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화 (3/500)

3화. 세무서의 망나니

홧김에 전화하기는 했지만, 막상 목소리를 듣자 뭐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상대가 뭔가 힘을 가진 사람인 건 알겠다.

그런데 내가 의아한 것은 ‘도움’의 범위를 알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직책에 있고 얼마의 인맥을 가지든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있을 것 아닌가.

나는 일단 그 점부터 명확히 하기로 했다.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습니까?”

“원하는 걸 말만 하세요. 가능한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합니다. 도와줄 수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알려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나는 눈 딱 감고 상황을 설명했다.

“미성년자 건물주가 있습니다. 실소유주는 임성물산의 대표 임정학. 세무서의 소득세과장과 1계장이 유착되어 있습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군요.”

“편법 증여에 대한 조사, 탈루한 증여 및 소득세 추징, 유착한 공무원들의 징계를 원합니다.”

“진정 원하는 게 그것입니까? 당신에게 준 것은 단 한 번뿐인 기회예요.”

전화 너머에서 기이한 열망이 느껴졌다.

그가 듣고 싶은 답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단호히 답했다.

“한 마디로 말하죠. 다 엎어 버릴 거니까 아무도 방해 못 하게 하세요.”

“…….”

남자가 잠시 침묵하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청탁은 많이 받아 봤지만 이런 식으로 부탁받은 건 처음입니다. 흡사 명령 같군요.”

부탁하는 처지는 나인데 너무 세게 나간 모양이다.

시원하게 웃어젖힌 남자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답했다.

“좋습니다.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보세요. 지금 이 시간부로 그 누구도 당신을 막지 못할 겁니다. 그럼 어디 재밌는 결과 보여 주세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가 뚝 끊겼다.

이 남자는 나를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시험하는 건 나도 같았다.

어디까지 힘이 미치는지 보고 싶었다.

내가 그를 모르듯, 그도 나를 잘 모를 것이다.

만약 그가 무언가 힘을 썼는데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에게도 악영향이 갈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듯 쉽사리 손을 내밀다니.

그렇다면 보답을 해 줘야지.

나는 씨익 웃고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내가 근무하는 소득세과로 향했다.

유리문을 밀어 열자 계장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날 주시했다.

책상에 앉자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뒤통수에 따갑게 꽂혔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

마치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시 임성상가의 전산 정보를 열었다.

그리고 함께 기재되어 있는 세무 대리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뚜루루.

“네, 세무사 사무실입니다.”

세무사 사무실 여직원이 밝은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용산세무서 소득세과입니다. 세무사님 바꿔주세요.”

“네. 잠시만요~.”

이어서 묵직한 저음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세무사 최재승입니다.”

“용산세무서 소득세과 신재현입니다. 임성상가 세무 대리인이시죠?”

“네. 맞는데요.”

“서로 좀 들어오시죠. 3년 치 계정별 원장 지참하시고.”

“네?”

세무사의 저음이 뾰족하게 치솟았다.

동시에 소득세과 사무실에서도 고함이 들렸다.

“신재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세무사는 왜 불러들여!”

“계장님. 미진한 점이 있으니까 소명을 요구하는 거죠.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저, 저 망나니 새끼가…… 전화 끊어!”

길길이 소리치며 날뛰는 계장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세무사에게 말을 걸었다.

“방금 들으셨죠? 소명하셔야 되니까 계정별 원장 꼭 갖고 오세요. 전산 파일 켜고 원장 인쇄 쭉 누르면 30분도 안 걸리잖아요. 어려운 일 아니죠?”

“아, 아니. 조사관님,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닙니까.”

“뭐가 갑작스럽습니까. 이미 결산해서 세무서에 신고까지 들어왔으니 재무제표는 확정된 거잖아요. 더 손댈 게 있습니까? 인쇄만 하면 되니 들고 들어오세요. 아니면 제가 갈까요?”

“거참…… 조사관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까는 당황한 기색이더니 어느새 회복했나 보다.

세무사의 목소리가 거만해졌다.

뒤에 계장의 고함도 들리겠다, 믿을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신재현입니다. 오늘 안 들고 오시면 제가 갑니다.”

“일단 서로 가죠.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쯤 걸리시죠?”

