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45화 (446/448)

#445

에필로그-1

“이곳인가?”

아득히 펼쳐진 우주공간이 시야에 들어온다. 공허할 정도로 텅 빈 공간은 칠흑빛 어둠만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유태진은 그 어둠 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꿰뚫어 보았다.

“그렇군. 진법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다니. 이건 나조차도 생각해보지 못했군.”

눈앞의 우주공간은 그저 텅 빈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비어있지 않았다. 단지 뭔가에 의해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행성 전체를 뒤덮고도 남는 은형진(隱形陣)이라니···.”

그는 혀를 내둘렀다. 한 지역을 덮어서 가리는 진법은 경험해봤지만, 설마 행성 전체를 가려서 은폐시키는 규모의 은형진은 난생 처음이었다.

“아무튼 여기가 녀석이 말한 본거지라 이거지?”

유태진은 가볍게 혀를 찬 뒤 가려진 행성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행성 규모의 은형진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숨겨져 있던 행성이 본 모습을 드러냈다.

이 행성의 코드명은 PCB-120P. 바로 십만대산이라 불리는 천마신교의 본거지였다.

유태진은 행성의 대기권 내로 천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딱히 존재감을 숨기지도 않고 진입하고 있었지만, 행성에서는 어떠한 방어행위도 하지 않았다.

‘역시··· 이미 알고 있었나?’

이 행성에는 수많은 대공방어 시설이 존재하고 있었다. 만일 그를 침입자로 여겼다면 그것들이 즉각 발동하여 그를 공격해왔을 것이다.

그는 행성의 특정 지역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수많은 무리가 나와 있었다.

그 수는 무려 수백만에 이르렀으며 종족도 다양했다. 인간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다른 여러 종족들의 비율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꽤 익숙한 인물 하나가 서 있었다.

‘역시 그랬군. 그녀가 바로···.’

할파스 상회의 자원행성 지부를 맡고 있던 레민티아 지부장. 상당히 강력한 정신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헌데 그녀가 이곳을 대표하는 자일 줄이야.

유태진이 천천히 내려오자, 그녀를 선두로 모든 이들이 땅 위에 머리를 박고 조아렸다. 그 행동은 마치 신을 떠받드는 자들을 연상케 했다.

“그만 다들 일어서라.”

유태진이 명하자 그제야 다들 주춤주춤 일어서기 시작했다. 유태진은 그런 이들 중 레민티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나 보지?”

“···예, 그분께서 제게 몇 마디를 남겨 주셨죠.”

“그럼 사정도 다 알고 있겠군.”

그 말에 잠시 주저하던 레민티아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네.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지요.”

“그렇군. 네가 당대의 성녀인가?”

유태진은 그제야 레민티아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아챘다.

비교적 종교적인 색채를 가진 천마신교에는 성녀란 존재가 대대로 내려 왔었다. 그녀들은 미래를 엿보거나 과거를 읽었으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천마와 정신적으로 감응하는 능력을 가졌다.

물론 여긴 중원무림이니 진짜 성녀일리는 만무하겠지만 레민티아도 어느 정도는 성녀와 흡사한 능력을 지닌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태무환의 정신과 감응하여 그가 겪었던 일을 전부 다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너도 알겠군. 그 녀석이 누구 손에 쓰러진 건지 말이야.”

“예, 하지만 그건 그분께서 바라신 바였죠. 자신이 패해 스러진다 할지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셨어요.”

그랬다. 레민티아를 비롯한 이곳의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였다. 자신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태무환이 누구에게 패해 소멸했는지를.

그들 입장에서 보면 유태진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하나 원망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죠. 당신을 바로 자신처럼 섬기라고. 저희는 그 명에 따를 겁니다.”

“휴우···.”

저들에게 있어 태무환은 신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헌데 그런 태무환을 소멸시킨 자신을 서슴없이 따르겠다고 하니 심사가 조금 복잡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태무환과 약속한 바 있었다. 저들을 거둬서 보호해 주겠다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완전히 독립된 세력으로 자립할 때까지 보호해줄 것이다. 그게 너희들이 섬기던 태무환의 바람이었지.”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희의 주인으로 섬기겠습니다.”

레민티아는 깊게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정말이지··· 넌 너무 많은 걸 남기고 갔구나.’

