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화 (2/500)

2화. 다리 위의 아저씨

4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접힌 책 끝을 꼼꼼하게 펴서 도로 내게 건네주었다.

말끔한 정장이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인상의 아저씨다.

남자의 어깨너머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길가에 주차된 것이 보였다.

아까 내가 왔을 땐 없었으니 일부러 내려서 내게 말을 걸었다는 뜻이 된다.

“말해 봐요. 어차피 책을 던져 버릴 심정이었으면 낯선 사람한테 신세 한탄 하는 것쯤은 쉬운 일이잖아요.”

낯선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탈세액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탈세액이 너무 적어서인지는 나도 모른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숨통이 트이질 않아요. 여기서 더 밑은 없을 줄 알았는데 끝없이 떨어집니다.”

“세상이 불공평해서 억울한가요?”

남자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직설적이었다.

바늘처럼 쿡 찌르는 질문에 나도 정면으로 응했다.

“불공평한 건 당연하죠. 출발점은 각각 달라요. 제가 납득할 수 없는 건 그게 아닙니다.”

“뭐죠?”

“노력의 대가가 따라오지 않는 겁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했어요. 뭐 이건 흔한 일이죠. 다들 그렇게 살아요.”

한 번 말문이 터지자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들어간 노력이 있으면 뭐 나아지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나보다 일 못 하는 후배 놈이 4년제라는 이유만으로 연봉 500을 더 받아가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 실적을 채 가는데! 횡령한 임원을 신고했다고 당장 해고당하는데!”

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나 격정적이었다니.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신 겁니까?”

“예! 제 능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저한텐 그럴 기회조차 없어요. 당장 병원비가 없는데 나 까짓 게 무슨 공부를 한다고…….”

남자가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둥그렇게 말았다.

돈을 뜻하는 모양새다.

나는 그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인간 이하로 떨어지고 싶진 않아요. 까짓거 입에 풀칠만 하면 되는 건데. 제 말은 어차피 이런저런 인맥으로 덮을 거 아니냐는 겁니다.”

“그도 그렇군요. 그럼 다르게 묻지요. 만약 세무 공무원이 되었는데 탈세를 포착했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생각할 가치도 없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 조집니다.”

남자는 진지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러더니 정장 안주머니에서 명함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집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이어서 작은 수첩과 손가락보다 약간 긴 펜을 꺼내 무언가를 휘갈겼다.

“생각해 보니 당신에게 제 명함을 주는 건 조금 이른 것 같습니다. 당신은 좀 더 넓은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제 식견이 좁다는 말입니까?”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당장 눈앞의 난관을 바라보기에도 벅찰 테니. 하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헤쳐 나와 훗날 제 앞에 나타난다면 그땐 다른 견해를 듣고 싶군요.”

이 남자가 내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무원 시험을 보세요. 그때까지 실무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세무사 사무실 하나를 소개해 주겠습니다. 물론 단순 문서 입력만 시키겠지만, 거기서 무얼 얻어갈지는 당신 하기 나름이겠지요.”

남자가 수첩의 페이지를 찢더니 내게 건넸다.

최용찬 세무사 사무실.

그 주소가 적혀 있고 그 밑에는 핸드폰 번호가 하나 적혀 있었다.

어떻게든 일할 곳이 필요한 내겐 고마운 일이다.

“그건 제 번호입니다. 나중에 세무공무원이 된 후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딱 한 번 도움을 주겠습니다.”

“도움이라구요?”

“예. 웬만한 어려움은 다 해결될 겁니다.”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웬만한 어려움이라고 말은 했지만 어디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 설명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시험인 걸까.

내가 어떤 부탁을 하는지도 시험 내용일지 모른다.

남자의 목적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내게 기회가 온 것은 명백했다.

솟아날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매수……는 아닌 거죠? 미리 은혜를 베풀고 나중에 제게 뭘 시킨다거나.”

