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89화 (390/448)

16권-14화

“으음, 아까 황제에게 타격을 준 거라면 그때 그 검을 말하는 건가···?”

연정운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황제에게도 유효한 데미지를 줬던 유일한 일격을!

당시 유태진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낡은 검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휘두른 순간 대적할 수 없다고 여겼던 묵룡을 그대로 꿰뚫고 나아가 황제를 베어내기까지 했다.

유태진의 본신 역량을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했을 한수였다.

그렇다면 역량 이상의 뭔가가 더 존재했다는 말인데··· 당시 변수라 할 만한 점을 찾는다면 그 낡은 검 외엔 별달리 의심해볼 만한 게 없었다.

‘하긴 녀석이 이상하리만큼 다 낡아빠진 검을 고집했었지. 분명 그 검에 내가 알지 못했던 뭔가가 있었던 거야.’

하물며 조나단은 방금 전 신좌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소모해버렸다고 표현했었다. 실제로 유태진의 낡은 검이 황제에게 일격을 먹인 뒤 소멸된 것을 생각하면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다.

헌데 그때 아문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입을 열었다. 조나단이 했던 말 중에서 자신이 언뜻 들어본 듯한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서였다.

“좀 전에 혹시 엑스칼리버라고 했었나?”

“예, 그랬죠.”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조나단. 확답을 들은 아문의 얼굴이 급변했다.

“엑스칼리버라면 내 기억으론 연합의 창시자인 제노디안 리피라이터 님의 성명병기로 알려져 있었는데··· 설마 그걸 말하는 건가? 그냥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예, 바로 그 엑스칼리버가 맞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군. 천년 전의 무기까지 다시 나타나다니. 그런데 그게 유태진 그대에게 있었다고?”

그러자 아문은 물론 연정운의 시선까지 유태진에게로 집중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유태진도 더 이상 비밀로 할 수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닿아 제 손까지 들어오게 되었죠. 지금은 먼지처럼 부서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저런···. 전해져오는 바에 의해만 상당히 강력한 검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망실하게 될 줄이야. 좀 더 사용할 수 있었다면 큰 힘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는 듯 아쉬움을 내뱉는 아문. 그는 옛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잊어버렸지만, 제노디안 님의 엑스칼리버는 하나의 상징이었지. 지금은 그분의 이름과 업적만 알려지고, 엑스칼리버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부 덮여버려서 말이야. 심지어 검 자체도 오래 전에 사라지는 바람에 더는 실증할 수도 없어서, 이젠 아주 극소수의 인물들만 아는 허황된 이야기로 남아버렸지.”

“그랬나? 어째 엑스칼리버에 대해서 들어본 바가 없다 싶었는데 그래서 알려지지 않은 거였군. 우리 같은 지구 출신이라면 그 이름을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었을 텐데 말이야.”

연정운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신기해했다.

지구 출신이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원탁의 기사를 거느린 전설 속 브리튼의 왕 아서가 가진 성검, 엑스칼리버. 설마 그 이름을 이런 곳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물론 연정운으로선 그 아서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엑스칼리버가 지금 아문이 언급한 그 엑스칼리버와 우연히 이름이 같았을 거라 생각했을 뿐, 서로 동일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조나단, 당신은 엑스칼리버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설마 리스티에게 전해 들었나?”

이번에는 유태진이 조나단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로서는 어째서 철저히 비밀에 붙여온 엑스칼리버를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었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조나단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꾸했다.

“그럴 리가요. 리스티와 연락 끊고 산지 오래 됐습니다. 하물며 그런 타인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할 아이도 아니죠.”

“그럼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엑스칼리버에 대해 알 수는 있어도, 그걸 내가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이가 없었는데.”

유태진도 리스티가 함부로 비밀을 발설할만한 인물이 아님을 모르진 않았다. 다만 그녀가 아니라면 비밀이 유출될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답변이 돌아오니, 엑스칼리버의 비밀누설에 대한 문제는 완전히 미궁에 빠진 것 같았다.

헌데 그때였다. 곧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 상대방의 입으로부터 돌아왔다.

“멀린 님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절 이곳으로 보내신 것도, 그리고 아문 님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멀린 님의 지시 때문이었고요.”

“뭐라고요? 멀린이!?”

“이 사태를 예견한 것도 그분이었죠. 꽤 오래전부터 말입니다.”

유태진은 꽤 당황스런 표정이 되었다. 설마 여기서 멀린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해서였다.

물론 멀린이라면 엑스칼리버를 자신이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엑스칼리버가 만들어질 때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었으며, 1500년이 지난 지금은 그 누구보다 엑스칼리버에 관련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 중 하나였다.

“멀린 님은 엑스칼리버의 복원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계시죠. 조만간 다시 뵙게 될 겁니다.”

“엑스칼리버를 알고 있어? 그리고 복원에 대한 것도? 조나단, 당신 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지?”

다급히 묻는 그 모습에 조나단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꽤 많은 걸 알고 있지요. 아마 유태진 씨보다 더 많은 걸 알지도 모르겠군요.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많아서요.”

“그럼 그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건 그 때문인가?”

“예, 엑스칼리버를 복원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요. 심지어 다 낡았던 본체까지 박살났을 정도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이젠 복원이 아니라 새로 만든다고 해야겠군요.”

“···그렇군.”

유태진은 비로소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째서 그동안 아무리 찾아도 멀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지, 그 이유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태가 이렇게 될 줄을 예견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왔던 것이다.

“그럼 조나단 당신이 공화국 함대를 지원와준 것도 멀린이?”

