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46화 (447/448)

#446

에필로그-2

키이이잉!

일순 기이한 파장이 플라즈마 폭풍을 강타했다. 그 힘은 보이지 않게 파고들어가 흐름과 구조를 근간부터 무너뜨려버렸다.

[창염의 돌풍을 무너뜨려?]

챈들러가 경악을 터뜨렸다. 그가 전개한 플라즈마 폭풍은 결코 평범한 수법이 아니었다. 그는 태생적으로 플라즈마를 생성하고 다스릴 줄 알았고, 그 힘을 가다듬어 지금과 같이 초월자의 반열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이 계통에 한해서는 9클래스 마법마저 능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작 얼마 살지도 못한 필멸자 계집 따위에게 파훼된다고?

[역시 그랬어. 당신의 역량은 신좌들 중에서도 가장 형편없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제아무리 강림 상태라 해도 신좌인 내가 고작 필멸자 따위한테!]

조소하는 리스티의 목소리에 챈들러는 경악과 불신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더욱 큰 힘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플라즈마 폭풍을 뛰어넘어 거의 항성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플라즈마 덩어리였다.

마치 태양이 떠오른 듯한 그 광경에 챈들러가 광소를 터뜨렸다.

[아예 깔끔히 소각시켜주마! 내가 만든 인공 태양 속에서 사라져라.]

화아아악!

눈부신 열기와 빛이 아마페레오스를 덮쳐왔다. 챈들러의 플라즈마 구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밀려들고 있었다.

거기에 담긴 힘만 따진다면 거대한 행성 여럿을 순식간에 지워버리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리스티는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그보다 더 한 광경을 경험했던 그녀에게 있어 이딴 모조 태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작 이게 전부라면 진짜 태양을 당신한테 보여주겠어.]

차가운 냉소를 머금은 순간, 아마페레오스 전면에 돌연 거대한 태양이 떠올랐다. 단순히 핵융합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공태양 따위가 아닌, 실제로 막대한 질량과 실체를 가진 천체인 태양이었다.

천체창조. 조나단이 완성한 권능의 영역에 닿은 마법의 궁극이 지금 이 자리에서 또 한 번 재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구상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던 그 다음 단계의 술식이 완성되었다.

[천체압축고정 시작.]

[예. 시행합니다. 고차차원 질량 축퇴 시퀸스 스타트!]

인공지능 알렉시안의 보조를 따라 압축되는 태양. 그것은 경이적인 규모의 축퇴과정을 거쳐 작은 탄환 형태로 수렴되었다.

중력붕괴를 일으켜 발생된 백색외성과 같은 모습이 된 태양은 아마페레오스의 첨단에 걸렸다.

[초밀도중력자차원압축식 반발 제어.]

차원압축식 과정을 거치면서 태양이 더욱더 작게 수축된다. 그것은 이제 불길한 빛을 뿌리는 파멸의 탄환으로 가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단계에 도달한 순간, 리스티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천체차원압축식축퇴도약포(天體次元壓縮式縮退跳躍砲), 발사!]

투웅!

마치 우주를 뒤흔드는 듯한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탄환이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시공간을 초월해 챈들러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뭣!?]

이번 술식은 이전에 태무환이 이끌던 함대를 상대로 사용했던 천체차원압축식축퇴가속포와는 또 달랐다. 그것이 중력자 링으로 탄환을 가속해 쏘아내는 거라면, 이건 탄환 자체를 단숨에 공간이동 시켜 상대에게 작열시키는 초시공간도약탄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특성은 인과성립이나 다름없어서 챈들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도약탄은 놀랍게도 빛보다 빠른 속도로 대응할 수 있는 그가 반응할 새조차 없이 작열하였다.

무시무시한 파괴의 재앙이 그 즉시 챈들러를 덮쳤다. 초신성 폭발에 의한 막대한 파괴에너지는 설령 초월자라 하더라도 견딜 수 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게다가 그 뒤에 발생하는 중력붕괴에 의한 초대형 블랙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콰우우우우!