나는 아무 사심 없는 호의로 받아들일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탈세액이 없다고 해서 그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니까.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자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조심성은 마음에 드는군요. 좋아요, 여기서 약속드리죠. 이건 그저 제 호의입니다. 당신이 신경 쓰여 차를 멈춘 것도, 제 번호를 건네준 것도 단순한 제 변덕이에요. 몇 달 후엔 이런 대화를 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릴 수도 있겠죠. 저는 당신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잠시 말없이 남자를 관찰하자 그는 못 박듯 재차 말했다.

“제가 준 기회를 활용하고 말고는 당신 마음입니다.”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는 낯선 아저씨는 왔던 때처럼 조용히 차를 타고 잠수교 북단으로 사라져 갔다.

***

두 달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낮에는 강의를 듣고 오후 늦게 소개받은 사무실에 출근해 저녁 때까지 영수증을 입력했다.

생각 없이 손만 놀리면 되는 단순 작업이었기에 주위에 귀를 기울였다.

세무사들이 상담하는 내용에서부터 직원들이 거래처와 하는 전화 통화까지.

이해는 하지 못하더라도 빠짐없이 귀담아들었다.

잡일을 도맡아 하고 간혹 직원들에게서 실무 이야기도 들었다.

바쁜 철이 아니라서 직원들이 직접 신고서 작성하는 과정을 보여 주기도 했다.

면접은 어떻게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긴장해서 뭐라 대답한 것 같긴 한데 정신을 차려 보니 합격자 발표에 내 수험번호가 올라 있었다.

신재현이라는 이름 옆에 떡하니 적힌 합격이라는 글자.

어머니는 그 두 글자를 보더니 펑펑 우셨다.

나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시원함과 해냈다는 성취감, 해방감과 기쁨.

그리고 의욕이 불타올랐다.

성실히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납세자를 보호하고, 탈세자에겐 합당한 부과를.

연수원에서도 좋은 성과를 얻은 나는 서울에 있는 용산 세무서에 발령되었다.

인맥 있는 최고의 인재는 강남 3구에 배치된다지만, 나는 용산으로도 족했다.

처음 한 달은 민원실에서 구르고 드디어 소득세과로 배치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참이었다.

“드르렁…….”

점심시간의 소득세과는 형광등을 끄고 직원들이 각자 휴식을 취했다.

나는 좁은 책상 가득 늘어선 서류철을 정리하고서 핸드폰을 켰다.

원래는 나도 한숨 자려고 했지만, 옆자리 직원의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뉴스란을 들어가자 단박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수백억 원 세금 안 내고도 호화생활]

-전국의 고액 상습 체납자 개인 상위 100명이 6천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체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세무 공무원이 되고 나서 가장 놀란 것이 체납자의 규모다.

단순히 몇 백만 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체납 세액의 자릿수가 달랐다.

몇 억 체납은 예사였다.

스크롤을 밑으로 내리자 이번엔 편법 증여에 대한 기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미성년자 사업주 중 90% 이상은 부동산 임대업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적으로 임대 소득을 올리는 미성년자는 약 2천 400명으로, 이들이 직접 사업장을 운영한다기보다 절세 목적으로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국세청은 편법 증여·상속 등 탈세 행위에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

안 그래도 요즘 신경 써서 보는 업종이 임대업이었다.

매년 청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업종이 바뀌는데 올해는 임대업이다.

당장 내가 담당한 업체 중에도 미성년자가 사장인 곳이 있었다.

대표자 나이가 12살이던가.

인생 2회차 초등학생이 아닌 이상 분명 이건 부모의 편법 증여다.

무엇보다 이 임대업체의 자료를 볼 때마다 거액의 숫자가 희미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탈세가 분명했다.

“자자, 일어납시다! 일 시작해야죠!”

느지막이 식사하고 들어온 계장이 불을 켜며 소리쳤다.

직원들이 하나둘 꾸물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 둔 서류철을 잡고 계장을 뒤쫓았다.

“뭐야, 금요일에 올리지 왜 벌써 올리고 그래. 쉬엄쉬엄해.”

