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5화 (5/500)

5화. 세 명의 과장(2)

내가 기대감에 차 묻자 함선호 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과세 때리기엔 부족해. 부담부증여라고 들어 봤나?”

“아. 부담부증여.”

부담을 진 상태에서 빚까지 통째로 넘긴다.

그걸 부담부증여라 했다.

15억을 공짜로 주면 증여가 되는데, 증여는 세금이 많이 나왔다.

반면에 대출을 받은 후 ‘상가를 줄 테니 대출은 네가 갚아라’라고 한다면 공짜가 아니다.

양도, 즉 파는 게 된다.

세금이 훨씬 줄어드는 것이다.

“이게 불법이 아니란 말씀인가요?”

“그래. 편법이긴 하지만 엄연히 합법이야. 부자들이 자식들에게 재산 넘길 때 자주 써먹는 방법이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걱정 마. 과세 못 할 것 같으면 내가 몸소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그러고 보니 아무리 과장이라 해도 지금 하는 행동은 지나친 감이 있었다.

자기 부하직원도 아닌데.

그래도 이번 기회에 배울 건 배우고 싶었다.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공짜로는 안 되지.”

갑작스러운 말에 뜨악해 그를 바라보았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몇 년인데 돈 얘기가 나오나.

내 눈빛을 본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좀 부려먹겠다는데.”

남의 과 직원을?

나는 슬쩍 내 원래 상사 쪽을 넘겨다보았다.

소득세과 안쪽의 과장실은 블라인드를 쳐 놓아 안에서 뭘 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샌가 계장도 사라져 있었다.

“어차피 일도 많지 않겠다, 괜찮으시다면 배우고 싶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과세하시는지 궁금하거든요.”

“1시간 후에 임성상가 실소유주 만나러 갈 거야. 어제 전화해 놨거든.”

“임성물산의 임정학이요?”

행동력이 참 빠른 사람이다.

아니면 그간 벼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시간 줄 테니 생각해 봐. 명색이 내가 과장인데 떠먹여 줄 순 없지. 이따 1층에서 보자고.”

함선호 과장은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왔을 때처럼 유리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이제 나머진 내게 남은 숙제였다.

화면에 재무제표를 띄웠다.

모든 답은 이 안에 있다.

문득 과장이 날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와서 몇 마디 던지고 간 것도 그렇고 같이 업체를 나가자는 것도 그렇고.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얼마를 끙끙대고 있는데 소득세과 과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김계현 과장과 계장이 슬쩍 나왔다.

둘은 직원들을 둘러보더니 슬그머니 소득세과 밖으로 나갔다.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유착 관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증거 인멸도 어려울 것이다.

요즘엔 들어온 돈과 나간 돈 모두 명백하게 찍힌다.

현금으로 주면 몰라도.

잠깐, 금융 기록?

임성상가의 재무제표에 의하면 12살인 딸 임예지는 15억 중 13억이 빚인 상가를 받았다.

원래라면 임예지는 은행에 13억을 갚아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목적은 딸에게 온전히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여기서 딸이 도로 은행에 13억을 갚으면 본말전도다.

이거다!

나는 서둘러 자료를 챙긴 후, 날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민원인들이 오고 가는 1층 앞에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왔네. 가자고!”

“예!”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차 앞에 서 있다가 운전석을 가리켰다.

냉큼 올라타 운전대를 잡자 과장이 조수석에 앉았다.

“숙제는 풀었나?”

“감은 잡은 것 같습니다.”

“가면서 읊어봐.”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아 세무서 정문을 통과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에 합류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입금이네 양도네 중간에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만, 이거 다 눈속임 아닙니까? 중간 과정을 다 떼어나고 나면 요는 이겁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온전히 재산을 이전하는 거죠. 물론 세금은 싸게.”

“그렇지.”

“그런데 신고 들어온 바에 의하면 은행에 도로 13억을 갚아야 해요. 누가? 자식이. 이건 목표에 안 맞습니다. 빌린 돈은 부모가 갚았을 겁니다. 즉, 우리가 소명을 요구해야 할 건 하납니다. 13억을 누가 갚았는가?”

“그럼 뭘 봐야 할 것 같아?”

“통장을 까 봐야죠.”

단호히 대답하자 옆에서 과장이 난데없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틀렸나?

긴장 때문에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네 1년 차 맞나? 아니면 시험 보기 전에 업계인이었어? 모처럼 후배한테 멋있는 모습 보여 주려고 했더니만…….”

