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09화 (410/448)

17권-09화

묵룡탈혼수(墨龍奪魂手)

제 2식. 회련현묵강(廻連玄黙罡)

비의. 폭류산화(爆流散化) 용린폭살강(龍鱗爆殺罡)

수만에 이르는 묵룡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터져나갔다. 용권풍처럼 맹렬하게 회전하던 묵룡들이 터져나가면서 뿌려진 무수한 어둠의 파편들은 그 하나하나가 의형광검이나 다름없었다.

[크아아악!]

[크으··· 어떻게 이런!?]

드래곤들은 미처 피할 수조차 없었다. 그들을 둘러싼 우주의 어둠의 그들의 공간이동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용린폭살강의 파편은 시간이나 공간에 간섭하는 마법조차 먹히지 않았다. 물론 다급히 역장이나 방어결계를 구축하기도 했지만, 급조한 방어 따윈 가볍게 뚫고 들어올 정도였다.

그 결과 무려 삼십이나 되는 드래곤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거의 준신 급. 아니, 힘의 규모만 보면 어지간한 하급신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니··· 태무환은 이 한수로 무려 하급신 삼십 명을 격살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는 드래곤들은 내리깔 듯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네놈들이 자랑하던 한수가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라고 했나? 제법 재미있는 재롱이긴 하나, 내겐 그저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죽일 마음만 있었다면 너희 도마뱀들 따윈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다는 말이다.]

살아남은 드래곤들이 치를 떨었다. 그룬베일의 악명을 오래 전부터 듣긴 했지만, 설마 불완전한 강림 상태에서도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당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드래곤들이 그렇게 피해를 보는 사이, 아문과 조나단은 서둘러 유태진을 뒤로 빼돌렸다. 이 순간이 아니면 유태진을 구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태무환도 이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허튼 짓을 하는군. 어차피 네놈들은 이 주역에서 살아 도망치지 못한다.]

애당초 그는 여기에 있는 자들 중 단 하나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워프항행이 불가능한 차원단층 지역. 통상적인 항행 방식으로 도망쳐봐야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편, 전투를 주시하고 있던 베네트 국장과 베이노아 수상은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안색을 굳힌 채 후퇴할 기회를 찾았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은 순식간이었다.

“이대로 드래곤들을 잃을 순 없소.”

“하지만 대책이···.”

베네트 국장의 말에 베이노아 수상은 말을 흐렸다. 지금으로선 손쓸 방도가 없었다.

그룬베일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설마 드래곤들을 동원한 가장 강력한 한 수조차 이렇게 효과가 없을 줄은 정말 몰랐다.

베네트 국장은 자신의 무력함에 이를 악물었다. 연합을 좌우하는 관리국장의 직책을 갖고 있으면 뭐하겠는가. 이런 위기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기껏 끌고 온 함대조차 인베이더 함대의 견제 덕분에 제대로 활용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리고 설령 함대가 나설 기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룬베일을 상대로는 한낱 종이비행기만도 못할 터였다.

그는 자신의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그건 마치 작은 큐브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표면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걸 이대로 사용해야 하는가.’

이건 베네트 국장이 가진 최후의 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섣불리 사용할 수 없는 패이기도 했다. 일단 한번 사용하고 나면 돌이킬 수가 없었다. 적어도 수십에서 수백 년 이상은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룬베일과 결판을 내기 위한 마지막 전투에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든 유태진만큼은 무사히 지구로 보내야 해.’

루네리아 여신이 신신당부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유태진을 편애해서가 아니라, 그가 아니면 그룬베일을 상대할 자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물론 베네트 국장도 그 말을 다 믿을 순 없었지만, 조금 전 그룬베일을 상대로 분전한 것을 보면 약간은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게다가 여신께서 오랫동안 준비한 안배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선 일단 최종 격전지가 될 지구의 태양계 주역까지는 도달해야 해.’

그러자면 어떻게든 유태진을 살려서 지구까지 도달해야 했다. 그러니 마지막 격전을 위해 아껴둔 패라고 해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막 자신의 큐브 목걸이를 움켜쥐고 떼어내려 하던 순간, 예기치 못한 목소리가 그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아, 그건 사용하지 마세요.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요.”

자신이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다가오다니.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곳에는 익숙한 인물이 서 있었다.

“멀린?”

“예, 여러분들의 좋은 친구 멀린 엠리스 등장입니다~!”

“······.”

베네트 국장은 상대의 유쾌 발랄한 태도에 기가 막힌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게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할 법한 행동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왜 막는 거지?”

“지금부터 제가 손을 쓸 테니까요. 국장님의 그건 최대한 아껴두세요. 더 중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쓸 생각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베네트 국장이 그 말에 흠칫 놀랐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밝힌 적이 없는 이 비장의 한 수를, 멀린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멀린은 물을 틈조차 주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곧 저분께서 나설 겁니다. 그 틈을 타서 유태진 씨와 함께 재빨리 뒤로 빠지세요. 최대한 빨리 이 주역을 벗어난 다음 전 함대와 함께 워프로 후퇴하는 겁니다.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어요.”

“저 분?”

베네트 국장은 고개를 돌려 멀린이 지목한 사람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윤재민?’