“1시간 내로 들어가겠습니다. 아, 계장님하고 과장님께 안부 인사 전해 주십쇼.”

세무사는 계장, 과장과 아는 사이라는 걸 에둘러 표현했다.

“직접 와서 하시죠.”

“허…….”

세무사의 어이없는 탄식이 이어졌지만 나는 전화를 뚝 끊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계장이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이 미친놈아!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사고도 엔간히 쳐야 할 거 아냐!”

“계장님, 저 바쁩니다.”

“너 결재도 안 받고 이따위로 진행해? 연수원에서 교육 뭘로 들었어. 절차 무시하면 감사원이 가만 있을 것 같아?”

내가 계속 무시하자 계장이 뒷목을 잡았다.

“계장님!”

옆자리에 앉아 있던 9급 직원이 기겁하며 계장을 부축했다.

급수는 나보다 낮지만, 경력은 훨씬 긴 사람이다.

“신재현 주무관님. 머리를 좀 식히세요. 1년 차엔 사고 많이 치는데 뒤돌아서 생각해 보면 굳이 그렇게 혈기왕성할 필요가 없더라구요. 얼른 계장님께 싹싹 빌고 마무리해요.”

“이젠 빌어도 소용없어! 넌 내가 골로 보낸다! 앞으로 편하게 일할 생각은 하지도 마!”

“편하게 일할 생각 없습니다. 추징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주위 공무원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계장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날 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해한다.

그들도 사람이고 공무원이라고 해봤자 말단 직원이니.

“이게 무슨 소란들이야!”

“과, 과장님!”

결국 소득세과장이 행차했다.

그런데 과장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어 모쪼록 조용히 공무원 생활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고 소문이 도는 이 세무서의 최종책임자.

세무서장이었다.

“서장님까지…….”

계장이 자세를 바로하며 인사했다.

“과장하고 1계장은 나 따라오세요.”

“예? 예…….”

사고 친 건 따로 있는데 왜 자기가 불려 가냐는 눈빛이다.

과장과 계장을 거느리고 소득세과를 나가던 서장이 문득 뒤를 돌며 나에게 말했다.

“그쪽이 신재현 주사보입니까?”

“예. 서장님.”

“나는 무사히 정년퇴직할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사고 좀 적당히 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좀 다르게 들렸다.

‘나까지 잡아들일 겁니까?’

소름이 돋았다.

서장이 저렇게 말해야 할 정도로 높은 선에서 압력이 내려왔단 말인가.

“……서장님께서 공무원으로서 부끄러움 없이 근무하셨다면 문제없지 않겠습니까.”

“부끄러움이라…… 어려운 말이군요. 그래도 이치들만큼 뻔뻔한 작자는 아닙니다. 남은 임기 무사히 넘어갔으면 좋겠군요.”

나와 서장의 대화에 계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단순히 부하직원을 나무란다기엔 내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 수고하세요.”

서장이 과장과 계장을 이끌고 소득세과를 나가자 숨 막히는 침묵이 사무실에 내려앉았다.

똑딱거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무거운 적막이었다.

내게 꽂히는 시선들을 무시하고 나는 관련 서류들을 뽑았다.

프린터가 종이를 뱉어내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

세무사 최재승은 보무도 당당하게 세무서에 들어섰다.

인맥이란 것은 평소 공들인 만큼 위급 시 힘을 발휘한다.

때문에 1~2주에 한 번은 인사차 들리는지라 제집처럼 잘 아는 곳이었다.

북적북적한 민원실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간혹 막 발령받은 새파란 세무 공무원이 오면 이런 일이 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잘 타이르고 달래면 까탈스러운 공무원도 이해한다.

공무원과 세무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서로 적대하면 득이 될 것도 없으며 납세 행정을 위해선 협력 체계가 잘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재승은 오늘 감히 자신을 불러들인 공무원이 혈기 넘치는 원칙주의자라 생각하고 잘 타이를 생각이었다.

이 업계에서만 20년을 있었다.

새파란 애송이 공무원 하나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막 3층에 도착해 문을 열려는 순간 위층에서 죽상을 한 과장과 계장이 내려왔다.

“아이고, 과장님! 계장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평소라면 주거니 받거니 인사가 이어지고 저녁 술 약속을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둘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최재승을 질질 끌고 과장실로 들어갔다.