“정답입니까?”

“그래. 이번에도 정답이야. 아니 근데 진짜 업계인이야? 아니지?”

“세무사 사무실에서 알바 한 달 한 적 있습니다.”

“한 달이면 영수증이나 붙이고 왔을 테고. 허 참, 난 놈은 난 놈일세.”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

임성물산은 우리 관할 내에 있었다.

10분 정도 차를 달리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빌딩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과장이 내게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임성상가 미성년자 사장, 그러니까 그 집 딸인 임예지 통장이야. 요청해서 받아 놨지.”

A4용지에 인쇄된 사업자 통장 거래 내역은 의외로 가벼웠다.

내용도 매우 간단했다.

“이야…… 이거 작정하고 꾸민 거죠? 엄청 깔끔한데요. 잘 아는 사람이 손댔군요.”

사업을 시작할 땐 국세청에 사업자 통장을 신고한다.

국세청에 보여 주는 통장은 깔끔하게 관리하고 실제로는 통장 하나를 더 만들어 쓰는 것이다.

“원래 이런 거 세팅할 땐 세무사가 붙어. 이번엔 이거.”

함선호 과장이 다시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이번엔 꽤 두터웠다.

“예금주 임예지…… 이게 실제 쓰는 통장이군요.”

“확인됐지? 들어가자고.”

과장이 통장 내역은 내게 맡긴 채 자신은 누런 서류 봉투를 들었다.

세무서 마크가 새겨진 봉투다.

풀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혹시 과세 예고 통지서입니까?”

납세액이 크면 고지서만 떡하니 날려 보내지 않는다.

이런 근거로 세금이 얼마 나올 테니 알아서 준비하시라는 통지서를 보낸다.

보통은 등기로 보내는데 과장이 직접 들고 온 것이다.

“꼼수 쓰다 들킨 조세 포탈범이 어떤 낯짝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얼른 보러 가자고.”

과장과 나는 들뜬 얼굴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10층으로 올라가자 사장실 앞에 비서들이 근무하는 공간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비서 둘이 일어서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용산 세무서 재산세과 과장 함선호입니다. 사장님 안에 계시죠?”

“아……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지금 안에 손님이 계셔서.”

나와 함선호 과장이 수상쩍은 표정으로 눈길을 주고받을 때였다.

안에서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악! 진정해요, 임 사장!”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두터운 사장실 문을 뚫고 고함이 터져 나왔다.

비서 둘이 우왕좌왕하며 우리를 어떻게든 내보내려 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사장실 문으로 다가갔다.

“내가 그렇게 돈을 쳐 맥였을 때는 나중에 도움이 되라고 맥인 거지! 그동안 뭐라고 했어요, 용산서는 꽉 잡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했잖아!”

“그, 잠깐 진정하고 말씀 좀 들어보세요. 우리도 한배를 탄 사이라구요. 어떻게든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니…….”

“상대가 본청이라면서요?”

“우리 목숨도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절대 이렇게 안 끝나요. 걱정 마시고…….”

목소리가 낮아져 더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들어가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양문형으로 되어 있는 사장실의 왼쪽 문손잡이를, 함선호 과장은 오른쪽 문손잡이를 잡고서 동시에 열어젖혔다.

“걱정하셔야 할 겁니다, 임 사장님!”

“준비된 비자금은 충분하십니까?”

함선호 과장과 내가 순서대로 정다운 인사를 건넸다.

얼마나 세게 열었는지 문이 벽에 부딪혀 쾅 소리를 냈다.

사장실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속닥거리던 세 남자가 경기를 일으키듯 놀랐다.

“다, 당신들…… , 아차!”

임정학 사장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약속도 잊은 듯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은 바로 내 상사인 소득세과 과장과 계장이었다.

임정학 사장은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떠오른 금액이 십억에 달했으니.

“근무 시간에 어디 가시나 했더니 여기 와서 과세 예고하시던 중이었군요.”

내가 비꼬듯 말하자 계장이 버럭 외쳤다.

“엄연히 네 상사인데 어디서 배워먹은 말버릇이야!”

감히 내 옆에 있는 재산세과장에겐 덤비지 못하니 아랫사람인 날 잡는 것이다.

내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기도 했고.

물론 나는 콧방귀를 뀌며 응수했다.

“내일이면 끌려 나갈 분이기도 하죠.”

“이 새끼가…….”

“상사인 척하지 마세요, 계장님. 어디 불법이나 저지른 사람이 공무원 행세를 해요?”