“연 수입 1억 800만 원인 상가 임대업 사업주가 12살 초등학생입니다. 소득률은 39%구요. 무려 6천 5백만 원이 경비라는 소립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만. 차입금 갚은 거잖아.”

“원금 상환은 비용이 아니죠. 부동산 임대에 경비 나갈 게 뭐 있습니까. 인테리어, 수리비, 관리비. 이게 1년에 6천 5백만 원이나 든다니 말이 됩니까. 그것도 매년!”

“그래서 세무조사 가겠다고?”

“더군다나 사업주가 미성년자 아닙니까. 편법 증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책상에 걸터앉은 계장이 내 손에서 서류를 넘겨받더니 그대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건 재산세과 애들이 할 일이고. 할 일 그렇게 없어? 담당 업체가 이거 하나뿐이야? 검토할 거 많지 않나?”

“계장님. 이거 뜯어봐야 합니다. 재산세과 쪽에도 연계해야 해요.”

“들어온 지 두 달 된 주사보가 재무제표 읽을 줄 안다 이거냐? 여기 있는 공무원들은 다 자라 눈깔이야? 빨리 가서 검토하던 거나 끝내.”

계장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았다.

세무 공무원이 되기 전에 걱정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 기분이었다.

파고들고 싶어도 파고들게 놔두지 않는다.

게다가 공무원은 절차가 굉장히 엄격했다.

선량한 납세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절차이지만, 이럴 땐 답답할 뿐이었다.

“신 주무관님. 이리로.”

여직원 하나가 내게 손짓했다.

내 건너편 자리에 앉은 7급 주사보로 나보다 선배인 사람이었다.

사무실 구석으로 날 데려간 선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성상가죠? 거기 작년에 제가 맡았었는데. 과장님이 아는 곳이래요. 건들지 말고 그냥 토스하세요.”

“예? 그럼 더더욱 가만 놔두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내 목소리가 커지자 여직원이 검지를 세워 입술에 댔다.

“쉿! 다들 알고서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오늘도 계장님이랑 과장님 같이 식사하셨잖아요. 임성상가 실소유주랑 먹은 거예요. 본업은 무역회사 대표거든요.”

“김영란법 있어서 밥 못 얻어먹는 거 아닙니까?”

“각자 냈다고 영수증 가져오는데요, 뭐.”

어처구니없어서 입만 떡 벌리고 있자 선배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힘들게 시험 쳐서 들어온 거잖아요. 몇 년만 버티고 T/O 나면 다른 서로 가요. 어차피 과장 퇴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알았죠?”

대답 없이 얼굴만 구겼다.

내가 알아들었다고 여겼는지 선배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계장을 돌아보자 눈동자가 슬쩍 이쪽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신 주무관님.”

계장을 노려보고 서 있자 사고라도 칠 것 같았는지 자리에 앉은 선배가 날 불렀다.

선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 주무관님도 갖은 고생해서 임용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 말 듣고…….”

“아뇨. 이건 아닙니다. 제가 뒤 봐주기나 하려고 공무원 된 줄 아십니까?”

내 목소리가 커지자 소득세과 공무원들이 눈이 둥그레져서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님들! 정말 이걸로 괜찮습니까? 만만한 자영업자들이나 털고 정작 털어야 할 놈들은 이렇게 넘길 거예요?”

“이봐, 신재현!”

계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보자보자 하니까 못 하는 말이 없네. 1년 차라 의욕 넘치는 건 알겠는데 그럴 거면 나가. 공무원 하려는 사람 차고 넘쳤으니까.”

이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눈이 마주친 직원들은 불에 덴 듯 급하게 눈길을 돌렸다.

나는 손에 든 서류를 내 책상에 던지고 소득세과를 나섰다.

등 뒤에서 ‘냅둬! 따라가지 마!’ 하는 계장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는 비상계단으로 나간 뒤 핸드폰을 꺼냈다.

키패드를 꾹꾹 눌러 원하는 번호를 찾은 뒤 무작정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 신호가 가지도 않았는데 부드러운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빨리 전화가 왔군요. 그래,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