태무환은 자신의 전생 시절을 잊지 못하고 이 광활한 우주에 새로운 천마신교를 세웠다. 물론 그 교도들은 무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능을 터득하는, 새로운 체계로 이뤄져 있었지만 천마신교라는 기본 틀은 여전히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이들을 악이라 하기도 어려웠다. 저들은 교리에 따라 패도를 추구할 뿐, 극악을 행하는 악인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저들이 한때 할파스 상회의 이름을 앞세워 인베이더와 함께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천마인 태무환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무환도 더 이상 천마신교가 인베이더와 어울리길 바라지 않는다고 유언을 남긴 만큼, 앞으로는 독자적인 우주의 세력으로 자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유태진은 이들을 성장시켜서 우주를 아우르는 하나의 축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현재 우주는 인베이더와 아르탈 행성 연합, 그리고 공화국과 제국의 4파전 양상을 띄고 있었다. 그동안은 인베이더의 세력이 워낙 압도적이었던 만큼 나머지 3세력이 서로 연대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당분간은 변할 듯싶었다.

‘이번 사태로 인베이더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어. 그룬베일을 비롯한 신좌들의 영향력도 마찬가지고.’

물론 신위를 획득한 초월자들은 불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건 아니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물질계에 함부로 관여할 경우에는 특히 더 치명적이었다. 아마 그들은 최소한 천년 이상 물질계에 직접 간섭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결국 당분간 연합을 비롯한 3대 세력의 행보를 가로막을만한 어려움은 없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결코 선량한 건 아니야. 견제할만한 세력이 없으면 부패하는 건 순식간이지. 그러니 이들을 견제할 또 하나의 축이 필요해.’

이번 제국의 사태만 봐도 명백했다. 그동안 대대로 정도를 지켜오던 제국이 알카데인 황제의 대에 이르러선 자기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인베이더와 손을 잡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결국 어느 세력이든 별 어려움 없이 잘 나가기만 하다 보면 그릇된 길로 나아가기 마련. 연합이나 공화국도 예외일 순 없었다.

아니 공화국만 하더라도 베이노아 수상이 결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진작 내부에서부터 부패해 무너졌을 것이다. 이게 바로 별 어려움 없이 오랜 평화에 안주한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견제책으로 천마신교를 키워줄 생각인 것이다. 아무래도 긴장할만한 상대가 생긴다면 느슨한 마음으로 타락하게 되는 걸 어느 정도 방지할 수도 있겠지.

게다가 그가 굳이 천마신교를 지원해주려는 이유는 그밖에도 더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희망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네? 희망이라니요?”

뜬금없는 희망이란 말에 두 눈을 끔뻑이며 되묻는 레민티아.

유태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너희도 알지는 모르겠지만 태무환은 꽤 특별한 경우였다. 태생이 그룬베일의 화신인 만큼 본신인 그 자의 명령을 거역한 녀석이 다시 부활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그렇지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다시금 부각시키는 그의 말에 약간은 원망스런 표정을 짓는 레민티아. 하지만 유태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든 예외는 있는 법이지. 너희들이 지금과 같은 신앙을 유지한다면, 아니 그보다 더 큰 신앙을 쌓아올린다면 태무환도 언젠가는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올 거다. 그룬베일의 화신이 아닌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서 말이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녀석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던 천마신교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신앙체계를 쌓아올렸지. 그 결과, 그룬베일의 화신이라는 위치와는 완전히 별개의 신위에 닿고 말았다. 이건 진짜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지. 태무환 본인조차도 말이야.”

태무환도 여기까지 계산하고 천마신교를 세웠던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중원무림 시절에 대한 향수로 천마신교라는 형태로 세력을 꾸렸을 뿐, 딱히 신앙의 대상이 되어 독자적인 존재가 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그 결과 태무환은 그룬베일의 화신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고, 이들의 신앙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하급신이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너희에게는 그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일 테지.”

“···예, 당연하지요. 그분이 부활하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희는 여한이 없답니다.”

하긴 하급신만 해도 어딘가. 존재가 아예 없어질 뻔한 녀석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하니 다들 화색이 만연했다. 감격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자들도 상당수였다.

“그럼 이만 나는 가보도록 하지.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도록.”

