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44화 (445/448)

#444

17권-43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를 중심으로 일렁이던 어둠이 거대한 소용돌이 형태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우주의 모든 것이 태무환을 중심으로 집결되는 듯했다.

“역시··· 그게 그룬베일이 가진 권능의 실체였나!”

놈은 단순히 어둠 자체만 지배하는 게 아니었다. 우주의 95%를 차지하고 있다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마저도 바로 그 카테고리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인 어둠은 말 그대로 초대질량 블랙홀을 핵으로 삼은 하나의 은하, 즉 퀘이사(Quasar)에 가까웠다.

‘이게 바로 최상급 신의 힘.’

어찌나 대단하던지 초월자의 반열에 오른 유태진에게도 그 광경은 너무도 경이로울 정도였다. 제아무리 신이라 하더라도 일개 개인이 이만한 힘을 다룰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은하 하나 규모의 힘을 축퇴시켜 만든 어둠이 태무환의 오른 주먹을 따라 전개되었다.

천마파천권(天魔破天拳)

제 2식. 부동겁멸인(不動劫滅印)

극의. 윤전축뢰명공파(輪轉縮牢冥空破)

태무환의 한 수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유태진의 안색이 변했다.

‘이건 단순한 축퇴 수준이 아니다. 거의 빅 크런치(Big Crunch)에 가깝나?’

빅 크런치는, 우주가 팽창력을 잃고 수축하여 다시 한 점으로 되돌아간다는 우주의 멸망 원리 중 하나. 태무환의 이 수법은 그런 현상을 인위적으로 구현한 뒤, 작용하고 있던 수축력을 반전시켜서 빅뱅 형태로 팽창시켜서 막대한 대파괴를 발현하는 것이었다.

‘설마 천마파천권을 통해 이런 현상을 구현해낼 줄이야. 이건 어지간한 수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물론 최대한 힘을 발휘한다면 자신 한 몸만 건사하는 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아직도 싸우고 있는 아군 함대와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차원전환결계라 하더라도 저런 터무니없는 공격 앞에선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유태진은 결연한 표정으로 맞섰다.

“그렇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수로 받아주지!”

쿠구구구구!

천룡무상신공을 바탕으로 또다른 신공절기들이 그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태진이 점창의 무공 칠절중수를 토대로 창안한 천중무한신공과 지부현운신공이었다.

천중무한신공(天重無限神功)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7절. 천중인(天重印)

극의. 현의축멸장(玄意縮滅場)

그가 손을 내밀자 막대한 인력이 방대한 공간을 아우르며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주공간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급격히 수축하기 시작했다.

끄그그그긋!

이것이 바로 빅 크러쉬(대붕괴大崩壞)현상. 유태진은 일정 공간이 막대한 중력으로 수축되어 발생되는 인위적인 빅 크러쉬로 윤전축뢰명공파의 파괴현상마저 소멸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거의 은하계 규모의 에너지가 수축되었다가 터져나오는 파괴력은 고작 그 정도로 전부 상쇄될만한 게 아니었다.

현의축멸장으로 빠르게 수축되던 공간이 다시 팽창하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터진 윤전축뢰명공파의 힘이었다.

그리고 막대한 그 반발력을 유태진은 전부 받아내야 했다.

“크···!”

저도 모르게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무(武)의 경지에서는 결코 뒤처지지 않지만 힘의 규모에서 밀렸다.

그게 바로 최상위 신과 중상위 신 사이에 존재하는 격의 차이였다.

‘이 정도일 줄이야. 그나마 나였으니 망정이지, 다른 중상위 신이었다면 단숨에 찢겨나갔겠군.’

만능신의 권능으로 엔트로피를 제어하고, 공간과 시간을 제어하여 현의축멸장의 힘을 더 강화했음에도 이 지경에 이르렀다. 역시 힘으로 정면대결 하는 것은 절대 불리했다. 제아무리 다양한 권능들을 엮는다 해도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

유태진은 밀려드는 막대한 파괴현상을 받아내야 했다. 현의축멸장으로 대부분의 힘을 상쇄시키긴 했지만, 미처 다 막지 못하고 새어나오는 힘만 하더라도 이 주역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일시적으로 허상차원을 전면에 구현하여 그 여파를 받아냈다. 천중무한신공과 짝을 이루는 지부현운신공은 바로 허(虛)의 무공. 우주의 시공주소를 임의적으로 뒤틀어 허상차원을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만도 않았다.

