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82화 (383/448)

16권-07화

나름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 효과는 그가 생각하던 이상이었다.

황제의 역량을 조금이라도 하락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 결과는 그 예상보다 더 훌륭하게 들어맞았다.

‘역시··· 아무리 쇠했어도 엑스칼리버는 엑스칼리버란 거군.’

그랬다. 지금 알카데인 황제의 권능과 인과제어를 틀어막고 있는 힘의 주체는 바로 아서의 성검이었던 엑스칼리버였다.

물론 1500년 전 당시 그룬베일을 비롯한 신좌들의 모든 권능을 봉인해버렸던 때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낡고 쇠한 지금 현재만으로도 황제를 제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무기로 직접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문제는···.’

황제의 권능이 봉인된 지금도 유태진이 감당하기 벅차다는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격이나 힘의 규모 면에서도 압도적인데다, 싸울수록 황제의 전투솜씨가 능숙해졌다. 기교와 경험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로선 지금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압도적인 힘과 격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신에 불과한 유태진을 단숨에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뭇 불쾌했던 것이다.

황제가 외쳤다.

[멈춰라!]

인과에 간섭하는 시간정지의 언령!

하지만 그것은 채 발동되지 못하고 흩어졌다. 이것 역시 엑스칼리버의 권능에 의해 봉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유태진에게서는 9클래스에 해당하는 궁극마법과 각종 고위 주술들이 쏟아졌다. 또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휘파람 소리는 강대한 저주가 되어 황제를 찍어눌러오고 있었다.

자신의 신체를 불태우고 얼리며, 저주하는 공격 속에서 황제는 사납게 이를 갈아붙였다.

[이놈이!]

뻗어내는 검첨이 시공간을 꿰뚫었다. 그것은 광속을 아득히 넘는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태진의 신형은 황제의 공격이 노렸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칠성둔형(七星遁形)

제 2성. 무곡(武曲)

비의. 제유신월(制有迅越)

무당의 5대 절학인 칠성둔형. 그것의 총화 중 하나가 유태진의 몸을 통해 재래하였다.

그가 구사한 절기는 관성과 질량 등 물리적 법칙제어를 넘어 시공간과 차원마저 초월하게 해주는 칠성둔형의 비의 제유신월.

광속을 아득하게 웃도는 속도로 움직이는 유태진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 황제의 검첨이 텅 빈 허공을 꿰뚫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엉뚱하게 빗나간 황제의 공격이 끝없이 뻗어나가다가 애꿎은 항성 하나를 꿰뚫어 붕괴시켰다.

유태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우주공간을 누비는 그의 발걸음이 다시 한 번 기기묘묘하게 변하는 순간, 그를 둘러싼 무수한 가능성들이 현실화 되었다.

칠성둔형(七星遁形)

제 4성. 문곡(文曲)

비의. 유상무상(有象無象)

사람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서 살고 있다. 그건 누구든 마찬가지이며,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많은 결과가 파생하게 된다.

그러한 무수한 확률적 가능성들을 실체화하는 것이 바로 문곡의 비의 유상무상.

어느새 유태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무수한 신형들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를 목도한 황제의 눈매가 짜증스럽게 일그러졌다. 편법이든 어쨌든 중급신에 버금가는 초월자가 된 몸이다. 자신을 포위하듯 둘러싼 이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확률실체화라고? 제법 잔재주를 피우는구나!]

이건 단순한 분신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분신은 구현해 봐야 본인의 영력을 나눠서 구현하는 만큼, 결국 분신 하나하나의 힘은 본신에 못 미친다.

하지만 유태진의 유상무상은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확률적 사상, 즉 또 다른 선택지를 고른 자기 자신을 현실화 시키는 만큼 분신들과 본체 간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같은 힘의 격차가 존재할 리 없었다.

곧 알카데인 황제를 향해 무시무시한 공격들이 퍼부어졌다. 그런데 공격이 죄다 동일하지 않았다. 어떤 개체는 마법을 사용하는가 하면 어떤 개체는 정령술을, 혹은 주술과 악성마법 등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마법도 다 같은 마법이 아니었다. 마법도 계열과 학파에 따라 타입과 종류가 다양했으며, 설령 같은 마법이라도 세세한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가 난다.

무엇 하나 동일한 것이 없었으니, 이걸 감당해야 하는 상대 입장에서는 더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상대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아무리 유태진이 반신 급에 올라섰다 하더라도 중급 신에 비할 순 없었다.

바아아아앙!

먼 우주까지 퍼져나가는 웅장한 파동과 함께 황제를 중심으로 터무니없는 규모의 영력이 응집되었다. 그것은 중첩에 중첩을 거듭하더니 어느새 차원을 괴리할 정도의 장벽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유태진들이 쏟아낸 수백 수천에 달하는 맹공이 내리꽂혔다. 그 하나하나가 가히 행성을 쪼개고 우주공간을 찢어내는 수준으로 일개 전함 따윈 여기에 휘말리는 것만으로 소멸될 정도였다.

[세상에!]

[···저게 초월자들 간의 싸움이라는 건가?]

