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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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은 훌쩍 지나가 인베이더의 함대가 당도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태양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한 긴장감에 둘러싸여 있었다. 공화국과 연합, 그리고 지구연방의 함대는 전투대비태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인베이더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지구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시민들께 알립니다. 오늘은 인베이더의 침공 예측일입니다. 예정했던 대로 각자 지정된 대피소로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께 알립니다. 오늘은···.]
발령이 떨어지자 시민들은 인베이더와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둔 대피소로 서둘러 향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인베이더의 침공이 있을 거란 사실을 연방정부로부터 들어왔던 데다, 대피 훈련도 주기적으로 반복해온 만큼 시민들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질서정연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것이 평범한 인베이더의 침공이 아니란 것을.
메켈린 수상과 연방의 수뇌부들은 그룬베일의 화신인 태무환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베이더의 첫 침공이란 사실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상황인데, 신좌인 그룬베일의 화신까지 나섰음을 시민들이 알게 된다면 다들 패닉에 빠져 통제 불능이 되었을 터. 그렇다면 차라리 알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되도록이면 놈들이 엑스칼리버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베이노아 수상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과연 바라는 바대로 이루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꽤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인생은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악화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물론 최악의 상황도 가정해 두고 있지만,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군.’
지금 현재 지구를 등지고 있는 형태인 달 근처의 주역에서는 엑스칼리버의 부활을 위한 의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때가 이르지 못했다. 은하계의 행성들이 완전한 그랜드 크로스의 배열을 이루려면 아직도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대략 예상컨대 적어도 두 시간. 앞으로 그 정도 시간은 지나야 그랜드 크로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두 시간은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도 인베이더의 함대가 그 전에 당도하기라도 한다면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터.
일단 계획은 그룬베일의 화신이 예정보다 먼저 도착할 경우,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서 버티기로 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그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건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게 없으며,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
지금 상황도 그러했다. 저 멀리서 전함의 센서에 감지되기 시작한 인베이더의 함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는군.”
베네트 국장이 침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재 연합과 공화국 함대는 태양계와 외우주의 경계면 주역에 포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인베이더의 함대를 최대한 태양계를 벗어난 외우주 지역에서 방어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우우우우!
공간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인베이더의 대함대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규모는 공화국과 연합 함대의 규모보다는 다소 작아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인 그룬베일의 화신.
그 하나만으로도 인베이더 함대의 전력은 이쪽을 크게 웃돈다.
베네트 국장과 베이노아 수상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전 함대, 함포 개방! 목표는 인베이더 함대!”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포문을 개방한다!”
기이이잉!
이곳에 모인 수많은 전함들이 곳곳의 장갑을 슬라이드 시키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함포들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점점 상승하는 출력과 함께 막대한 에너지가 집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임계점에 접어든 순간 성대한 포화가 우주공간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쏴라!”
“가라! 전 화력 투사!”
콰아아앙! 쿠구구구!
상상을 초월하는 화력의 투사에 태양계를 벗어난 외우주공간이 이지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규모는 가히 태양계 전체를 통째로 불사르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안심하는 이는 없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화력이라 하더라도 상위 초월자의 힘을 구사하는 그룬베일의 화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베네트 국장과 베이노아 수상이 노린 건 어디까지나 그가 이끄는 인베이더 함대. 놈들의 수를 감소시켜서 전력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세상만사는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었다.
[환영인사가 꽤 성대하구나.]
크게 울려 퍼지는 영언. 그것은 그룬베일의 화신 태무환의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인베이더 함대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이 몸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군. 헌데··· 유태진은 어디 있나?]
그의 시선이 연합과 공화국 함대를 직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곧장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 녀석은 지금 엑스칼리버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나? 그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 생각인가 본데, 2시간이란 시간은 꽤 긴 편이지.]
“역시··· 상위신 이상쯤 되면 그 정도는 다 읽어낸다 이거군.”
태무환의 영언을 들은 베네트 국장이 낮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아카식 레코드와 연동되는 초월자들의 신안은 세상의 이치와 섭리,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 등을 읽어낸다.
물론 신격의 수준에 따라 읽어낼 수 있는 정보의 질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그룬베일의 화신쯤 되면 어지간해서는 전지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각오를 해야겠군.’
베네트 국장은 큰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태무환을 저지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그렇지 않고선 이 싸움에서 승산은 전혀 없었다.
헌데 그 순간, 태무환의 입에서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뭐, 좋다. 2시간 정도라면 기다려주도록 하지.]
“뭐? 그 말, 진심인가!?”
