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30화 (431/448)

#430

17권-29화

‘아아!’

누락되어 있던 아서의 기억들이 하나로 꿰어 맞춰지면서 유태진의 의식이 크게 고양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유태진이 가졌던 기억들은 반쪽짜리였다. 아서는 우주로 진출한 이후로도 끊임없이 노력해 대부분의 영능을 반신 급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역량을 키웠었고, 그에 대한 기억을 유태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머지 기억마저 손에 넣은 지금, 그는 급격한 진보의 순간을 맞이했다. 평균적으로 마이스터 급에 머물던 영능들의 수준이 급격이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옛 말에 세상의 근본적인 이치 중 하나가 바로 만류귀종이라 했던가.

모든 영능은 상호 보완적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근본적으로 한 갈래에서 다양하게 갈라져 나온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다루는 방식이나 원리가 달라도 결국은 영력, 즉 모든 만물의 근원자인 영자의 성질을 이해하고 다루는 학문이 바로 영능학인 것이다.

‘그렇군. 이제야 알겠다. 그동안 내가 어째서 권능을 깨닫지 못했던 건지···.’

유태진은 이 모든 게 이루어진 순간, 자신의 격이 대폭 상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족했던 부분들이 채워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그의 경지를 이전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랬다. 애당초 그가 이때까지 권능을 깨닫지 못했던 건 단순히 깨달음만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검술을 제외한 다른 영능들의 수준이 기준치에 미달되어서였다.

하지만 아서의 기억을 되찾는 순간 그 모든 경지가 고르게 높아지면서 그는 그동안 정체됐던 구간을 단번에 뛰어넘어서 그보다 더 높은 영역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게 바로 중급 신의 경지···.”

고작 하급신의 문턱에서 헤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자신의 전생을 자각하자마자 바로 중급 신까지 치고 올라섰다. 유태진으로서는 그런 자신의 경지가 놀라우면서도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아서, 이 미친 놈! 그 당시부터 여기까지 내다봤던 거냐? 이렇게 될 줄 알고?’

유태진은 이 모든 게 자신의 전생인 아서의 설계가 이뤄낸 결과임을 자각했다. 그는 모든 영능을 반신 이상으로 고루 체득함으로서 역량 이상의 경지를 넘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유태진이었다. 익혔던 모든 영능을 반신 급 수준까지 체득하고, 무공을 하급신의 반열까지 끌어올린 그의 역량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도저히 닿을 수 없다고 여긴 영역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경지를 자각한 그 순간, 유태진은 그가 있던 현실을 벗어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것은 물질계를 벗어난 차원의 영역에 있었다.

마치 오로라가 펼쳐진 듯한 풍경 앞에 유태진은 자신이 보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챘다.

‘그렇군. 이건 실제 존재하는 게 아니야. 내 심상에 간섭해 동조한 외부의 힘인가?’

이건 분명 심상세계를 구체화 한 것이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의 안에 내제된 세계.

문제는 지금 누군가가 그의 심상세계에 침범해 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심상세계에 간섭하는 일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경우가 있는 법이다. 무려 중급 신에 도달한 유태진의 심상세계에 어떠한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간섭해올 수 있다니 이건 너무도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심상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두 인영을 보는 순간, 유태진은 경계하거나 적대하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회색빛 망토를 걸친 금발의 사내와 바다빛 같은 푸른 머리칼을 가진 여인.

난생 처음 보는 자들이었지만, 유태진은 그들을 보는 순간 얼어붙은 듯 굳어져 버렸다.

먼저 금발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 이런 식으로 검을 완성시켰다 이건가.]

굽어보는 듯한 시선. 어떠한 기세나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유태진은 짓눌리는 듯한 거대한 위압감을 경험해야 했다.

허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그가 누군지는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챘으니까.

중급신이 되면서 아카식 레코드의 열람레벨도 함께 높아진 유태진은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아니 그가 아니라 다른 이가 이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놀람의 정도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유태진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놀랄 것 없어요. 저흰 어디까지나 당신이 완성한 창세성검의 파편의 변화를 읽고 찾아왔을 뿐이니까요.]

부드러우면서도 평온한 목소리.

하지만 유태진은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여성의 정체는 바로 성신(星神) 크레이시아 마제스.

