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12화
잠시 황당함을 금치 못했던 황제가 곧 냉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쨌든 네놈도 짐의 적이란 거냐?]
[음··· 뭐 그렇게 되겠군요. 일단 황제폐하의 목적은 저와 반대의 입장에 있으니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정말 안타깝긴 한 것일까? 여전히 농담이라도 주절대는 듯한 투로 대꾸해오는 조나단이 영 거슬렸지만, 황제는 침착하게 물었다.
[그렇군. 그런데 아마페레오스라는 그 전함은 네놈이 건조한 물건인가?]
[오호,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제가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지요. 이 이상 가는 전함은 이곳 우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황제는 조나단의 자랑을 귓전으로 흘려들으면서 아마페레오스를 살폈다. 여전히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중급 신에 버금가는 자신의 신안을 가릴 수 있는 전함이라니. 심지어 현룡의광전휘를 막아내기까지 했다.
어디서 이런 터무니없는 게 튀어나왔는지 영문 모를 일이었다.
조나단이 말했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잘나신 황제폐하 나리. 어지간하면 저도 싸우고 싶진 않지만 나름 입장문제라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흥분은 가라앉히시고 오늘은 이만 물러나 주신다면 더 이상의 유혈사태는 없을 것입니다만··· 역시 그러시진 않겠죠?]
[건방지구나. 요상한 전함 하나 만들었다고 감히 짐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더냐!]
황제는 이것저것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식을 치러 초월자가 될 때도 그랬고, 2차 의식을 치러 중급 신에 버금가는 힘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작자들. 문제는 초월적인 힘을 얻고도 이런 놈들을 쉽사리 없애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3차 의식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치러야 되겠군.’
황제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그리고 그 의식을 완성하기 위해선 이 아르센티아 주역을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화아악!
거대한 힘이 황제를 중심으로 응집되었다. 그것은 좀 전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어둠을 모아들여 힘으로 삼는 묵룡탈혼수의 한수였다.
현재 상태론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묵룡의 출현에 유태진의 안색이 무거워졌지만, 조나단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암흑 속성을 지배하는 황제폐하의 수법은 이미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점도 명백하죠. 자, 그럼 받아보시길!]
위이이잉!
그 즉시 우주공간을 뒤흔드는 일그러짐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점차 크기를 늘려가더니 어느새 환한 빛 덩어리가 되어 불타오르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할 규모의 선홍색 구체! 그것은 말 그대로 태양의 현현이었다.
[강력한 핵융합 반응!]
[···이럴 수가! 유사 인공태양이 아닙니다. 실제 태양 규모의 핵융합 현상입니다.]
[뭐야? 정말로 태양을 만들어냈다고?]
함대 곳곳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인공태양을 구현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가 않다. 흔히 사용되는 핵융합 탄이라면 얼마든지 생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조나단의 아마페레오스가 만들어낸 것은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그냥 몇십 초 반짝하는 정도로 끝나는 유사 인공태양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실제 태양과 다름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화아악!
놀랍도록 환한 광량이 사방을 비추었다. 바로 지척에 떠오른 태양 앞에서는 더 이상 어둠이고 뭐고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둠이란 카테고리를 벗어날 수 없는 묵룡도 마찬가지. 눈앞에 떠오른 강력한 태양의 빛 아래 마치 눈 녹듯 소멸되기 시작했다.
[태양창조라니. 이런 황당무계한!?]
황제도 눈앞의 결과 앞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태양과 같은 거대한 천체를 구현해낼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이대로라면 묵룡탈혼수는 완전히 무력화 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이래서는 일개 전함이라고 경시할 수도 없었다. 아마페레오스 그 자체만으로도 초월자에 준하는 전력이라고 판단하는 게 옳았다.
이를 목도한 유태진도 일순 자신의 눈을 의심할 만큼 놀람을 금치 못했다.
“···미쳤군. 심지어 태양을 만들어 저걸 무력화시켜? 대체 어떻게 되먹은 전함이길래···.”
묵룡탈혼수에 대응하기 위해 따로 비기를 만들어내기까지 했지만, 정말로 태양을 만들어낸다는 발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아니, 설마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었다.
[더 싸워 보시겠습니까, 황제폐하. 저희가 만만찮다는 걸 슬슬 아실 때도 되었을 텐데요.]
[······.]
황제는 침묵을 지켰다.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조나단의 말에 분기가 치솟긴 했지만, 성질대로 움직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특히 아마페레오스의 전력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 정도가 전부인지, 아니면 더 강력한 한수를 숨기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태진이란 녀석에게 입은 타격이 적지 않군. 이래서는 전력을 발휘할 수가 없구나.’
물론 싸워서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황제는 일단 함대를 뒤로 물리기로 결심했다.
[···좋다. 오늘은 짐이 물러가도록 하마. 하지만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짐의 뜻을 방해하는 네 녀석들을 확실히 박멸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자신의 함대와 함께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물러나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유태진은 무겁게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로 형편없구나.’
모든 게 엉망이었다. 경지를 되찾아 반신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력하기만 했다. 특히 신좌들에게 사용되어야 할 엑스칼리버가 부서져버린 게 너무나도 컸다.
