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14화
조나단이 유학가게 된 차원의 이름은 [이스타니아].
[대차원계 아셀하엘]에 속하는 일곱 개의 소차원 중 최초의 차원이자, 발전상이 가장 앞선 곳이었다.
다양한 영능학을 시작으로 마도공학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전반이 조나단이 사는 차원에 비해 아주 높은 영역에 이르러 있었으며, 영능력자들의 평균 실력도 비교적 월등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군.’
영능이야 각자 타고난 재능에 따라 성취도가 판가름 나는 만큼, 평균적인 실력이 더 높긴 해도 딱히 혁신적이라 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아스타니아 차원의 영능력자들이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해온 다양한 이론과 개념들은 조나단으로 하여금 놀람을 감추지 못하게 하였다.
지금까지 그의 천재성은 꿰뚫어보지 못하는 게 없었고, 기존보다 월등히 발전된 기술이라 해도 딱히 대단치 않았다.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해하는 건 물론, 그보다 더 진보된 형태로 개량해내는 것이 바로 조나단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인간이 영적 깨달음을 얻지 않고도 초월의 영역에 닿을 수 있다니···.’
조나단으로서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스타니아에는 믿기 힘들 만큼 고도로 발달된 문명과 지식을 가진 일족이 존재했었다.
그들은 아드리아(초월자超越子)라고 불렸다.
지금 현재는 깨달음을 통해 신성을 획득하여 필멸을 벗어난 존재들을 초월자라 부르고 있지만, 그 옛날만 하더라도 초월자란 단어는 오직 그들을 위해 존재했었다.
그만큼 그들이 가진 고도의 지식과 능력은 강력하고 놀라웠다.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카식 레코드의 인과정보는 물론, 그마저도 뛰어넘어 유그드라실(창멸법칙)까지 조작 가능했던 것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창조한 희대의 영능학, 이그니즘의 역법술 때문이었다.
영적 깨달음으로 신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그니즘의 역법술로 신보다 더한 힘과 권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아드리아 일족의 전성기 시절에는 절대적이라 할 만큼 고위급 신들조차 그들의 힘과 문명을 두려워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토록 대단했던 그들도 결국 오래전에 멸망해 사라지고 말았다.
이그니즘의 역법술 때문이었다. 초월적인 위력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았던 데다, 그들의 강력한 힘을 경계시한 신들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만 것이다.
덕분에 그들이 일궜던 위대한 지식과 힘 대부분은 그대로 역사에 묻혀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잔재는 영능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스타니아가 다른 차원보다 남다른 발전을 이룬 것도 다 아드리아 일족이 남긴 잔재들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남겨진 것이 잔재 뿐만은 아니었다. 그중 몇몇은 아직까지 온전하게 보존된 것들도 있었다.
그런 예외중 하나가 바로 [초전신함 아르테네이션].
아드리아들에 의해 건조되었으며, 지금은 이스타니아를 수호하는 기둥의 한 축으로서 모든 신들에게 인정받은 최강의 초월신함이었다.
인공적으로 제조된 전함일 뿐인데도 그 힘은 놀랍게도 최상위 신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
아르테네이션이 그 위용을 떨칠 때면 우주를 좌지우지하는 신들조차 놀람과 경이를 감추지 못했다.
조나단이 그런 아르테네이션과 연이 닿을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루네리아의 주선 때문이었다. 그녀는 직접 나설 수는 없는 입장이었지만, 몇 줄의 영언을 전달함으로서 아르테네이션과 연결점을 맺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조나단은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아르테네이션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아르테네이션 건조와 함께 탄생된 인공초월체 [세르테이나 페이아노]를.
전함은 규모가 크고 강력할수록 이를 통제하는 시스템도 복잡해진다. 제아무리 많은 전문 인력을 동원한다 해도 일일이 수동으로 방대한 기기들을 실시간으로 조작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함들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채택한다. 전함의 제어기능 대부분을 통합적으로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르테이션처럼 초월적인 전함은 고도의 인공지능만으로는 부족했다. 신의 영역에 이른, 아니 그 이상에 다다른 영역의 권능을 제어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격이 필요했다.
그래서 해서 탄생하게 된 인물이 바로 인공초월체 세르테이나 페이아노였다.
그녀는 아드리아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격은 놀랍게도 상위신에 버금갔다. 하지만 그건 어디가지나 부차적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전함의 제어를 목적에 둔 만큼 그녀는 아르테네이션과 영적 레벨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아르테네이션이 다루는 초월적인 힘을 제어하는 데에 능력 대부분이 치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르테이나 페이아노는 강력했다. 상위신의 격이란 건 바로 그런 거였으니까.
‘믿기지가 않는군. 인위적으로 탄생된 존재가 루네리아 여신과 동격이라니······.’
