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08화
황제도 유태진의 그 말을 들었는지 흥미롭다는 투로 대꾸한다.
[아아, 방금 이걸 두고 천마신공이라 부르는 모양이지? 꽤 그럴 듯한 이름이군.]
일순 유태진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이상한 소릴 하는군. 당신이 직접 구사해 보이기까지 해놓고선 그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고?”
[흠, 딱히 의식하고 사용한 건 아니었다. 무의식적인 이끌림대로 영력을 운용했을 뿐인데 이런 결과가 나오더군. 천마신공이라. 역시 네놈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무공의 일종이었던 건가?]
유태진으로선 기가 막혔다. 천마신공이 어떤 무공이던가. 천마신교의 종주인 천마만이 익힐 수 있는, 중원무학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위치의 신공절학 아니던가.
그런 난해하고 심오한 무공을, 심지어 한번 배운 적조차 없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게다가 응용이야 어쨌든 구사 자체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제아무리 초월자라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유태진의 상식 상 천마 본인이 아니고서야 천마신공의 강기공인 무상천마강을 이토록 높은 수준으로 구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 황제의 반응을 보면 정말로 몰랐던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눈앞의 상황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던 그때, 유태진의 뇌리로 문득 한 가지 가정이 스쳐지나갔다.
“알카데인 황제. 당신에게 한 가지만 묻겠어. 혹시 [천마]라는 이름을 알고 있나? 아니면 [혈세천마]라거나.”
심각한 얼굴로 물음을 던진 유태진에게, 황제가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대꾸해온다.
[짐에게 질문을 던지다니 건방지구나. 그래도 내가 인정한 녀석이니 일단 답은 해주마.]
유태진의 물음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던 황제가 곧 입을 열었다.
[천마라··· 독특한 어감이군. 하지만 짐으로서는 오늘 처음 듣는다. 듣자니 사람 이름 같지는 않고 일종의 칭호인 모양인데··· 꽤 거창한 칭호로구나.]
“······.”
천마란 단어를 생소해하는 그 모습에 유태진은 내심 혼란스러웠다.
‘그럼 뭐지? 내 경우처럼 전생의 기억을 가져온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천마신공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황제가 천마신공을 다뤄?’
물론 초월자가 되면 아카식 레코드와 연동된 신안을 통해 우주의 정보를 꿰뚫어 볼 수 있다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다. 볼 수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설혹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걸 흉내 내기 정도가 아니라 지금과 같은 수준까지 체화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혹시 상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도 됐지만, 알카데인 황제는 매우 오만하면서도 자존심 강한 사람이다. 아예 진실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면 모를까, 거짓을 입에 담을 위인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야기가 길어졌군. 천마신공이라 했던가? 처음 사용해보는 무공이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무공으로 네 녀석을 상대해 주지.]
그때부터 황제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얼마나 흉험하고 거센지, 좀 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에 반해 유태진은 좀 전과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수세에 몰렸다.
물론 이전에도 황제가 여력을 남겨두고 싸웠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천마신공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금은 그때보다 더 강력해져 있었다. 마치 자기 몸에 맞는 기예를 체득한 것처럼, 황제는 자신이 다루는 강대한 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의 정체를 확인한 유태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이런 미친! 무상천마강 뿐만 아니라 천마신공 전반(全般)을 다룬다고?’
천마신공은 그 이름만 들으면 내가심법 하나만 일컫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심법과 기공을 비롯하여 검장권신보(劍掌拳身步) 등까지 총망라한 명칭이었다. 천마신교의 종주인 천마만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이라는 의미에서 통칭 천마신공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헌데 황제는 무상천마강 외에도 천마신공이란 카테고리 내에 속한 모든 무공들을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쏟아내고 있었다.
마치 그것들 전부가 본래 자신의 것이었다는 듯이.
지존천마수(至尊天魔手)
제 4식. 환광파천인(環光破天印)
“크!”
빈틈을 파고들어오는 황제의 압도적인 장세가 둥근 파형을 그리며 유태진의 전신을 짓눌러왔다. 좀 전이었다면 어떻게든 피하든가 흘려내든가 했을 테지만, 지금의 황제는 무공의 이치와 개념을 깊은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절대 피할 수 없도록 장세가 주변 공간마저 점유하고 있다 보니 유태진도 결국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다.
‘안 돼! 힘의 차이가 너무 커! 이대로 받아내면 끝장이야!’
지금까지 그가 황제를 상대로 꽤 분전해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 측이 대등한 것은 아니었다.
다루는 영력이 규모만 하더라도 천양지차. 그걸 수준 높은 기교와 무공만이 가진 이점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는데, 황제도 마찬가지로 무공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유태진만의 이점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유태진은 이를 악물며 절기를 준비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수를 꺼내들 수밖에.
그가 내민 왼손 위로 두 종류의 기운이 맺혔다.
천중무한신공의 묵직한 기운과, 지부현운신공의 허허로운 기운이 서로 반대방향의 나선을 그리며 서로 조화를 이룬 순간 천지건곤조화, 즉 천지교태의 현상이 발생하였다.
환유무원기(幻幽無援技)
제 3절. 회연천류도(回延天流道)
비의. 만류천인(萬流遷引)
콰아아아아!
