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
17권-42화
변화는 그 즉시 찾아왔다. 마음먹는 순간 유태진이 아는 수많은 술식들이 유태진의 전신에 깃들고, 그가 불러낸 각종 속성의 정령들이 켜켜이 내려앉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초상능력을 시작으로 그가 아는 수많은 영능들이 일제히 발동되어 그의 본신 역량을 큰 폭으로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렇군. 그게 네 전심전력이라는 거냐?]
태무환은 유태진이 갖가지 영능을 다루는 모습에서 오랜 옛 모습을 떠올렸다.
중원무림 시절에도 그랬었다. 천화운은 중원의 대다수 영능들을 망라했으며, 점창의 무공을 그 중심에 두되 다른 문파의 무공이나 술식을 다루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무를 겨루는 상황에서도 무공 외의 능력을 사용하는 걸 조금도 거리껴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유태진의 힘은 거의 상위신에 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좋다. 그렇다면 나도 전력을 다하지!]
쿠구구구구구!
그가 천마신공을 끌어올리자 불길처럼 타오르는 기세가 우주를 뒤덮을 듯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어둠을 지배하고 공간을 제어한다는 하늘에 닿은 무의 극의, 천마신공의 무상천마강((無上天魔罡))
그것이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올곧게 내지르는 일로의 권격! 그것은 가히 완벽한 투로로 전개되었다.
투우우웅!
그 순간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 일대의 우주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왜곡된 공간 자체가 무수한 권영의 형태로 유태진을 향해 전방위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마파천권의 일식인 삼라무극일정(森羅無極日精)이었다.
한 번의 주먹질로 공간을 준동시켜 권영으로 쏟아낸다는 실로 놀라운 수법이었지만, 이를 맞받는 유태진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고오오오오!
상하좌우 할 것 없이 전 방위에서 밀려드는 공간공격! 피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유태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냉정한 눈으로 이를 직시하면서 텅 빈 허공에 일로의 검격으로 긴 궤적을 남길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낳은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생겨난 궤적이 순식간에 수십 수백만, 아니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수준으로 분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2식. 천룡쇄공조(天龍碎空爪)
비의. 일절대라검인(一切大羅劍印)
한 번 휘두름으로 무려 팔만사천 가닥의 예기가 모든 방위를 점거하며 나타난다는 천룡쇄공조의 비의 일절대라검인.
이젠 그 한계마저 뛰어넘은 일절대라검인의 수는 유태진이 마음먹는 한 거의 무한대에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권영 형태로 왜곡된 공간은 베어지고 또 베어졌다. 그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대형 전함조차 단번에 짓이겨버릴 수 있는 막대한 수준이었지만, 유태진에게는 어느 하나 대단할 것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끝없이 베어지던 권격은 어느새 사라지고 유태진과 태무환 단 둘만이 남았다.
[하하하! 역시 이 일수를 받아내는 건 오로지 네 녀석뿐이구나.]
자신의 공세가 깨끗이 상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태무환은 유쾌하기만 했다. 그는 오랫동안 이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쏟아지는 천마신공의 정화!
일보에 공간을 단축하고, 이 보에 공간을 축적해 압축하며, 삼보에 시공간마저 왜곡시킨다. 그렇게 축적해 쌓아올린 힘으로 그는 우주를 뒤흔드는 막강한 공세를 펼쳐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
유태진도 그에 맞서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들을 동원했다. 9클래스를 뛰어넘는 상위의 마법이 쏟아지고, 궁극의 주술이 펼쳐졌으며, 무형검을 넘어서는 힘이 검격에 실렸다.
제아무리 상위신 급의 힘을 가진 태무환이라 해도 그 앞에선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 그들이 격돌할 때마다 우주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살을 앓았다.
이미 이 일대 주변은 엉망이었다. 그나마 태양계를 차원전환결계로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격돌에 휘말려 이미 성계 째로 소멸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영역의 싸움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누구도 이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오히려 끼어드는 것 자체가 방해일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결판이 안 나겠군.]
싸움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태무환이 본격적으로 권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어둠과 그림자를 지배하는 그룬베일의 권능이 그에 의해 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맞서 유태진도 자신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화아아악!
그것은 찬란하기까지 한 빛이었다. 태무환과 달리 생명이 넘치는 성스러운 빛! 그것은 바로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의 권능이었다.
[그럴 리가! 어떻게 네가 이 힘을!?]
눈앞에 펼쳐진 광경 앞에 태무환이 경악에 잠겼다. 지금 유태진을 중심으로 번져 나오는 저 빛의 실체를 그가 몰라볼 리가 없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하급 신 이상의 모든 신들은 각자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의 권능을 갖는다. 그것은 결코 변치 않는 우주의 섭리로서, 어느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런데 지금 유태진이 그런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어둠을 살라먹던 빛은 곧 푸른 청염이 되었다. 그것은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서로 상극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음과 양, 크게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일종의 엔트로피 법칙을 다스리는 그 힘은 태무환의 어둠마저 찬란한 빛으로 전환시켰다.
점차 줄어드는 어둠의 권능에 태무환이 또 한 번 경악하면서 물러섰다.
