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85화 (386/448)

16권-10화

그렇기에 주어진 기회는 단 한번 뿐. 엑스칼리버의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하는 지금이야말로 위기를 타파하는 것은 물론 역으로 놈을 쓰러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단 일격이다. 이 한 수에 암혼대룡세는 물론이고, 그 너머에 있는 황제까지 결정타를 먹여야 해.’

전신을 가득 채운 막대한 진기가 끓어올랐다.

완성된 원영신이 외부의 무궁무진한 영력을 장악해 체내로 유입하고, 만유합원신기와 지부현운신공이 그 규모를 더욱 키웠으며, 역기충혈대법은 그렇게 받아들인 영력을 더욱더 크게 증폭시켰다.

그리고 천룡무상신공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무엇 하나 유태진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중심을 잡는다.

그러자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처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이어지는 조화 속에서 영력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웅혼하고 방대하던지 주변의 우주공간이 절로 경동할 지경이었다.

알카데인 황제도 유태진의 기세가 급변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차갑게 미소 짓는다.

[최후의 발악이라도 할 셈이더냐? 그렇다면 좋다. 어디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끝장을 내주지.]

서늘한 영언과 함께 황제도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 끌어올리는 유태진의 기세가 제법이었던 데다, 그가 꺼내든 정체불명의 검에서 어딘지 모르게 심상찮은 느낌이 전해져왔기 때문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멸절시키는 게 좋겠지.’

결단을 내린 순간, 아르센티아 주역을 가득 채웠던 묵룡들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우주를 떠나가게 할 정도로 거대한 울음소리가 퍼져 나온다. 그와 함께 묵룡들의 형상이 뭉개지더니 점점 하나로 뭉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기현상에 함대에서도 소란이 벌어졌다.

[알카데인 황제의 블랙 웜 드래곤 타입 에너지체들이 융합합니다.]

[안 그래도 감당이 안 되는 판국인데, 심지어 한데 뭉친다니! 대체 무슨 재앙이 만들어지려고?]

안 그래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던 묵룡들이 융합하는 광경은 절로 두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앞에 드러난 결과물은 상상을 초월했다.

크르르르!

[맙소사···.]

[개체 규모··· 측정불가!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하나로 융합된 묵룡은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예전 라인트라에서 연합이 쓰러뜨렸던 초월 급 인베이더 도무누스도 어지간한 행성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했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아득히 넘어섰다.

어지간한 행성 수십 개를 합쳐도 모자랄 정도의 크기였다.

‘···장난이 아니군. 중급 신에 버금가는 초월자가 합룡의현세를 구사하면 이 정도가 되는 건가?’

유태진조차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생 시절 천마와 싸우면서 몇 번이나 경험했던 수법이지만, 이렇게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헌데 그때 연정운으로부터 연락이 당도했다.

[어이, 유태진. 저거 막을 방법이 있어?]

“어쩌면···.”

[어째 대답이 불분명한 게 영 불안한데···. 저런 제정신 아닌 걸 정말 막을 가능성이 있긴 한 거냐?]

제아무리 천외오천이라 불린 연정운이라 해도 이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불안감을 읽은 유태진이 작게 읊조렸다.

“단 한 번에 한해서라면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은 나도 불가능해. 이 검이 버티질 못할 테니까.”

그제야 유태진이 쥔 검을 확인한 연정운이 기가 막힌다는 듯 되물었다.

[세상에. 엄청 낡아빠진 검이네. 헌데 그런 골동품으로 막을 수 있다고?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아니, 제대로 들었다.”

[오, 마이 갓! 반신 씩이나 되면서 공포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겠지? 멀쩡한 소울 웨폰은 어디다 두고 왜 그런 검을 쓸려고?]

“그럴 리가. 난 어느 때보다 더 냉정한 상태라고.”

[그럼 그 낡은 검을 왜 들고 있는 건데? 무슨 비장의 무기라도 되는 거야?]

연정운이 우려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엑스칼리버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그렇지만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던 유태진은 짧게 대답해주었다.

“네 말처럼 비장의 무기라면 비장의 무기겠지. 이 검은 한때 신좌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신기였으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

하지만 연정운은 미처 말을 다 이을 수 없었다. 마침 알카데인 황제가 만들어낸 거대한 묵룡이 입을 크게 벌리더니, 그 앞으로 막대한 영력의 구체가 맺혀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전함의 주포가 차징에 들어간 모습과도 같았다.

묵룡탈혼수(墨龍奪魂手)

제 4식. 합룡의현세(合龍意現勢)

비의. 합룡현광파(合龍玄光波)

곧 무시무시한 칠흑빛 광채가 공화국 함대와 유태진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닥쳐왔다. 거대한 묵룡이 토해낸 이 초고밀도 에너지 파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위력이 담겨져 있었다.

[끄···끝인가?]

[안돼에에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절망에 찬 절규.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유태진은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혔다.

파멸 그 자체나 다름없는 공격이 시야를 가득 채워오고 있었지만, 그 무엇도 그의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마음의 검을 치켜들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심상에 존재하고 있는 무형질 무실체의 검.

그것은 그가 지닌 엑스칼리버를 매개로 이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8식. 천룡무상(天龍無上)

극의. 천룡무진광(天龍撫振光)

······

···

천룡무상검법의 결정체 천룡무상은 검식인 동시에 검식이 아니었다. 투로나 형식 따윈 없었으며, 딱히 이것을 정의할만한 문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표현한다면 천룡무상신공으로 완성된 자신의 심상을 고스란히 검에 담아내는 것.

