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34화 (435/448)

#434

17권-33화

그 사실을 인지한 루클라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가소롭구나! 인과성립을 봉쇄한다고 해서 우리와의 역량 차이가 메워질 거라 생각한 거냐?]

이를 기점으로 루클라의 기세가 더욱 폭발적으로 증대되었다.

애당초 그의 목표는 유태진이었다. 헌데 엉뚱한 녀석들이 나타나 발목을 붙잡고 있으니 거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손을 펼친 순간, 은백색의 거대한 영력이 응집되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소행성 같았다.

쿠구구구!

“미친, 저만한 규모의 강기를 한순간에?”

레이첸이 질린 표정으로 즉각 대응에 나섰다. 저 정도면 준대형 급 전함의 주포를 훨씬 웃도는 수준 아닌가!

하지만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자들 중 이를 두려워하는 자는 없었다. 제아무리 반신 급 초월자이라 해도 절대적인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베네트 국장은 저들의 역량을 대략 가늠하고 있었다.

‘반신의 영역에 닿은 지 얼마 되지 않았군. 그렇다면···!’

반신 급이라 해도 다 같은 반신 급이 아니다. 이제 겨우 초입에 불과한 수준이라면 인과성립만 막아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다.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강기의 구체를 향해 레이첸이 손을 뻗었다.

패천권(覇天拳)

음양화운격(陰陽化運擊)

두 손을 따라 허공에 그려지는 둥근 역장. 그것은 음양상생의 이치를 따라 인력과 척력을 발생시키면서 관성을 뒤틀고, 에너지의 방향성마저 반전시키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었다.

[뭣이!?]

루클라가 깜짝 놀라 반응했다.

방금 자신이 펼친 공격은 어지간한 함대도 일거에 쓸어버릴만한 힘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린 녀석의 손에 닿은 순간 갑자기 방향을 뒤틀어 되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힘의 방향성을 뒤튼 건가?]

[그런 단순한 수준이 아니다. 관성은 물론 에너지의 흐름까지 간섭했어.]

옆에 있던 카르발타와 데이모스가 그렇게 주고받으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들까지 루클라의 수법에 휘말리게 생겼다.

우우우웅!

카르발타가 쥔 칠흑빛 검신 위로 거대한 칠흑빛 기운이 맺혔다. 그것은 압도적인 크기로 성장해 나가더니 그대로 공간을 수직이등분하는 형태로 내리그어지며 은백색 구체를 양단했다.

그리고 쪼개져버린 은백색 구체는 곧 데이모스가 전개한 공간계열 마법 [나락의 붕괴]에 휘말려 그 자리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레이첸이 루클라의 공격을 되받아친 그 순간부터 이미 전투는 본격화 된 상태였다.

절현금(絶絃禁)

스아아악!

순간 보이지 않는 역장의 힘이 공간을 갈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베네트 국장의 비기인 절현금이었다.

절현금은 본디 [징벌자의 저울]에서 그 원리의 일부를 차용해 만들어진 비기.

사상의 이치에 간섭해서 강제력을 발휘하는 그 특성을 절삭과 봉인만으로 국한시켜 상대를 절단하거나 묶는 형태로 완성한 것이다.

이건 설령 반신 급 초월자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었다.

[피할 수밖에 없나?]

[성가시군.]

데이모스와 카르발타는 혀를 차며 절현금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루클라는 강기의 구체가 분쇄되면서 돌아온 반동을 해소하느라 미처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날아든 절현금의 힘이 그의 오른쪽 팔을 자르고 지나갔다.

[제기랄!]

물론 이 정도는 대수로울 것 없는 부상이었다. 반신 급 초월자의 육체는 피륙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영체로 완성된 원영신에 근간을 두고 있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복원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새가 없었다. 미처 팔을 재생시키기도 전에 천외오천들의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더냐? 자, 목을 내놓아라!]

마치 유부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용천군의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멸사기를 휘감은 그의 검이 공간을 뛰어넘듯 다가들었다.

명색이 그랜드 급 강자인 만큼, 심검의 영역에서 펼쳐진 그의 일격은 일순 광속마저 뛰어넘었다.

[건방진!]

루클라는 즉시 대응에 나섰다.

제아무리 오른팔이 잘린 상태라 하더라도 그는 반신급 초월자다. 일순간이나마 광속을 뛰어넘는 공격이 날아든다 해도 이를 대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잘려나간 오른팔 부위에서 솟구친 강기가 팔의 형태로 자라났다. 그리고 그것은 단단히 고정된 형태로 완성되더니 마치 실제 팔과 같은 움직임으로 용천군의 일격을 막아섰다.

콰아아앙!

성대한 충격과 함께 용천군이 뒤로 멀찌감치 밀려났다. 제아무리 천외오천이라 불리는 그라 하더라도 반신 급과의 역량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충돌로 더 큰 타격을 입은 건 뜻밖에도 루클라였다.

[큭 이건!?]

루클라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강기로 형성한 오른팔을 타고 오르는 칠흑빛 기운 때문이었다.

다시 태세를 가다듬은 용천군이 무겁게 내뱉었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정. 그러니 순응하라.]

이것이 바로 [종언의 세례]. 자신의 공격을 통해 극도로 압축된 멸사기를 상대방에게 새겨 넣는 것이었다.

멸사기는 죽음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 제아무리 반신 급 강자라 하더라도 여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좋을 게 없었다.

루클라의 잘려나간 오른팔의 복원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딴 잔재주를!]

