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19화 (420/448)

17권-19화

잠시 뒤 리스티가 부정의 말을 내놓았다.

“···말도 안 돼요. 오빠가 어떤 사람인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 조나단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었지. 하지만 상위신 앞에선 어쩔 수가 없었어.”

냉정한 말이었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기도 했다. 조나단이 천재이긴 해도 초월자는 아니었다. 하물며 상위신 이상의 존재라는 그룬베일 앞에서는 한낱 파리 목숨만도 못했을 것이다.

“따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구나.”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휘청거리는 리스티를 부축했다. 제아무리 천재고 나이에 비해 성숙한 정신을 가졌다 하더라도, 친혈육의 죽음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리스티···.”

아리엔이 안타까운 얼굴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 별다른 가족이나 친인이 없는 그녀에게 있어 조나단의 죽음이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지 나름 짐작할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일까? 어느 누구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표정과 안색만 봐도 자신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리스티는 자신을 잡아끄는 유태진의 움직임에 따라 멍하니 걸음을 옮겼다.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유태진이 자신을 잡아당기는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유태진의 부축을 받아 이동한 곳은 함 내에 마련된 작은 응접실이었다. 유태진은 응접실의 문을 잠가버렸다. 안 그래도 리스티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는데 다른 이들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겨우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건지, 리스티가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그래, 말해라.”

“오빠는 어떻게 죽은 거죠?”

격정적인 감정으로 흔들리는 눈동자가 유태진에게 집중되었다. 목소리도 여전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보다 자세히 듣고 싶어요.”

“알았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세세히 들려주마.”

유태진도 한층 무거워진 표정으로 자신의 기억을 되새겨갔다. 그룬베일의 화신이 된 태무환이 어떻게 함대를 덮쳐왔으며, 그것을 벗어나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그리고 그 와중에 조나단이 어떻게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모두를 구했는지도 낱낱이 설명해 주었다.

리스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해할 수 없어요. 오빠는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희생적인 성격이 아니었는데, 그런 오빠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가면서 모두를 구한다고요?”

“그래,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조나단이란 녀석이 어떤 성향인지는 나도 대충은 파악했으니까.”

리스티의 말처럼 조나단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만큼 이타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면 돌아보지도 않는, 그런 냉정하면서도 이기적인 성향이었다.

그나마 그에게 누군가를 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리스티 뿐일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룬베일의 화신은 특정 인물이나 세력에게만 국한된 위협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아니 이 우주에 사는 모든 지성체들의 위협이었지. 그건 즉, 조나단의 여동생인 네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녀석은 그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 자신의 여동생이 살아가는 세계가, 우주가 멸망으로 위협받는 걸 원치 않았던 거야.”

“······.”

리스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만만했던 조나단이었다. 해내지 못할 게 없을 것 같던 천재인 오빠가 그렇게 죽었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질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태진은 모듈밴더에 기록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차원단층주역에서 벌어진 전투과정과 조나단이 희생하게 된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죽어버릴 건 아니잖아.”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진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가끔 얄미운 짓을 하긴 해도 오빠는 오빠였다. 수년 째 떨어져 지냈다곤 하지만, 남매간의 정은 여전했다.

그런데 이렇게 부고 소식이라니. 하물며 그의 희생은 자신을 위해 벌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분명 그는 리스티가 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터.

적어도 이번 지구 방위 계획이 성공할 확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공화국과 연합 함대의 피해를 최소화 할 생각이었던 게 분명했다.

“···일단 혼자 있고 싶어요.”

“그래, 알았다.”

리스티의 그 말에 유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베네트 국장이 신신당부를 해 가며 맡긴 일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사안을 건넬 때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똑똑하고 어른스런 면모를 가진 리스티라 해도 이제 겨우 19세에 불과했다. 친혈육의 부고를 받은 그녀에게 당장 무언가를 연구해 달라고 닦달할 수는 없었다.

그가 떠나고 난 응접실에는 리스티 혼자 남겨졌다. 고요하게 내려앉은 침묵이 그녀를 더욱 처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오빠와 함께 했던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기억이 옅어져가지만, 리스티는 예외였다. 범인과는 차원이 다른 기억력 때문에 제아무리 오래된 과거라 하더라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슬펐다. 오빠와 함께 했던 기억이 이렇게 선명한데, 당장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데··· 이제 더 이상 오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그렇지만 오빠는 이런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죽음에 연연해 매몰되어 있는 것을 원할 리 없었다.

리스티는 힘겹게 자리를 떨치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응접실을 벗어나 격납고로 향했다. 그곳에서 소형정을 타고 자리를 옮겼다.

그녀가 이동한 곳은 바로 오빠가 남긴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초월신함 아마페레오스였다.