제1의 창세성검인 초신성검(超神聖劍) 엘시어드의 주인이자, 전 차원에서도 손에 꼽는 절대신 중 한 명이었다.

지금까지 감당할 수 없었던 최상급 신인 그룬베일조차 하찮게 취급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이니,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금발사내의 정체도 만만찮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그는 창세 때부터 존재해온 태고 적의 절대신.

조물주 데이마 디그 브라이드가 더 이상 세상에 간섭하지 않게 된 이후, 신들 중의 신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가장 지고한 존재였다.

용신(龍神) 레니우스 딘 테이론드. 전 차원에 분포되어 있는 모든 용족들로부터 존경과 신앙을 받는 최강의 종족신인 것이다.

유태진은 그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전했다.

[용신과 성신을 뵙습니다.]

[그렇게 예를 표할 것 없어요. 저나 이 사람도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까요.]

[예.]

크레이시아의 그 말에 유태진은 굽혔던 허리를 폈다. 전 차원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 소탈한 성품인 모양이었다.

[꽤 놀란 표정이군. 우리가 찾아온 게 꽤 뜻밖인 모양이지?]

[예, 설마 당신들처럼 위대한 분들이 이런 변방의 소요조차 살피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대로다. 일곱 차원과 그에 얽힌 수많은 평행차원들을 생각하면 이런 분쟁은 소소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이곳과는 약간의 인연이 생겼다. 네가 보냈었던 성검탐색자. 그것이 계기가 되었지. 우리의 주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

어떻게 그들의 관심을 사게 되었는지 알게 된 유태진이 낮게 탄성을 터뜨렸다.

그룬베일과 인베이더들에게 대적하기 위해 멀린의 조언으로 시행했던 성검탐색계획. 그 결과 갤러해드를 비롯한 원탁의 기사들은 저 먼 타차원까지 넘어가 결국 창세성검의 작은 편린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당시 갤러해드가 마주하게 되었던 존재들이 바로 성신과 용신이었다. 성신은 창세성검의 주인이었고, 용신은 그런 그녀의 배우자였으니까.

갤러해드는 몇 가지 시험 끝에 그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무사히 창세성검의 일부를 양도받을 수 있었다.

하면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는 건가?

레니우스가 말했다.

[너는 알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퍼트린 창세성검의 파편은 제법 많았다. 이 모든 게 안정을 위해서였지. 조물주께서 창조하신 우주는 너무도 광활했고, 이 모든 것을 관리하기엔 우리의 손은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어느 차원이나 우주든 그룬베일과 같은 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레니우스나 크레이시아 같은 절대적인 존재라 해도 독버섯처럼 우후죽순으로 번져나가는 그들을 일일이 손을 쓸 수 없어, 그들과 맞서는 자들에게 창세성검의 파편을 전해 힘을 내려줬다는 뜻이었다.

[그런 파편들 중에서는 싹을 틔우지 못하고 다시 회수된 것들도 있었지만, 그 힘을 성공적으로 활용해 평화를 지킨 곳도 많았지. 하지만 그런 수많은 사례들 중에서도 너의 그것은 꽤 이례적인 경우였다.]

레니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유태진이 쥐고 있는 엑스칼리버를 가리켰다.

[창세성검의 파편은 일개 파편이라고 하기엔 너무 막대한 권능과 힘을 담고 있지. 그렇기에 제어도 어렵고, 이걸 활용하는 방법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다들 나름대로 활용법을 찾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런 형태로 완성도 높은 영역까지 끌어올린 경우는 없었지.]

그의 말처럼 완성된 엑스칼리버의 힘은 놀랍고도 대단했다. 아서 시절에 만들어졌던 엑스칼리버도 대단했지만, 지금 다시 부활한 엑스칼리버는 그 때의 수준마저 뛰어넘고 있었다.

단순히 힘의 규모가 커졌다는 뜻이 아니다. 제대로 제어할 수 없었던 불완전함이 이젠 완전하게 변했다는 의미였다.

[이젠 성검의 파편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가 되었군. 엑스칼리버라는 검과 완벽히 융화되었지. 이제 그 검은 더 이상 낡지도 부서지지도 않을 거다. 네가 원한다면 영원히 너의 검이 되어 적을 베겠지.]