유태진은 그렇게 인사를 건넨 뒤 공간을 이동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들 감격에 젖어 있는 이상 더는 자신이 남아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 * *

지구에서의 대전이 있던 그날로부터 무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이후 인베이더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신좌들 중 무려 넷이나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유니버셜 테라 코어를 점령하려던 시도가 실패하면서 그들이 축적해왔던 간섭력은 그야말로 모두 날아가 버렸고, 더 이상 물질계에 관여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덕분에 살판난 건 다른 신좌들이었다. 그동안은 그룬베일의 영향 때문에 정해진 침공 외에는 딱히 경거망동 못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들을 제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신좌들 중에서도 탐욕의 신좌 챈들러는 지금의 상황에 가장 만족해했다.

[멍청한 그룬베일 같으니라고. 내 그럴 줄 알았다. 우주를 시원으로 되돌려 본래 있어야 할 형태로 재창조하겠다고? 최상위 신 씩이나 되면서 그런 멍청한 망상을 품고 있다는 게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지.]

그는 신좌의 일원으로 인베이더 세력에 몸담긴 했지만, 딱히 그룬베일의 거창한 사상에 찬동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건 닥치는 대로 빼앗고 강탈하면서 악업을 쌓아 자신의 욕망대로 이루길 바라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현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우주해적인 [마크론드]의 주인이자 모든 우주해적들이 신으로 떠받드는 존재.

욕망을 우선하는 그에게 있어 대업 따윈 우스갯소리만도 못했다. 애당초 연합이나 공화국 같은 세력만 아니었다면 굳이 인베이더에 몸담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고 드립니다. 지금 현재 본 함대는 [케스링거] 성계 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오호, 여기가 바로 잘 알려진 그곳이군. 값비싼 영자 레어메탈 산지로 유명하다지?]

마도공학이 고도로 발달된 현 우주에서 대부분의 자원 물질은 원소조합기를 통해 임의적으로 제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부 영자력과 관련된 레어 메탈이나 물질들은 그런 방식으로도 제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자연적으로 채굴되는 희소물질이 매장된 행성은 가히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다. 인베이더와 같은 거대 세력도 이런 자원행성에 대해선 군침을 삼킬 정도였다.

그렇게 케스링거 행성을 응시하던 챈들러는 광기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아, 그럼 시작하자. 닥치는 대로 빼앗고 강탈하라! 우리는 우주를 주름잡는 해적! 갖고 싶은 건 모든 빼앗는다! 하하하!]

그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해적함대의 진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에 맞서 케스링거 방위함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케스링거는 아르탈 행성 연합의 주요 자원행성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곳에는 항시 만만치 않은 함대 전력이 항시 대기 중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챈들러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하하하! 우습구나. 고작 그 정도로 나와 내 함대를 막겠다는 거냐?]

그렇게 한차례 웃어젖힌 그가 곧 잔혹한 목소리를 토해낸다.

[전부 짓밟아주마. 저항하는 자는 죽이고 배를 갈라라! 여자는 빼앗고, 아이는 사로잡아 노예로 삼아라! 우리는 해적, 욕망하는 모든 것을 취하라! 그것이 우리의 유열, 우리의 열광! 자, 나아가자! 취하러!]

“우오오오!”

해적들이 그 명령에 더욱 광기를 띠며 전진해 나갔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행성들을 약탈하고 죽여 왔던 악당들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거침이 없었다.

콰아아아앙!

케스링거 방위 함대로부터 대규모 포격이 시작되었다. 중요한 자원행성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함대의 규모는 어지간한 변방 함대보다 더 컸지만, 신에게 대적할 정도는 아니었다.

[감히 내 앞에서 이딴 공격이 통할 것 같으냐?]

챈들러는 비웃으며 손을 뻗어 해적 함대를 보호하는 방대한 역장을 일으켰다.

현재 그가 강림해 있는 육신의 주인은 마크론드의 10대 강자 중 하나인 [론 하우트]. 상위 그랜드 급의 강자인 만큼 챈들러의 강림을 그런대로 감당할 수 있었던 만큼, 이 정도 힘을 발휘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다.

결국 방위 함대의 포격은 역장에 가로막혀 소실되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함대라 할지라도 신좌의 힘을 거스를 순 없었던 것이다.

[자, 그럼 슬슬 박살내주마. 약탈의 즐거움은 그 뒤로 미루기로 하지.]

