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07화 (408/448)

17권-07화

‘신용해주는 건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의 리소스를 획득한 유태진은 이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들이 구축한 거대한 영격과 힘이 급격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큭!”

저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하나 된 힘은 중위신을 넘어 거의 상위신에 버금가는 수준. 고작 반신을 약간 넘어선 준신이 감당하기엔 벅찼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신을 압박해오는 격통을 참아내며 자신의 역량 이상의 방대한 기운을 모아들였다.

극에 달한 천룡무상신공은 그 모든 것을 아울렀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진정한 초월의 경지가 무엇인지.’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의 리소스를 통해 체험하게 된 상위 신격의 경지는 그에게 새로운 자각을 심어주었다.

물론 그가 깨달을 수 있는 부분들은 극히 적었다. 고작 준신에 불과한 수준에서 그보다 까마득한 상위의 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 얻은 극히 편린 같은 깨달음은 감당할 수 없었던 막대한 영격과 힘을 어떻게든 아우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눈을 들어 응시하자 바로 지척까지 이른 어둠의 창이 보였다.

진 무형검은 적어도 중상위 신, 높게는 상위신 정도 되는 신격과 비교되는 무의 경지. 제아무리 발악한다 해도 지금의 유태진의 깨달음으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에 미치진 못할지라도 아직 한 가지 시도해 볼만한 건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검의를 떠올린다. 전생과 현생을 거치며 쌓아온 깨달음에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를 통해 경험하고 있는 깨달음의 조각들을 녹여낸 결과,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던 무형의 검은 어느새 크게 확장되어나가 세상을 아우를 만큼 커져 있었다.

유태진은 그것으로 무형검(無形劍)이라는 틀을 세우고, 그 안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단순히 막대한 힘만 채워 넣는다고 해서 될 것이 아니었다. 그에 상응하는 이치와 합리가 필요했다.

새로운 검의가 그 안에 깃들고, 자연의 이치를 담아낸다. 마음으로 뜻을 세우고 대자연과 동조를 이룬다는 자연검의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허나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상대가 진 무형검이라는 고차원적인 무(武)를 꺼낸 이상, 그와 동등하진 못할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수를 내놓지 않고서야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다만 문제는 현재 유태진에게 허용된 역량이 여기까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았다. 순수한 무(武)로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닿으면 그만이었다.

‘와라!’

그가 심령으로 뜻을 일으킨 순간, 다섯의 최상급 정령이 소환되었다. 땅, 불, 바람, 물, 뇌전, 모두 다섯 가지 자연력을 상징하는 존재들.

그들이 유태진의 의념에 따라 일제히 무형검 안으로 깃들었다.

화수목금토로 구분되는 중원의 오행설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들은 오행의 형태를 하고 있는 대자연의 근간.

그러한 정령들이 무형검에 깃듦으로서 이를 뛰어넘는 경지의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무형검의 극한. 자연과 동조를 이룬 기운으로 검을 세우고, 그 안에 오행이라는 소우주를 구축함으로서 완성되는, 무형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초현심의(超現心意)의 검이었다.

화아악!

유태진이 뻗어 올린 오른손을 따라 오색찬란한 서광과 함께 한 자루의 거검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본래대로라면 스스로의 깨달음과 역량만으로 자연지기와 오행을 조화시켜 하나의 소우주 형태로 구축되는 무형검의 극의지만, 유태진은 자신의 부족한 역량을 정령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리고 오행에 관련된 주술과 선술, 각 속성을 제어하는 마법이 더해짐으로서 오행의 증폭과 상생조화는 거의 완벽에 가까워졌다.

과정은 지난했지만, 이 모든 게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일초 남짓.

“이것이 바로···.”

유태진은 오행의 무형검을 들어올렸다. 자신의 깨달음과 격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만큼, 온 몸이 찌부러지는 듯한 압력을 받아야 했지만 경지에 이른 외공절학 철환극강기로 버텨낸다.

그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내 전력이다!”

고오오오오오!

조화무형(造化無形) 오행합일(五行合一).

조화무형오행검(造化無形五行劍)

[이건··· 경지를 넘어선 영역이군.]

[권능? 아니야. 저건 영능의 일종인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이런···.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카르세인 세테나바라스의 리소스를 과반수이상 공유했어도 그렇지. 저건 하급신마저 뛰어넘는 수준 아닌가!]

오색의 거검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도 이 일대 주역을 압도하는 듯한 위압감이 퍼져나간다. 얼마나 놀라웠던지 에인션트 드래곤을 비롯한 반신초월자들마저 일순 크게 입을 벌릴 정도였다.

다만 한 사람만큼은 달랐다. 그의 얼굴엔 경이의 감정은 있을지언정 크게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역시 평범한 분은 아니란 겁니까. 루네리아께서 왜 그를 계획의 핵심으로 세웠는지 알 것 같군요.’

조나단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만약을 위해 아마페레오스의 최대 기능을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유태진이 보여주는 무위가 예상보다 더 경이적이긴 해도, 이 정도로 어찌될 그룬베일이 아니었다.

쿠구구구

이젠 바로 코앞까지 닥친 어둠의 창!

마치 우주의 종말을 연상케 하는 그 앞에서, 유태진의 조화무형오행은 시간을 초월한 속도로 거대한 흐름을 그려내었다.