우주가 떠나갈 듯한 강대한 파괴력이 유태진 한 사람에게 작열했다. 일장으로 행성을 파괴하고도 남을 법한 위력이었다.
허나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무시무시한 파괴의 에너지가 유태진을 중심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태진에게 작열한 힘이 주변 공간을 분산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기운에 의해 발생되는 질량의 고저 차가 빚어내는 경이로운 조화!
금속에 가해진 열이 다른 부분으로 전도되는 것처럼,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태진은 자신에게 가해진 환광파천인의 막강한 힘을 만류천인의 수법으로 이 일대의 우주공간으로 분산 흩어버린 것이다.
제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 해도, 에너지가 집중되지 못하고 광대한 면적에 흩어져 작용하게 된다면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흩어지고 남은 힘만 하더라도 강력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정도는 지금의 유태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겨우 고비를 넘겼군.”
하지만 이번 공격을 막아냈다고 해서 위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황제가 무공을 체득하고 있는 만큼 이런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유태진은 고개를 들어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황제는 자신이 펼친 환광파천인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뭔가 감을 잡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 이제야 무공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확실히 짐이 알던 기존의 무예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어.]
그가 알던 무예들은 대부분 영력을 이용한 전투법에 가까웠다. 보다 빠르고 강하게, 그리고 영력의 출력과 위력을 극대화시켜 강대한 파괴를 내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공은 그와 전혀 달랐다. 위력은 기본이고 마법 이상으로 복잡하고 섬세하며, 형이상학적인 이치를 통해 다양한 현상과 섭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이건 마치 몸으로 구현해내는 마법과도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우우웅!
이젠 확실히 느껴졌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격동적이면서도 심오한 영력의 운용. 그리고 그것을 외부로 표출하는 오묘하면서도 기이한 형태의 방식들.
무공이 담고 있는 개념들이 어떠한지를 몸과 머리로 깨닫기 시작한 순간, 기존의 무예들이 전부 조잡하고 하찮게 느껴졌다.
이건 말 그대로 우주의 운행과 섭리를 무공이란 카테고리에 담아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단순히 강하고 빠르고 위력적인 기존의 무예들이 비교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확실하게 이해하고 말았다. 어째서 반신 급에 지나지 않은 유태진이 자신을 상대로 이토록 버틸 수 있었는지를.
제아무리 신격이 높아도 힘을 다루는 방식이 놈보다 저열했으니 당연히 먹히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젠 다르다.’
그때부터 황제는 더욱 격렬하게 공격해 들어왔다. 엑스칼리버에 의해 권능과 인과조작, 그리고 언령까지 전부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거침이 없었다.
[하하하! 좀 전까지 보여준 솜씨는 다 어디 간 거냐?]
“크으!”
거듭된 공격 속에서 데미지가 점점 누적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공격을 흘려내고 다른 우주공간으로 전도시킨다 하더라도, 완벽할 순 없는 만큼 충격이 쌓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이제 더 볼 것 없다. 괜한 시간 끌 것 없이 확실히 끝내주도록 하지.]
그렇게 단언한 황제로부터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마치 칠흑빛 우주 공간이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정체를 알아본 유태진이 침중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묵룡탈혼수의 암혼대룡세인가?”
규모 있는 힘을 다루는 무공 중에서는 순위에 든다는 묵룡탈혼수의 비의 암혼대룡세.
자신이 운용하는 내공은 물론, 주변의 어둠까지 집어삼켜서 그 절대량을 무한히 키워낸다는··· 실로 터무니없는 무공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 다룰 수 있는 힘의 절대량은 자신의 역량에 따라 제한되지만, 중급 신에 버금가는 황제라면 상상을 초월할 게 틀림없었다.
묵룡탈혼수(墨龍奪魂手)
제 3식. 묵천강룡세(墨天降龍勢)
비의. 암혼대룡세(暗魂隊龍勢)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대로 우주공간의 어둠이 그를 중심으로 전부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공간 자체가 살아서 꿈틀대는 듯 보였다.
그렇게 유동하고 있는 우주공간들이 전부 알카데인 황제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대체 뭐야!?]
[우주공간이 꿈틀대고 있어?]
[어둠이 살아 움직인다니,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 세상에···!]
온 사방에서 경악과 혼란에 찬 통신들이 어지럽게 들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기존의 상리를 아득히 벗어난 광경이었으니까.
그림자를 다루는 영능력자도 우주 전체적으로 보면 제법 있었고, 어둠 그 자체를 다루는 영능력자도 드물긴 해도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이것은 그런 차원을 훌쩍 넘어섰다. 설마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어둠이란 개념 자체를 집어삼켜서 자신의 권속처럼 부릴 수 있다니,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허나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해준 것이 바로 무공이란 놈이었다.
게다가 이 변화는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 알카데인 황제가 장악한 우주의 어둠은 어느새 무수한 묵룡이 되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는 도저히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를 본 모두가 하나같이 아연실색했다.
[지금 우리가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츠··· 측정 불가! 지금 알카데인 황제가 운용하고 있는 에너지 량은··· 행성 규모를 아득히 넘어섰습니다. 항성계 하나가 터져나갈 시에 발생하는 에너지량보다 더 클지도 모릅니다.]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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