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99화 (400/448)

16권-24화

* * *

관리국 산하의 오버러 연합의 부의원 직을 맡고 있는 [카슈 올 브레이더]는 조용히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동안 베네트 국장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제동을 걸어왔던 그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를 견제하는 것조차 벅차게 되었다. 아니 견제는커녕 이쪽이 무너지게 생긴 것이다.

바로 라인트라 대전 때문이었다. 그때 베네트 국장이 그 대전을 승리로 이끌어가면서 그는 예전보다 더한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그의 권력이 이젠 감히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관리국 국장 자리도 노려 볼 만하다고 여겨왔던 카슈에게는 가히 분통 터질 일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어떻게든 놈을 실각시켜야 해.”

이미 그가 보유하고 있던 세력은 크게 축소된 상태였다. 유태진을 건드렸던 크잔트와 코우버가 좌천된 이후에도 그의 여러 수족들이 잘려나갔다. 이게 다 베네트 국장이 은밀히 손을 써온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이게 딱히 증거가 없다 보니 카슈도 대응하기가 곤란했다. 베네트 국장이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기며 은밀히 써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라인트라 대전 이후 영향력이 위축된 카슈로서는 대응하기조차 곤란했다. 덕분에 그의 세력과 그를 따르는 계파는 거의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대로 더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좀 더 극단적으로 나가는 수밖에.”

그는 이를 갈아붙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되도록 이런 수를 쓰고 싶진 않았지만, 이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존의 정치적 권력 다툼으로 승산이 없다면 아예 다른 방법을 쓰면 된다.

‘그래,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아예 판을 새로 짜는 거지.’

아르탈 행성 연합이라고 해서 세력구도가 굳건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수많은 행성들의 연합체인 만큼 중앙의 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행성정부나 지방 세력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구심점인 이능관리국과 여신교단, 그리고 메네스 이종인 협회의 위상이 워낙 견고한 탓에 지금까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카슈는 바로 이들을 하나로 규합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이런 방법이 있음에도 선택하지 않은 건 실패할 경우 정치적 생명은 물론이고 반역자가 되어 몰락하게 되는 리스크 때문이지만, 이젠 더는 수단방법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오버러 연합 회의소 건물을 나선 카슈는 곧바로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은 뜻밖에도 도시로부터 좀 떨어진 교외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 규모만큼은 어지간한 부호의 저택보다 더 크고 화려한 바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연합의 모든 오버러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최대 단체인 오버러 연합의 부의장이다. 그런 카슈의 재력이 평범할 리가 없었다.

모듈밴더로 뭔가를 조작하자 대저택 안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기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성간항행용 개인셔틀이었다.

가까운 성계라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개인용 셔틀이었는데, 카슈는 여기에 불법적인 개조를 첨가하였다. 그 결과 개인용 셔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먼 우주항행까지 가능한 물건이 되었다.

이제 막 셔틀에 탑승하려던 그때, 생각지도 않던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불법 개조된 셔틀을 타고 어디로 갈 생각이지?”

“누구냐?”

카슈가 안색을 굳힌 채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네놈은··· 로이란 웰라우드?”

상대의 정체가 너무 뜻밖이었던 카슈는 괴이한 표정이 되었다.

로이란 웰라우드. 한때 연합의 5대 가문 중 하나였다가 몰락했던 웰라우드 가의 현 가주였다.

비전을 잃어 더 성장할 길이 없었던 그는 결국 무리한 수련을 하다 영맥이 뒤틀리면서 식물인간으로 전락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유태진과 인연이 닿아 다시 회복하게 되었고, 잃어버린 비전도 복원하면서 가세를 회복중이라 들었다.

그런데 그런 작자가 왜 자신의 저택에 은신한 채 도사리고 있었단 말인가.

‘심지어 내 감각마저 속였지. 실력이 S랭크에도 못 미치던 자가 어떻게 된 거지?’

저절로 경각심이 일었다. 그가 알던 로이란 웰라우드의 실력은 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다.

물론 비전을 복원하면서 어느 정도 실력이 늘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이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하지만 카슈는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무슨 일이냐? 네놈이 왜 내 저택에 숨어 있던 거지? 이게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는 걸 잘 알 텐데.”

그러자 로이란 웰라우드가 피식 웃더니, 빈정대듯 대꾸했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내가 왜 찾아왔는지는 카슈 부의장 당신 스스로가 더 잘 알 텐데. 그리 떳떳했다면 굳이 불법 개조된 셔틀로 몰래 아르탈 행성을 벗어나려 했던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해석할까?”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군. 내게 무슨 누명을 씌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이러는 건 불법이지 않나? 그리고 내 저택을 함부로 드나들 생각이면 영장이라도 갖고 오는 게 좋겠군.”

카슈의 말은 정론이었다. 그에게 무슨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행해지지 않았으면 딱히 처벌할 수 없었다. 물론 증거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경우 로이란 혼자 올 게 아니라 관리국의 제압부대가 대거 투입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반박을 듣고도 로이란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영장? 물론 범죄 사실에 대해선 명확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만 영장이 발부되긴 하지. 그게 절차니까. 하지만 예외의 경우가 있다. 바로 연합을 전복시킬만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이런 선조치가 가능하지.”

“전복이라니, 무슨 헛소리를!”

카슈가 일순 어처구니없다는 반발하며 외쳤다.

사실 그는 연합을 전복시킬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그가 연합의 중앙 세력에 불만을 품는 자들을 규합하려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을 밑바탕으로 삼아 연합 내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쥐기 위함이었다.