어떻게든 간신히 막아내고 나자, 태무환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영언을 보내왔다.

[제법이구나! 윤전축퇴명공파를 받아 내다니. 하지만 그 다음 수도 과연 지금처럼 받아낼 수 있을까?]

“······!”

유태진은 저도 모르게 안색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것이 현의축멸장은 천마파천권의 2식인 부동멸겁인의 극의였다. 헌데 문제는 그가 아는 한 천마파천권은 총 3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3식인 쇄천만겁세의 극의가 그 이상이라면 나도 막아낼 수 없어.’

유태진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지금 태무환은 최상위 신의 힘을 휘두르는 초월적인 존재 그 자체였다. 거기에 무공에 대한 깨달음까지 더해지면서 그 강력함은 전무후무한 수준에 이르렀다.

더 이상 수단방법을 가릴 때가 아닌 것이다.

‘나름대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우주는 넓군.’

결심을 굳힌 유태진이 자신의 검을 더욱 굳게 움켜쥐었다.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젠 더 아껴둘 이유가 없었다.

“엑스칼리버, 이제 네 진정한 힘을 보일 때가 왔다!”

화아아아악!

눈에 보이지 않는 막대한 권능의 힘이 번져나갔다. 그것은 신의 영역을 넘어 절대섭리법칙인 유그드라실(창멸법칙)에게까지 닿는 절대권능!

우주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존재하는 최상위신이라 해도 결코 거부할 수 없었다.

태무환이 신음을 토하며 멈칫거렸다.

[큭! 이번에도 또 엑스칼리버인가.]

그룬베일의 지원으로 최상위 신의 힘을 부리던 그의 격이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어둠이란 카테고리를 지배하던 권능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창세성검의 파편으로 완성된 엑스칼리버의 진정한 힘!

절대신 이하의 초월자들은 이 제약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태무환도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날 멈출 수 없다!]

쿠구구구!

크게 영언을 토한 태무환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증대되기 시작했다.

격이 다시 하락하고 엑스칼리버에 의해 권능마저 상당수가 제약되었다곤 하지만, 태무환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무(武) 그 자체.

천마신공을 비롯한 신공절학을 총동원하여 하락한 권능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었다.

이를 확인한 유태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쉽지 않군.”

최상급 신위를 다루는 태무환의 저력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신격과 권능이 하락했을 뿐, 힘의 규모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1500년 전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역시 그때완 다르다는 건가.’

현재의 태무환은 1500년 전 당시 엑스칼리버에 의해 제약을 받았던 그룬베일보다 더 강력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태무환은 지금 상태로 강림하기 위해 막대한 생명들을 제물로 희생시킨 데다, 무공까지 갖추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기 때문이었다.

“휴우···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나도 더 이상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기로 하지.”

그렇게 내뱉은 유태진으로부터 곧 거대한 신성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찬란하기까지 한 신성의 빛! 그것은 불길처럼 번져나가면서 어두운 우주를 환히 밝혔다. 얼마나 강렬하던지 마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빛은 실제 뜨겁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밝게 타오르며 이 일대를 환히 비출 뿐이었다.

이를 본 태무환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대체 지금 뭘 하려는 거냐?]

그도 이 빛이 권능의 일종이라는 것만 알아보았다. 하지만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를 뒤져봐도 이와 같은 종류의 권능은 처음이었다.

그런 그에게 유태진이 말을 걸어왔다.

“이봐, 태무환. 내가 조금 전 신명을 획득하면서 누굴 만났는지 아나?”

[또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용신을 뵈었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만능왕이라는 용왕의 좌를 부여 받았지.”

너무 놀랄만한 내용이었던 걸까? 잠시 할 말을 잃던 태무환이 다시 입을 뗐다.

[···믿기지 않는군. 창세 이후로 비견될만한 존재가 없다던 최고의 절대신을 네가?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지금 상황을 보면 용신이 직접 개입할 뜻은 없는 듯 보이는데.]

그랬다. 용신 레니우스가 나타났었다는 건 꽤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가 이 자리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건 결국 직접 개입할 생각은 없다는 뜻일 테니까.

