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40화 (441/448)

#440

17권-39화

[가만두지 않겠다!]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한 카룬다임이 굳은 표정으로 군세를 일으켰다. 군세의 수는 여전히 변함없었지만, 그 질이 전혀 달라진 것이다.

이 정도면 각 개체가 거의 마이스터 상위 수준에 버금갔다.

그렇지만 그만큼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베네트 국장은 카룬다임의 군세가 가진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대단하긴 하군. 하지만 카룬다임, 당신이 신좌라 해도 불완전한 강림 상태론 이만한 힘을 계속 사용하긴 버거울 텐데.”

[······.]

“무슨 의도인지는 대충 알 것 같군. 당신이 우릴 이 자리에 묶어놓고, 나머지 둘은 에메랄드 오딧세이와 아마페레오스를 제거할 생각인가 보지?”

[그렇다. 저것들만 없어지면 네놈들을 제거하는 건 아주 간단하지. 베네트 네 녀석 덕분에 주변의 떨거지들도 꽤 분전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만··· 그것도 저 에메랄드 헤븐만 없어지면 그런 발버둥도 소용없게 될 거다.]

신좌들의 판단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그들의 의도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베네트 국장의 얼굴에 서린 여유는 변치 않았다.

“소용없다고?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아니? 지금 네놈들이 무슨 짓을!?]

그제야 여신 윌키아가 손써둔 아카식 레코드의 열람 제한이 해제된 걸까? 카룬다임이 돌연 화들짝 놀라 반응을 보였다.

“이미 늦었어. 태양이 떠오른 순간부터 이 전쟁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베네트 국장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들의 눈앞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아마페레오스의 천체창조는 단순히 막대한 크기의 질량과 열기를 가진 태양을 구현시켜 적들에게 타격을 주는 기술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아마페레오스가 가진 최강의 무기를 발동하기 위한 일종의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의 구현으로 적들이 피해를 입은 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결과물이었다.

리스티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 페이즈로 넘어간다. 천체압축고정 시작.”

그러자 명령을 받아들인 알렉시안의 말이 이어졌다.

[예. 시행합니다. 고차차원 질량 축퇴 시퀸스 스타트!]

그 순간 무시무시한 힘이 이 일대의 공간을 지배했다. 그것은 압도적이라 할 만큼 초고밀도 중력에 의한 압력이었다.

그리고 곧 무언가 으스러지고 짓이겨지는 듯한 굉음이 우주 공간으로 울려 퍼졌다.

콰득! 콰드드드드득!

천체창조에 의해 형성된 거대한 태양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태양이 막대한 압력에 의해 짓눌려 수축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행성이 순식간에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중력붕괴를 일으켜 백색외성에 다다르는 것 같았다.

[초밀도중력자차원압축식 반발 제어.]

순식간에 작아진 태양이 어느새 단 한 점으로 수렴되어 작은 구체가 되었다. 이건 불길한 형태로 빛나는 파멸의 탄환.

그것은 곧 아마페레오스를 중심으로 다중 전개된 중력자 왜곡 링이 터널 형태로 늘어선 가장 최상단에 세워졌다.

[차원반발식 중력자 왜곡 링 터널 전개!]

[중력굴절에 의한 타깃팅 오차 보정.]

차원반발식 중력자 왜곡 링은 어디까지나 탄환의 이동을 제어하고 가속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일건의 전자반발식 레일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단지 이것은 태양을 축퇴시킨 탄환을 제어할 만큼 압도적으로 강력하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디 한번 받아봐! 이건 내 복수이자 분노 그 자체니까!”

리스티는 사무치는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외쳤다.

“천체차원압축식축퇴가속포(天體次元壓縮式縮退加速砲), 발사!”

발사를 알리는 그녀의 외침과 함께, 중력자 왜곡 링의 궤도를 따라 가속화 된 축퇴의 탄환이 시공간을 꿰뚫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눈부시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한, 한 줄기 궤적! 그것은 그야말로 우주 그 자체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단지 쏘아진 것만으로도 축퇴의 탄환은 무시무시한 여파를 일으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양 정도의 막대한 질량을 아주 작아질 때까지 축퇴시켜 차원반발식 가속으로 쏘아내었으니, 그것이 사방에 미치는 물리적인 여파가 상상을 초월한 것도 당연했다.