물론 해석하기에 따라선 정권을 탈환하려는 쿠데타 모의 정도로 해석될지도 모르지만, 연합 자체를 무너뜨린다는 건 너무도 과한 추측이었다.

반역자로 몰아가는 듯한 태도에 화가 치민 카슈의 목소리가 서릿발처럼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로이란 가주. 네가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건 권력이지 연합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야. 그러니 괜한 누명 씌우지 말고 꺼져. 내 손에 박살나고 싶나?”

단순히 말 뿐인 위협이 아니었다. 카슈를 중심으로 무거운 압력이 팽배하게 번져나고 있었다.

이건 그냥 기세에 의한 압력이 아니다. 그의 이명이 [중력의 지배자]인 것처럼 강력한 고중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로이란은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체내의 진기를 운용하면서 오히려 그 고중력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이를 본 카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

물론 고위 오버러라면 충분히 견딜만한 수준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약한 중력도 아니었다. 적어도 견디기 위해 자세를 잡거나 인상은 쓸 줄 알았는데, 좀 전과 전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 말은 자신의 중력장이 로이란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단 의미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로이란은 멀쩡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지금 현재의 당신은 그럴 생각 따윈 없겠지. 하지만 당신 안에 숨어있는 의식의 본체는 어떨까?”

“의식의 본체? 지금 내 앞에서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는 거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카슈였다. 하지만 로이란은 더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래, 황당무계하겠지. 지금의 당신은 말이야.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본의식은 어떨까?”

그것은 카드 형태로 되어 있는 술식단말체였다. 영력을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술식이 발동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간이형 아티팩트.

기이이잉!

술식회로가 가동되면서 묘한 무형의 파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딱히 주변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기이한 파장 형태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카슈가 돌연 눈매를 찌푸렸다.

“로이란 가주. 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거슬리는 영자파 따위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술식단말체에서 발생되는 영자파는 초음파와 같아서 영적 감각을 거슬리게 했지만, 딱히 위해를 끼칠만한 건 아니었다. 아니, 이런 파장으로는 일반인에게도 유효한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굳이 비유한다면 거슬리는 소음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당신 말대로 정상적인 경우라면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영자파지. 그냥 영적 감각이 조금 거슬리는 게 전부고. 하지만 당신한테는 좀 다를 텐데.”

“뭐?”

로이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변이 시작되었다. 단지 거슬릴 뿐이었던 영자파가 갑자기 뇌리로 파고드는 게 아닌가.

카슈는 당황한 얼굴로 의식을 집중시켰다. 자신의 정신세계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영자파. 이건 마치 상대를 세뇌할 때 쓰는 방식과 흡사했다.

‘감히 이 딴 수작을 부려? 로이란 이놈이!’

하지만 고작 이런 시시한 세뇌 따위에 당할 정도였다면, 자신은 이미 오래 전에 몰락해 무너졌을 것이다.

카슈는 곧바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세뇌는 일단 걸려들고 나면 치명적이긴 하나, 그만큼 걸기도 까다롭고 지난한 수법이었다.

의식만 집중하고 있으면 잘 걸려들지 않는데다, 의지력이 강하고 정신력이 높은 자들은 아예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특히 그랜드 급에 해당하는 카슈라면 세뇌 같은 지저분한 수법 따윈 사실상 먹히지 않는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뭐지, 이게!?’

일반적인 세뇌였다면 튕겨나가거나 소멸되었어야 할 기묘한 파장이 조금도 흩어지지 않은 채 점점 심상 깊은 곳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경험해본 세뇌나 정신계 영능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었다.

카슈는 위기감을 느꼈다. 자신에게 먹히지 않을 거라 여겼던 로이란의 이상한 수작질이 자신의 의식세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흔들리는 수면처럼 요동하는 그의 의식 너머로 알 수 없는 뭔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의식이었다.

[하···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나?]

평소에는 인지할 수 없던 깊은 심연 너머에서 울려오는 의사. 카슈는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별개의 의식이 깊이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당황해했다.

[뭐냐, 너는! 어째서 내 안에 숨어 있었지?]

그렇지만 정체불명의 의식은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탄하듯 내뱉을 따름이었다.

[상대방의 술수에 넘어가 이렇게 드러내고 말다니. 하긴 무의식 일부를 떼어내 만든 반편이 정도로는 역시 무리였나?]

[뭐라고?]

카슈는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자아와 정신은 저 의식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분체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가?

이에 대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상대방이 손을 쓰는 게 더 빨랐다.

[이제 네 역할은 이걸로 끝났다. 더 이상 의식을 나눌 이유가 없군. 그러니 너는 모든 것을 원류인 내게 바치고 사라져라.]

카슈의 소멸을 선고하는 울림과 함께 의식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순 없어! 나는···나는···!]

어떻게든 흩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했지만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백년 넘게 카슈란 이름으로 살아왔던 자아는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지녔던 감정과 지식, 정보는 이를 소멸시킨 의식에 자연스럽게 합류하였다.

그 뒤, 잠시 흔들렸던 카슈의 눈동자가 다시 초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불과 1초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카슈로부터 풍기는 기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를 눈치 챈 로이란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숨겨둔 본의식이 제자리를 찾은 모양이군, 오버러 연합 부의원 카슈 올 브레이더. 아니 이젠 점 다르게 불러줄까?”

그리고 그 순간, 카슈로부터 풍기는 기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인베이더가 심어놓은 고정첩자라고 말이야.”

로이란의 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카슈의 두 눈이 로이란을 응시했다. 그 눈빛은 더 차갑고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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