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09화
아르센티아 주역 전체가 온통 묵룡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 수는 억 단위를 아득히 넘어 수십 수백 조에 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적아를 불문한 모든 이들이 전대미문의 광경 앞에 두려움으로 떨었다. 저토록 거대하고 끝없이 많은 묵룡들이 일제히 움직일 경우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인지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최악이군.’
유태진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묵룡탈혼수가 천마신공 중 최강의 무공은 아니지만, 특정 조건이 갖춰질 경우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공이기도 했으니까.
특히 지금처럼 어둠으로 가득 찬 우주공간에서라면 이 무공은 그 어떤 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바로 지금처럼.
쿠오오오!
묵룡들이 길게 포효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 하나하나는 어지간한 소형 전함에 버금가는 수준으로서, 결코 가볍게 볼 게 아니었다. 하물며 그 수가 상상을 초월하다 보니 이건 숫제 우주공간 전체가 꿈틀대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황제가 거느린 함대조차 전투를 중단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만큼 알카데인 황제가 구사한 암혼대룡세가 보여주는 가공할 위세가 끔찍할 정도로 두려워서였다.
하물며 공화국 함대는 어떻겠는가. 총사령관인 브라운 하이더는 황제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외쳤다.
“전 함대, 주포 준비! 모든 화력을 동원해서라도 저 괴상한 에너지 생명체 군집에 대항한다!”
[예, 각 전함 스탠바이!]
[차지 인터벌 카운트다운 개시.]
브라운 하이더의 명령과 함께 곧 무시무시한 에너지기 집중되기 시작했다. 수만에 이르는 전함들이 일제히 모든 화력을 집중시키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라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전함들의 일제 포격조차 알카데인 황제의 암혼대룡세 앞에서는 무력했다.
쿠아아아아!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우주공간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래비티 블래스트 같은 중력자 포는 물론, 감마 레이 버스터와 플라즈마 캐논 같은 초고출력 화기까지 전부 동원된 이번 공격은 어지간한 규모의 행성 십여 개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리고 막강한 위력은 넘실대며 다가오던 묵룡들의 한 축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쿠쿠쿠쿠!
눈부신 섬광과 시공의 일그러짐이 발생하면서 우주공간의 어둠을 질료로 삼고 탄생한 묵룡들이 수없이 찢기고 불살라진다. 제아무리 암혼대룡세라 하더라도 막대한 영자 에너지에 근간을 둔 함대의 주포를 견딜 순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규모였다. 공화국 함대의 주포가 날려버린 묵룡들은 기껏 해봐야 전체의 1할에도 못 미쳤다. 아니, 그렇게 소멸한 1할조차도 금세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닛!?”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이 경악으로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함대의 모든 화력을 쏟아 부은 결과가 고작 1할을 날려버리는 것에서 그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칠 지경인데, 이젠 그렇게 소멸시킨 묵룡마저 다시 되살아나다니.
그것들은 자신들의 일부가 소멸되어도 다시 주변의 어둠을 끌어들여 원상복원 되는 성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운 하이더가 탄식을 터뜨렸다.
“미치겠군. 그럼 저걸 없애려면,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다 날려버려야 한다는 건데···”
이번 공격으로 저 검은 용들의 무리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파악되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과연 실질적으로 가능하느냐의 여부였다.
저것들이 다시 복원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선 일부만이 아니라 전체를 한꺼번에 날려버려야 하는데, 현재 이곳에 모여 있는 공화국 함대의 전 화력을 동원해도 겨우 1할을 소멸시키는 데에 그쳤다.
하물며 저 묵룡들을 전부 날려버린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만일 그게 가능하려면 적어도 태양계 급 항성계 서넛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화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를 목도한 유태진의 두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어림도 없어. 적어도 지금의 전력으로는···.’
현재 여기 모인 공화국 함대의 전력은 막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양계 급 항성계를 단 한 번의 화력 투사로 날려버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몇 번의 리차징을 거쳐 화력을 쏟아 붓는다면 그에 준하는 파괴력을 발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테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타격을 입자마자 다시 복원되는 저 묵룡들을 제거하긴 요원한 일이었다.
하물며 유태진이라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이건 무공에 대한 역량 차이라기 보단, 압도적인 힘의 총량 차이에서 오는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가만히 앉아 당할 수만도 없었다.
우우우우웅!
검 끝으로 무지막지한 역도가 한 점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황제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극도로 정련된 형태의 영력.
작게 압축될수록 점점 더 찬란한 빛이 되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전생의 천화운 시절에도 암혼대룡세는 상당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절기였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유태진도 따로 절초를 개발해야 했고,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구현되려 하고 있었다.
겨자씨보다 더 작게 수렴된 초고밀도의 영력!
그것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았지만, 그 내부에는 어지간한 행성도 송두리째 박살낼만한 거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5식. 묵룡천중세(墨龍天重勢)
비의. 광휘만리붕(光輝萬里崩)
유태진의 검극에서 쏘아진 작은 구체가 한 줄기 선이 되어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 궤적의 끝에는 알카데인 황제와 그가 일으킨 묵룡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화아아악!