그것이 천룡무상의 전부였던 것이다.

‘벤다! 저 너머의 황제까지!’

올곧은 의념과 각오! 그리고 오로지 목표를 향한 일심(一心)!

그것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주를 베는 한 줄기 광채로 화했다.

···

극의. 천룡무진광(天龍撫振光)

소리는 없었다. 아르센티아 주역을 쓸어버릴 것 같든 강대한 묵빛 광채가 덮쳐들려는 찰나에 기적 같이 나타난 한 줄기 빛이 그 정중앙을 관통했다.

합룡현광파의 에너지파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했지만, 천룡무상의 극의인 천룡무진광의 빛은 그 모든 것을 버터처럼 가르며 황제에게 닿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황제가 눈앞에 닥친 결과에 믿기지 않는다는 듯 경악하며 이를 피하려 했지만, 그게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천룡무진광은 바로 유태진의 심상이 만들어낸 형태. 그의 마음이 황제를 사정권이 두고 있는 이상, 천룡무진광은 결코 황제를 놓치지 않는다.

결국 알카데인 황제는 자신의 육체는 물론 존재 자체를 베어오는 광채 앞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거대한 묵룡이 소멸되고 그 뒤에 있던 황제가 고통스런 절규를 내뱉었다. 제아무리 중급신에 버금가는 초월자라 하더라도, 엑스칼리버의 권능이 담긴 이 일격에서 무사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회심의 일격을 성공시키고도 유태진의 안색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젠장, 실패다. 황제를 쓰러뜨리지 못했어.”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연정운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황제가 큰 타격을 입었는데.]

“내가 생각한 결과는 황제의 소멸이었다. 그런데 놈은 타격을 입었을지언정 죽지 않았지.”

[뭐 그렇기야 하지만, 한방 더 먹이면 되지 않겠어? 황제 상태를 보니 정상이 아닌데.]

“아니, 더 이상은 무리야. 엑스칼리버는 그걸로 끝이었으니까. 황제에게 타격을 입힐 수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유태진이 내뱉은 탄식처럼,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낡은 검 엑스칼리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천룡무진광을 날린 그 순간부터 산산이 부스러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다만 창세성검에서 비롯되었다는 혼의 파편만큼은 다시 유태진의 심상으로 다시 되돌아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황제를 상대할 수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검을 완성하기 위한 재료일 뿐. 이것 자체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힘은 아니었던 것이다.

‘신좌를 상대하기 위한 유일한 무기를 이런 식으로 날려먹다니···’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신좌들을 상대할 때에만 꺼내들었어야 할 엑스칼리버를 희생시키고도 황제를 단번에 쓰러뜨리지 못하다니.

오히려 사태는 더 위험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미 황제의 권능을 비롯한 여러 능력들을 봉인하고 있던 엑스칼리버는 사라진 상황. 물론 천룡무진광에 입은 타격이 컸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전보다 더 위험천만해진 것이다.

구속이 풀린 상처 입은 맹수. 그것이 바로 지금의 황제와 다를 바 없었다.

[감히! 짐을 상처 입히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짐이 느낀 이 고통 그대로 돌려주마. 영혼을 산산이 찢어발겨서 세세토록 부활할 수 없게 만들어주지.]

분노로 미쳐버린 황제의 노호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우주공간을 저미는 듯한 지독한 살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지독하던지 주변의 데브리나 소행성들이 아무 조짐도 없이 퍽퍽 터져나가고 있었다. 본디 형체가 없어야 할 황제의 살기가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길길이 날뛰던 황제의 모습이 침착하게 변했다. 분노가 가라앉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분노를 내면으로 갈무리함으로서 더욱 큰 격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한꺼번에 쓸어주마. 너저분한 함대와 함께 사라져라!]

다시금 우주의 어둠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 아닌 뇌성과 함께 칠흑빛 벼락이 되었다.

콰릉! 콰르르릉!

아르센티아 주역 곳곳에서 이런 검은 벼락이 출현했다. 여기저기서 번뜩이는 흑뢰는 이젠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랜드 급 강자로서 유태진을 제외하고는 영감이 가장 높은 연정운은 질린 어투로 내뱉었다.

[정말 기사군. 우주공간에서 벼락이 치는 것도 놀라운데 검은 벼락이라고? 대체 황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말을 받듯, 유태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의형광검이군. 심지어 저 벼락들 하나하나가 다 의형광검이야.”

그랬다. 지금 우주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흑뢰는 놀랍게도 의형광검의 또 다른 형태였다. 믿기지 않았지만, 저 흑뢰 하나하나가 전부 황제의 의념에 의해 구현된 것들이었다.

유태진으로서도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저 흑뢰들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힘만으로도 자신이 쉬이 막을 수 없을 정도인데, 그 수만 해도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현재로선 이걸 막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이젠 비장의 한수인 엑스칼리버조차 없었다.

다들 절망감에 차 도망칠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그때, 황제의 영언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이 자리의 모두를 향한 사형선고였다.

[이것이 바로 짐의 진노! 황제를 분노케 한 대가는 사형일지니, 영원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거라.]

묵룡탈혼수(墨龍奪魂手)

제 6식. 광량묵룡세(光量墨龍勢)

극의. 현룡의광전휘(玄龍意光電彙)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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