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06화
[이건?]
[···놀랍군. 이게 정녕 반신초월자의 역량이라고?]
주변에 있던 드래곤들과 다른 반신초월자들조차 유태진의 폭증하는 존재감 앞에 감탄과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면 가히 에인션트 드래곤들마저도 넘어서는 수준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전황을 바꿀 만큼은 아니었다. 그의 역량은 찬탄할 수준이지만, 그래봐야 하급신 수준. 인간 반신초월자가 발휘하는 힘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놀랍긴 해도, 이 정도로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유태진이 드래곤들 사이에 합류한 순간 그들의 생각은 전혀 달라졌다.
[···그렇군.]
[생소하면서도 대단한 공부군. 특수한 영력제어술로 우리 드래곤들과 비슷한 힘을 발휘한다고?]
[역량 이상의 강함 뿐만 아니라, ]
유태진의 천룡무상신공이 본격적인 공능을 드러냈다. 드래곤들이 모든 영능에 대해 만능인 것처럼, 천룡무상신공도 그러했던 것이다.
게다가 유태진은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용성대원진.龍聖大源陣)]의 흐름을 읽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천룡무상신공에서 비롯된 영기의 패턴을 거기에 동조시킴으로서 드래곤들의 공세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카르세인 스테나바라스는 더욱 강력해졌다. 전보다 더욱 막중해진 압력이 그룬베일의 권능을 한층 더 강하게 압박해오고 있었다.
[음, 제법 괜찮은 기세군.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내가 오랜 기다린 보람이 있지.]
변화를 감지한 그룬베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은 드래곤들의 진세에 합류한 유태진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성가신 것들부터 치워야겠군.]
그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나는 순간, 우주에 가득 찬 어둠은 한 자루의 창이 되었다. 그것은 그의 권능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힘을 결집시킨 힘 그 자체였다.
어지간한 행성조차 꼬치 꿰듯 할 수 있는 거대한 어둠의 창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은 그 안에 담긴 힘의 크기를 깨닫고는 다급히 대응에 나섰다.
[멈춰라!]
용들의 용언이 일제히 터져 나오자, 섭리와 법칙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그것은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동결하며, 운동에너지 자체를 삭제하는 초월적인 권능들의 복합적인 작용.
큰 성계의 운행조차 멈춰 세울 만큼 강력했지만, 날아들던 어둠의 창은 거침이 없었다. 용언이 작용했을 당시만 잠시 멈칫했을 뿐, 곧 모든 족쇄를 가볍게 부순 채 전진하고 있었다.
[머··· 먹히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는 권능 자체에 대한 카운터인데!]
자신들이 가진 최강이자 최후의 패가 아무런 역할도 못한 채 무력화 됐다는 사실에 드래곤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상대가 우주에서도 악명 높은 최상위 신인만큼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효과가 없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드래곤들의 용언을 무시하면서 밀려오는 어둠의 창.
이건 결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당할 수도 없는 일. 결국 보다 못한 다른 반신초월자들이 나섰다.
백에 달하는 드래곤들에 비한다면 그들의 수는 한 줌도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만한 전력도 아니었다.
“···개념을 다루는 수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직접 막아주지.”
공화국 출신 반신 급 대마법사인 아르멘은 이 상황이 단순히 권능의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적의 마법을 짜내기 시작했다.
9클래스. 크러싱 핸드(Crushing Hand).
강력한 물리력을 지닌 역장의 손을 구현하여 광범위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크러싱 핸드는 마음먹기에 따라선 직경 수백 킬로미터의 소행성조차 단숨에 으스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그런 물리력조차 어둠의 창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공간을 이지러뜨리며 나타난 거대한 역장의 손이 그것을 붙잡는 순간, 역장의 손이 단숨에 소멸됨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충격이 그에게 전해졌다.
“큭! 이런 미친!”
그는 작게 피를 토하면서 물러났다. 소멸한 크러싱 핸드와 연결된 라인을 타고 막대한 데미지가 역류로 범람해온 것이다.
상식적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술식 자체에 방호체계를 구축해두기까지 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인과를 연결시켜 버리다니.
각혈한 그가 주춤대자 이번엔 다른 이가 나섰다.
“물러나. 이번엔 내가 손을 쓰지.”
여기에 아문 또한 가세했다. 예전 황제를 상대로 선보인 바 있는 그의 비장의 절기가 이 자리에서 다시 펼쳐진 것이다.
검에 집중된 천문학적인 영력이 눈부신 형태로 빚어지더니 곧 거대한 빛의 거검으로 승화되었다.
익스큐터 류.
극의. 일절단천(一切斷天) 굉검발도(宏劍拔刀)
과거-현재-미래에 존재해야 할 검격이 정확히 같은 지점을 동시에 베는 초시간 참격!
거기에 시간적 괴리에 의한 파괴력까지 더해진 이 일격은 단일개체에 한해서는 드래곤들의 카이드 웨이저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건 시간간섭의 권능 자체가 직접 작용하는 게 아니라, 검에 의한 타격이 가해지는 방식인 만큼 용언처럼 허무하게 소멸될 가능성도 없었다.
하지만··· 힘의 크기와 규모에서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상위신 급인 그룬베일이 구현한 어둠의 창은 아문의 굉검발도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서 베어들던 빛의 거검을 마치 유리공예마냥 가볍게 으스러뜨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진을 계속했다.
