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29화 (430/448)

#429

17권-28화

그것은 가히 격류에 가까웠다.

자신에게 흘러드는 수많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그녀는 간신히 자신이 손에 넣어야 할 그것을 거머쥐었다.

그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엘레나는 불필요한 정보는 흘려보내고 유태진과의 연을 매개 삼아 목적했든 바에 간신히 다다를 수 있었다.

‘이것이···!’

눈부신 광채 속에 휩싸인 한 자루의 고색창연한 검!

그것이 바로 그녀가 찾아야 할 엑스칼리버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녀만이 보고 있는 이미지의 형태일 뿐, 실제는 그에 관한 막대한 양의 기록과 정보의 집약체라 할 수 있었다.

의식이 점멸하듯 흔들렸다. 그리고 뇌는 파열할 듯 끓어 올랐다. 너무 지나친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읽어내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그나마 불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들을 표층만 읽고 흘려버린 덕분에 이 정도에 그쳤지, 지난 번 경험으로 이런 요령조차 없었다면 또 한 번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반드시 해내겠어!’

그녀는 각오를 다지며 엑스칼리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물론 이건 진짜 현실이 아닌, 그녀가 자신의 심상을 통해 보고 있는 이미지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허상인 것은 아니었다.

덥썩!

그녀가 엑스칼리버의 손잡이를 붙잡은 순간, 실로 방대한 정보가 뇌리로 급격히 흘러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읽어 들였던 정보량 따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양이었다.

‘으윽··· 너무 엄청나! 이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창세성검의 일부에 수많은 사상과 의념을 더한 엑스칼리버는 일반적인 신기의 차원을 넘어선 성검이었으니까.

상위신 급이었던 지구의 성계신조차 벅찼을 정도니, 엘레나가 이렇게 힘겨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고유능력은 여러 영능력들 중에서도 가히 특이점에 가까웠다. 제아무리 무기라는 카테고리 하나로 한정된다 하더라도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를 직접 읽어들임으로서 무기의 설계와 사상, 제조과정까지 모든 걸 파악해낸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능력이 특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를 직접 구현화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보를 읽어 들여서 이를 멀린이 만든 환상에 새겨 넣기만 하는 거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우우우우우!

텅 빈 환상이었던 검이 점차 실체를 띄기 시작했다. 멀린의 환상에 엘레나의 정보가 더해지는 것으로 엑스칼리버의 존재가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루네리아의 축복이 이어졌다.

[빛과 생명을 노래하는 나 루네리아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우주의 모든 이들의 염원을 담아낸 성검의 완성을 축복하노라.]

화아아악!

실로 막대한 양의 신성이 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녀가 축적해왔던 간섭력의 상당수를 소모할 각오로 내린 이 축복은 사상과 의념, 그리고 멀린의 환상과 엘레나의 정보를 하나로 융합시키고 있었다.

그 수준은 오래 전 폭염의 신 쥬헬 그리아드가 엑스칼리버를 완성했을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고작 지구에 한정되었을 그때와 비교하면 우주 전역에서 모아들이 사상과 의념의 양은 가히 수백 배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루네리아가 떠안는 부담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난 1000년 동안 작정하고 간섭력을 축적해오지 않았더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검이 완성의 목전에 이른 이 순간, 멀린이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나 멀린 엠리스의 이름으로 선언하리니··· 이 자리에 완성되는 것은 우주의 모든 이들의 염원을 담아 완성된 최강의 환상. 결코 무너지지 않고 영원불멸하게 이어질 성검이니라!”

선포하듯 외친 그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빛이 번져나갔다. 그것은 일순 지구와 달을 넘어 태양계로 번져나갔으며, 그것마저 모자라 은하계 전체로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완벽할 정도로 완성된 한 자루의 검이 자리하고 있었다.

붉은 색과 황금 색, 그리고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푸른색까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 자루의 성검.

이것이 결전성검 엑스칼리버의 재탄생이었다.

“······.”

유태진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쥐어야 할 결전병기. 그룬베일의 화신인 태무환을 물리치고, 인베이더들을 격멸하기 위한 자신만의 무기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꿈속에서 봤던 아서 팬드래건은 이 검을 쥐기 전에 스스로의 자격을 의심하며 잠시 망설였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룬베일과 대적하기로 각오한 이상, 성검은 자신을 여전히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을 테니까. 자신이야말로 바로 엑스칼리버의 정당한 계승자였다.

유태진의 오른손이 드디어 엑스칼리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엑스칼리버를 손에 쥐자마자 갑자기 막대한 정보가 그의 뇌리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이건···!?”

유태진의 의식이 기억 속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마치 자기 자신이 실제로 그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수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군. 이건 아서의 기억이구나.’