모를 수가 없었다. 베네트 국장은 유태진과 관련된 것들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같은 보육원에서 자라온 유태진의 의동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루네리아 여신을 섬기는 마이스터 급 대신관이라고 들었는데, 그에게 대체 이 상황을 극복할만한 어떤 능력을 갖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멀린이 그분이라 높여 불러야 할 만큼 대단한 인물인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룬베일은 이미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드래곤 삼십이 죽어나간 이후로도 놈의 공격은 계속되어 추가로 이십에 이르는 드래곤들이 희생되었다. 남은 드래곤들은 고작 오십 남짓.

이대로 가다간 전멸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끝나기 전에 드래곤을 비롯한 반신초월자들이 모두 전멸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그는 즉각 후퇴를 지시했다. 이미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지금 내린 명령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즉각적인 후퇴였다.

물론 이런 경우 추격에 의한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멀린도 그 사실을 모를 리는 없을 터였다. 그에 대한 대책이 있거나, 혹은 그런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이곳을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래곤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잠시 발이 묶여있던 태무환도 그런 동태를 눈치챘다. 아니 진작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도망치겠다고? 가소롭구나.]

그가 우주공간 위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 바로 시공간을 뛰어넘었다. 드래곤들이 어떻게든 그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지만, 이미 그의 신형은 후퇴하기 시작한 함대의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마무류보(天魔無流步). 궁극에 이르면 축지를 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월신공의 면모인 것이다. 심지어 이건 차원단층지역이라는 제약마저 깔끔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일일이 상대하기도 귀찮으니 일거에 쓸어주마.]

묵룡탈혼수(墨龍奪魂手)

제 6식. 광량묵룡세(光量墨龍勢)

비의. 현룡의광전휘(玄龍意光電彙)

승천하듯 일어난 묵룡들이 무수한 전광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낙뢰처럼 뿌려지는 묵빛 전광들은 그 하나하나가 전부 의형광검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함대를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문의 부축을 받아 전함에 몸을 담던 유태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디선가부터 크게 번져나가기 시작한 눈부신 빛이 흑뢰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이건!?”

[대체 뭐지?]

사람들이 놀라 당황해했다. 태무환의 공격이 퍼부어지는 순간, 분명 전멸당할 줄 알았는데 이런 기적 같은 광경이 펼쳐지다니.

하지만 그룬베일의 화신인 태무환은 당황하지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깨닫고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노성을 내지를 뿐이었다.

[루네리아! 이젠 네가 직접 내 앞길을 막아서겠다는 거냐?]

그랬다. 흑뢰로부터 공화국과 연합의 함대를 보호한 것은 바로 루네리아의 권능이었다. 비로소 그녀가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들을 당신의 손에 전멸하게 놔둘 순 없으니까요. 그러니 물러나세요.]

루네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더욱 강력한 빛으로 태무환과 함대 사이를 격리시켰다. 이렇게 된 이상 태무환도 함대를 공격한다는 건 어려웠다.

그야말로 분통 터질 일이지만, 태무환의 눈동자는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은 함대를 보호하고 있는 빛의 근원지를 향해 있었다.

물론 그녀라고 해서 아무런 제약도 없이 권능을 행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상위신 중에서도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그녀를 옭아매는 섭리의 제약도 결코 작지 않았다.

물론 충분한 신앙과 간섭력만 있다면 잠시나마 권능을 발현해 물질계에 간섭하는 게 가능하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런 게 가능하려면 태무환이 정명한 운명을 가진 알카데인 황제의 육체를 차지한 것처럼, 강림이라는 과정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렇군. 그 녀석을 매개로 강림한 거냐?]

아니나 다를까. 태무환의 시선 안으로 하얀 빛 속에 휘감겨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바로 다름 아닌, 유태진의 의동생 윤재민이었다.

아군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순간, 강렬한 부르짖음으로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를 자신의 몸을 강림의 매개체로 사용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윤재민의 고유스킬 [세인트 트라이얼(Saint Trial)].

어떤 대가를 치름으로서 본신의 역량으론 이룰 수 없는 강대한 힘이나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본디 마이스터 수준에 불과한 윤재민의 역량으로는 루네리아를 자신의 몸 안에 온전히 강림시킬 수 없지만, 그는 세인트 트라이얼의 힘으로 불가능한 강림을 성공시켰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태진은 물론이고 공화국과 연합 함대는 방금 태무환의 흑뢰에 전멸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단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태무환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 차원단층 주역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의 위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강림은 아니군. 고작 해봐야 수십 분 정도인가. 일개 필멸자 치고는 놀라운 업적이지만, 그래봐야 그 결과는 죽음뿐이지.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닌가.]

태무환의 신안은 루네리아가 어떻게 강림할 수 있었는지를 꿰뚫어보았다. 본래라면 불가능한 강림이었지만, 윤재민의 고유 스킬 덕분이라는 사실도 간파하고 있었다.

세인트 트라이얼. 강력한 만큼 시전자가 원하는 수준에 따라 적용되는 리스크도 달라지며, 심지어 시전자의 목숨마저도 앗아갈 만큼 위험성이 높았다.

특히 지금처럼 상위 신격인 루네리아 여신을 강림시킬 정도면 단순히 목숨을 날리는 정도에서 그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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