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41화 (442/448)

#441

17권-40화

아마페레오스의 비장의 한수인 축퇴포에 의해 인베이더 전력을 말 그대로 붕괴해 버렸다. 함대는 8할 이상이 그 자리에서 소멸해 버렸고, 다섯 기의 에메랄드 헤븐도 극심한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본디 에메랄드 헤븐은 각 행성에 빼곡하게 자라난 세계수들의 능력을 기반으로 완성된 지원전략행성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수들이 초토화 되고, 행성의 지표면 대부분이 날아간 상황이라면 더 이상 제대로 된 공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에메랄드 헤븐까지 무력화되자 인베이더의 전력은 더욱 급감했다. 특히 그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왔던 신좌들의 힘은 크게 저하된 상황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고작 이따위 놈들에게 우리가 몰리는가!]

[에메랄드 헤븐과 함대를 망실했다고 우릴 우습게 여기는 거냐?]

신좌들은 다시 맹공을 가해오는 베네트 국장을 위시한 반신급 초월자와 그랜드 급 강자들의 모습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나게 하는 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손 놓고 방관하고 있는 태무환의 태도였다.

베네트 국장의 절현금을 역장결계를 펼쳐 가까스로 방어한 모르스가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태무환을 믿을 수 없다. 놈을 배제하고 우리 손으로 계획을 달성하는 수밖에. 보유한 간섭력을 다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기회, 결코 놓칠 수 없다.]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좋아. 나도 찬성이다. 애당초 그런 독자적인 자아를 가진 화신 따위를 믿는 게 아니었다.]

카룬다임은 작게 한탄하였고, 오르쿤은 태무환에 대해 분개하며 주먹을 거머쥐었다.

무려 천오백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영영 다시 시도하지 못할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들은 본신의 역량을 전부 끌어내기 시작했다. 강림 상태로 본신의 힘을 발휘한다는 건 막대한 간섭력을 필요로 했지만, 그들은 그 모든 손해를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이번 기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그들의 생각을 알아챈 베네트 국장이 모두에게 경고를 날렸다.

“다들 긴장해라.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이다. 놈들도 진심인 게야.”

베네트 국장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다들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급격히 부풀어가는 거대한 존재감. 징벌자의 저울과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가 확실히 작용하고 있는데도 미처 억누르지 못하는 기세가 이 일대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신좌들의 격을 가늠해본 베네트 국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적어도 하급신 수준은 되겠군. 권능만큼은 내가 어떻게든 억누를 테지만, 그 이상은 어려울 것 같다.”

“그렇군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안 그래도 무지막지하게 강한 저 작자들이 권능까지 맘대로 휘둘렀다면 정말 대책도 없었겠죠.”

더더욱 팽배하게 부풀어 오르는 신좌들의 존재감을 체감하면서도 괜한 너스레를 떠는 연정운. 그렇지만 하는 말과 달리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제 다 떠들었느냐?]

차갑게 가라앉은 모르스가의 영언. 그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그래. 네놈들의 분전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손해가 막심하군. 그런 만큼 그 대가를 톡톡히 치워줘야겠다.]

“으윽!”

누군가가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

지금까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좀 전까지 어느 정도 여유가 엿보였다고 하면, 지금은 살기등등한 것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세가 느껴지고 있었다.

[죽어라. 하찮은 버러지들아.]

죽음을 선고하는 권능언령이 또 한 번 그들을 덮쳐왔다. 필멸자라면 결코 견딜 수 없는 인과의 성립이었지만, 베네트 국장은 그대로 받아쳤다.

“어디서 허튼 수작을!”

슈각!

뭔가가 공간을 가른다 싶은 순간, 징벌자의 저울의 힘을 담아낸 절현광이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권능언령을 완벽히 상쇄시켰다. 물론 그만큼 베네트 국장이 갖는 부담도 적지 않겠지만, 신의 권능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 그 정도 발버둥은 칠 줄 아는 모양이군.]

하지만 모르스가는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베네트 국장의 역량을 측량하기 위한 한수.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 버티겠느냐?]

화아아악!

사방에서 무시무시한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수십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오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9클래스 급 초월마법, 프로미넌스(Prominence).

8클래스의 헬파이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마음먹기에 따라선 물리법칙의 상리마저 아득히 초월하는 화염계 마법이었다.

단지 구현된 것만으로도 이 일대의 우주공간이 후끈할 정도로 달아올랐다.

[젠장, 모두 방어에 집중해! AT필드!]

로베르트 슈마허가 다급히 외치며 방어에 나섰다. 그러자 그 뒤를 이어 다른 강자들도 허겁지겁 각자 자신 있는 방어수단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포스 필드!”

“카오스 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우주에서도 이름을 떨친 강자들. 그들이 일제히 펼친 방어수법은 결코 가벼이 여길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미넌스의 열기가 직접 닿는 순간, 그 모든 게 가볍게 불살라지고 말았다.

“이런 미친!”

“준대형 전함의 풀 차지 주포도 막아내는 내 방어가!?”

프로미넌스는 단순한 불길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화염마법은 방어역장의 에너지 자체를 불길로 태우는 형태로 압박해 오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그들이 전개한 방어라는 개념 자체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역시 초월자란 말인가?]