그 결과 인베이더 함대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중형 전함들은 직격은커녕 단지 그 근처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터져나갔으며, 어지간한 충격 따윈 배리어로 차단할 수 있는 준대형 전함마저도 중파 혹은 대파를 일으켰다.

그나마 대형 전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냈지만, 문제는 축퇴포의 진정한 위력은 바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거였다.

방금 그건 어디까지나 축퇴상태의 탄환을 쏘아낸 결과일 뿐, 탄환의 기폭에 의한 파괴현상은 바로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악!

인베이더 함대의 정 중앙에 다다른 축퇴의 탄환이 거대한 반발과 함께 눈부신 빛으로 화하여 터져나갔다.

이것이 바로 초신성 폭발!

은하를 구성하는 수천억개의 별이 발하는 모든 빛의 총량과 맞먹는 밝기로 터져나간다는 별의 종말현상이었다.

[추···축퇴포라고!?]

[이런 미친!]

신좌들조차 지금의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초신성 현상을 재현하는 축퇴포는 그들의 상정한 바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이건 불완전하게 강림한 그들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단지 물리적인 현상뿐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마페레오스는 전함이면서 초월자에 준하는 신성을 가진 초월신함.

그들에 버금가는 신성에 의한 파괴현상은 어지간해서는 결코 되돌릴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모든 것이 빛 속에서 쓸려나갔다. 제아무리 우주에서 주름잡는 인베이더의 대함대라 해도 이런 우주적인 재앙 앞에선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나마 이 작전에 대해 사전에 고지 받았던 공화국과 연합 함대는 파괴 반경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배리어를 최대 수치로 올려둔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홀로그램 모니터의 광량 처리량이 폭주합니다.]

[으윽! 3차 배리어 붕괴! 제네레이처 출력 오버 플로!]

초신성 폭발에 의한 충격과 거기서 발생하는 막대한 감마선 폭풍! 그것은 거대한 성계 하나를 쓸고도 남음이 있었다.

만일 지구의 태양계를 차원전환결계로 덮지 않았더라면 태양계까지 전부 쓸려나갔을지도 모른다.

“아, 안 돼! 이렇게 놔둘 순 없어!”

모든 것을 사멸시키는 초신성 폭발을 목도한 리겔이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단지 눈앞으로 다가온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온 것이 무너지는 게 두려워서였다.

여기서 인베이더의 함대가 전멸하는 일은 절대 막아야 한다. 함대가 전멸하게 되면 유니버셜 테라 코어를 점령하여 현재의 불완전한 우주를 지우고 완전한 형태로 재탄생시킨다는 그룬베일의 숭고한 계획을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디멘션 쿼츠는 전부 바닥난 상황.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리겔은 남은 힘을 전부 쥐어짜다 못해 자신의 생명마저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공간왜곡이 발생하였다.

안 그래도 그 누구보다 탁월한 공간제어능력을 가진 리겔이었다. 그가 선천지기마저 불태워가며 능력을 발휘하자, 단독으로 차원결계가 전개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차원과 차원을 격리하는 차원전환결계가 펼쳐지면서 인베이더 함대를 유린하던 초신성 폭발의 여파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은 차원전환결계의 구축률이 낮아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구축률이 높아질수록 해결될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견디면 돼! 그러면 함대의 절반은 건질 수 있어!’

리겔은 피를 토하면서 남은 힘을, 남은 생명을 전부 쥐어짜냈다. 이대로라면 아슬아슬하게 차원전환결계로 함대를, 그리고 에메랄드 헤븐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축퇴포에 의한 초신성 폭발은 시작에 불과했다. 막대한 질량을 가진 초신성의 중력붕괴 현상 이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블랙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안 돼! 이렇게는···!”

쿠구구구구구!

초신성의 빛 속에서 탄생한 거대한 칠흑빛 공허! 그것이 모든 것을 붕괴시키고 집어삼켰다.

