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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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데인 황제는 자신의 기함에 마련된 옥좌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제 자신의 힘은 중급 신에 다다라 어지간한 초월자를 웃도는 영역에 이르렀다.
상급 신 이상의 신들이 섭리에 의해 대부분 제재를 당하고 있는 상황임을 생각한다면, 중급신이야말로 실질적으로 우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자의 단계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힘으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직도··· 아직도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손을 뻗는다면, 절대무적의 힘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아직 한 번의 의식이 더 남았다. 이것까지 치른다면 짐은 상급신, 아니 더 나아가 최상급 신도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연합과 공화국을 병탄하고, 너저분한 인베이더의 무리마저 일소해 버리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터.
물론 인베이더의 신좌들도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긴 하나, 그때쯤이면 그들 따윈 더 이상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진 못할 것이다.
물론 제 1신좌의 그룬베일은 우주에서도 절대적인 신격 중 하나지만, 그래봐야 부족한 간섭력 탓에 직접적으로 활동하지도 못하는, 허신(虛神)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
그에 반해 자신은 얼마든지 물질계에 관여할 수 있었다.
황제는 아직 인간으로서 남은 수명이 존재했고, 그것이 다하기 전까진 이 우주에서 마음껏 활동하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초월자가 되면서 본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수명도 크게 늘었지. 적어도 700년 이상은 거뜬하겠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단꿈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직 마지막 의식은 치르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를 위한 선제조건인 아르센티아 주역은 아직 장악하지도 못했으니까.
게다가···.
‘영 느낌이 좋질 않군. 역시 그때 그 검 때문인가?’
자신에게 유일하게 큰 타격을 준 유태진의 마지막 한 수!
물론 그 일격도 위협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급 신에 버급가는 존재가 된 자신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놈의 손에 쥐어져 있던 낡은 한 자루의 검. 거기서 기이한 위화감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대체 그 검이 무엇이기에···.]
알카데인 황제는 그 점이 영 못마땅했다. 물론 그 검은 자신에게 일격을 가한 뒤, 산산이 부서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고작 검 한 자루가 불안감을 심어줬다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검이다. 더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마지막 순간에 끼어들었던 아문과 정체 모를 전함이 더 거슬렸다.
아문의 역량이야 뻔하니 걱정할 바가 못 되었지만, 자신의 현룡의광전휘를 막아낸 전함은 그로서도 예측불허였다. 상대가 일반적인 초월자다면 영혼이나 신격으로 그 역량을 파악할 수 있다지만, 마도공학의 결정체인 전함은 그게 불가능했다.
어떻게 되먹은 물건인지 심지어 신안으로도 거의 읽히지가 않을 정도였다.
‘설마 전함 따위가 열람제한을 사용한다고?’
이건 초월자들 간에 흔히 쓰이는 방식이었다. 자신과 관련된 아카식 레코드의 정보를 다른 초월자들이 열람할 수 없도록 임의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보다 급이 훨씬 높은 초월자라면 그런 수법도 통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열람이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전함 따위가 자신의 열람을 차단한다? 하도 기가 막혀 일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특이하긴 하다만 그래봤자 일개 전함이다. 짐의 상대는 아니지.’
당시엔 유태진에게 입은 타격 때문에 정상이 아니라 밀어붙이지 못했지만, 조만간 이마저도 온전히 회복될 터. 그때는 자신의 행보를 방해한 죄를 톡톡히 치르게 만들 것이다.
헌데 그때였다. 누군가가 헐레벌떡 자신의 대전으로 들이닥치는 게 느껴졌다. 황제는 그것이 영 못마땅했던지 짜증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이냐, 게리드.]
절차도 없이 무례하게 대전에 들이닥친 사람은 다름 아닌 게리드였다.
그래도 황제는 이를 탓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음지에서 황제를 위해 일해 온 게리드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내놓았다.
[폐하,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 진격을 명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
알카데인 황제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다짜고짜 진격을 진언하니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아직 공화국 놈들의 함대도 다 처리하지 못한 이 상황에서 진격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아직 짐은 만전인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님을 그대도 잘 알 텐데.]
적당히 타일러서 돌려보내려 했던 황제는 게리드의 입에서 터져나온 생각지도 못한 보고에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현재 아르센티아 주역이 텅 비었습니다.]
[뭐라?]
[공화국 함대가 일제히 물러났습니다. 지금 아르센티아 주역은 아무도 없는 무주공산의 상태입니다.]
[어째서···?]
황제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공화국 입장에서 볼 때 아르센티아 주역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이거늘, 이렇게 쉽사리 내놓고 후퇴한다니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서였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자신이 놈들의 동태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 전함이 내 시야를 가린 건가?’
그 외에는 딱히 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유태진을 제외하고 가장 큰 변수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그 이름 모를 전함 밖에 없었다.