지금까지 유태진은 꿈을 통해 아서의 기억을 엿봤지만, 그건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아서가 우주로 진출한 이후의 기억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완전히 부활한 엑스칼리버는 이전의 주인이 가졌던 기억들을 조금도 손실 없이 그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아아, 그랬었군. 그랬었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다해 아르탈 행성 연합을 세웠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그룬베일에게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반신들을 모으고, 우호적인 신격들을 설득한다 하더라도 인베이더의 신좌들이 가진 힘은 그만큼 막강했으니까.

지금은 지구를 침공하다가 입은 타격 때문에 간섭력의 대부분을 잃어 침묵 중이었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다시 행동을 재개할 게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아서도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초월자가 되어야겠지.’

그는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500년 전 자신이 엑스칼리버라는 초월적인 성검을 손에 쥐고도 그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그 당시를···.

그의 역량이 최소한 오버 그랜드 급이라도 되었다면, 아니 하급 신만 되었더라도 모두를 잃지 않고 지구를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월자가 되는 길은 너무도 험난했다. 지금까지 노력에 노력을 더해 강해졌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이른 것이다.

‘억지로 쌓아올린 이 업으로도 결국 반신 급이 한계인가···.’

아서는 우주로 나온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수련해왔고, 드디어 반신의 목전에 이르렀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반신 급 초월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본디 업이란 윤회전생을 거치면서 반복적으로 연단하듯 견고히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의 생을 통해 급격히 업을 쌓는 방식으론 모래성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그런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아서는 수많은 영능들을 높은 수준까지 체득하고, 이를 하나로 엮어서 경지를 돌파하려 했지만 단 하나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바로 검술에 대한 재능이었다. 아서가 가진 재능들은 대부분 평범하거나 그 이하였지만, 검술은 그보다 더했다.

다른 영능들이 반신 급에 다다른 지금도, 검술만큼은 그랜드 급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 이번 생을 이만 끝마치고 윤회전생의 도정에 오르기로.

물론 여기엔 반대도 많았다. 특히 아르탈 행성 연합을 세우면서 연을 맺게 된 여신 루네리아가 그러했다.

그녀와 손을 잡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룬베일과 인베이더와 대적하겠다는 공통된 목적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서로를 알게 되면서 연인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일개 필멸자와 상위신 급 초월자가 연인이 된다는 건, 벼룩과 인간이 연인이 된다는 것 이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격차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첫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루네리아는 재능 한 점 없이 노력만으로 저만한 역량을 쌓은 아서에게 호기심을 느꼈고, 그가 거기까지 올라서가 된 과정을 알아가면서 이것이 호감으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연인의 결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할 건가요?]

“그래, 더는 망설일 수 없어. 당신도 잘 알거야. 이대로라면 천년 이후에는 분명 위기가 닥칠 거라는 걸 말이야.”

[······.]

“지금의 나로선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게 뻔해. 그렇다면 강해지는 수밖에 없지. 하지만 내 재능은 이제 한계에 가까워. 노력으로 얼버무릴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진가 보더군.”

자조하듯 말한 아서는 쓰게 웃고 말았다. 애당초 없는 것과 다름없는 재능이었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른 나머지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 기가 막혀서였다.

[하지만 윤회전생에 들면 지금의 자아는 사라지겠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그룬베일에게 대적하기 위해 강해지겠다는 목적조차 잃어버리고 말 텐데요.]

루네리아가 우려하는 점도 일리는 있었다. 윤회전생을 통해 기억은 물론 처음의 목적의식까지 잃어버려서야 아무 의미도 없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름 대책을 세워두었다.

“물론 알고 있어. 그래서 난 엑스칼리버에게 내 기억을 담아두기로 결정을 내렸지.”

[엑스칼리버에···?]

“그래, 언젠가 내가 다시 엑스칼리버를 다시 손에 쥐게 되면 차차 기억을 되찾게 되겠지. 그리고 때가 이르면 모든 기억을 되찾을 거야.”

그 뒤 아서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윤회전생의 도정에 올랐다. 그리곤 수많은 윤회를 거치면서 부족했던 업을 쌓아올릴 수 있었다.

‘그랬군. 그래서였구나.’

지난 기억을 지켜보고 있던 유태진은 비로소 깨달았다. 어째서 자신이 아서의 기억을 엿볼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엑스칼리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바로 자신이 기억 속의 아서 팬드래건이 환생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도 엑스칼리버는 계속해서 지난 과거를 보여주었다. 어떤 때는 중세의 기사로 활약하기도 했고, 이름 모를 행성에서 검을 휘두르는 낭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도달한 마지막 환생은 바로 중원무림시절의 천화운이었다. 그는 그동안 윤회전생을 거치며 쌓아올린 업을 토대로 드디어 검술 하나만으로 반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내가 아서였고, 천화운이었으며 유태진이구나.’

그랬다. 그 모든 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서로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결국 모든 것은 하나였던 것이다.

돌연 그가 품고 있던 신성이 크게 들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벽에 막힌 것 마냥 하급신을 반 발짝 놔둔 채 멈춰서 있었지만, 지금 그는 전에 없던 도약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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