이래서는 조만간 대대적인 침공을 시작할 인베이더와 대적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엑스칼리버를 다시 되살릴 방법을···.’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멀린을 만나야 했다. 엑스칼리버의 탄생에 관여했던 멀린이라면 어떤 방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헌데 그때, 아마페레오스로부터 통신이 연결되었다. 조나단이라는 낮선 사내의 홀로그램 영상이 어느새 유태진의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아,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군요. 유태진 씨. 정말로 반갑습니다.]
웃는 낯빛으로 인사를 던져오는 조나단에게, 유태진도 감사를 표했다.
[예, 저도 반갑군요. 조나단 씨. 당신 덕분에 간신히 살았습니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만일 조나단이 때마침 당도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물론이고, 공화국 함대까지 황제의 현료의광전휘 앞에 전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자 조나단이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이 정도야 별 거 아닙니다. 게다가 제 동생까지 돌봐주시고 있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요.]
[동생이라면··· 혹시 리스티를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리스티가 바로 제 동생이지요. 오래 전에 집나가서 그동안 얼굴도 못 보고 지냈는데, 유태진 씨 덕분에 잘 지낸다지요?]
[역시 그랬군요.]
애당초 조나단이 자신의 성을 프론사이드라고 밝힐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었다. 그런 성과 조나단이란 이름을 쓸 자는 이 우주에서 또 찾아보기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이건 상상을 넘어서는군.’
리스티에게 조나단이 어떤 인물인지 여러 차례 들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실제로 마주하고 보니 듣던 것보다 더했다.
리스티가 평소 자신의 오빠를 두고 전 우주를 뒤져도 비교할 자를 찾지 못할 만큼 대단한 천재라고 평가했는데, 그게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초월자를 상대할 수 있는 전함이라니. 심지어 황제는 그냥 초월자도 아니고 무려 중급에 버금가는 초월자다. 그를 물러서게 할 정도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라면 아마 전 우주를 뒤져도 나올 수 없는 천재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유태진 씨께 전해 드려야 할 말들이 있는데, 일단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군요. 이곳에서 말을 나누긴 뭣하니···. 그리고 아문 경에 대해서도 신변 처리를 해야 하고요.]
자리를 옮기자는 그 말에 유태진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제국 출신인 아문에 대한 문제는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 제국을 등진 것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 * *
공화국 함대는 아마페레오스의 호위 하에 일선에서 후퇴했다. 제국 함대가 물러선 지금이야말로 함대를 물려서 태세를 정비할 때였다.
그리고 유태진과 연정운은 아마페레오스로 건너갔다. 조나단이 그들을 함내로 초청했기 때문이었다.
우주공간을 유영해 함체로 다가가던 연정운이 질린 듯 내뱉었다.
“이런 괴물 같은 함선이 존재할 줄이야.”
다가갈수록 실감나는 그 거대함이 새롭게 다가왔다. 단순히 큰 게 전부가 아니라 초월자를 상대로 맞설 수 있는 성능까지 생각하면 더 괴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해치를 통해 함 내로 들어서자 조나단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제국의 군부대신이었던 아문 익스큐터도 함께 서 있었다.
유태진과 연정운은 그들의 안내에 따라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 편한 장소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히야··· 정말 크네. 아마드 급 대형전함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연정운은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금 걸어가는 거리만 해도 그러했다. 이곳이 전함의 내부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쾌적한 거리, 그리고 차가운 금속으로 둘러싸인 함선 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환경들. 특히 따사로운 햇살과 하늘의 정경은 자연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일 테지만, 조금도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조나단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페레오스는 무려 초대형 급이니까요. 앞으로는 아마페레오스가 새로 신설될 초대형 급의 기준이 될 겁니다. 최대 5000만명을 수용할 수 있지요.”
“헉, 5천만 명이라니. 이건 아예 스케일부터 다르잖아.”
이 정도면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행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천만 명이면 어지간한 국가 수준의 인구이니 독자적인 세력 구축도 가능할 것이다.
“대체 이런 전함을 어떻게 만든 겁니까? 이렇게 거대한 전함이 건조되었다면 소문이 없을 수가 없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제가 독자적으로 만들었지요. 자원이야 우주에 넘쳐나는 게 자원이니 구하기 어렵지 않고, 제가 나름대로 마련해둔 재산이 많거든요. 그걸 활용하다 보니 어려울 게 없더군요. 애당초 노동인력이야 로봇으로 대체된 지 오래니 기술만 있으면 못할 것도 없죠.”
“···그렇군요.”
별로 어렵지 않다는 투로 대답하는 조나단의 모습에 연정운은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거대한 전함 한 척을 건조하는 일을 무슨 개인 수공예품 하나 만드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너무 황당해서였다.
‘하긴 리스티도 보유한 기업과 재산이 상당한데, 녀석의 오빠인 조나단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
특히 조나단은 리스티도 자신이 도저히 쫒아갈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고 인정한 천재였다. 그런 능력자라면 독자적으로 전함을 건조할만한 재력을 확보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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