역을 들고 오니까요. 아무래도 단순 복수인 것 같습니다.”
그럼 조사는 대충하고 넘어가는 건가 했는데 운영지원과장이 담담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탈세 규모는 꽤 되겠군.”
“그럴 겁니다.”
의외의 대화였다.
“그럼 서류 받고 자료는 정식으로 이관할게.”
손을 흔들며 다시 상담실로 향하는 운영지원과장을 뒤로 하고 우리는 민원실을 나왔다.
세무서 현관 앞에서 멈춰선 조사과장은 무언가를 슥슥 적더니 내게 내밀었다.
받고 보니 그의 명함이었다.
[용산 세무서 조사과장 김명중]
“우리 과는 각자 다른 조사관들이 어딜 조사하는지 모르는 게 원칙이야. 누가 뭘 하는지 전부 아는 건 오직 하나, 나뿐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나한테 직접 보고해.”
“예, 과장님.”
“조사과는 기본이 2인 1조다. 혼자 다니면 뇌물 받기 쉬우니까. 근데 지금 빈손이 없어.”
오늘부터 내 새로운 상관인 조사과장이 어떤 사람인지 피부로 와 닿았다.
이 사람은 미사여구, 인사 그런 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봤을 터인 신입 부하인 나에게 부연 설명 없이 업무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
“너는 혼자 다녀도 딱히 상관없을 것 같으니까 일단 먼저 실사 조사 나가. 일손 나는 대로 한 놈 보내 줄 테니까. 주소는 명함 뒤에 있다.”
“……예?”
혼자 다녀도 상관없을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되물었지만, 조사과장은 말이 끝나자마자 휙 뒤돌아 성큼성큼 별관으로 향했다.
여전히 빠른 걸음걸이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에 든다.
날카롭고 사회성은 부족해 보이지만, 일 처리는 확실해 보였다.
나는 명함을 뒤집어 주소를 확인했다.
과장이 어떤 사람인지, 이 서에 어떤 비리 공무원들이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세무 공무원 본연의 업무도 중요했다.
좋아, 일단은 조사다.
처음 나가는 실사 조사에 마음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