[크··· 이건 분명 청염의 마왕 카르테인이 가진 권능인데···.]
그가 모를 리 없는 권능이었다. 상위신 중에서도 강력한 축에 드는 마왕 카르테인의 권능은 그도 경시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힘이 지금 유태진의 손에서 사역되고 있다니,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유태진이 입을 열었다.
“아직도 모르겠나?”
청염의 권능을 담은 그의 일검이 어둠을 갈랐다. 태무환을 겹겹이 감싸고 있던 어둠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초월자가 되어 얻은 나의 신명은 만능신! 그 의미를 헤아린다면 간단하지.”
[만능신, 그렇다면 설마···!?]
비로소 뭔가 직감한 태무환이 놀라 반응하자, 유태진이 더욱 공세를 강화하면서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 만능이라 함은 단순히 수많은 영능을 아우른다는 게 아니야. 만능의 의미가 그게 전부라면 초월자들 중에서 그런 자들은 이미 적지 않지.”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를 읽고 사용할 수 있는 초월자들 중에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영능을 구사하는 자도 적지 않다.
만류귀종이란 말이 있듯, 정령술로 초월자가 된 자들도 마법을 다루거나 혹은 무예를 사용하는 자들도 적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단순히 많은 영능을 다룬다고 해서 만능신이라 불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만능신의 의미는 뭘까?
바로 지금 같이 신의 영역에 도달한 자들이 갖는 고유의 권능을 전부 다룰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것이 설령 타인이 소유하고 있는 전문 분야의 권능이라 할지라도, 유태진은 전부 자신의 것 마냥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야 알겠지? 내가 가진 권능의 정체가 무엇인지.”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태무환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춰서버렸다.
이건 단순히 마법이나 술법에 의한 시간정지가 아니었다. 권능 그 자체로 구현된 시간동결이었다.
[이···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그의 영언이 띄엄띄엄 끊어져서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상위신인 태무환조차도 유태진의 시간동결을 단숨에 깨부수지 못했다. 마법이나 술법에 의한 거라면 어떻게든 술식의 허점을 파헤쳐서 해제했을 테지만, 순수한 권능의 대결로 가면 그런 방법은 전혀 소용없었다.
물론 만능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그렇게 모사한 권능은 원본에 비해 자연스럽게 열화 될 수밖에 없으며, 특히 그의 역량보다 높은 신의 권능은 완전히 흉내 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렇지만 그 대신 유태진은 다양한 권능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것도 가능했다. 단순히 시간동결 뿐만 아니라, 엔트로피 법칙을 정지시키고, 공간을 압축시켜 태무환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유태진이 권능의 수준 자체만을 본다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중상위 신이었고, 그가 다루는 권능은 결국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니까.
제아무리 상위신이나 최상위신의 권능을 모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원본에 비해 열화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다수의 권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그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었다. 상위신인 태무환이 중상위 신인 유태진에 의해 이런 위기에 몰린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하지만 태무환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자가 아니었다. 시간이 동결된 영역 안에 갇힌 상태에서도 이를 벗어나기 위해 여력을 집중시켰다.
우우우우우!
막강한 힘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우주의 기운을 다스렸고, 곧 거대한 현상을 일으켰다. 우주에 가득 찬 어둠이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유태진은 그 원리를 바로 알아챘다.
“단순히 권능만 일으킨 게 아니라 묵룡탈혼수와 융합한 건가?”
콰지직!
준동하는 어둠에 의해 얼어붙은 공간이 무너지고, 동결되었던 시간이 풀려나기 시작했다. 그만큼 태무환이 전력으로 발휘하는 어둠의 힘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최상위 신에 준하는 수준. 본연의 권능에 묵룡탈혼수의 공능이 더해지면서 그만큼 강력해진 것이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태무환의 총체적인 역량이 가히 끝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명백했기에, 유태진은 경각심을 돋웠다.
“···그렇군. 그룬베일이 직접 간섭하기 시작했어.”
그런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태무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 나도 본신의 개입을 원치는 않지만, 그룬베일도 더 이상은 열세를 용납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랬다. 지금까지는 화신인 태무환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 손 놓고 있었지만, 그룬베일도 마냥 참고 있을 순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어가자 결국 인내심이 다해 적극 지원에 나선 것이다.
물론 그만큼 단점도 적지 않았다. 기껏 금기의 의식까지 치러가면서 강림한 태무환의 물질계 활동기간이 크게 단축된다는 점이었다.
평범하게 활동했다면 적어도 천년 이상 머무르는 게 가능했을 테지만, 이렇게 그룬베일의 본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기간도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속사정을 유태진도 단번에 꿰뚫어보았다.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거지?”
[···역시 알아챘구나.]
묻는 그 말에 태무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를 읽을 수 있게 된 유태진에게 더 이상 정보를 감출 수 없게 되어서였다.
[정해진 건 없지만 적어도 수십 년 단위까지 줄어들지도 모르겠군. 싸울수록 그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고.]
오랫동안 준비해온 안배의 결과물이 이런 식으로 소모되는 건 결코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만한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유니버셜 테라 코어는 반드시 확보할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 승부, 아쉽지만 좀 더 서두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