[크어어억!]

전신이 산산이 분해되는 고통에 챈들러가 절규를 토해냈다. 블랙홀의 조석력에 휘말린 이상 그가 벗어날 길은 없었다.

결국 무시무시한 데미지를 입게 된 그가 간신히 몸을 가누며 으르렁거렸다.

[크으으으··· 네년이!]

현재 챈들러는 정상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초월자라 하더라도 이만한 데미지를 맨몸으로 견디기 힘든데다, 심지어 본체로 이곳에 온 것도 아니었다. 강림 상태로는 본신의 역량을 다 발휘할 수 없는 만큼 지금처럼 허를 찔리고 만 것이다.

[가만두지 않으마. 초월자도 아닌 것이 그딴 전함을 타고 우쭐대는 꼴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챈들러가 흥분해서 격노를 터뜨렸지만, 리스티는 그를 향해 차가운 조소를 뿌렸다.

[앞이나 잘 봐. 당신 지금 나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니잖아.]

[뭐라고?]

일순 챈들러가 흠칫 놀라 자신의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말처럼 만신창이가 된 그의 코앞에는 어느새 한 여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 나타난 것일까?

심지어 높게 치켜든 여성의 검 위로는 휘황찬란한 빛의 거검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체 언제!? 다가오는 걸 내가 인지하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눈치 채는 것이 너무 늦었다. 그가 손을 쓰기도 전에 빛의 거검은 이미 그가 존재하는 공간을 양단하고 있었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7식. 천룡무상(天龍無上)

극의. 천룡여의(天龍如意) 여의무극일도(如意無極一道)

그것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천룡무상검의 새로운 극의.

그룬베일의 화신인 태무환과의 싸움에서 유태진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엮어 구사한 최후의 일검, 무극천라일절을 천룡무상검의 형태로 전환해 추가한 극의였다.

물론 무극천라일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수많은 영능과 권능들을 하나로 엮어야 구현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여의무극일도야말로 순수한 무공으로 극에 이른 절기라 해야 할 것이다.

[크으··· 이런 거지같은 일이!]

의형광검으로 전개된 여의무극일도에 양단된 챈들러가 억울함과 분노에 찬 눈으로 부르짖으며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물론 초월자인 만큼 그가 이 정도로 소멸될 리는 만무하지만, 그가 강림한 자의 몸이 사망한 이상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휴우, 간신히 끝났네.”

챈들러는 일검에 벤 여인, 아리엔은 작게 숨을 내뱉었다. 사실 그녀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여의무극일도였다. 만일 리스티가 도약탄으로 챈들러에게 큰 데미지를 입히면서 그 자의 시선을 끌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수고했어. 이걸로 당분간은 저 신좌도 외부 활동은 무리일 거야. 이번 실패로 간섭력을 상당량 날려버렸을 테니 말이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리스티가 그렇게 말했다. 아리엔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로 당분간 활동이 어려운 신좌는 모두 다섯이 되었네.”

“그렇지.”

그룬베일을 시작으로 카룬다임과 오르쿤, 그리고 모르스가는 지난 태양계 대전으로 막대한 간섭력을 잃는 바람에 물질계 간섭이 어려워졌으며, 방금 쓰러뜨린 챈들러까지 여기에 추가되었다.

인베이더의 신좌가 총 아홉임을 생각하면 무려 반수 이상이 외부활동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건 곧 인베이더 세력의 큰 위축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짓고 끝내자. 더 끌면 시간에 늦을지도 몰라.”

“···그래.”

재촉하는 그 말에 아리엔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따라 다시 아마페레오스에 올랐다. 챈들러를 물리쳤다 해도 아직 그가 이끌던 해적 함대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후의 전투는 생각보다 빨리 종료되었다. 해적함대의 구심점인 챈들러가 쓰러진 이상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전장의 사후처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리스티와 아리엔은 아마페레오스에 올랐다.