[그렇군. 게리드, 그대의 말대로라면 좋은 기회겠지. 하지만 이것이 놈들의 함정일 가능성은 없나?]
[아주 없다고 보긴 어렵지만, 현재 적들의 존재는 수십 광년 거리 내에선 전혀 관측되지 않고 있습니다. 함정을 파뒀을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흐음, 그런가? 일단 조심스럽게 전진하도록 하지. 그리고 함정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확실히 장악하도록.]
[예.]
물러나는 게리드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알카데인 황제는 여전히 의문에 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각 항성계로 연결되는 중요 허브인 아르센티아 주역을 이렇게 쉽사리 포기한다고? 대체 무슨 꿍꿍이 속이지?]
하지만 별다른 단서가 주어지지 않은 이상, 머리를 굴려본다 해서 답을 찾아낼 리가 없었다. 결국 황제는 더 깊게 생각하길 포기하였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세 번째 의식만 치르면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게 된다. 그때가 되면 무슨 수작을 부리든 의미 없는 일이 될 터.]
그때가 되면 공화국이든 연합이든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완전무결해진 자신의 손에 의해 이 우주는 새롭게 개편될 것이다.
* * *
공화국 함대의 총사령관 브라운 하이더는 유태진으로부터 느닷없이 날아온 연락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후퇴하라니!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공화국 함대는 알카데인 황제를 물러나게 만든 소속불명의 전함과 아문 익스큐터 덕분에 간신히 기사회생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힘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월자와 맞먹을 수 있는 전함이라니··· 이건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어도 너무 한참 넘어섰다. 심지어 이 소속불명함의 목적조차 알지 못하는 지금, 경계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밝혀진 사실은 전함에 타고 있는 이가 연합의 5대 가문 출신인 조나단 프론사이드라는 것 하나 뿐. 어째서 그가 이곳에 오게 되었고, 제국의 군부대신이었던 아문과 함께 황제를 적대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는 전부 의문뿐이었다.
그래서 일단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황제라는 공통된 적을 가진 데다, 이쪽을 적대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먼저 제안을 해온 것이 바로 유태진이었다. 자신이 소속불명함의 인원들과 직접 만나보고 상황을 파악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유태진이 비록 연합 출신이긴 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공화국 함대는 진작 황제의 손에 전멸했을 터. 목숨을 걸고 싸워 준 그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베이노아 수상도 신뢰하는 인물인 만큼, 그 정도 권한을 내주는 건 그리 어렵지만도 않았다.
그 결과 유태진은 연정운과 함께 아마페레오스라는 전함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불과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런 황당한 통신을 보내오고 말았다.
“후퇴하면 아르센티아 주역을 놈들에게 그냥 내주란 거요? 그렇게 되면 이곳을 허브로 삼는 주변의 수많은 항성계들은 어떻고? 전부 제국의 손에 떨어질 게 분명한데!”
[그건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좀 더 크게 봐야 합니다. 황제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황제가 정말로 정복욕 때문에 이번 전쟁을 시작했다고 여기는 겁니까?]
“···그건.”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도 그 점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제국이 굳이 공화국을 침략해서 얻을 이익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력을 넓히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그 역량을 다른 곳으로 돌려 미개척지를 개발하는 것이 낫지, 오히려 손실만 더 커지는 전쟁을 치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황제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건 아오. 그렇다면 대체 이유가 뭐요? 조만간 본국에서 출발한 지원군도 도착할 거요. 그들이 합류하면 알카데인 황제가 제아무리 강력해도 이곳을 사수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 판단하고 있는데···.”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은 황제가 의심스럽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태진은 단호하리만큼 딱 잘라 말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그렇소?”
[총사령관께서 아는지 모르겠지만 황제는 현재 중급 신에 버금가는 초월자입니다. 제가 가진 특수한 신기로 그동안 그의 힘을 봉쇄시켜 왔지요. 덕분에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젠 그 신기도 힘을 다해 부서졌습니다. 그래서 더는 황제를 저지할 방도가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게 되었죠.]
“그··· 그래도 아마페레오스라는 전함은 분명 황제의 공격을 저지해 물러나게 했소. 그 전함의 힘이라면···.”
[이미 그 당시 황제는 신기의 힘을 담아낸 일격에 막심한 데미지를 입은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정상이었다면 아마페레오스도 황제를 감당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아···.”
자신이 보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된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은 저도 모르게 탄식성을 흘려내고 말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서둘러 오고 있는 지원군 중에는 반신 급 초월자가 셋이나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까지 가세한다 해도 중급 초월자인 황제를 감당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후퇴한다 해도 그게 의미가 있는 거요? 결국 황제의 손에 언젠가는 전멸하게 될 텐데.”
더 이상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아서일까? 이젠 낙담한 얼굴로 브라운 하이더가 자조의 말을 내뱉던 그때,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유태진과의 통신에 끼어들었다.
[그에 대해선 제가 말씀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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