[어쩔 수 없지. 우리가 대응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드래곤들이 대응에 나섰다. 지금까지는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의 유지를 위해 최대한 힘을 아껴왔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었다.

휘오오오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절대영도의 냉기가 이 일대에 강림했다.

마찬가지로 9클래스 초월마법 중 하나인 엡솔루텐스 제로 포인트(Absoluteness Zero Point).

그것은 프로미넌스의 불길을 단숨에 진압해나갔다.

하지만 간단하게 막아낸 것 같아도 결코 쉬웠던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드래곤들 모두가 같은 마법을 구사해 저 막강한 불길을 간신히 막아낸 것이니까.

그것만 봐도 모르스가가 얼마나 막강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흠, 막아 냈나. 첫 여흥치고는 훌륭하구나.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좀 실망스럽지.]

그토록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고도 대수롭지도 않다는 표정을 짓는 모르스가. 그가 곧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띄웠다.

[권능 따윈 아무래도 좋다. 그런 거에 의존하지 않아도 너희 버러지들과 우리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네놈들에게 진정한 신위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직접 알려주도록 하마.]

신좌들의 절대적인 능력 앞에 모두의 전의가 꺾여나갔다. 베네트 국장에 의해 권능과 격이 일정부분 봉쇄된 상태에서도 이런 신위라니!

하물며 모르스가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인데, 카룬다임과 오르쿤까지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면 얼마나 더 절망적인 결과가 펼쳐질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고오오오오오!

순식간에 막대한 영력이 집중되었다. 모르스가가 자신의 석장을 살짝 들어 올린 순간, 이 일대 우주에 가득 찬 기운이 저절로 그의 뜻에 따라 몰려들면서 고차원적인 술식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발동될 것 같았던 모르스가의 마법은 펼쳐지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낮은 신음성을 터뜨리며 뭔가에 놀란 듯 자신의 마법을 저도 모르게 흩어버린 것이다.

[음!?]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온 거대한 울림이 먼 우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거의 진공이나 다름없는 먼 우주공간으로 널리 퍼져나가질 못했을 테니까.

이건 분명 영적 파동! 상상을 초월하는 격에서 비롯된 파장이 이렇듯 먼 곳까지 전달된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를 되찾았던 신좌들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신격의 탄생이라고?]

[이 무슨!?]

그랬다. 이건 단순한 영적 울림이 아니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신격이 새롭게 탄생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영적 파동이었다.

[그럴 리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모르스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신음하고 말았다.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현재 상황을 읽어 들인 정보는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이 안 될 건 또 뭐지? 내가 신격을 획득한 게 그렇게 이상한가?”

대체 언제 나타난 것일까? 그들의 머리 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푸른빛과 황금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화려한 검을 쥔 그는 다름 아닌 유태진이었다.

아리엔이 그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 외쳤다.

“앗, 스승님!”

그러자 다른 이들도 그제야 유태진은 알아보았다.

“정말 유태진이잖아.”

“아슬아슬하게 왔군. 이제야 다 끝난 건가?”

“그런데 말이야. 뭔가 예전과 분위기가 다른데?”

천외오천을 비롯한 여러 강자들은 유태진에게서 느껴지는 낮선 느낌에 약간 당황했다. 그가 엑스칼리버를 부활하느라 늦는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등장한 유태진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위화감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르스가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네놈이 완성된 초월자가 되었다니. 심지어 그것도 중위신이라고!?]

실로 놀랍고도 경악스러웠다. 반신이 하급신에 올라서는 건 그만한 계기만 만난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단숨에 중위신 수준까지 치고 올라가는 건 우주 전체를 통틀어 봐도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거의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적으로 맞닥뜨리게 된 유태진이 그 중 하나라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카룬다임이 기가 막힌다는 듯 내뱉었다.

[최악의 경우 엑스칼리버가 부활할지도 모른다고 가정은 했지만··· 이건 그보다 더 최악이군. 설마 네놈이 신격을 획득할 줄은 정말 몰랐다.]

“운이 좋았지. 날 돕는 여러 요소들도 있었고.”

그냥 운이 좋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결코 운이라 할 수 없었다. 전생인 아서 시절부터 쌓아온 막대한 업에, 지난 1000년 간 윤회전생을 거치면서 깨달은 것들이 하나로 융화되면서 그는 지금의 완성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루네리아나 멀린 등 여러 친인들의 도움도 적진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그가 쌓아온 업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구!

유태진을 중심으로 막강한 존재감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군은 전혀 압박하지 않으면서 신좌들과 아직 남아 있는 인베이더의 잔존 병력만 선별적으로 짓누르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냥 중위신이 아니다. 이건 중상급 중에서도 끝자락에 다다른 수준 아닌가!’

‘진짜 운명의 장난이군. 이 정도면 우리 본신이 온다 해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빌어먹을!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그룬베일의 화신 놈은 대체 뭘 하는 거지?’

신좌들은 눈앞에 닥친 작금의 사태에 기가 막혔다. 오랜 세월동안 축적해온 간섭력까지 대부분 털어 넣은 끝에 간신히 얻은 기회였다. 그런데 그 기회가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가로막힐 위기에 놓인 것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태무환의 방관이었다. 그가 진작 나섰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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