그때 왠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아리엔의 표정을 본 리스티가 물었다.

“왜? 가기 망설여져?”

“응.”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흠칫 놀라던 아리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푸념처럼 내뱉었다.

“이쯤 되면 포기해야 하는 게 맞는데··· 나도 웃긴 년인가 봐.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도저히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어. 상대가 너무 강적이니 우리가 알아서 포기해야지.”

리스티라고 해서 왜 미련이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이미 다 끝난 일을 가지고 매달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

“늦겠다. 그만 가자.”

리스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는 아리엔을 재촉하면서 메인브릿지로 향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페레오스는 워프항법으로 신속히 아르탈 행성을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 * *

인베이더의 지구침공이 있었던 그날로부터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이후 우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피해가 가장 컸던 인베이더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고, 그 덕분에 나머지 세력들의 크게 확장되었다.

특히 이번 승리를 주역인 연합과 공화국의 신장세는 그 어떤 곳보다 가장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연합에 가입한 지구의 발전 속도도 상상 이상으로 가팔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우주에서도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유니버셜 테라 코어이자, 만능신이 태어난 출신지로 현재 널리 알려진 상황.

그러니 우주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지구연방은 지금까지 연합에 가입했던 어떤 행성들보다 더 빠르게 상승세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가파른 상승세의 중심에는 KM사와 세화그룹이 존재하고 있었다. 유태진과 리스티의 적극적인 기술지원과 그들의 명성이 더해지면서 발생한 시너지 효과 때문인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지구는 적어도 20년 이후에는 연합의 기술력과 발전상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사실 연합과의 기술적 격차가 적어도 수백 년 정도의 격차기 존재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발전속도라 하겠다.

그리고 오늘 세화그룹 소유의 콜로니에서는 한 척의 대형 전함이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연합의 지원으로 건조된 대형 전함의 함장으로 임명된 강무환이 눈앞의 사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유태진의 친할아버지이자 세화그룹의 회장 유문택이었다.

“그래, 자내도 잘 있었나?”

“예, 회장님. 함장교육을 받느라 좀 바쁘긴 했지만 꽤 충실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이 전함도 맡게 되었고 말이지요. 그런데 회장님은 못 뵌 사이 많이 젊어지셨군요. 이젠 30대로 보입니다.”

“그렇지? 이게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진짜로 젊어졌어. 나도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

그랬다. 본대 70대를 훌쩍 넘긴 유문택 회장은 완연한 30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검어진 머리카락과 팽팽한 피부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강무환 함장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회장님께서 젊어지신 건 그 분이 손을 써주신 겁니까?”

“그렇지. 그 녀석이 찾아오더니 나더러 오래 살라고 젊게 만들어주더군. 내가 말년에 손자 덕을 톡톡히 보는구먼.”

그냥 평범하게 젊어진 게 아니었다. 유태진은 할아버지인 유문택을 위해 개정대법을 베풀었고, 그 결과 완벽하게 환골탈태하여 지금의 완벽한 젊음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젊어진 몸으로 무공까지 수련하기 시작했다. 겨우 손에 넣은 젊음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몸이 젊고 강건해진 덕분일까?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여기저기 쑤시던 팔다리도 이젠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리고 수십 년 세월에 다 풍화되어 사라진 줄 알았던 의욕과 열정이 다시 샘솟고 있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세화그룹이 점차 우주적인 기업으로 빠르게 발돋움하고 있는 것은···.

젊어진 유문택 회장은 그 어떤 때보다도 회사의 발전에 열정적으로 전념했으며, 그 결과가 이런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지구의 우주진출도 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지구와 거래를 튼 행성들도 여럿 생겨났으며, 우호적인 행성들도 적잖이 늘어났다.

물론 여기에 유태진의 후광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구인들의 진취적인 자세가 없었더라면 이런 성과는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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