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11화
묵룡탈혼수(墨龍奪魂手)
제 6식. 광량묵룡세(光量墨龍勢)
극의. 현룡의광전휘(玄龍意光電彙)
온 사방으로 번져오는 흑뢰의 폭풍! 그것은 피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우주적인 재앙이었다.
공화국 함대는 물론 유일하게 황제와 맞설 수 있었던 유태진조차 아무런 저항조차 못하고 그것을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제아무리 반신 급 초월자라 해도 지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룰 수 있는 힘은 무한하다 해도, 그걸 운용하는 의념과 심력은 결코 무한할 수 없었으니까. 천룡무진광에 모든 심력을 소모한 탓에 이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남은 여력을 모두 쏟아 부었던 게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신좌를 상대하기 위한 엑스칼리버마저 소모했음에도 이 꼴이라니.
유태진은 참담한 얼굴로 전면을 응시했다. 그에게 최후를 고할 칠흑빛 종말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피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다. 의형광검이란 바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성립시키는 인과성립의 무리.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흑뢰의 폭우는 마치 우주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 속에서 쏟아지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실제 주변의 시간이 정지했다기 보단 인과성립에 의한 그의 현룡의광전휘가 시간의 개념을 초월하면서 벌어진 결과물. 마찬가지로 인과에 관련된 방식으로 대응하거나, 그에 상응할만한 규모의 힘으로 받아내지 않고서는 결단코 막아내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연정운은 물론 공화국 함대와 바니아스 함대도 거의 망연자실한 상태로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모두가 죽음을 앞둔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벌어졌다. 유태진을 비롯한 함대들의 전면 앞으로 시공간이 렌즈마냥 불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워프아웃의 전조현상이었다.
이를 발견한 유태진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뭐!? 기존의 워프 방식을 초월한 워프라고?’
이건 결코 평범한 워프 아웃 현상이 아니었다. 기존의 워프였다면 흑뢰들이 뻗어오는 초월의 시간 사이에 절대 끼어들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지만 지금 이 워프 아웃은 흑뢰가 공화국 함대를 덮치기 직전이라는 절호의 타이밍에 맞춰 발현되었다. 만일 이것이 시간개념을 초월한 영역에서 전개된 게 아니라면 절대 맞추지 못했을 타이밍이었다.
끄그그긋!
공간이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웜 홀 너머로부터 거대한 함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속불명의 전함은 상상을 초월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규모는 현 우주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마드 급 대형 전함의 규격마저 아득히 초월했다.
전장만 무려 200km 이상! 이 정도면 거대한 소행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유태진으로선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대단한 전함이라 해도 초월자의 권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건 보편적인 상식이었다. 물론 출력과 화기, 그리고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전함이 발휘할 수 있는 위력도 그만큼 강력해지겠지만, 그래봐야 물리적인 영역에 한정될 뿐.
과정과 결과를 주무를 수 있는 인과성립과, 초월적인 권능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전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현룡의광전휘에 담겨진 결과가 완전히 성립되기 전에 시간개념을 뛰어넘어 이 자리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심지어 현룡의광전휘의 흑뢰들을 막아내고 있지 않은가?
위이이잉!
[차원전환결계 전개.]
소속불명의 전함을 중심으로 기이한 파공성이 번져나가더니 알 수 없는 영역이 이 일대에 구축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위상전환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결계구축현상이었다.
그 위로 사정없이 내리꽂힌 흑뢰의 폭우들은 마치 유리에 차단된 빗줄기마냥 맥없이 흩어져 소실되고 말았다.
황제가 분노와 당혹성이 뒤섞인 목소리를 토해내었다.
[이걸 막아낸다고?]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자신이 전개한 현룡의광전휘의 위력은 수십 개의 행성을 박살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물며 그런 힘을 간단히 막아낸다고?
아니, 그 전에 전함 따위가 어떻게 인과성립을 무시하고 끼어들 수 있었는지부터가 의문스러웠다.
[크··· 크다!]
[뭐, 뭐지? 방금 저 전함이 황제의 공격을 막아낸 거 맞지?]
[말도 안 돼! 전함이 시간 개념을 뛰어넘은 초월자의 공격을 어떻게?]
공화국 함대에서 놀람에 찬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들로서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결과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때, 거대한 소속불명함으로부터 통신이 날아들었다.
[다들 방가방가. 이제부터 차원신함 아마페레오스 참전합니다.]
[바··· 방가방가? 이런 때 무슨!?]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대체 누구기에 이런 심각한 위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장난스런 문구를 보내온단 말인가?
한편 황제의 두 눈은 여전히 소속불명함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정보를 읽어내려 했지만, 알 수 없는 뭔가가 그가 가진 초월적 인지를 막아내고 있었다.
‘보통 전함은 아니라 이건가?’
혹시나 전함에 탑승한 자들 중 자신과 비견되는 초월자가 있는가 의심도 들었지만, 그런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반신 하나와 그에 못 미치는 녀석이 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반신의 존재는 자신도 잘 아는 이였다.
황제가 뿌득 이를 갈며 내뱉었다.
[기가 막히는군. 짐을 거역한 반역자가 아직도 고개를 내미는가. 무슨 낯짝으로?]
그랬다. 그가 느낀 반신 급 초월자는 다름 아닌 제국의 군부대신이자 최강의 무인이었던 아문 익스큐터였다.