“아니 왜들 그러십니까. 국세청에서 교차 조사라도 떴어요?”

교차 조사란 관할이 아닌 타 지역 세무서가 관내 업체를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두 공무원의 얼굴을 펴질 줄을 몰랐다.

“진짜예요? 특별 조사 나온답니까?”

“더 큰 게 떴어.”

“더 큰 거라뇨.”

과장은 힘없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년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미리 알아봤어야 했는데.”

“과장님, 우리 서 신입 중에 뒷배 있는 놈은 하나도 없었어요. 대충 다 봤잖습니까.”

“근데 왜 일이 이 지경이 되냐고.”

과장과 계장의 대화는 자못 심각했다.

그제야 최재승도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대체 뭡니까. 뭔지 알아야 저도 대책을 세울 것 아닙니까.”

“하…… 청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검찰 넘긴댄다.”

“예에에? 검찰이요? 갑자기 검찰이 왜 나옵니까!”

“그 어린놈이 거물을 뒤에 두고 있었을 줄이야. 진작 알았으면 밑 작업을 쳐 두는 건데.”

“누구 말입니까. 오늘 저 들어오라고 부른 그 애송이요?”

“그래. 작년에 붙어서 들어온 1년 차 7급 주사보야. 서장한테 직접 명령 내려왔댄다. 그놈이 알아서 할 테니 방해 말고 냅두라고.”

“그래도 아직 손 쓸 수는 있어요. 검찰 확실히 넘어간 건 아니잖습니까. 빽만 믿고 날뛰는 애송이는 조지면 되는 일이고, 중요한 건 그 라인이죠! 대체 어느 선에서 내려온 명령이랍니까? 과장님도 라인 있으시잖아요!”

최재승이 초조하게 소리쳤다.

서울청도 아니고 본청이라면 줄 대기는 어렵다.

하지만 눈앞의 소득세과장 역시 5급이다.

학연이든 지연이든 혈연이든 최소한 아는 사람 하나쯤은 있을 것 아닌가.

“본청 국장급이야. 정확히 누군지는 몰라.”

최재승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세무서라고 동급이 아니고 공무원이라고 비슷한 게 아니다.

세무서장보다 높은 것이 본청의 과장급이며, 그 위에 있는 것이 국장이다.

본청의 국장급이면 라인만 잘 타면 지방청장으로 영전하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

일개 세무서의 공무원이나 지역 세무사는 감히 만나볼 수도 없는 하늘 위의 존재인 것이다.

“지방청 과장도 아니고 본청 국장이 대체 왜…….”

그제야 최재승은 두 공무원이 나라 잃은 표정으로 널브러져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비벼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

“소명은 이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아니요…….”

“그럼 이만 가셔도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

내 앞에 앉아 있던 세무사가 바람 빠진 풍선마냥 흐느적거리며 일어섰다.

이 지역에서 꽤 알아주는 세무사라는데 어째 신통치 않았다.

물어보는 족족 예, 아니오만 반복하는데 어디다 혼을 빼고 온 것 같았다.

최재승 세무사를 돌려보내고 소득세에 대한 과세 예고 통지서를 작성했다.

추징세액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내 손으로 잡은 첫 탈세범이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편법 증여가 남았다.

이건 재산세과의 일이라 내 권한은 아니지만 나름 정리해서 넘길 생각이었다.

전자결재를 올리자 뿌듯함과 함께 이제야 걱정이 밀려왔다.

아마 제대로 찍혔겠지.

잠수교에서 만난 아저씨가 얼마나 고위직인지는 몰라도 일선 세무서 생활까지 보장해 줄까.

당장 내일부터 알게 모르게 왕따가 시작되는 건 아닐까.

제대로 일할 수 없도록 엿 먹이는 방법은 많다.

“하아…… 나머지는 내일 하자.”

서류를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자 어느덧 10시였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모두 퇴근하고 적막한 소득세과 사무실을 나섰다.

막 세무서 현관을 나섰을 때였다.

-빠앙!

클랙슨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가 어두운 세무서 앞을 비췄다.

눈이 부셔 한껏 찡그리고 바라보니 누군가가 차에서 내렸다.

“퇴근이 늦군요.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잠수교 아저씨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