그 어떤 것도 이 앞에선 견딜 수 없었다. 태양을 중력붕괴시켜 발생한 블랙홀의 조석력(潮汐力)에 의해, 사상의 지평선-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에 닿은 모든 것은 산산이 분해되어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것은 불완전한 차원전환결계 또한 마찬가지. 리겔이 목숨을 걸고 구축한 차원전환결계는 얇은 유리창처럼 박살나 소멸되었고, 인베이더 함대와 다섯 기의 에메랄드 헤븐은 고스란히 블랙홀 앞에 노출되어야 했다.

“아아아아아아아!”

리겔이 절망에 몸부림쳤다. 그나마 그의 육신은 차원전환결계를 구축하던 중 충격을 상쇄하는 여파 때문에 멀리 튕겨져 나가버렸지만, 그 결과 자신의 눈으로 인베이더 함대와 에메랄드 헤븐이 거대한 블랙홀에 삼켜져 붕괴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쿨럭··· 이걸로 끝이라고? 고작 이걸로!?”

인생의 모든 것을 건 목표가 무너지는 광경에 그는 기가 막혀 중얼거렸다. 이젠 아무런 희망도 분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허망할 뿐이었다.

물론 그룬베일의 화신인 태무환과 세 명의 신좌는 아직 건재한 상태지만, 그들을 뒷받침해줄 함대가 소멸한 이상 계획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에메랄드 헤븐이 보조해주지 않는 이상 신좌들은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불완전한 상태였고, 태무환은 무슨 생각인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렇기에 리겔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때 먼 우주로 한없이 날려져가던 그의 몸을 누군가가 붙들었다. 리겔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 리클이 있었다.

“리클··· 네가 어떻게···?”

“···형.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거야? 이번엔 생명력까지 불태웠어. 그렇게까지 해서 꼭 우주를 멸망시키고 싶은 거야?”

그렇게 묻는 리클의 얼굴은 한없이 복잡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슬퍼 보이기도 했고, 혹은 그를 비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리겔은 그런 동생의 표정에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었다.

“리클, 넌 이런 우주가 마음에 드냐?”

“······.”

“난 너무도 싫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 않은 이 세상도, 그리고 질시와 욕망 때문에 타인을 상처 입히길 주저 않는 이 불완전한 인간들도···. 저열하기까지 한 온갖 군상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지.”

자신의 깊은 심정을 솔직히 토로하는 리겔의 모습에 리클은 비난하듯 내뱉었다.

“알아,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이런 짓을 한다고 해서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이건 그냥 무분별한 폭주일 뿐이라고!”

“그래, 알고 있어. 이런 짓을 해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원래대로 되돌 릴 수 없겠지.”

그랬다. 리겔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룬베일의 목적에 감화되어 움직였다고 했지만, 그것이 그다지 실현 가망이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을 충실이 따라 움직였던 건, 이 세상에 대한 증오를 확실히 풀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우주의 멸망. 그것이 그룬베일을 통해서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해보여서였다.

그렇지만 그 결과, 리겔 자신은 이런 최후에 닿고 말았다. 갈망하던 우주의 멸망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결국 전부 덧없는 짓이었나?”

“형!”

자책하는 듯한 그 말에 리클이 다급히 그를 불렀지만, 이미 리겔의 숨은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리클··· 정말 미안했다. 널 혼자 내버려둔 것만큼은 정말로··· 정말 미안···.”

그리고는 마지막 사죄의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그는 완전히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인베이더 함대를 지키기 위해 남은 생명력까지 불태운 결과였다.

“젠장, 왜 이런 식으로 가버리는 거야! 왜! 나한테 고작 이렇게 죽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런 짓을 해온 거야!?”

리클은 눈물을 쏟으며 악을 썼지만, 그런다고 해서 죽은 이가 다시 되살아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애써 슬픔을 억눌렀다. 넋 놓고 울고 있기엔 상황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리클은 리겔의 시신을 수습하며 중얼거렸다.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니. 난 형의 그런 뜻에 공감할 순 없어. 하지만 형을 잊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편히 잠들어.”

그는 세상에 상처 입은 형이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들과 조우해 저 세상에서나마 평안을 되찾길 바라면서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이제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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