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세 명의 과장(1)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등장에 나는 제자리에서 딱 굳고 말았다.
“의욕 넘치는 모습, 아주 보기 좋군요. 모름지기 1년 차라면 야근을 불사하며…… 신재현 씨? 듣고 있습니까?”
성큼성큼 걸어오던 남자가 뜨악한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너무 과했나 보군요.”
“지금 이게 무슨…….”
“절 너무 기다리게 한 벌입니다. 이래봬도 바쁜 몸이에요. 신재현 씨가 야근을 이렇게 오래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툴툴대던 남자가 차를 가리켰다.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들떠 보였다.
“타시죠.”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내 머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 남자는 분명 공무원 고위직이거나 그 라인에 있는 사람이다.
날 도와준 건 고마웠지만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가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자 남자가 옆머리를 긁적였다.
“두 번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두 번이나 도와줬어요. 그럼 한 번쯤은 절 믿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어딜 가실 건데요?”
“흠. 신재현 씨 식사 하셨습니까?”
“예. 먹었습니다.”
너무 단호한 대답이었는지 남자가 멋쩍은 표정을 했다.
“하지만 컵라면으로 때워서 그런지 배가 고프네요. 맛있는 거나 사 주시죠.”
내 대답에 남자가 씨익 웃었다.
“그건 걱정 마시죠.”
***
남자가 차를 몰고 간 곳은 고급 일식집이었다.
주차장에 차가 들어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키를 건네받았다.
내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직원이 뛰어나와 안내했다.
벽에 걸린 장식품하며 철저하게 나눠진 공간까지.
처음 겪어 보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이쪽으로.”
안내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테이블엔 세팅이 되어 있었다.
뭘 따로 시킨 것 같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가벼운 죽이 나왔다.
늦은 밤 허기를 달래기엔 딱 좋았다.
비싼 식당 같은데 죽이 나오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순식간에 그릇을 비우자 잠시 후 문이 드륵 열리더니 음식이 하나둘 옮겨졌다.
회와 맛있어 보이는 조림, 구이, 초무침 등이 연달아 나왔다.
가난하게 살았던 우리 집에선 평생 구경도 못 해 본 것들이다.
“편히 드세요. 오늘 고생한 것을 위로하려고 마련한 자리입니다.”
말도 떨어졌겠다 젓가락을 들어 가장 가까이 있는 하얀 생선회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기사식당의 싸구려 회덮밥과는 차원이 다른 감칠맛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맛있다.
한편으론 슬픈 마음도 들었다.
역시 돈만 있으면 이 세상은 즐길 것이 많구나.
“먹으면서 들으세요.”
남자는 이미 저녁을 먹었는지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신재현 씨에게는 일부러 내가 누군지, 당신에게 쥐여 준 게 뭔지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 손에 든 게 뭔지 파악부터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시험인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군요.”
남자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제가 모시는 분의 지론이 ‘손에 감당 못 할 힘을 들려 주면 그 인물의 진가를 볼 수 있다’거든요. 저는 당신을 알아보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겁니다.”
“처음엔 저도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공짜는 없어요.”
“그런 것 치고는 빨리 전화했던데요.”
“짧은 공무원 생활이었지만 저도 깨달은 게 있으니까요.”
남자는 흥미롭게 눈을 반짝이며 계속해 보라고 재촉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내가 그들 마음에 들었다 해도 쓸 만하다는 인상을 남겨야 했다.
어느 선까지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니, 이럴 땐 솔직한 것이 좋다.
“선생님이 고위직 공무원이거나 최소한 연줄이 있다는 건 짐작했습니다. 막연히 ‘도움’이라고만 했지 뭘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는 선을 긋지 않았으니까요.”
“흐음. 그래서요?”
“그렇다면 제가 쥔 건 그야말로 파격적인 소원권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걸로 무엇을 할 것이냐. 내가 활개 칠 수 있는 자리로 데려다 달라고 요구할까, 그만한 권한을 달라고 할까. 하지만 이게 시험인 이상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단물만 얻어먹을 순 없죠.”