계장이 이를 으득 갈았다.

“내가 너는 꼭 죽인다.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여기 계신 김계현 과장님도 라인 있어!”

“어허.”

김계현 소득세과장이 주의를 주었다.

그렇지만 소득세과장의 눈빛은 매서웠다.

역시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반드시 이 위기를 타파해 내게 엿을 먹이겠다는 살기가 느껴졌다.

“거참, 오늘 좋은 구경 합니다. 그 젊은이가 혈기만 믿고 날뛴다는 그 애송이입니까?”

임정학 사장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끼어들었다.

이번엔 내 옆에 있던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능글맞게 대답했다.

“장래가 촉망되는 애송이죠. 글러 먹었다 싶으면 일단 들이박는데, 그래도 저치들보단 낫습디다.”

함선호 과장이 히죽 웃었다.

“재산세과장님, 그동안 벼르고 계시던 건 알겠는데 이렇게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쓰나요. 정당한 과세권을 행사할 기회인데요. 자, 통지서 받으시죠.”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누런 서류봉투를 내밀었지만 임정학은 받지 않았다.

“아, 본인이 아니라 안 받으십니까? 그럼 납세자 본인인 임예지 양에게 드리도록 할까요. 댁으로 가면 됩니까?”

딸의 이름이 거론되자 임정학이 홱 서류를 낚아챘다.

그 안에 든 통지서를 꺼내 본 그가 눈을 까뒤집었다.

“이 미친놈들아! 왜 5억이 나와!”

“세법에 따라 계산한 고지액입니다.”

임정학이 눈에 살기를 띠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자와 과세가 정당함을 주장하는 공무원 간의 소명 싸움.

“증여가 아니라 양도야. 양도에 대한 세금은 다 냈다고.”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내 솜씨를 보겠다는 뜻이다.

“양도라면 대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선생님의 경우엔 빚까지 통째로 넘겨서 양도로 인정받았죠?”

“우리 딸이 상가 운영에서 나온 돈으로 직접 갚고 있어.”

“대신 갚아 주신 거 아닙니까?”

“증거 있어?”

임정학이 눈을 부라렸다.

나는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들려준 통장 중 거래 내역이 깔끔한 것을 먼저 꺼냈다.

“안 그래도 사업자 통장 봤습니다. 재무제표에 나온 상환액만큼 정확히 통장에서 빠져나가더군요.”

“그야 정직하게 작성된 재무제표니까.”

소파에 앉아 있던 소득세과장이 거만하게 말했다.

왜 공무원인 네가 세무대리인처럼 옹호하고 앉아 있는 거냐.

“소득세 첨부 서류로 들어온 차입금 상환 명세서 봤을 거 아냐. 13억을 30년간 상환하면 매년 4200만 원씩 갚아야 돼. 임성상가 연수입이 1억 800만 원에 순이익 4200만 원이니까 딱 맞잖아.”

“캬. 역시 소득세 과장님. 1년 차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군.”

임정학이 맞장구를 쳤다.

나는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다른 통장내역을 테이블 위에 던졌다.

종이가 차르륵 밀려나며 부채꼴로 펼쳐졌다.

“그래서 제가 이 통장을 가져왔죠.”

임정학은 그게 뭔 상관이냐는 얼굴이었지만 소득세과장은 그대로 굳었다.

“따님인 임예지 양의 또 다른 통장입니다. 매달 350만 원, 1년에 총 4천2백만원이 입금되더라구요? 사실은 은행에 갚은 게 아니라 이 개인 통장에 넣은 거죠?”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임정학의 얼굴이 굳었다.

“시간은 드리겠습니다. 소명하시죠.”

우물쭈물하던 임정학이 소득세과장에게 날 선 시선을 보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라는 눈치다.

“그러게 깔끔하게 다 짜 놓은 걸 왜 상의도 없이 통장에 바로 박아요! 멍청하면 탈세도 못 해!”

“뭐야? 이 계장 놈이 미쳤나?”

“다 죽게 생겼는데 그럼 안 미치겠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 계장이 참다못해 소리 질렀다.

임정학 사장의 얼굴이 벌게지며 계장의 멱살을 잡았다.

사장실이 도로 시끌벅적해지려 하자 나는 과장스럽게 인사하며 쐐기를 박았다.

“소명은 못 하시는군요. 과세 근거가 명확하므로 과세 진행하겠습니다. 빠르고 성실한 납세 부탁드립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