조나단은 자신 앞에서 빙긋빙긋 웃고 있는 18세 남짓한 나이로 보이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신적인 위용은커녕, 영능력자라면 딱히 드러나야 할 존재감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지식과 혜안만큼은 깊고도 대단했다. 루네리아의 주선 덕분에 조나단은 그녀에게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아드리아가 이룩한 이그니즘의 역법술을 비롯한 고대의 지식들은 이를 위험시한 신들 때문에 배우지 못했지만, 그 대신 거기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부가지식들을 습득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그 결과, 조나단은 그랜드 급에 올라섰다. 물론 앞으로 몇 년 뒤에는 올라설 수 있을 거라 자신은 했지만, 그 시간이 크게 앞당겨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중에 얻은 부가적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실질적으로 얻은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크게 앞선 마도공학의 지식. 그녀에게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알던 기존의 마도공학 지식을 더한 결과가 초월신함 아마페레오스라는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다.
이런 성과에는 세르테이나조차 놀람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네요, 조나단. 당신은 확실한 천재에요. 아드리아의 지식 중 아주 보잘 것 없는 잔가지에 해당하는 것들만 전해줬는데도 이런 성과를 거둘 줄은.”
초월신함이란 그냥 기존보다 더 강력한 전함 따위가 아니다. 물리법칙만 작용하는 필멸의 영역을 벗어나, 인과와 섭리의 정보를 제어하는 초월의 영역에 간섭할 수 있어야 초월신함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세르테이나에게 배운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곤 하지만, 아드리아들이 까마득히 오래 전에 멸망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건 가히 위업이라 평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녀가 전해준 지식들은 아주 기초적인 것들이다. 여기서 추론과 분석을 통해 초월신함을 건조할 수 있을 만큼 이론과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것은 전적으로 조나단의 능력인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초월신함이라 해도 아르테네이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 둘 사이에는 최상위 신과 하위신 이상의 까마득한 격차를 갖고 있으니까.
때문에 조나단은 세르테이나와 같은 인공초월체까지는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대신 탑승자의 역량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아마페레오스의 제어 방식이 보다 복잡해지긴 했지만, 조나단 급의 천재라면 불가능하지만도 않았다.
‘게다가 이 전함을 제어할수록 보다 초월에 가까워지겠지.’
아마페레오스를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초월의 권능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체가 직접적인 격의 상승이나 깨달음으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무의식에 새겨지는 것을 넘어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적인 부분까지 닿게 될 것이다.
물론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그것도 조종자의 자질에 따라 소요되는 기간도 큰 차이가 날 터.
하지만 그런 자격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다.
‘아마도 리스티라면 가능할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초월의 권능을 제어하는 일이다. 자신의 역량 이상의 힘을 다룰만한 섬세한 제어능력과, 그 흐름을 철저히 연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두뇌가 필요했다.
그런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이는 극히 드물었다.
배울 만큼 배운 조나단은 때가 된 후 본래 차원으로 귀환하였다. 그리고 세르테이나에게 배운 지식들을 바탕으로 여신교단이 안배해온 미완성 의례법진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마무리 지은 조나단은 멀린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를 눈치 챈 멀린이 돌아보았다.
“왜 그러죠?”
“···멀린 숨김없이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술식, 분명 지성체의 사상과 의념을 특정 형태로 구체화 하는 방식으로 보입니다만··· 대체 이걸 어떻게 사용할 생각입니까?”
의례법진의 핵심을 꿰뚫는 그 말에, 멀린도 깜짝 놀라 되물었다.
“혹시 술식의 목적을 알아본 겁니까?”
“모를 수가 없죠. 그랬다면 미완성이었던 부분을 제가 채워 넣을 수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
미완성이었던 술식을 완성시킨 장본인이 바로 조나단이었다. 그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신교단이 천년 넘게 공을 들여 구축해온 의례법진은 말 그대로 우주 만방에 걸쳐 있었다. 은하도 아니고 무려 은하단을 아우르는 규모인 만큼, 술식 자체도 너무 방대해서 일개 개인이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래서 멀린도 미완성인 부분만 조나단에게 노출해주었을 뿐, 의례법진 전체를 공개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그 일부만으로도 조나단은 드러나지 않은 의례법진의 핵심 기능까지 정확히 추론해낸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작게 한숨을 내쉰 멀린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실을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조나단이 여기까지 알아낸 이상, 사실을 전부 밝히고 그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나단은 멀린으로부터 여신교단이 무엇을 준비하는지, 그리고 루네리아 여신이 언급했던 멸망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듣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섭리의 제약에 해당되는 내용이었지만, 멀린은 이마저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여신이 언급한 멸망이 도래할 시기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금 밝힌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도 없는 만큼, 가해지는 제약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다 듣고 난 조나단의 표정은 더없이 무거웠다.
“···결국 우리가 멸망을 극복할 불변의 핵심은 지구의 안전 확보로군요.”
“그런 셈이지요. 유니버셜 테라 코어. 그곳만큼은 인베이더에게 절대 내줘선 안 됩니다.”
멀린은 여느 때와 달리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왔으며, 이를 위해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도 설명해주었다.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