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6화 (6/500)

6화. 세 명의 과장(3)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너희 두 놈, 나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임정학이 돌연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독기를 품은 목소리였다.

“오랜만입니다, 기 과장님. 그간 무탈하셨지요?”

안부 인사를 나누던 그가 날 쳐다보며 의기양양하게 본론을 꺼냈다.

“용산서에 있는 제 지인들이 좀 곤란한 일에 휘말렸지 뭡니까. 덕분에 저도 죽겠습니다. 하하하, 과장님이…… 예?”

임정학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전화를 들었다.

옆에서 바라보는 김계현 소득세과장과 계장도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안녕하십니까, 주 과장님. 요즘 용산서에…… 과장님, 과장님?”

이번에는 말을 꺼내자마자 전화가 끊긴 모양이다.

멍하니 액정만 쳐다보는 임정학의 얼굴에 그제야 긴장이 흘렀다.

“자자, 성실 납세하실 거죠?”

내가 환한 어투로 말하자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소득세과장이 벌떡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다가온 그가 내 손을 꾹 잡았다.

“시, 신재현이. 이러지 말자고. 우리 같은 서 식구잖아.”

-지잉.

타이밍 좋게 내 핸드폰이 울렸다.

억지로 손을 빼내 열어보니 삼성세무서 이선균 과장의 문자였다.

[오늘 오후, 용산 세무서에 검찰 수사관 방문 예정.]

나는 김계현 소득세과장의 손가락을 떼어내고서 핸드폰을 얼굴에 들이댔다.

처음엔 뭔가 조건을 제시하는 줄 알고 반색하던 김계현 소득세과장이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먹듯 눈에 새겼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과장님?”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온 계장이 내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아니야. 이럴 순 없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건데.”

세상을 잃은 듯 한심하게 주저앉은 둘을 일별하고 임정학에게 말했다.

“따님께 빠른 납세 부탁드린다고 전해 주십쇼.”

“잠깐, 증여세 5억은 내도록 하지. 대신 거기서 끝내.”

임정학이 굳은 표정으로 딜을 걸어왔다.

“공무원들 실적 때문에 아등바등하는 건 알고 있어. 한 방에 5억 땡기면 1년 차치곤 수금 잘한 거지.”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 사람은 지금 공무원을 돈이나 수금하러 다니는 일수 상인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세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뻔했다.

임정학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중 두 장을 집더니 떡하니 내밀었다.

“앞으로 내가 필요한 건 뭐든 도와줄 테니 말만 해. 이건 내 마음의 표시야.”

주저앉은 두 놈의 허탈한 시선과, 내 옆의 함선호 재산세과장의 흥미로워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임정학이 내민 두 장의 종이를 집어 들었다.

10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이었다.

뒤에서 함선호 과장의 옅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임정학이 ‘그럼 그렇지’하는 것처럼 도로 거만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수표를 반으로 찢었다.

“도와주시는 방법은 딱 하납니다. 성실하게 납세 의무를 다하세요.”

“허, 이거 미친놈이잖아.”

“통지서는 없지만, 과세 예고 하나 드리죠. 임성물산은 세무조사 들어갈 겁니다. 소명 준비 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검찰에 설명할 준비도 해 두시죠.”

등 뒤에서 함선호 과장이 요란하게 웃는 소리가 났다.

***

그날 오후, 예고한 대로 정장 차림의 남자 대여섯 명이 들이닥쳤다.

승합차에서 내린 세무서 직원과 일체의 말도 나누지 않은 채 3층 소득세과 사무실로 올라왔다.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과장과 계장의 컴퓨터와 서류철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마지막으로 수사관들이 과장과 계장을 질질 끌고 내려갔다.

대참사라고도 할 수 있는 사태에 온 서의 공무원들이 구경하러 내려왔다.

현관 앞에는 서장과 과장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소득세과장과 계장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승합차에 올랐다.

수사관 중 한 명이 서장에게 90도로 인사했다.

그리고 승합차에 올라타기 전, 서 앞에 나와 있는 공무원들을 훑었다.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슬쩍 웃더니 차에 올랐다.

……나를 아나?

사건이 일단락되자 서장이 나서서 직원들을 독려했다.