[피해! 저기에 휘말렸다간 끝장이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

제국함대와 공화국 함대 모두 그 둘이 만들어낸 전투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물러났다. 그만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방어는 그 속에서도 무너질 줄 모르고 굳건했다. 그만큼 방어에 막대한 영력을 쏟아 부었다는 말이었다. 아마 그가 방어에 사용한 영력의 양만 따진다면 어지간한 거대 행성조차 쪼개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황제의 눈매가 짜증스럽게 일그러졌다.

[정말 거슬리는구나.]

그로서는 이 상황 자체가 여러모로 거슬리고 불쾌했다. 마치 손발을 전부 묶어놓고 싸우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태진과 싸운 이후로 알카데인 황제의 권능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초월자라면 당연히 발휘되어야 할 능력 자체가 사용을 금지당한 것이다.

그러니 그의 입장에서는 싸움이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낱 반신 급 따위에게 발목이 잡혀 이 꼴이라니···.’

물론 격에 비해 유태진의 역량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점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권능을 다루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무공이란 영능 하나만으로 확률실체화 같은 터무니없는 영역을 다루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려서 이런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군.’

권능은 물론 아카식 레코드를 통한 신안과 인과성립까지 막힌 지금, 유태진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방법을 찾는다고 한다면··· 상대와 마찬가지로 영능에 대한 순수한 역량으로 압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불가능해. 놈의 실력은 진짜다. 가장 중심이 되는 무공은 물론이고 다양한 영능들을 높은 수준까지 체득했지.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이건 일개 필멸자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저 많은 영능들을 저토록 높은 수준까지 익힌다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설령 수만 년 이상을 사는 드래곤들이라 할지라도, 저만큼 다양한 영능을 높은 수준까지 섭렵하는 데엔 적어도 수천 년 이상의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다.

알카데인 황제는 방어를 해제하고 다시 본격적으로 유태진과 맞붙기 시작했지만,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분명 다루는 힘의 규모는 그가 압도적이었지만, 유태진의 다루는 영능의 깊이를 넘어설 순 없었다. 전투 그 자체만으로는 그가 절대적으로 우세할지 몰라도 상대를 확실히 제압하는 것은 어려웠던 것이다.

‘이래선 안 되겠군. 어떻게든 아르센티아 주역을 점령해야 해.’

그러자면 뭔가 뾰족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간 예전과 같은 결과가 벌어질 게 틀림없었다.

그가 잠시 고민하느라 틈을 보인 사이, 유태진이 그 즉시 허를 찔러왔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1식. 쾌룡무영(快龍無影)

비의. 섬룡광현(閃龍光顯)

일순 시간을 초월한 듯한 궤적들이 황제의 주변을 둘러싼다.

그것들은 속도의 개념을 벗어난 초극섬쾌의 검로! 알카데인 황제의 전신을 난자하기 위해 다가들고 있었다.

그런데 급박하기 이를 데 없던 그 순간, 황제의 얼굴이 알 수 없는 감정이 떠올랐다.

‘뭐지?’

유태진이 그려낸 무수한 검의 궤적들이 지척에 이른 그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감각이 황제의 전신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익숙하면서도 낮선 느낌이었다. 굳이 설명한다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리는 듯했다.

황제는 무의식적으로 그 느낌을 따라 움직였다. 예지에 이른 그의 직감이 이것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외치고 있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방대한 영력! 그리고 기기묘묘한 형태로 운용되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영기의 변화.

그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현상을 낳았다.

무상천마강(無上天魔罡)

비의. 환공절우(幻空折紆)

황제를 둘러싼 시공간 자체가 비틀어지면서 다가오는 모든 것을 굴절시켰다. 그것은 유태진의 섬룡광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뭐?”

전혀 상상도 못했던 광경 앞에 유태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나름 회심의 한수였던 자신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서가 아니었다. 그를 당황시킨 것은 섬룡광현을 굴절시킨 황제의 수법 자체에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유태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황제는 중급신에 버금가는 막강한 영력을 다루긴 해도, 신역에 이를 만큼 놀라운 기교나 깊이 있는 영능의 이치를 다루진 못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편법으로 초월자에 도달한 황제의 한계이기도 했다.

헌데 지금 저 방어수법은 뭐란 말인가?

좀 전에 유상무상의 맹공을 견딜 때도 놀랍긴 했지만, 그건 단순히 막대한 영력을 극한의 밀도까지 뭉쳐 유사차원격리현상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사실 기교면에서 봤을 땐 그리 대단한 이치나 깊이가 담겨 있진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깔끔하면서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섬세한 운용과 다룬 힘의 양에 비해 극히 높은 효율을 보이는 철통같은 방어수법.

마치 황제의 영능 수준 자체가 한순간에 기존보다 몇 배로 높아진 듯한 광경이지 않은가.

아니, 그런 게 전부가 아니다. 유태진을 더 경악으로 몰아넣은 이유는 황제가 사용한 수법 그 자체에 있었다.

상리를 벗어난 진기의 운용과, 역리를 바탕으로 완성된 무학의 극치. 그리고 기기묘묘하면서도 압도적인 파괴력을 현현시키는 패도적인 기공.

유태진은 천화운 시절 이것을 다루는 이와 몇 번이나 부딪쳤기 때문에 절대 몰라볼 수가 없었다.

아니, 유태진으로 환생한 지금도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알카데인 황제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천마신공을 사용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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