“예, 엑스칼리버의 유일한 주인인 당신이 이런 곳에서 죽어버리면 곤란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원병력으로 선택된 겁니다. 지금 연합도 인베이더들 때문에 정신이 없거든요.”

현재 제국 함대가 공화국을 침공하기 시작한 이후, 인베이더들도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벌인 바 있던 대규모 전면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연합의 세력권 내의 행성들 중 상당수가 갑작스럽게 침공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으로선 서둘러 그 공세를 막느라 지원을 보내기도 빠듯한 실정이었다. 하물며 공화국에 지원병력을 보낼 여력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아니 보낼 여력이 있다고 해도 전력을 추리고 편성할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조나단은 아니었다. 그는 프론사이드 가문의 장자이긴 해도, 오래 전에 가출하여 연합의 전력으로 편입되지 않은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렇기에 멀린도 서슴없이 그를 이쪽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아마페레오스란 이 전함도 멀린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유태진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알카데인 황제조차 일순 낭패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전함이었다. 멀린이 이 함의 제조에도 관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조나단은 아니라며 말했다.

“아마페레오스는 제가 건조한 전함이 맞습니다. 다만 이걸 개발하기까지 멀린 님의 공이 크다는 건 부정할 수 없군요. 멀린 님이 절 타 차원으로 유학 보내주지 않았다면 이런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 말입니다.”

“타 차원으로 유학을?”

“예, 덕분에 많은 걸 배웠지요. 확실히 차원이 다른 곳이다 보니 기술발전의 방향도, 그 수준도 전혀 다르더군요. 정말 유익했습니다.”

대체 어떤 지식을 배워오면 이런 괴물 같은 전함의 건조가 가능한 것일까?

유태진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체 멀린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지금 어떤 계획을 준비 중인지가 문제였다.

“멀린이 내게 전하란 말은 없었나?”

그렇게 묻는 유태진에게, 조나단은 심각성에 맞지 않는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떻게든 때가 될 때까지 꼭 살아남으시라고 하더군요. 황제나 인베이더에게 각 성계나 주역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으음···.”

그 말은 도망쳐서라도 반드시 살아남으란 뜻이었다. 아마도 엑스칼리버의 복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견디란 의미이겠지.

하지만 그러자면 얼마나 많은 자들이 희생될 것인가. 그나마 제국의 황제라면 좀 낫겠지만, 인베이더의 무리가 점령하는 곳들은 당연히 지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걸 두고 봐야만 한다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다들 무거운 침묵에 휩싸인 그때, 조나단이 먼저 다음 행보를 제시했다.

“일단은 아르센티아 주역으로부터 후퇴해야 할 겁니다. 지금 황제는 고삐 풀린 야생마나 다름없는 상태거든요. 냉정하게 말해 지금 전력으론 절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유태진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페레오스와 아문의 가세로 후퇴했다곤 하지만, 황제는 중급신에 버금가는 초월자였다. 심지어 그의 권능과 인과간섭까지 봉쇄해주던 엑스칼리버까지 없어진 상황이니, 이젠 대적할 도리가 없었다.

‘그냥 중급신이 아니야. 놈은 천마의 무공을 적극 사용하고 있어. 이젠 어지간한 전력으론 감당이 안 되겠지.’

물론 모든 전력을 동원해 싸운다면 얼마간 그의 진격을 저지할 순 있겠지만, 그래봐야 하루 이틀 정도일 것이다. 지금도 피해가 적지 않은 상태인데, 더 싸워봐야 피해만 늘릴 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내줘야할 곳은 그냥 내주는 게 좋을 겁니다. 지켜낼 역량이 없다면 그게 현명하지요. 훗날을 기약하는 겁니다.”

“···그러자면 어떻게든 베이노아 수상을 먼저 설득해야 하겠군. 브라운 하이더 사령관도 그렇고.”

현재 이곳의 전력은 공화국 함대가 주축이었다. 연합 소속인 유태진이 함대의 후퇴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그렇기에 실제 최종결정권자인 베이노아 수상과, 현지 사령관인 브라운 하이더 사령관의 결단이 필요했다.

그러자 조나단이 그에게 염려 말라는 듯 덧붙여 말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베네트 국장님이 이미 설득을 끝내 놓으셨을 테니까요.”

“베네트 국장이? 설마 그도 멀린이 준비하고 있는 그 일과 관련이 있나?”

“물론이지요.”

“하아··· 그랬다 이거지?”

유태진은 여태껏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미 다들 오래 전부터 인베이더의 준동에 대비해 왔었던 것이다.

단지 수면 아래서 은밀히 움직인 탓에 자신만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문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결론을 내놨다.

“그럼 이걸로 결정되었군. 엑스칼리버를 복원할 때까지 전력을 보전하면서 후퇴한다, 이게 맞나?”

“예. 지금은 그게 최선이지요.”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오랜 전설에 희망을 걸어보는 것도 말이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유태진이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아문 경. 앞으로 계속 황제와 적대해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겠군.”

그가 무엇을 우려하는 지 깨달은 아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게 아니네. 바로 제국 그 자체에 충성을 맹세했지. 게다가 지금의 황제는 잘못되었어. 초대황제께서 내린 유훈조차 어긴 작자지. 그러니 그에게는 더 이상 황제의 자격이 없다네.”

그에게서 황제에 대한 존경이나 존중은 보이지 않았다. 이젠 명백한 적의만 남아 있었다.

유태진은 그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그가 아군이 된 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건 그렇고··· 멀린은 대체 엑스칼리버를 어떻게 복원할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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