베네트 국장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우주의 멸망을 바라는 최악의 대적이 유니버셜 테라 코어라는 종착지를 앞두고 이렇듯 여유를 부린다고? 대체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가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자, 태무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냥 손 놓고 가만있겠다는 건 아니다. 단지 이 몸이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뜻이지.]
그가 손짓하자 인베이더 함대가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함포를 개방하기 시작한 인베이더 함대는 이미 결전을 벌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함대전을 벌이자고?”
[그렇다. 어차피 너희들 중 내 상대가 될 수 있는 건 엑스칼리버를 쥔 유태진 뿐. 이건 어디까지나 여흥이지.]
“······.”
오만하기까지 한 그 태도에 베네트 국장은 물론 베이노아 수상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마치 자신들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투였다.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지금은 쓸데없는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다. 상대의 오만과 여유조차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베네트 국장은 분노를 삭이며 곧장 대응에 들어갔다.
“전 함대 아르마다 시스템을 기동한다. 동시에 라비린토스 필드도 전개. 일단은 방어전으로 시간을 번다. 놈이 보여주고 있는 저 오만함을 철저히 부숴줘라!”
[아르마다 시스템 가동.]
[각 전함 인공제어체 멀티라운드 링크, 온라인!]
[전 함대 통합출력공명 스타트 컴플리트!]
아르탈 행성 연합과 메세니아 연방 공화국, 두 세력에 속한 모든 전함들의 출력이 하나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본디 출력공유 시스템 아르마다는 리스티가 개발한 아르탈 행성 연합만의 독자적 기술이었다. 하지만 인베이더라는 공공의 적을 앞에 둔 지금 공화국 측에도 이 기술을 공여해주게 되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만한 대가를 받아내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다른 세력보다 전력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을 공여해준다는 건 사실상 금기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룬베일의 화신을 상대하려면 가지고 있는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도 승산이 희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르마다 시스템에 뒤이은 비장의 한 수가 이 일대 공간을 이지러뜨리기 시작했다.
[라비린토스 필드(차원영겁회랑) 전개.]
끄그그긋!
이것은 단순한 공간왜곡이 아니다. 복잡한 패턴의 형태로 시공간을 뒤틀면서 존재하지 않던 수많은 경계와 장벽을 구축하는 차원회랑구축기술 라비린토스 필드.
이 또한 연합에서 공여해준 기술 중 하나였다.
쿠콰콰콰!
인베이더 함대의 전 화력이 급기야 태양계 방면을 향해 퍼부어졌다. 공화국과 연방 함대에 비한다면 그 수는 다소 적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일제히 쏟아내는 화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태양계는커녕 연합과 공화국의 전함에조차 닿지 못했다. 인베이더 함대가 퍼부은 막대한 포화들은 끝없이 뻗어나가다가 결국 힘이 다한 듯 소실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 들은 적이 있었지. 라인트라에서 선보인 바 있었던 차원결계기술인가?]
태무환은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라비린토스의 구조와 원리를 읽어낼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시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얽힘. 제아무리 강력한 화력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완전히 뚫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래봐야 얼마나 갈까?]
인베이더 함대의 포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차원결계라 해서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막대한 출력의 중력파나, 혹은 그보다 압도적인 고중력과 질량에서 발생하는 블랙홀은 충분히 차원단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특히 인베이더의 전함 중 준대형 이상의 전함들은 대부분 중력파 포를 갖추고 있었으며, 대형 전함 같은 경우에는 마이크로 블랙홀을 쏘아내는 마이크로 블래스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무기들은 차원결계를 단숨에 뚫진 못한다 해도, 어느 정도 피해를 누적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베네트 국장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빌어먹을! 놈들의 화력이 차원결계의 수복속도를 웃돌고 있다. 애당초 차원결계의 규모를 이 정도까지 키운 게 문제였나?’
단순히 함대만 보호하는 수준이었다면 인베이더 함대가 제아무리 강력한 화력을 발휘한다 해도 넉넉히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라비린토스 필드를 태양계 전체까지 확대시켜 보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계의 방어와 복원능력이 상정했던 것보다 처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만일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이런 약점도 어떻게든 해결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태양계 곳곳에는 그들이 세운 비상용 방어요새와 보조 제네레이터들이 풀가동 중인 상황. 태양계 전체를 커버하는 차원결계를 펼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식으로 함대의 출력을 보조할 수 있는 시설들을 이곳저곳에 확장해 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수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던 만큼 목표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던 것이다.
결국 베네트 국장과 베이노아 수상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어쩔 수 없지. 직접 싸우는 수밖에.”
“놈들의 화력을 분산시켜야겠습니다.”
라비린토스 필드는 어디까지나 태양계 방어에 집중되어야 했다. 함대까지 보호하려다간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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