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12화
이를 목도한 드래곤들 중 하나가 조나단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무겁게 신음했다.
[···자신의 영성마저 불사르다니. 정말로 죽기를 작정했구나.]
그랬다. 아마페레오스를 휘감은 빛의 정체는 바로 조나단의 영성 그 자체였다.
본디 아마페레오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하지만, 함장의 역량에 따라 그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하물며 조나단의 영성마저 불살라 출력을 한없이 끌어올린 아마페레오스의 현재 힘은 거의 중위신 이상이었다.
“아마페레오스 엑스트라 모드 작동.”
[엑스트라 모드를 이행합니다.]
엑스트라 모드란 아마페레오스의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기능이었다. 탑승자의 상태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만큼, 끌어올릴 수 있는 출력의 한도도 그만큼 더 높아진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겠지.”
조나단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웃었다. 영성을 불태우는 기분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실감 속에서도 조나단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실소가 나올 뿐이었다.
‘난 본래 이렇게 희생적인 성격이 아닌데 우습게 됐네.’
애당초 가문의 서자로 태어난 몸이었다. 어려서부터 직계혈족들에게 무시당하고 천대 받았던 그는 주변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성향으로 자라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성장과정 탓만은 아니었다. 남들과는 감히 비교조차 안 되는 천재성을 타고난 것도 이에 일익 했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감정적인 행태가 너무도 무지하고 저열했으며, 어리석게만 보였다. 서자라고 해서 딱히 유전자 조합이 더 나쁠 리도 없을 텐데도, 이렇게 핍박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생각하는 건 또 어떤가? 가문의 후계 자리를 넘볼까봐 지레질색하며 자신을 헐뜯고 욕하는 등 하는 행동들이 가관도 아니었다.
하지만 애당초부터 조나단은 가문의 후계 자리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그에게는 인간사의 모든 게 하찮기만 했다.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을 가졌으면서도 욕망에 휘둘려 짐승처럼 구는 자들을 경멸하고 혐오했으며, 그때부터 냉소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스스로만의 연구에 빠져들었다.
그나마 이 사태의 주범인 아버지란 작자는 그런 처지에 놓인 조나단과 리스티를 안쓰러워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해줄 수 없는 이상, 그런 동정 따윈 가증스럽게만 느껴졌다.
‘···바퀴벌레만도 못한 것들.’
혐오스런 것들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더 나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나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직계혈족 놈들도 더 이상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속과 거리를 둔 채 연구에 몰입할수록 조나단은 우주의 섭리가 가져다주는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인간사는 미개하고 혐오스러웠지만, 우주의 삼라만상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변치 않은 채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변치 않는 진리를 추구했다. 그 안에 담긴 이치를 파헤치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욕구를 대부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때론 기분전환이나 연구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 외유를 나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실망감만 떠안은 채로 돌아와야 했다.
그가 볼 때 세상의 지성체 대부분은 무지몽매하고 어리석기만 했다. 그와 동등한 시선에서 우주의 이치를 바라볼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중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그와 같은 배에서 태어난 여동생 리스티 뿐이었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며, 세상의 이면에 감춰진 진리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꿰뚫어보는 안목과 지성.
그렇기에 그가 인정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다 할 수 있는 동등한 존재였다.
물론 나이가 어린 탓에 아직은 조나단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고 지식을 쌓고 나면 진정으로 동등한 시선으로 세상의 진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무채색 같던 세상이 천연색으로 보였다. 연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무관심했던 그의 의식이 한 사람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조나단은 리스티를 성심성의껏 보살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해주고,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쳤으며 친족들의 위해로부터 보호해주었다.
그 덕분에 가문의 직계 혈족들도 리스티를 섣불리 건들지 못했다. 물론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외톨이처럼 따돌리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괴롭히는 일만큼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가문 내에서 조나단의 위상은 높았다. 그가 서출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압도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면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리스티 또한 심상치 않았다. 어린 나이부터 드러내는 천재성은 직계 혈족들도 따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물론 시샘하고 질투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직접적으로 수작을 부리는 일은 없었다.
이미 그 당시에도 조나단의 역량은 5위계였고, 그 성취는 어지간한 동급 실력자보다 크게 웃돌았다. 이미 그때부터 마이스터 급에 준하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게 홀로 실력을 갈고닦아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참으로 힘들고 험난했지만, 그 덕분에 여동생만큼은 험한 꼴 볼 일 없이 자라게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동생은 자립하여 관리국에서 작은 자리 하나를 맡게 되었고, 그때부터 조나단은 다시금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연구를 진행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여동생을 돌보느라 다소 다소 등한시 한 것도 사실이었다.
나름대로 기업을 일구고 기술을 발표하며 입지를 다지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물론 이런 일들은 그에게도 꽤 성가시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했다.
심도 깊은 연구에는 그만큼 막대한 재화와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획득한 재화와 자원으로 독자적인 전함을 건조한 뒤 우주 곳곳을 돌아다녔다. 처음 보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해 분석하는가 하면, 우주의 변두리 행성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생소한 영능학을 배워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조나단은 뜻밖의 인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 뵙는군요, 조나단 프론사이드.”