이에 유태진이 대답했다.

“물론 그분께서 나서실 일은 없겠지. 하지만 용왕의 직을 내려주시면서 몇 가지 부수적인 권한을 주셨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용들을 부릴 수 있는 권세지.”

[대단하긴 하다만 그래봐야 이 자리에 있는 드래곤들은 수십 남짓이지. 심지어 죄다 반신 급이고. 그 놈들이 더해진다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달라질 것 같나?]

태무환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우주 어디에도 드래곤들은 존재하는 만큼 용들을 부릴 수 있는 권세는 실로 막강한 힘이긴 하나, 문제는 부릴 용이 바로 근처에 존재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있는 수십의 드래곤들은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로 신좌들을 억누르는 것도 벅찬 지경이니, 사실상 의미 없는 권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유태진은 조용히 웃었다.

“물론 그게 전부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난 만능신.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여 나만의 권능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지.”

[뭐?]

“자, 보아라! 나를 따르는 이들은 모두 용맹무쌍한 용일지니!”

낭랑하기까지 한 외침! 그 순간, 태양계 주변의 우주까지 환히 밝히며 타오르던 권능이 그 본질을 드러내었다.

[[용왕의 군세!]]

* * *

카이릭 네버다스.

그는 인간의 몸으로 초월자의 반열에 올라 전신이란 신명을 획득한 신이었다. 그렇지만 이 광활한 우주에서 전신의 신명을 획득한 이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그 중에서도 카이릭 네버다스는 딱히 두각을 드러내는 전신은 못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가진 권능만큼은 꽤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끌던 병력을 군세로 구현하고, 혹은 자신이 굴복시켰던 강자들의 힘을 휘하의 병력에게 부여해준다는 [전신의 군세].

유태진은 만능신의 힘으로 용왕의 권세에 그 자의 권능을 더하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펼쳐진 기적, 용의 군세였다.

“이게 대체!?”

“갑자기 힘이 넘쳐 올라!”

신좌들을 견제하며 싸우던 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놀라 외쳤다. 그리고 그것은 공화국과 연합 함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친, 드래곤 하트라고!?”

베네트 국장은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에 기함했다. 딱히 외형적인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안에서 심장 대신 박동하면서 막대한 힘을 뿜어내는 기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베이노아 수상도 마찬가지. 아니, 본인부터 용족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고니안이었기에 지금의 이적이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이럴 수가! 평범한 이들에게까지 전부 용의 힘을 부여했다는 건가?”

그랬다. 이것이 바로 [용의 군세].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이 이끄는 모든 아군에게 용의 특성을 부여함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힘과 능력을 내려주는 권능이었다.

지금 이 순간, 연합과 공화국 함대의 일원들은 종족과 경지를 막론하고 전부 용의 힘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태무환조차 지금의 결과에 경악하고 말았다. 설마 모든 이들에게 용의 힘을 부여하는 권능이라니!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 드래곤들과 같은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니었다. 각자 기존의 본신역량에 따라 차등이 있으며, 유태진이 부여할 수 있는 힘의 상한에도 제한이 있으니까.

하지만 고작 불씨조차 피워 올리지 못하던 정비공조차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이스터에 준하는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덕분에 모르스가를 비롯한 신좌들은 더욱 궁지로 내몰렸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이 같이 말도 안되는 게 허락된다고?]

[고작 필멸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버러지들 따위에게 우리가 밀린단 말인가!]

새로운 힘을 얻게 된 공화국과 연합의 병력은 그야말로 노도와 같은 기세로 신좌와 인베이더들을 밀어붙였다. 신좌들이 제아무리 초월자라 해도 지금은 정상이 아닌 상황. 더군다나 이만한 숫자가 전부 마이스터 급으로 격상되면 감당하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용의 군세]는 어디까지나 유태진이 구상한 바를 이루기 위한 준비단계일 뿐이었다.

곧 그를 중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

곧 묵직한 압력이 태무환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옥죄던 제약들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전에도 경험해 봤던 것!

그가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큭, 이건!? 설마 네 녀석, 애당초 이걸 노린 짓이었냐?]

유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모든 아군에게 용의 특성을 부여한 것 자체부터가 이걸 노린 거였지.”