“여러분, 동요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는 세무공무원이고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그는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소득세과는 당분간 과장과 계장이 비었으니 결재는 바로 제 앞으로 올리면 됩니다. 후임은 금방 채워질 테니 일에 열중해 주세요.”

서장 옆에 서 있던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침울하게 말했다.

“우리 모두 반성하자! 저런 놈들이 활개 치게 놔둔 것도 다 우리 탓이야. 누구보다 법을 지키고, 법을 다뤄야 하는 사람들이다.”

잡혀가는 과장을 구경하러 나온 공무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쪽팔리다! 나도 쪽팔려! 그러니까 앞으로는 쪽팔리지 않게 하자!”

“예!”

“자자, 일하러 갑시다!”

직원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타 과 과장과 계장들이 직원들을 해산시켰다.

함선호 재산세과장은 거의 호통을 치다시피 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 반성하자!

그때 서장이 돌연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신재현 주사보. 잠깐 시간 됩니까?”

“예.”

무슨 일일까 하는 마음보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아무리 비리 공무원이라도 1년 차 주제에 과장과 계장의 목을 날렸다.

게다가 검찰로 넘어갔으니 신문에 실릴 만한 사건이다.

좀 자중하라든가 민원실로 보내 버린다든가 하는 압박을 예상했다.

서장과 함께 4층 서장실로 들어가자 어느새 뒤에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따라 들어왔다.

“함 과장. 왜 또 따라 들어옵니까? 내가 알아서 잘 말할 건데.”

“우리 서장님이 워낙에 새가슴이셔서 그렇죠. 오늘 제가 얼마나 감탄했는지 아십니까? 캬, 서장님도 그놈들 얼굴을 보셨어야 했는데.”

“거참. 너무 겁주지 마세요. 싹쓸이고 뭐고 평화롭게 은퇴하고 싶어지잖습니까.”

서장과 함선호 과장이 주고받는 대화에 어리둥절해졌다.

생각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자, 앉아요.”

마른 체구의 서장은 정년을 앞둔 나이였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기억에 잘 남지 않는 인상이다.

서장실의 소파는 하도 오래돼서 그런지 앉자마자 몸이 푹 꺼졌다.

함선호 과장은 자기 사무실처럼 익숙하게 테이블을 뒤적거렸다.

“은단에 노니…… 아, 홍삼 사탕이다.”

함선호 과장은 자기 사무실처럼 익숙하게 테이블 밑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그는 홍삼 사탕을 나와 서장에게 건넨 후 자신도 하나를 입에 까서 넣었다.

“내가 살다가 그런 장면을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일부러 하나도 안 거들고 자료만 건네줬는데, 누가 보면 재산세과 10년 차 베테랑인 줄 알았다니까.”

왜인지는 모르지만 과장은 매우 흥분해 있었다.

그는 나를 앞에 두고 오전에 있었던 무용담을 과장스럽게 말했고 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과장님. 너무 띄워주시는데요.”

“오늘 네가 한 건 그만한 일이었어. 김계현 과장은 여기 발령받아 오자마자 임성물산하고 손잡고 서 전체를 휘어잡더라고. 위에도 끈이 있고. 지금껏 아무도 손 못 댄 게 그 때문이야.”

계장이 언급하긴 했다.

본청에도 줄이 있다던가.

“알게 모르게 김계현이 끌어들인 공무원들이 꽤 될 겁니다. 누가 끄나풀인지 아무도 몰라요. 서장인 저도 모르지요.”

후후, 하고 서장이 자학적으로 웃었다.

“잠깐만요. 이해가 안 됩니다. 공무원은 1년마다 발령받잖아요. 길게 있어봤자 한 서에서 3년인데 어떻게 유착합니까?”

“이런 면에서는 아직 1년 차가 맞군요.”

함선호 과장이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알싸한 홍삼 향기가 훅 끼쳐왔다.

“기존에 알던 인맥이 자신의 지인을 소개해 주는 거지. 용산에 적을 둔 사람으로. 그렇게 하나둘 소개받고 자신만의 연줄에 영입하면서 인맥을 늘려 가는 거야.”

“문제는 용산서에서 다른 공무원들을 끌어들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건물 안에 김계현 파벌이 있는 거죠.”

