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400화 (401/448)

16권-25화

이윽고 카슈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걸 용케 알아챘군.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아챈 거지?”

“베네트 국장이 그러더군. 그동안 연합 내에 기밀을 인베이더 측으로 유출하는 첩자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최근에야 간신히 색출할 방법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렇군. 방금 그 특이한 영자파를 일으킨 술식인가?”

“그래. 네놈들은 어떤 특수한 술식으로 자신의 무의식 일부를 떼어내 가상의 자아를 만들어내서 본인의 모든 것을 철저히 숨겨왔다고 하더군. 지금의 영자파는 바로 그 술식에 균열을 내는 거지. 가상의 의식 뒤에 숨겨놓은 네놈들의 진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도록 말이야.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고.”

카슈는 그제야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자초지종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쌓은 오랜 공로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딱히 격분하거나 허탈해 하진 않았다. 단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정말 뜻밖이군. 단점 하나 없는 완벽한 술식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지난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페르소나]가 이런 식으로 파훼될 줄은 몰랐어. 대체 누구의 작품이지?”

지금까지 카슈는 [페르소나] 술식이 완벽하다고 믿어왔었다. 실제와 다름없는 가상의식을 덧씌우는 방식인 만큼, 진실여부를 판별하는 감지기기나 술식들도 이를 전혀 분별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로이란이 대답해주었다.

“리스티 프론사이드. 그 아이의 작품이지.”

“···그렇군.”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카슈는 곧바로 납득하고 말았다. 최근 초월신함이란 걸 드러냄으로서 놀라운 천재성을 과시한 조나단 프론사이드의 여동생이자 그와 맞먹는 천재성을 자랑하던 리스티 프론사이드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가 페르소나의 완벽한 파훼식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아이틀란 행성에서 발견한 비밀설비에서 추출해낸 각종 데이터와, 제이나의 기억을 지웠던 이름 모를 술식의 흔적 때문이었다.

리스티는 틈나는 대로 이것들을 연구해왔고, 지금처럼 연합 내의 고정첩자들을 색출하고 본색을 드러내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로이란, 네 녀석은 왜 날 기습하지 않은 거냐? 분명 그럴 기회가 있었을 텐데. 나는 네 녀석이 나서기 전까진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카슈가 페르소나 파훼식에 대한 의문을 해소한 뒤에 찾아온 것은 바로 로이란이 어째서 자신을 기습하지 않았느냐였다.

만일 그가 기습해왔다면 제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로이란이 쓴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다. 내가 입고 있는 이 물건이 기척과 존재감은 완벽하게 감춰주긴 하지만 완벽하진 않더군. 평범하게 움직이는 건 몰라도, 영력을 사용한 급격한 움직임에는 기척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려. 사실상 실패작이지.”

“그렇단 말이지?”

카슈의 얼굴 위로 작은 조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숨어든 로이란 때문에 살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하긴 마이스터 급에도 못 미치던 실력이 불과 4년 사이에 그렇게까지 늘 순 없는 일이지. 내 감각을 속이려면 적어도 나와 비슷하거나 그랜드 급을 목전에 둔 상태여야 가능하니까.’

자신감을 되찾은 카슈의 기세가 크게 들끓어 오르기 시작한다. 막대한 중력이 그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형태로 번져나가며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드드드! 콰직!

교외에 지어진 카슈의 저택이 종이로 지어진 모형마냥 구겨져 무너진다. 하지만 정작 저택의 주인인 카슈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런 저택 따윈 수십 개가 허물어진다 해도 카슈가 가진 재산에 비한다면 티끌만큼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로이란은 굳어진 표정으로 자세를 갖췄다. 발목까지 지면 아래로 깊이 파고들 만큼 막대한 중력이 그를 짓눌러왔지만, 그는 진기를 운용하면서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본 카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확실히 많이 는 모양이군, 로이란. 내 앞에서 멀쩡히 서 있는 걸 보면 말이야. 그동안 꽤 절치부심으로 수련해온 모양이지?”

“뼈를 깎는 심정으로 해왔지. 그리고 오늘 카슈 당신을 상대로 만방에 알릴 생각이다. 웰라우드 가가 진정으로 다시 일어섰음을!”

그 말과 동시에 로이란의 검이 순식간에 벼락처럼 뻗어나갔다. 그것은 허공에 긴 궤적을 남기며 대상을 베어내는 극쾌의 참격이었다.

웰라우드 류

단선(斷線)

카슈가 발하는 중력장이 일시에 갈라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카슈가 극쾌의 참격 앞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하지만 카슈는 당황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로이란을 자신보다 하수라 단정 짓긴 해도,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나름대로 쓸만한 한 수가 있을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재빨리 손을 뻗자 역중력이 발생하면서 로이란의 쾌검을 밀어냈다. 제아무리 빠르고 날카로운 쾌검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집중된 중력의 압력을 거스르며 뻗어나가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한 줄기 빛처럼 뻗어나가는 쾌검이 점점 느려지다가 어느덧 멈춰서게 되었다.

“고작 이 정도였나?”

카슈가 비웃듯 말했다.

헌데 그 순간, 로이란의 검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때를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빠르고 날카롭게 베던 로이란의 검세가 전혀 다른 형태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은 모습이었다.

웰라우드 류

역광(逆光)

“뭐야!?”

쾌검을 역중력으로 멈춰 세웠던 카슈는 이를 거슬러 올라오는 검격에 당혹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이 힘이라면 어지간한 중형 전함도 저 멀리 밀어낼 만한 힘이거늘, 이걸 베어낸다고?