론데니움크라스에서 도주한 이후 행적이 묘연해졌는데, 하필이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마페레오스라고 밝힌 소속불명함에서 뛰쳐나와 황제와 정면으로 대치하게 된 사내, 아문 익스큐터가 그 말에 차가운 냉소로 응수했다.
“우습군요. 반역자라니. 애당초 배신한 건 황제폐하 본인이십니다. 초대 황제의 유훈을 잊으신 겁니까?”
[건방지구나. 이젠 짐이 곧 제국이니라. 오랜 옛 유훈 따위에 얽매일 이유가 없지. 오히려 짐의 뜻을 거부한 네놈이야말로 배신자가 아니더냐!]
“괴변은 적당히 하시지요. 자신의 야욕을 위해 만인을 희생시킨 분께서 무슨 배신자 운운입니까. 당신의 그 행위야말로 제국의 민중들에 대한 배신입니다!”
[그래,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네놈과 짐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바. 이번만큼은 결코 살려 보내지 않겠다.]
“···그렇게 쉽진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문의 전신에서 막강한 존재감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황제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미약할 따름이었다.
‘아문이라면 제국 최강의 기사의 이름인데··· 그마저 황제와 등을 돌린 건가?’
유태진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바가 있었다. 그랜드 급을 뛰어넘어 반신 급에 다다른 강자인 만큼, 숙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헌데 그가 황제와 대치하다니. 제국 출신이란 게 조금 미덥긴 하지만, 황제를 적대시한다면 아군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몇 분 사이에 겨우 몸을 추스른 유태진은 즉시 아문의 옆으로 다가가 가세했다.
“저도 당신을 거들기로 하지요, 아문 경.”
그러자 아문이 유태진을 힐끗 곁눈질했다.
“당신이 그 유태진인가?”
“저를··· 아십니까?”
자신을 바로 알아보는 듯한 눈치에 그렇게 묻자, 아문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그동안 소문은 들었지. 들리는 대로라면 천외오천과 동급이라고 하던데··· 소문이 훨씬 더 못했군. 설마 반신 급 장자였을 줄이야. 실력을 감추고 있었나?”
“실력을 감췄다기보단 최근에야 간신히 이룬 경지입니다. 거기까지 소문이 나지 않을 만도 하지요.”
“그런가? 아무튼 조나단이 말한 대로 큰 도움이 되겠군. 그가 당신을 반드시 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던데··· 역시.”
유태진은 아문이 언급한 조나단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걸 묻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쪽을 향한 황제의 기세가 위험천만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건방진 것들! 감히 짐을 앞에 두고 속닥거리다니! 짐을 무시하는 게냐?]
그 즉시 무시무시한 검세가 공간을 쪼개어 왔다. 그것은 정확히 유태진과 아문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검세를 가볍게 회피해냈다. 제아무리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라 할지라도, 물리법칙을 벗어난 공격이 아니라면 그들을 어찌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황제 본인도 잘 알았다.
쿠우우우!
또다시 어둠이 뭉쳐 생성되는 의형광검의 변형 형태. 그것은 거대한 묵룡의 형상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전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지금 구현된 묵룡의 규모나 힘은 예전에 비한다면 절반에도 채 못 미치는 상태였다.
유태진의 날카로운 감각은 그 사실을 여지없이 잡아냈다.
‘역시 황제가 입은 타격도 적지 않아. 엑스칼리버의 일격에 마냥 헛된 것은 아니란 건가?’
황제가 구사한 의형광검이 강력하다곤 하지만, 그래봐야 반신 급이 다루는 힘일 뿐이다. 그가 상위에 해당하는 무형검이나 그 이상의 상위의 무리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도 없었다. 유태진 본인도 정상이 아닌데다, 황제가 다루는 힘의 규모는 여전히 거대했으니까.
설령 아문이 가세했다 하더라도, 승산이 높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여기에 유태진이 미처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알카데인 황제의 현룡의광전휘를 막아낸 아마페레오스란 거대 전함의 전력이었다.
콰아아앙!
느닷없이 날아든 무시무시한 광선이 유태진과 아문, 그리고 황제 사이를 가른다. 그것은 에너지량만 따진다면 황제의 의형광검에 버금갈 정도였다.
공간에 간섭하는 중력이나 공간계 화기도 아닌 단순히 에너지 포격 한 번에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니, 그 위력이 얼마나 강대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이를 깨달은 황제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일개 함선의 화력이라곤 믿기지 않는군.]
[칭찬 감사합니다만 이 정도는 고작 맛배기일 뿐이죠.]
전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황제가 상대방의 정체를 물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조나단 프론사이드라고 합니다. 폐하.]
[조나단 프론사이드? 그렇다면 연합의 프론사이드 가의 일원인가?]
상대방이 언급한 이름을 들은 순간, 황제는 프론사이드 가문을 떠올렸다. 연합의 5대 가문 중 하나이니만큼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나단의 이름도 금세 떠올렸다. 프론사이드 가에서 배출한 역대급 천재라고 했던가? 십여 년 전에 실종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는데, 하필 이런 괴물 같은 전함을 끌고 이런 곳에 나타날 줄이야.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진지하지 못했다. 마치 농담 따먹기를 하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일단 핏줄로 따진다면 그렇지요. 제 발로 집나온 지가 좀 오래 되긴 했지만요. 큰 뜻을 품고 출가했거든요.]
[······.]
황제로서는 이놈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지껄이는 소린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녀석이라면 자신 앞에서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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