남자가 자기 잔에 술을 채웠다.
나는 일부러 술을 따르지 않았고 그도 개의치 않았다.
“사실 아껴 둘까 했는데…… 열 받더라구요.”
“탈세범이?”
“제가요.”
내 발언에 그가 우뚝 손을 멈췄다.
“기회고 나발이고가 어딨습니까. 당장 눈앞에 때려잡아야 할 개새끼가 있는데. 내 손에 칼이 들려 있으면 응당 그런 놈 모가지를 치는 데 가장 먼저 써야지요.”
내가 할 말은 끝났다.
나머진 그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주섬주섬 회를 집어 먹었다.
“제 이름은 이선균. 삼성세무서 재산세과장입니다.”
잠시간의 침묵 후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은 자신의 이름과 직위였다.
세무서라고 다 같은 세무서가 아니다.
강남의 한복판에 위치한 삼성 세무서는 서초, 역삼, 반포, 강남 세무서와 함께 엘리트들이 커리어를 밟는 중심부였다.
그나저나 재산세과장이라.
생각보다 그리 높지는 않은 직책이다.
물론 오늘 내가 들이받은 소득세과장보다는 훨씬 실세지만 세무서장에게까지 압력을 넣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렇다면…….
“모시는 분이 본청에라도 계십니까?”
“머리 회전이 빨라서 좋군요.”
문득 과장의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그것을 본 이선균 과장은 손에 든 술잔을 비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자신의 등 뒤에 있던 벽을 힘주어 당겼다.
문고리가 숨겨져 있어서 몰랐는데 벽이 아니라 미닫이문이었다.
-드륵.
문이 양옆으로 열리자 옆방의 모습이 드러났다.
머리가 희끗한 한 남자가 등을 보인 채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선균 과장은 그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국장님.”
국장!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선 세무서에는 국장이라는 직함이 없다.
기껏해야 계장, 과장일 뿐이다.
국장이라는 직함이 나오려면 최소 지방청으로 가야 했다.
개인납세국인지, 징세법무국인지, 그도 아니면 송무국인지는 모르지만, 국장이라는 타이틀이라면 최소한 청장에 가까운 실세인 건 확실했다.
“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술잔을 들고 내가 있는 방으로 걸어왔다.
50대쯤 되었을까.
사각으로 각진 얼굴에는 엄격함이 묻어났다.
그는 이선균이 앉았던 내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편히 앉아요. 앞뒤 가릴 것 없이 지역 유지와 상사를 깨버린 1년 차가 본청 국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하지는 않을 거잖습니까.”
당연했다.
상대는 이 공무원판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능구렁이고 그만큼 정치질을 했을 것이다.
그가 나를 시험했듯이 나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차례인 것이다.
날 자기 사람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까지 부른 이상 어느 정도의 탐색은 용납할 것이다.
나는 자리에 앉고서 곧장 질문을 던졌다.
머리를 굴리는 모습보단 차라리 돌직구가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제가 칼이 되길 원하시는 겁니까?”
높으신 분이 말단 직원을 거두는 이유는 하나다.
언제든 잘라 버릴 수 있는 편리한 도구이기 때문에.
“비슷해요. 하지만 제 개인의 칼이 되어 달라는 건 아닙니다.”
“더 위가 있는 겁니까?”
이놈의 라인은 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단 말인가.
나는 살짝 긴장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벌어진 정치싸움에 끼어들고 싶진 않았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뜻이죠.”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아십니까?”
“탈세하는 놈들 과세 때리는 거 아닙니까.”
매우 간략화시키긴 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거면 됩니다. 잡고 싶은 놈 잡고 때리고 싶은 놈 때리세요.”
“제가 국장님 라인을 때릴 수도 있습니다.”
떠볼 심산으로 말했지만, 국장은 오히려 미소 지었다.
“잘못했다면 그래야죠.”
“……제게 그만한 힘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까 이 과장이 말했듯 그게 내 방식이니까요.”
과도한 힘을 쥐여 준다라.