아마페레오스는 리스티를 아무런 제지 없이 받아들였다. 이미 조나단의 모든 것은 리스티에게 상속된 상태였다.

그리고 아마페레오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리스티에게 상속된 모든 유산은 아마페레오스의 주관 하에 관리되고 있었다.

그건 즉, 아마페레오스의 현 주인은 바로 리스티가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아마페레오스를 통제하는 인공지능이 인사를 건네 왔다.

[어서 오십시오, 리스티 님. 제 이름은 알렉시안. 초월신함 아마페레오스를 주관하는 인공지능입니다.]

“알렉시안이라고?”

[예. 조나단 님의 유언에 따라 본 함은 이제부터 리스티 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이 모든 것은 리스티 님의 주관 하에 움직일 겁니다. 무엇이든 명하시지요.]

그제야 새삼 더 와 닿았다. 정말로 오빠는 죽었으며, 그가 가졌던 모든 걸 자신이 물려받았음을.

하지만 그 사실이 더욱 가슴 아팠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은 울음소리를 억지로 삼키며 말했다.

“···그럼 네가 가진 모든 걸 보여줘. 네가 무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성능을 가졌는지도.”

[알겠습니다.]

그때부터 막대한 정보가 리스티에게 전달되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알렉시안이 전송하는 막대한 데이터가 직접 다이렉트로 전송되고 있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막대한 양의 정보를 전송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리스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범인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그녀의 뇌 용량은 이 정도 정보량은 평상시에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랬구나. 이것이 오빠의 유산···.”

참으로 놀라웠다. 지금까지 리스티도 나름대로 많은 것을 익히고 연구하고 터득했지만, 조나단은 그런 차원을 아득히 넘어섰다.

물론 여신 루네리아의 배려로 타차원까지 유학가서 배워온 지식이라고 하지만, 아마페레오스를 설계하고 건조한 것은 어디까지나 조나단 본인의 능력이었다.

그는 배운 지식들을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활용하였고, 심지어 초월자에 준하는 힘을 가진 전함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 위업은 가히 우주에 새겨지고도 남을 일이었다.

“이젠 정말 따라갈 수도 없겠어.”

조나단은 리스티의 오빠이기도 했지만, 유일한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녀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나단뿐이었다.

그렇기에 언제고 오빠를 넘어설만한 연구결과를 내놓고 싶었는데, 이젠 영원이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조나단이 남기고 간 결실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이대로 더 오래 살았다면, 오빠는 얼마나 더 대단한 것들을 내놨을 것인가. 그런 자신의 유일한 경쟁자이자 이해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룬베일의 화신이라고?”

리스티는 알렉시안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했다. 그리고 차원단층주역에서 벌어진 전투가 어떤 과정과 이유로 벌어졌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룬베일의 화신이라 자칭한 그 존재는 유태진과 잘 아는 사이 같았다.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둘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둘이 손속을 나누는 그 움직임에도 마치 서로의 행동을 사전에 알고 있는 것처럼 대응하고 있었다.

원수를 갚으려면 그 자에 대해 좀 더 많은 걸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자면 유태진과 저 태무환이란 자와의 연관성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이길 수 있는 승산을 만들려면 저 결계법진의 힘도 필요해.’

차원단층주역에서 그나마 공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펼친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였다.

태무환이 가진 그룬베일의 권능을 억제하고, 드래곤들의 역량을 증폭시켰던 그 힘이라면 활용하기에 따라 충분히 가능성을 점쳐 볼만 할 거라 예상되었다.

물론 태무환이 무공이란 힘을 앞세우는 바람에 기대했던 것보다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유태진이 그 리소스를 활용함으로서 역량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이걸 좀 더 개량하고 규모를 키우면 가능성은 충분할 거야.’

그러자면 시간이 촉박했다. 제아무리 리스티가 천재라 하더라도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는 드래곤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한 비장의 한 수였다.

그걸 뜯어고쳐 개량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또한 이걸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선 드래곤들의 조력이 필요한데, 이미 반수에 가까운 드래곤들이 죽은 상황이었다. 다시 똑같이 펼친다 하더라도 그 공능은 예전보다 못할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죽은 드래곤들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니 대체하는 것을 넘어, 그보다 더 큰 규모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어찌 보면 고작 한 달하고도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는 시간 안에 이루기에는 너무도 촉박한 목표였지만, 리스티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빠도 초월신함을 만들었어. 그렇다면 동생인 나도 이 정도 쯤은 얼마든지 해내겠어.”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리스티는 곧장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슬픔의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거기에 발목이 붙잡혀 멈춰 있을 순 없었다.

조나단에 대한 추모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앞으로 그룬베일의 화신을 확실히 처단함으로서 오빠의 죽음을 널리 애도할 것이다.

그것이 리스티가 세운 결심이자 각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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