천룡무상검법 제 4식. 적룡출하(赤龍出荷)

극의. 회룡무한(廻龍無限)

검로를 따라 그려지는 거대한 용의 그림자가 칠흑빛 창을 옭아매듯 휘감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의형강기 정도가 아니라, 유태진이 구현해낸 조화무형오행검 그 자체였다.

끄그그긋!

일단 한번 옭아매진 칠흑의 창이 점점 강하게 옥죄어지며 비틀린다. 회룡무한이란 옭아매는 대상으로부터 발생되는 운동에너지나 영력 등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삼아 옥죄임을 더욱 강하게 하는 절초. 그렇게 얻은 에너지들은 시공의 경계마저 갈가리 찢고 비트는 힘이 되어 옭아매진 상대를 확실하게 파멸시키고 만다.

콰드드득!

결국 칠흑의 창조차 용 그림자의 움직임에 박살나 흩어졌다. 제아무리 진 무형검이라 해도 일단 회룡무한에 걸려든 이상 무사할 순 없었다.

하지만 유태진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룬베일의 이번 공격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룬베일의 입에서 여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그럭저럭 첫 시험을 통과하긴 했군. 대부분 낙제점이긴 하다만···.]

그러자 반신초월자들의 입에서 기가 막힌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고작 시험이었다고?]

[이런 미친!]

자신들은 감히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칠흑의 창이었다. 헌데 고작 이게 시험이었을 뿐이라니. 그렇다면 그룬베일이 가진 본신의 역량은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하지만 그룬베일은 그들의 경악과 불신에는 아무런 감흥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유태진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역시··· 내 상대가 될 만한 자는 너 뿐인가.]

“······.”

유태진은 입을 다문 채 정신을 가다듬었다. 상대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장 감당하기 힘든 난적인 것이다.

제아무리 갖은 실전과 경험을 쌓아온 그라 할지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일단 가볍게 손을 섞어볼까?]

그 말과 동시에 그룬베일의 신형이 한 줄기 섬광이 되어 날아들었다. 아니, 그와 같은 표현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우주공간 위로 발을 내딛는 순간, 시간과 공간이란 물리적 제약조차 아득히 초월한 그의 신형은 어느새 유태진의 바로 지척에 닿아 있었다.

“큭!”

뒤늦게야 그의 접근을 인지한 유태진이 경직된 얼굴로 대응에 나섰다. 이젠 거의 준신마저 넘어선 그의 인식속도는 빛보다도 더 빨랐지만, 상대는 그보다 아득히 더 위에 다다라 있었다.

쾅! 콰아아앙!

유태진의 조화무형오행검과 칠흑빛 장세가 서로 어지러이 맞부딪쳤다. 그럴 때마다 우주공간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충격이 거듭 가해지면서 시공간 자체를 비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조차 싸움의 진행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군.]

[대체 저 자는 누구지? 저런 강자가 어째서 알려지지 않은 거냐?]

[어떻게 준신 급이 이 정도 힘을 발휘하는 건지 ]

다들 경악하면서도 숨죽인 채 그 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드래곤들은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를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 기울였다. 현재 유태진이 저렇게 싸울 수 있는 것도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의 리소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게 붕괴된다면 유태진의 전력은 거의 절반 이하, 아니 그 이상으로 격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드래곤들도 필사적이었다.

반면 유태진은 그룬베일과 한 수 한 수를 주고받을 때마다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제아무리 하급신에 준하는 깨달음에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의 리소스로 대폭 강해진 상태라 하더라도 감히 상위신에 비할 순 없었다.

그나마 지금 그룬베일이 유태진을 상대로 순수하게 무공을 겨뤄보자는 의도로 싸우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의문이 들었다.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룬베일이 구사하고 있는 무공은 천마신교의 천마만 전수받는 비전의 신공들. 하지만 역대 천마들이 같은 무공을 연성하더라도, 각 개인의 성향이나 체질, 그리고 습성에 따라 약간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그룬베일의 공격과 동작, 몸짓, 그리고 전투를 이어나가는 패턴과 리듬은 어디선가 경험해본 듯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래, 모를 수가 없지. 이건 분명···!’

유태진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가설에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체 그룬베일의 정체는 자신이 아는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이냐?]

콰아아앙!

상대방의 대갈일성과 함께 하얀 백색 장인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그건 천마의 비전 절학 중 하나인 지존천마수의 제 6식 섬멸극광인(殲滅極光印).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과정과 결과란 개념을 무시하고 날아드는 심의지도의 무학이었다.

유태진도 이에 맞서 절기를 쏟아냈다. 상대방의 섬멸극광인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한수인 만큼, 어떻게든 맞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8식. 천룡무상(天龍無上).

조화무형오행검으로부터 믿기지 않는 검의가 치솟는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심의지도에 기초를 둔 무리의 극치였다.

다만 일반적인 검리와는 원리와 결과가 사뭇 달랐다. 천룡무상검법은 용들의 만능성을 본 딴 천룡무상신공에 기반을 둔 만큼, 시전자의 뜻을 현실화 하는 사상제어능력에 가깝다 할 수 있었다.

투우우웅!

조화무형오행검의 검첨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었다. 파문과 같이 작은 동심원으로 시작된 왜곡 현상은 이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차원왜곡에 이르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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