빛의 구체가 묵룡과 닿은 순간, 그 지점을 중심으로 눈부신 빛이 폭발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묵룡천중세의 광휘만리붕.
한계까지 압축된 기운과 중력의 반발작용으로 폭주하기 시작한 방대한 영력이 연쇄적인 반발팽창작용함으로서 무시무시한 광범위 파괴 현상을 일으키는 비의였다.
그 원리와 형태가 소규모 빅뱅(Big Bang)에 가까운 만큼, 위력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세상에!]
[이게 일개 개인이 낼 수 있는 위력이라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 앞에 모두가 경악성을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화국 함대 전체가 쏟아 부은 화력으로도 고작 1할밖에 없애지 못한 묵룡들이 일거에 쓸려나가고 있었다.
이건 마치 우주공간을 온통 눈부신 백색만으로 덧칠하는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쓸려나간 묵룡의 규모가 무려 6할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황제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감탄한 얼굴이었다.
[역시 대단하군. 짐이 애써 만든 묵룡들을 무려 절반 이상을 날려버리다니. 네놈 하나가 공화국 함대 전체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게 이걸로 증명되었구나.]
“······.”
그렇지만 유태진의 얼굴은 적의 찬사를 듣고도 전혀 펴질 줄 몰랐다. 광휘만리붕으로 크게 줄어들었던 묵룡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어둠을 집어삼키며 수를 불려나가는 그 모습은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황제는 그런 묵룡들의 중심에서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헛된 발버둥임을 알아라. 한 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없애지 않는 한, 묵룡들은 끊임없이 되살아날 것이니···.]
쿠오오오!
다시 좀 전의 성세를 회복한 묵룡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본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이 다급히 외쳤다.
“전 함대 회피! BTS-754를 방패삼아 그 뒤로 피해라! 어서!”
BTS-754는 아르센티아 주역에 존재하는 여러 행성들 중 하나였다.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황무지 형태의 무인행성으로서, 별다른 자원조차 없어 무관심 상태로 방치된 곳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쓸모없는 이곳도 한 가지 장점이 있었으니, 매우 크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은 이 행성을 방패막이로 사용해 약간이나마 시간을 벌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염두에 두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황제가 구사한 암혼대룡세의 위력이었다.
콰드드드드!
[저··· 저!]
[···행성이··· 통째로 갈려나간다고?]
공용통신을 타고 경악에 찬 비명들이 울려 퍼졌다.
BTS-754는 태양계로 친다면 무려 목성과 비슷한 규모의 행성이었다. 그런데 그만한 행성이 벌떼처럼 몰려든 묵룡들에게 둘러싸인 순간 믹서기에 돌려진 과일마냥 눈 깜빡할 사이에 완전히 분쇄되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룡들의 기세는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공화국 함대를 집어삼키겠다는 듯 더욱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절망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대로 가다간 공화국 함대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져, 아무런 대응조차 못하고 전멸할지도 몰랐다.
‘최악이군. 이대론 어쩔 수 없나?’
유태진은 무거운 표정으로 갈등에 빠졌다. 그에겐 이 상황을 극복할만한 비장의 패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건 단 한 번 뿐. 일단 쓰고 나면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될 게 분명했다.
‘아직 복원할 방법조차 찾지 못했는데··· 인베이더의 신좌도 아닌 알카데인 황제에게 이걸 사용해야 하다니.’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갈등을 끝낸 유태진의 얼굴 위로 비장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심상 속에 존재하는 한 자루의 검을 떠올렸다.
당장이라도 스러질 것처럼 낡고 오래된 한 자루의 검.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만큼은 절대적이었다.
점점 다가드는 묵룡들을 응시한 그가 낮게 외쳤다.
“와라, 엑스칼리버.”
리스티가 만들어준 검, 소울 웨폰을 거둔 유태진의 오른손 위로 또 다른 검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듯 낡고 볼품없었지만, 황제의 권능조차 완전히 봉해버릴 만큼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 이것이 휘둘러진다면 황제라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 검은···?]
제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유태진이 엑스칼리버를 꺼내 든 순간, 알카데인 황제의 눈빛이 변했다.
제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유태진이 엑스칼리버를 꺼내 든 순간, 알카데인 황제의 눈빛이 변했다.
‘기이하군. 분명 처음 보는데도 이리 낯익은 느낌이라니.’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 기억 속을 다시 되새겨봤지만, 저와 같은 검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위화감이 들었다.
게다가···.
‘그리고 이 긴장감은 뭐지? 낡아빠진 검 따위가 날 긴장시킨다고?’
황제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유태진을 상대하면서도 긴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번째 의식을 치르기 전, 반신 급에 불과할 때에도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황제를 유심히 살피던 유태진도 그런 낌새를 알아챘다.
‘역시··· 엑스칼리버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황제도 본능적으로 경각심을 느끼는 건가?’
권능을 비롯한 신의 능력이 봉인된 탓인지, 황제는 엑스칼리버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위험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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