그래서일까? 레니우스에게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존재감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준엄하기까지 한 그 압박감은 유태진을 강하게 내리 누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했다. 레니우스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자신 따윈 한번에 눌러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마치 심판대에 선 듯한 상황에 놓인 유태진의 귓가로 레니우스의 경고가 이어졌다.

[아마도 네 검은 7자루의 창세성검들을 제외한 신기들 중에선 가히 최상위 권을 차지하게 될 거다.

그렇기에 미리 경고하마. 그 검을 결코 함부로 사용하지 마라. 사욕을 위해 사용하지도 말고, 집단의 이익과 세력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말며, 오직 세계와 우주, 차원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 사용해야 할 거다. 이에 맹세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유태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애당초 엑스칼리버는 그룬베일을 물리치기 위한 수단이었다. 강대한 힘에 얽매이기 위함이 아니라, 우주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이 힘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하긴 너라면 잘 해 낼지도 모르겠군.]

레니우스는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까지 창세성검의 파편을 받아간 이들은 많았지만, 유태진과 같은 이는 없었다.

자신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수천 수만 년에 달하는 세월동안 업을 쌓아 부족한 재능을 보충하고, 그마저도 모자라 초월자의 길을 포기한 채 일부러 윤회전생까지 뛰어들어 그 이상의 경지에 닿기 위해 발악하는 그 인생은 역경과 고난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닿은 걸 보면, 제아무리 강한 힘을 손에 넣는다 해도 쉽게 변질되지 않을 듯싶었다.

[이제 돌아가야겠네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시간이 다 됐다는 크레이시아의 말에 레니우스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관할하는 차원과 우주는 넓고도 넓어서 이런 특정 차원에만 오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대신 그 전에 축복을 내려주는 게 어떨까요?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걸로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녀의 권유에 레니우스는 유태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는 많은 초월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경우다. 여러 가지 영능을 체득해서 초월자가 된 녀석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너만큼 폭넓게 익혀 거기까지 닿은 녀석은 한 차례도 없었지. 물론 드래곤이 된 자들이 대부분 오랜 윤회전생을 통해 여러 종류의 업을 한계까지 쌓긴 했지만, 그들도 너처럼 고르게 쌓진 않았다.]

그의 말처럼 유태진은 특이 그 자체였다. 다양한 영능을 익힌 이들은 많았지만, 그 전부를 실제로 초월의 영역까지 끌어올린 경우는 그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하물며 유태진은 그렇게 반신 급까지 끌어올린 다양한 영능의 깨달음을 하나로 엮어서 하급신도 모자라 무려 중급신의 경지까지 단숨에 도약하였다. 전 우주를 뒤져봐도 이례적인 사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 천룡무상신공이라 했나? 너는 그것을 기반으로 모든 영능을 아우르는 형태의 권능을 획득했더군. 그래 언어로 명명하자면 ‘만능’이라 칭하는 게 옳겠군. 하지만 여러모로 불완전하지. 네가 쌓은 업은 결국 대부분 아서 팬드래건이라는 하나의 일생에서 대부분 이룬 것일 테니까.]

본디 업이라는 건 윤회전생을 반복하며 단단히 쌓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유태진은 하나의 일생으로 그 대부분을 이뤄냈다. 그러니 불완전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천룡무상신공으로 중심을 잡고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깨달음의 원리에 기반한 형태일 뿐, 실제 업으로 쌓아올린 기틀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기에 권능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약간의 부조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레니우스는 지금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유태진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너에게 용왕의 자격을 내려주마. 전능왕(全能王). 그것이 너의 이명이 될 것이다. 너는 용으로서의 권능과 능력을 갖게 될 것이며, 용왕의 자격과 권한 그리고 권세를 부여하겠다.]

[···!]

생각지도 못한 축복에 유태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가 어떤 것인지.

천룡무상신공이 진정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무 하나에 입각해서 완성된 신공은 완전무결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영능을 완벽하게 아우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용의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용들의 정점이자 신앙의 대상인 용신에게 축복받은 지금, 그의 천룡무상신공은 하나의 권능의 영역으로 승화되었다.

진정으로 모든 영능을, 아니 그마저도 넘어선 영역까지 조화롭게 아우를 수 있는 권능의 중심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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