이를 본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대체 저걸 어떻게 막으란 거지?”
연정운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신음했다. 그도 손을 쓰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연정운을 비롯한 천외오천과 여러 그랜드 급 강자들도 이미 할 수 있는 최대의 수법을 펼쳐본 상황.
하지만 어둠의 창은 모든 것을 거침없이 부수고 소멸시켰다. 필멸자의 저항 따윈 개미의 발버둥보다 못하다는 듯 가볍게 짓밟은 그것은 이제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자들이 다급히 회피에 들어갔다. 이미 연합과 공화국 함대는 멀찌감치 거리를 벌린 채 어둠의 창의 궤도상에서 회피 중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둠의 창은 공간을 관통해 나가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그 주변의 공간까지 모조리 왜곡시켜 파괴하고 있으니까.
덕분에 공간이동까지 제약되는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음, 권능으로 막을 수 없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그때 또 다른 이가 나섰다.
그는 다름 아닌, 초월신함이라는 놀라운 전함을 갖고 모습을 드러낸 조나단이었다. 그동안 아문과 함께 연합 함대에 합류해 따라왔던 그가 드디어 전면에 나선 것이다.
[탄생하라. 극열의 광휘여!]
초월신함 아마페레오스의 힘을 자신의 것과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는 조나단의 영언이 울려퍼지는 순간, 강대한 권능이 또 한 번 기적 같은 현상을 일으켰다.
천체창조. 태양발현!
쿠구구구!
본디 존재할 리 없던 거대한 태양이 바로 이 자리에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핵융합 반응을 뜻하는 유사 인공태양이 아니라, 진짜 그 만한 규모와 질량을 갖춘 완벽한 태양의 구현이었다.
이미 알카데인 황제를 상대로 선보인 바 있던 태양의 힘은 가공할 광량을 쏟아내며 어둠의 창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했다. 태양 정도의 거대한 천체가 마치 유성처럼 돌진하는 광경은 마치 신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만들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에도 흔들림이 없었던 어둠의 창이었지만, 태양의 광량 앞에서는 조금씩 기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감소폭이 너무 미미했다. 효과가 있지만 어둠의 창을 어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태양은 어둠의 창에 그대로 관통되어 산적처럼 꿰어지더니, 곧 산산이 부서져 소멸하고 말았다.
“······!”
다들 믿기지 않는 결과에 침묵하고 말았다. 설마 태양 정도 되는 규모의 거대 질량체마저 한순간에 박살내 소멸시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대체 저 창의 정체가 뭐길래···?’
에인션트 드래곤들은 물론 이 자리에 있던 강자들도 어둠의 창이 대체 무엇인지 도무지 파악하지 못했다. 저게 그룬베일의 권능의 일부인지, 아니면 마법 등과 같은 어떤 특수한 영능의 힘으로 만들어낸 구현체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태진만큼은 달랐다. 그의 눈은 어둠의 창이 가진 실체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저건 권능이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다른 영능도 아니고.’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이젠 확실해졌다. 권능을 억압하는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의 영향력 아래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유지되고 있는 저 어둠의 창은 단지 어떤 이치에 따라 운용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 분명해. 저건 무리(武理)의 결과물이다.’
저 안에 담긴 고절한 이치들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어둠의 창은 그냥 어둠을 뭉쳐 만든 힘의 결정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군. 전설로만 들었던 저 실체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유태진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아직 닿지 못하는 아득히 먼 경지. 그것은 바로 진 무형검(眞 無形劍)이었다.
의형광검이 원영신의 힘을 기반으로 한정된 인과성립을 담아낸 것이라면, 그보다 상위의 무형검은 대자연의 기운과 요소, 속성과 섭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진 무형검은 그런 무형검보다 한층 더 높은 우주의 기운, 즉 만상지기를 담아낸 극고의 무리였다.
헌데 지금 그룬베일이 펼친 어둠의 창으로부터 진 무형검의 실체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꽤 익숙한 수법이군. 조금 형태가 변형되긴 했지만 절대 몰라볼 수 없지.’
유태진은 어둠의 창이 어떤 무공에 의한 것인지도 알아챘다.
그것은 천마신교의 주인 천마에게 계승되는 무공 중 하나인 묵룡탈혼수(墨龍奪魂手). 그걸 일종의 창의 형태로 변형시켜 쏘아낸 것이었다.
그룬베일의 손에서 천마의 절학이 구사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애당초 알카데인 황제도 묵룡탈혼수를 구사했었으니, 그 몸을 차지한 그룬베일 묵룡탈혼수를 구사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황제가 묵룡탈혼수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의식을 치르면서 그룬베일과 일정 부분 동화되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막을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치솟았지만, 곧 그 생각마저 깨끗하게 지워냈다.
지금은 스스로의 역량을 의심할 때가 아니었다. 가능한 전심전력을 집중해야 했다.
막지 못하면 죽는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명제인 것이다.
고오오오오!
그가 가진 모든 역량이 지금 이 순간 전부 발휘되었다. 그리고 천룡무상신공과 동조를 이루고 있는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의 힘 중 일부도 그의 통제 하에 들어왔다.
에인션트 드래곤들도 이를 눈치 챘지만, 그들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가능성을 읽고는 카르세인 스테나바나스의 제어권마저 몰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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