“누구지?”
난데없이 우주 공간 한복판에 나타나 접근해온 한 사내. 조나다는 강한 경계심을 느꼈다. 어지간한 자라면 안중에도 없을 것이나, 이 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본능이 경종을 울려대고 있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어떻게 된 거지?’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어떤 강자도 자신의 감각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지금 눈앞의 상대만큼은 제대로 격을 측량할 수가 없었다.
경각심을 드러내는 그 모습에,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제 이름은 멀린 엠리스. 관리국 소속의 오버러랍니다.”
“천외오천?”
“뭐 그렇게 불리기도 하고 있죠. 좀 낯 뜨거운 이명이긴 하지만요.”
조나단도 그 명성은 최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소환된 이들 중 가장 강력한 오버러들 다섯을 통칭해 그렇게 부른다고 들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현재 조나단의 경지는 7위계에 도달해 8위계의 경지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이라니.
그렇다면 적어도 그랜드 급, 그것도 상위의 경지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내게 무슨 일입니까? 관리국과 몇 번 거래는 했지만, 관리국 소속 오버러와 연관될 일은 전혀 없는 걸로 압니다만.”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다.”
“내게 관심을? 당신 정도의 거물이 나설 정도면 그 분이란 사람의 정체가 관리국장이라도 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베네트 국장님이 뛰어나신 분이긴 하지만, 제가 경외할만한 분은 아니죠.”
“그렇다면···.”
베네트 국장은 아르탈 행성 연합 내에서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한 존재였다. 물론 그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 가는 자들이 없진 않았지만, 현재 현역에서 활동하는 인물 중에는 그의 권력을 넘어서는 이가 없었다.
헌데 그랜드 급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짐작되는 멀린이 경외라는 말을 붙일 정도면 그분의 정체가 어느 주순인지 대충 추정이 되었다.
‘적어도 초월자라는 거겠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연합 내에도 초월자들은 여럿 존재하고 있었다. 에인션트 급에 이른 드래곤들은 물론 반신초월자들까지 다양했다.
‘반신초월자들 중에 내게 관심을 가진 이가 있는 모양이지?’
그들의 관심이 딱히 달갑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일. 일단은 초대에 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멀린을 따라간 조나단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거물과 대면하게 되었다. 상대는 놀랍게도 아르탈 행성연합의 정신적 지주와 다름없는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였다.
제아무리 세상을 자신의 눈 아래로 내려다보던 조나단이라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 대체 이분이 왜?”
실로 압도적인 존재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신에게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신격이 느껴졌다. 그녀가 조나단을 염려해서인지 딱히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조나단은 남다른 영감을 통해 그 누구보다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상위 신이라는 건가? 내가 느끼고 있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면··· 나 따윈 일게 단세포만도 못하겠어.’
나름대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조나단으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필멸자에 지나지 않는 자신이 초월자인 신에 비할 수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던 바지만, 그래도 그 격차를 몸소 실감하고 나니 그 격차가 소름끼치도록 절감되었다.
[조나단 프론사이드. 당신의 소문은 익히 들었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서 반갑군요.]
여신이 먼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인사를 건네오자, 조나단은 조심스런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괜한 허명으로 여신님의 귀를 더럽힌 게 아닌지 모르겠군요. 당신처럼 위대한 분께서 무슨 연유로 저 같은 이를 찾으신 겁니까?”
[이 우주를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예?”
조나단은 일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다짜고짜 우주의 멸망을 언급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리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저런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상위신이?
너무 허무맹랑하고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 조나단이 당황해 하자 루네리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뗐다.
[물론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으리란 건 알고 있어요. 다짜고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겠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 제 이름을 걸지요.]
여신이 자신의 이름을 걸겠다고 선언한 그 순간, 조나단은 기이한 감각을 맛보았다. 상리를 벗어난 무언가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일어나는 초월적인 현상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모든 것이 정지한 듯 멈추고, 대기마저 숨을 죽인다. 마치 물리법칙으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이 그보다 더 상위의 것과 조우하면서 일제히 멈춰서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느껴졌다. 시공간을 일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그것은 세상을 주관하는 법칙의 흐름이었다.
그냥 지나가듯 내뱉은 여신의 맹세가 바로 이 우주를 지탱하고 있는 극고한 섭리에 닿은 것이다.
‘···그렇군.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삼라만상의 법칙에 새겨 증명하는 건가?’
조나단의 천재적인 직관력은 그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건 마법사들이 행하는 마나의 맹세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에 있음을.
만일 저 선언이 거짓이라면 제아무리 상위신이라 해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아카식 레코드 정도가 아니야. 그보다 더 상위 차원의 섭리. 그래, 말로만 듣던 유그드라실 시스템(창멸법칙)?’
언젠가 지나가듯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수많은 차원을 아우르는 우주의 근원.
아카식 레코드가 각 차원을 관장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면, 유그드라실은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중심 코드 언어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저 헛소리라 취급했었는데, 지금 겪고 있는 현상을 보니 그게 그냥 허튼 소리는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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