신마저 옭아맨다는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용성대원진.龍聖大源陣).

지금 유태진은 드래곤들은 물론, 자신이 아군에게 부여한 용의 특성 자체를 이용하여 대규모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를 전개한 것이다.

물론 용의 특성과 힘을 얻은 사람들의 역량은 실제 드래곤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 수만 무려 수백만에 이른다.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태무환을 옭아매는 제약의 수준도 이전과 차원을 달리할 정도였다.

[크으으으···.]

무시무시한 제약들이 태무환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엑스칼리버 때문에 막대한 격의 하락과 제약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용의 군세에 의해 강화된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까지 작용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최상위에 달하던 신격과 권능이 하락을 거듭하면서 이젠 중상위신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젠 유태진과 정면대결을 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밀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대로 끝낼 성 싶으냐?]

갑작스런 힘의 감소로 탈력감에 빠져든 태무환이 이를 악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예상 못한 변수가 거듭 더해지면서 대등했던 승부가 이렇듯 급격히 기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나 긴 기다림이었던가.

이제 겨우 바라마지않던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끝마칠 수 없었다.

쿠구구구구!

크게 곤두박질치던 기세가 다시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엑스칼리버와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에 의해 큰 폭으로 깎여나갔던 격을 다시 되찾고 있었다.

유태진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곧바로 알아챘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태무환이 더 이상 물질계에 머물 수 없게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가해진 온갖 제약을 떨쳐내기 위해, 물질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대가로 소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그룬베일의 계획과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위였다.

“태무환, 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날 이기고 싶은 거냐?”

유태진이 탄식처럼 내뱉은 그 말에, 태무환이 화답했다.

[누가 이기고 지든 이젠 승패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상관없다고? 그렇다면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나와의 싸움에 집착하는 거냐?”

[아직도 모르나? 난 오늘의 이 싸움을··· 전생의 마지막 그 때처럼 허무하게 끝내고 싶지 않은 거다.]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그 말에 유태진은 일순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그는 태무환이 그토록 자신과 싸우고자 했던 게 지나친 승부욕 때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난 전생부터 이어진 이 대결을 승리로 마무리 짓는 게 목적이 아니라, 누가 이기든 지든 간에 끝마치지 못했던 그때의 승부를 완전히 완결 짓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내 말이 어이없고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내게 있어 유일한 목적은 그것뿐이다.]

그만큼 큰 대가를 치러서일까? 태무환은 어느새 역량을 격감시켰던 제약을 대부분 떨쳐내고 본래의 존재감을 되찾았다. 그 대신 그가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빠르게 줄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결정을 결단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령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다 한다 할지라도···]

그가 두르고 있던 방대한 어둠이 곧 거대한 검으로 승화되었다. 아니 그건 그냥 어둠이 아니라, 우주의 시공간 그 자체가 검의 형상으로 수렴된 형태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차원상전이검(次元相轉移劍). 진 무형검마저 넘어선 극고의 경지였다.

그는 완성된 거대한 칠흑빛 검 중심에 선 채 외쳤다.

[너와의 승부, 내 모든 걸 담은 마지막 일검으로 결코 후회 없이 마무리하겠다.]

은하마저 가를 것 같은 거대한 칠흑빛 검이 시공간을 초월해 뻗어왔다.

이것이 바로 태무환의 모든 것을 담은 최후이자 최선의 일검.

눈앞을 가득 채운 이 한수는 마치 우주에 종말을 고하는 재앙 같았다.

천마삼검식(天魔三劍式)

3식. 공역무현도(空域繆現道)

최종극의. 삼절합일(三絶合一) 일원정극검의(一元靜極劍意)

고오오오오!

유태진은 보는 즉시 태무환의 마지막 한수에 담긴 이치를 읽어냈다.

저것은 우주의 시공간 자체를 검의 형태로 응축시켜 대단위 차원파괴를 행사하는 차원상전이검의 일종.

그 위력은 수십 수백의 성계를 통째로 날려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지간한 수로는 어림도 없겠지. 그렇다면···.’

그의 뇌리로 수많은 무공과 영능들이 명멸하듯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 태무환의 일검을 받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기에 단 한수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녹여내기로 했다.