한 차례 포격을 쏟아내고 리터벌 차지 상태에 놓은 방위 함대를 향해 공격을 쏟아내려는 그 순간, 챈들러는 예상치 못한 예감을 느꼈다.

그건 실로 불길한 예감이었다.

[뭐지, 이건?]

그가 자신이 느낀 직감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에너지가 우주공간을 관통하며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챘다.

[아니, 이것은!?]

콰아아아앙!

실로 무시무시한 빛의 해일이 해적 함대를 인정사정없이 관통하고 지나갔다. 너무도 파괴적이고 광범위한 그 빛은 초신성이 폭발하는 순간 일어난다는 감마레이 버스트였다.

챈들러는 이를 막지 못했다. 초월자인 그의 능력과 인식속도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어야 했지만, 그를 저지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실로 거대했다. 존재감뿐만 아니라, 챈들러의 눈앞에 나타난 실루엣 자체가 거대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냐, 네놈은!]

[생각보다 형편없네. 신좌들 중에서도 최하위라더니, 역시 그래서인가.]

눈앞의 거대한 함체에서 들려오는 영언. 그것은 분명 여린 여성의 것이었다.

챈들러는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거대한 전함이 무엇인지도.

[초월신함? 그렇다면 네년이 그 조나단의 동생이라는 리스티 프론사이드란 말이군. 그런데 어떻게? 필멸자인 주제에 어떻게 내 눈을 피한 거지?]

그는 현재 상황을 빠르게 파악해 나가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아카식 레코드를 읽는 초월자인 자신이라면 지금의 공격을 곧바로 인지했어야 했다. 아니, 초월신함이라는 강력한 전력과 리스티라는 변수가 이곳에 와 있음을 진작 알아 챘어야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선 전혀 읽힌 바가 없었다.

그러자 리스티로부터 비웃음 어린 영언이 전해져왔다.

[이미 알고 있잖아. 당신이 읽는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에 누락이 생긴 것을.]

[그··· 그럴 리가 없다! 필멸자 따위가 신의 안목을 흐린다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룬베일이라면 모를까, 고작 중급신에 턱걸이 할까 말까 한 당신의 인지를 가리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도 않아.]

리스티의 말대로였다. 챈들러는 인베이더 신좌들 중 한 명이었지만 그 역량은 다른 이들에게 못 미쳤다. 최하위 수준이었다.

게다가 지금 현재는 수하의 몸으로 직접 강림한 상황. 그가 읽을 수 있는 정보도 제한되기 마련이었다.

리스티는 그런 허점을 철저히 이용했고, 그 결과 전투 시작부터 해적 함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데에 성공했다.

[이런 건방진! 일개 필멸자 따위가 감히 신의 격을 논하는 거냐!]

챈들러는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권능을 일으켰다. 아무 것도 없던 우주 공간상에 무시무시한 플라즈마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어지간한 9클래스 급 마법보다도 더 강력했다.

[그 시답잖은 전함을 비롯해서 네놈들 함대 전부 날려버리마. 그리고 그 다음에 네년의 죄를 묻지.]

그렇지만 챈들러의 살벌한 선언을 듣고도 리스티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네.]

그 순간, 아마페레오스를 중심으로 거대한 동심원 같은 파장이 번져나갔다. 그것은 주변의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가는가 싶더니, 기이한 괴리 현상을 일으켰다.

그건 일종의 차원전환결계였다. 지금 리스티는 아마페레오스를 중심으로 일정 지역의 공간에 차원전환결계를 전개해서 싸움의 여파가 주변에 미치지 않도록 자신과 챈들러만 가둔 것이다.

챈들러가 그 사실을 깨닫고는 비웃었다.

[멍청하군. 그래서 이런 폐쇄차원 속에서 홀로 죽어가겠다 이거냐? 어차피 몇 분 차이일 뿐이다. 네년을 치우고 나면 이딴 너저분한 결계 따윈 저절로 해제되겠지. 방위 함대는 그 다음에 박살내주마.]

그가 손짓하는 순간, 플라즈마 폭풍이 아마페레오스를 향해 밀려나갔다. 그건 좀 전에 겪었던 감마레이 버스트에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강력한 힘이라 해도 무의미했다. 아마페레오스와 동기화 하고 있는 리스티의 눈은 지금 플라즈마 폭풍이 가진 힘의 흐름과 구조를 이미 죄다 읽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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