물론 멸사기의 힘이 루클라에게 치명적이 건 아니지만, 그의 상대는 용천군 하나가 아니었다.

수속작열형, 카오스 이레이저(Chaos Eraser).

그 순간, 우주공간을 가로지르는 남보랏빛 벼락불이 루클라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지우는, 연정운의 성명절기나 다름없는 혼돈의 탄환!

제아무리 루클라라 해도 얕볼 수 없었다.

[크으!]

간신히 막아내긴 했지만 타격은 적지 않았다. 속성이 혼돈인 이상 자신의 격보다 낮은 공격이라 해도 이렇게 우직하게 방어만 해서는 좋지 못했다.

어느새 루클라는 포위되어 있었다. 그의 전면에는 용천군이 가로막고 있었고, 후방에서는 연정운이 총구를 겨누고 있었으며, 또 다른 천외오천인 사토 류지는 주변을 어지럽게 이동하면서 그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상황.

루클라는 순간 치욕감을 느꼈다. 고작 모탈에 불과한 놈들 때문에 반신의 격을 이룬 자신이 이런 꼴을 보였다는 사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감히!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가만 두지 않겠다.]

* * *

한편, 카르발타와 데이모스는 집요하게 덤벼드는 아리엔들의 공격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루클라의 공격이 되받아쳐진 이후 기습적인 공세에 휘말리면서 제법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확실히 까다롭군.]

[게다가 놀라워. 불과 몇 년 사이에 여기까지 성장했다고?]

라인트라 대전 당시만 하더라도 기껏 해봐야 마이스터 급에 불과했다. 헌데 몇 년 지나지도 않은 그 사이에 벌써 그랜드 급에 도달해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직접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믿지 못했을 만큼 경이적인 성장속도였다.

게다가 위협적이기도 했다. 그들이 반신 급에 올라섰다고는 하나, 그랜드 급의 강자는 결코 얕잡아 볼 수 없었다.

특히 빠르면서도 변화무쌍한 검리.

아리엔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검초의 흐름은 카르발타를 압도했다.

[그때의 어린 것이 이렇게까지 성장하다니. 그래, 확실히 검 솜씨만큼은 네게 더 낫군.]

카르발타는 아리엔의 역량을 순순히 인정했다. 경지는 그가 더 높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예에 대한 역량까지 더 높으리란 법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리엔이 더 유리한 건 아니었다. 카르발타의 격이 더 높은 만큼 그가 다룰 수 있는 힘의 규모나 전반적인 스펙은 가히 압도적이었으니까.

아리엔이 모든 힘을 쥐어짜 만든 일격을 가볍게 막아내고, 그녀가 아무리 빠른 쾌검을 전개해도 그 이상의 속도로 대응할 수 있는 게 바로 카르발타였다.

[내 분신이 네게 쓰러진 이후 무공에 대해 나름대로 참오해봤다. 하지만 역시 이 정도론 겉핥기뿐이었던 모양이군.]

‘역시 강해!’

아리엔은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은 가진 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데도, 상대방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틈틈이 공격을 퍼부어주는 베네트 국장의 조력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싸워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쓰아악!

또다시 전개된 절현금이 옆을 스쳐지나가자 카르발타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성가시군.]

절현금은 그 특성상 방어가 거의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제아무리 카르발타라 해도 이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필멸자.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다.

[이런 방법을 쓰고 싶진 않다만··· 어쩔 수 없지.]

우우우우!

무시무시한 기운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카르발타를 중심으로 이 일대 우주의 기운이 몰려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영력의 검이 되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수십 자루에 이르는.

그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전함보다 더 컸으니, 거기에 담긴 위력이 얼마나 강대할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마치 어둠 그 자체를 뭉쳐 만든 듯한 검림(劍林)의 구현에 아리엔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마어마한 기운의 응집! 이게 바로 반신 급 초월자의 힘이라는 거네.’

힘의 규모나 밀도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아리엔이 다루는 힘의 크게도 결코 작지 않았지만, 이미 원영신을 완성하여 주변의 기운을 뜻대로 장악해 휘두르는 카르발타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다.

레이첸과 베이노아 수상을 동시에 상대하던 데이모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레이첸은 상급신과 버금가거나 그 이상인 마왕 카르테인의 계약자. 레이첸의 역량 자체는 그랜드 급 초입 수준이지만, 실제 그가 다루는 힘의 크기나 위력은 상위 수준에 버금갈 정도였다.

게다가 베이노아 수상도 일반적인 그랜드 급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짜 드래곤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또한 용족으로 취급되는 드래고니안 일족. 그가 다루는 힘의 크기나 규모, 그리고 운용력은 사실 레이첸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힘을 합치니, 이제 갓 반신 급에 올라선 데이모스도 섣불리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베네트 국장의 징벌자의 저울이 작용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더더욱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결국 비장의 패를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드는군.]

그렇게 내뱉은 데이모스의 주변으로 우주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음차원계 네거티브 플레인의 현현이었다.

물론 그가 네거티브 플레인의 진정한 주인인 노 라이프 킹이나 인베이더의 신좌인 죽음의 왕 모르스가가 아닌 이상 온전한 개방은 어렵겠지만, 그 일부를 현계시키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끄그그그긋!

공간을 비틀면서 현세를 침식하기 시작한 음차원의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미처 헤아릴 수조차 없는 무수한 망자들의 실루엣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카르발타와 데이모스, 두 반신이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아리엔들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이렇듯 힘으로 밀어붙이겠다고 나온다면 결국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자신들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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