이건 천룡무상검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가 지금까지 터득한 모든 무리의, 아니 모든 종류의 영능과 권능들의 총합이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심상의 형태가 명확해진 순간, 그가 쥔 엑스칼리버가 하나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 무형검도, 차원상전이검도 아니었지만 그 어떤 것보다 더 아름답고 무시무시한 검적(劍跡)을 우주공간에 새겨넣고 있었다.

최종식. 무극천라일절(無極天羅一切)

베고자 한다면 우주를 가르고, 하늘의 섭리마저 끊어낸다는 일검.

태양보다도 더 눈부신 궤적은 칠흑빛 검을 쪼개고, 태무환을 베었으며, 저 너머의 우주마저 갈랐다.

* * *

잠시 뒤, 우주는 다시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거대한 칠흑빛 검은 물론, 우주를 베어나가던 궤적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굳어진 안색을 하고 있던 태무환이 입을 떼며 물었다.

[대체 그 일검은··· 뭐지? 그건 분명 무공이랄 수 없는 한수였는데···.]

“내 모든 것을 담았다. 무공은 물론 마법을 비롯해서 내가 보고 경험하고 배운 수많은 영능들과, 내가 다룰 수 있는 모든 권능을 그 한 수에 담아냈지.”

[···정말이지 터무니없군. 만류귀종도 어느 정도지, 그런 터무니없는 게 가능하다고?]

솔직한 그 대답에 태무환이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는 곧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어쨌든 결국 이렇게 되었군. 오랜 기다림의 종국은 내 패배였던가.]

그랬다. 둘이 동시에 내놓은 마지막 승부수에서 패한 것은 바로 태무환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태무환의 손끝과 발끝부터 조금씩 먼지마냥 부스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내 패배도 결국 필정이었을 터.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

패배에 순응하겠다는 그 말에, 유태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집착해 싸우자고 덤벼드나?”

[하하하! 단지 후회 없는 싸움을 하고 싶었다. 전생에 다 하지 못했던 너와의 승부를 말이야. 아무튼 더 이상은 여한이 없게 되었어.]

물론 결국 이렇게 패하고 말았지만, 전생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승부에 종지부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할 수 있었다.

점점 부스러지기 시작한 태무환의 육신은 어느새 상체만 남게 되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더 이상 네 녀석과 다시 볼 일은 없겠지.]

“그래.”

유태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태무환은 그룬베일의 화신이었다. 그룬베일에게서 비롯된 개체인 만큼, 오늘 이렇게 소멸하고 나면 그 이후에도 과연 화신이란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무래도 없어질 가능성이 높겠지.’

태무환은 그룬베일의 뜻을 거스르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 때문에 유니버셜 테라 코어를 점령하겠다는 오랜 숙원마저 무너진 만큼, 태무환을 온전히 부활시킬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그래서일까. 유태진도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처음부터 적으로 만난 사이였고, 중원에서 수많은 피를 뿌렸으며, 개인적으론 스승의 원수이기도 했지만 그는 유태진의 유일한 숙적이었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약간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일까? 태무환이 조금 멋쩍은 듯 먼저 말을 걸어왔다.

[조금 염치없는 소리다만 네게 부탁할 게 있다.]

“부탁?”

[그래, 내가 남겨둔 것들이 있어서 말이야. 부탁할 게 너 밖에는 없군.]

유태진은 그게 좀 뜻밖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는 그가 건네는 몇 마디 부탁을 받아들였다.

[이제 슬슬 떠날 때가 되었군. 패자는 이만 사라져야 할 시간이야.]

부탁의 말을 끝마친 태무환이 흐린 눈으로 우주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의 육신은 다 부스러져 형체도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이 말만 더 하고 가지.]

그가 간신히 입술을 뗐다.

[···너와의 마지막 승부··· 꽤 즐거웠다.]

그 말을 남긴 태무환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어진 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유태진은 잠시 뒤에야 조용히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래, 잘 가라. 태무환.”

이걸로 모든 전쟁이 마무리되었다. 태무환은 자신의 손에 소멸했고, 반신들과 아군 함대에 둘러싸였던 신좌들도 결국 패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지구를 위협할만한 요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이제 돌아갈까?”

유태진은 태무환이 소멸한 자리를 등진 채 지구로 향했다. 이제 전투를 마친 아군과 일행들이 그를 반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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