나는 이것이 그저 호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손에 든 것이 너무 무거워 놓치거나 휘둘린다면 내 그릇은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소화해내면 될 뿐이다.
“말은 필요 없겠죠. 제 맘대로 휘두르겠습니다.”
내 말에 국장이 기껍게 웃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내가 두 손으로 잔을 받아들자 국장이 주전자를 기울여 술을 따랐다.
“당분간 용산에 있으세요. 내년엔 아마 삼성에 자리가 날 겁니다.”
지나가듯 흘린 말이었지만 잔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
다음 날 출근하면서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혹시 내가 스트레스로 꿈이라도 꾼 건 아닐까.
누가 볼까 싶어 조심스럽게 지갑을 열어 명함을 꺼냈다.
삼성세무서 재산세과장 이선균
국세청 조사1국장 민치호
두 장의 명함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어젯밤 받은 것이다.
그제야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실감이 났다.
“후우…….”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다.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거니까.
-스윽.
“안녕하세요.”
성큼 소득세과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겁먹은 시선들이 내게 꽂혔다.
내가 슥 둘러보자 슬금슬금 눈을 피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중하는 선배이자 동료들이었는데 이젠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죽은 소득세과장이 출근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저승사자를 본 것마냥 기겁을 했다.
그러더니 내 옆에 다가와 섰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것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 할 말 있으면 해라.
들어나 보자 싶어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덜컹, 소득세과 유리문이 거칠게 열렸다.
용산 세무서의 재산세과 과장 함선호였다.
“어, 뭐야. 우리 용산서의 수치, 김계현이잖아?”
“뭐야?”
“맞잖아. 오늘부로 보직 해제 날 것 같던데. 검찰은 언제 가시나?”
이미 온 서에 다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용산서 재산세과장은 반쯤 놀리듯 장난스럽게 말하더니 갑자기 정색했다.
“야, 김계현. 넌 지금 얼굴도 똑바로 들고 다니면 안 돼. 단순히 불법을 저지른 게 아냐. 넌 모든 공무원들이 쌓아온 신뢰를 한순간에 처박은 거라고.”
“윽……!”
소득세과장은 끽소리도 못했다.
그를 단번에 제압한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다시 온화한 분위기로 돌아가더니 소리쳤다.
“신재현 주사보! 어딨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과장님.”
“오, 당신이 신재현인가? 김계현이가 가리고 있어서 못 봤네.”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소득세과장을 절대 과장이라 부르지 않았다.
결국 김계현 과장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자리로 돌아갔다.
먼저 출근해 앉아 있던 계장은 죽상을 하고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과에 넘기고 싶은 거 있다면서?”
“아. 임성상가의 사장이 12살입니다. 재무제표상 건물과 토지는 15억인데 미성년자가 스스로 그 자금을 마련했을 것 같지는 않구요.”
“편법으로 건물과 토지를 증여하고 그걸로 임대사업을 했다고 보는 건가?”
“그렇겠죠.”
함선호 재산세과장이 잠시 나를 관찰하더니 주섬주섬 종이를 꺼냈다.
바로 내 거래처인 임성상가의 재무제표였다.
“여기 부채 봐 봐. 14억 있지?”
나는 부채 칸을 살폈다.
그 말대로 부채 총액은 14억.
그중 차입금은 13억이었다.
“13억을 어딘가에서 빌린 후, 원래 갖고 있던 2억을 더해서 15억짜리 건물과 토지를 샀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자금 출처는 명확한데.
잠깐, 이렇게 간단한 거라면 과장이 직접 인쇄해 와서 내 앞에 펼쳐 놨을 리가 없다.
슬쩍 과장을 보자,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날 대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차입한 금액입니까?”
“은행이야. 부모인 줄 알았나?”
예상이 빗나갔다.
부모에게서 돈을 빌리고 도로 그 돈으로 상가를 샀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아! 혹시 부모 상가를 담보로 건 겁니까? 자기 것도 아닌 상가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그걸로 부모에게서 상가를 산 거죠.”
“이번엔 정답이다.”
함선호 재산세과장은 대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탈세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죠. 과세 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