하지만 당황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카슈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즉시 중력파를 일으켰다. 그를 중심으로 다수의 중력이 뭉치는가 싶더니, 마치 함선의 그래비티 블래스트마냥 뿜어진 것이다.

물론 그 출력과 위력은 준대형 전함의 그것에 비할 순 없으나, 일개 개인을 상대로는 터무니없이 강력한 한수였다.

구오오오오!

밀려드는 다수의 중력파를 응시하면서 로이란은 더욱 폭발적으로 진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전신이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전신의 기운이 단숨에 몇 배로 부풀어 올랐다.

이것이 웰라우드 가가 일어버렸던 핵심 비전 중 하나인 광소대연(光昭大燃).

자신의 영력을 극도로 공진, 순환시켜 출력과 위력을 일시에 증폭시키는 수법이었다.

물론 그만큼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영력을 비롯한 모든 능력치를 대폭 증폭해주지만, 영력의 소모가 극심한데다가 그에 비례해 소모하는 체력도 적지 않다. 또한 육체에도 그만한 과부하가 가해지기 때문에 잦은 사용은 금물이었다.

화아아악!

일순간 로이란의 전신이 마치 빛으로 이루어진 듯 보였다. 극도로 증폭된 영력의 힘이 이런 형태로 발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막대한 힘은 그가 쥔 검신으로 몰려들었다.

웰라우드 류

위진(危振)-천운멸세(天隕滅世)

웰라우드 류의 위진이 검의 기세로 상대를 위압하거나 튕겨내는 붕검의 일종. 이를 극대화시킨 비의인 천운멸세는 검세로 일대 공간을 장악함으로서 모든 것을 분쇄하고 붕괴시키는 기세검도의 극치였다.

로이란의 일검의 휘둘러지는 순간 하늘이 떠나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이 일대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분쇄되었다.

하늘의 구름은 기화되어 사라졌고, 지표면도 분자 단위로 부서지면서 소실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슈의 중력파포도 예외는 아니었다.

콰아아아!

강력한 중력파 포들이 검세 앞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니 단순히 밀려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극도로 응집된 중력자가 검세 압력에 분쇄되어 소실되어가고 있었다.

카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중형 전함 수척도 박살내는 내 일격을 어떻게 네놈 따위가···.”

“마음먹으면 대형 전함의 포격도 베어내는 웰라우드 류 앞에서 감히 힘의 크기를 논하다니, 같잖다!”

그랬다. 웰라우드 류는 본디 우주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대출력의 화력이 오가는 전투에 맞춰 발전된 무예였다.

그렇기에 웰라우드 류의 한 수 한 수는 일개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묵직하고 강력했다. 얼마 전까진 핵심 비전을 잃어버린 탓에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온 지금은 그 진면목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크···.”

카슈는 당황한 표정으로 멀찌감치 물러섰다. 자신에게 밀려오는 저 터무니없는 검세를 정면으로 받아낼 생각은 없었다.

‘미친! 이건 힘의 크기만 따지면 그랜드 급마저 넘어섰다. 아니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마이스터 급조차 못 되던 작자가 그새 그랜드 급을 바라보는 수준이 되었다고?’

그는 황급히 중력장을 수십 겹으로 중첩시키고, 중력장이 작용하는 방향성을 서로 다르게 작용하도록 만들어 검세를 흘리고 빗겨나가게 만들었다.

그 시도가 성공한 것인지, 간신히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은 적지 않았다. 중력장을 형성하던 오른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카슈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내뱉었다.

“···몰락한 줄 알았던 웰라우드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성세를 회복하다니. 정말이지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본가의 비전 핵심을 잃은 탓에 정체되어 있었을 뿐,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60년 동안의 고된 수행이 결코 헛된 게 아니었지.”

로이란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렇게 화답했다.

영맥이 크게 뒤틀리면서 적지 않은 세월을 누워서 보냈다곤 하지만, 그는 무예에 대한 고찰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쓰러지기 전에도 그는 끊임없이 노력했었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비전을 잃어버린 탓에 아무리 수련해도 성과가 없는 웰라우드 류를 붙잡고 사는 그를 다들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뭐라 하든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의 전부였고, 선조가 전해준 소중한 무예였으니까.

그렇게 피땀으로 흘려보낸 세월이 무려 60년에 이르렀다. 비록 별다른 성과는 없다 해도, 그간 얻은 게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비전이었다. 제아무리 얻은 깨달음이 상당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루는 토대의 일부가 불완전하면 이걸 제대로 체화시킬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라졌다. 유태진 덕분에 잃어버린 웰라우드 가의 비전은 완벽해졌고, 그 결과 60년 동안 수련해가며 얻었던 깨달음들이 그의 정신과 영혼에 녹아들어 완전히 체화되었다.

이제 그는 마이스터의 끝에 이르러 그랜드 급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우우우!

막대한 힘이 끊임없이 끓어오른다. 광소대연으로 이끌어낸 그의 영력이 이젠 포화 상태를 넘어 외부의 기운까지 함께 공진시키고 있었다.

이젠 그랜드 급마저 압도할 만큼 거대한 힘을 두른 채, 로이란이 나직이 말했다.

“카슈, 이걸로 증명하겠다. 네놈을 쓰러뜨림으로서 웰라우드 가가 우뚝 섰음을.”

“뭐라? 고작 몰락해버린 옛 잔재 따위가 감히 건방진 소리를!”

로이란의 도발적인 선언에 격분한 카슈가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가 본격적으로 전력을 다하자, 전신에서 뿜어진 중력파가 이젠 어두운 형태로 유형화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로이란도 그에 맞서 기운을 응집시켜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정점이 이른 순간, 카슈와 로이란 그 둘의 기운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격돌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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