“서장님, 잠시만요. 지금 소득세과장하고 계장이 검찰에 잡혀가지 않았습니까. 검찰이 임성물산 사장도 뇌물공여죄로 조사하면 서 안에서 포섭당한 사람도 누군지 다 나오지 않을까요?”

내 의문에 서장이 쓰게 웃었다.

“현금으로 주고받았다면 검찰도 잡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비단 임성물산만이 아니에요.”

“유착한 놈이 그놈 하나겠냐. 김계현이가 발이 얼마나 넓은데. 아마 다 불지도 않을 거야. 불면 불수록 형량이 세질 텐데.”

단순히 비리 공무원 김계현 과장만 잡아넣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뚝배기를 깨 줘야 할 놈이 지금도 나와 같은 공간에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두 분은 아니란 말씀인가요?”

“부끄러운 말인데 우리는 연줄이고 뭐고 없는 사람들이야.”

함선호 과장이 머쓱하게 웃었다.

“출근해서 그냥 일만 하고, 그렇다고 누가 연줄도 없는 날 불러 주지도 않았고. 그냥 그렇게 일했더니 승진한 평범한 인생이거든. 위에서 누르면 눌리고 반항할 생각도 못 하는 부끄러운 인생이지.”

자조적인 말투였다.

그는 스스로를 부끄러운 인생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만약 잠수교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처럼 평범한 공무원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반항하다 찍혀 나갔겠지.

“김계현 그놈이 인맥이 많잖아. 그래서 위에서 압력이 자주 내려와. 근데 반대 명령이 내려온 건 처음이었어. 1년 차 직원이 잘못한 것이 없다면 그냥 두고 봐라. 와……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니까?”

“저는 내후년이면 퇴임합니다. 말년에 시끄러운 일 없이 조용히 보내고 싶었는데 함 과장이 그런 사치스러운 소리 하지 말라더군요.”

“아, 서장님! 그거 사치 맞잖아요. 어차피 승진에 연연할 연세 아니시니까 좀 도와주세요.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제야 나는 이 둘의 속내를 이해했다.

꿍꿍이가 있는 게 맞긴 맞았다.

이들은 내가 빽이 있다고 여기고 날 이용해 용산 세무서의 그림자를 뿌리 뽑길 원하는 것이다.

“함 과장이 절 설득하더군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평생을 공무원밥 먹고 살았으면 후배를 위해서 깨끗한 판을 물려주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서장과 과장.

두 사람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저는…… 두 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닙니다.”

둘이 솔직하게 말해서인지 나도 마음속에 있던 말이 진솔하게 튀어나왔다.

“이력 보셨는지 모르겠군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병중입니다. 고졸이라 학연도 없고 지연도 인맥도 없어요. 어떤 끈이 있는 건 맞지만 순전히 우연입니다. 언제 내쳐질지도 알 수 없는 바람 앞의 호롱불 신세죠.”

둘은 숨을 죽이고 내 말에 열중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대단한 건 제가 아니에요.”

두 사람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어떤 기대감과 열망이 깃든 눈동자가 나를 불태울 듯했다.

“자네 뭔가 착각하고 있군.”

“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못 하는 게 사람이야. 불의를 보고 눈을 감고 입을 닫는 게 태반이지. 당장 우리가 그랬잖아.”

“아니, 탓할 생각은…….”

“무슨 말인지 알아. 부담스럽다면 이렇게 말하지. 신재현.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해. 조사해야 할 게 있으면 하고 때려야 할 놈이 있으면 때려. 여기 있는 우리 둘이 남은 임기 동안 용산서에서 자네 방해는 없을 거라 장담하지.”

서장을 돌아보자 그 역시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끄덕이고 있었다.

두 상사가 어떤 각오로 날 불렀는지 그제야 와 닿았다.

둘은, 정말로 이 용산서를 깨끗하게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질지도 모릅니다.”

“심심하진 않겠군.”

“두 분 계신 동안엔 뿌리 뽑아 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과장이 입을 쩍 벌리고 웃었다.

“어디 그럼, 다음은 서장님이 보답하실 차례죠?”

“그렇군요. 신재현 주사보. 어느 과로 가고 싶습니까? 용산서 내라면 제 권한으로 보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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