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81화 (382/448)

16권-06화

콰아앙!

쿠구구구! 끄그그긋!

함선이 터져나가는 굉음과 우주를 떨리게 하는 진동! 그리고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비틀림이 겹쳐지면서 상상할 수 없는 여파가 몰아닥쳤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두 개의 힘은 서로 팽팽하게 길항(拮抗)하고 있었다.

공화국 함대 중앙을 관통하려는 블랙홀과, 그것을 가로막고 선 또 하나의 블랙홀.

양측의 힘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거의 비등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 서로를 갉아먹듯 밀고 당기는 형국을 유지하다가 결국 서로 공멸하는 형태로 소멸하고 말았다.

“젠장, 간신히 막아냈나?”

유태진은 한 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숨을 내뱉으며 황제를 노려보았다.

덕분에 공화국 함대가 입은 피해는 꽤 컸다. 제아무리 유태진이 나서서 막아줬다 하더라도,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발생된 여파까지 전부 막아낸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피해가 이정도로 그친 것도 사실 기적이었다. 유태진이 제때 당도하지 못했더라면, 놈이 쏜 블랙홀은 공화국 함대 정 중앙을 관통하고 지나가면서 반수 이상의 전함들을 소멸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유태진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바로 연정운이었다.

“어이, 괜찮은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보다시피 멀쩡하지. 하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어. 아마 얼마 전의 나였다면 절대 막지 못했을 거야.”

유태진의 대답을 들은 연정운이 황제 쪽을 돌아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내뱉었다.

“아무튼 이런 무지막지한 걸 갑작스럽게 내쏘다니 정말 미친 녀석이군, 황제는···.”

전쟁이란 게 본래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다지만, 황제의 행위는 상리를 벗어난 짓이었다.

말을 전하는 것처럼 입을 열어놓고 대뜸 행성병기 급 출력의 공격을 기습적으로 선제공격으로 내쏘다니.

격은 초월자에 올라섰으면서, 하는 짓은 일개 양아치나 다름없었다.

반면 블랙홀을 쏘아냈던 황제는 자신의 공격이 저지당한 사실에 조금 뜻밖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영혼만 반신의 격이었던 녀석이 이젠 온전한 반신이 되었나? 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군. 짐의 한 수를 막아내다니. 고작 반신 따위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을 텐데.”

그가 내쏜 블랙홀은 일단 작열하고 나면 어지간한 규모의 항성계 쯤은 순식간에 집어 삼키고도 남음이 있는 규모의 것이었다. 일개 반신 급 초월자가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유태진은 이를 확실하게 막아 내었다.

그 말은 그가 드러난 격 이상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뭐, 좋다. 짐이 힘을 손에 넣은 이후 상대하는 첫 제물로는 손색이 없겠군.”

입술 끝을 슬쩍 말아 올린 황제의 신형이 갑판 위에서 둥실 떠올랐다. 이미 함대 따윈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제아무리 블랙홀 공격을 막아냈다 하더라도 공화국 함대가 입은 피해는 제법 컸다. 게다가 그로 인해 진형까지 무너진 상황이니, 이를 수습하기 전에 덮친다면 제국함대의 승리는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자연 황제의 관심사는 유태진을 향할 수밖에.

유태진도 그런 황제의 시선을 눈치 챘다.

“역시···황제가 이쪽을 노리는군. 내가 제일 거슬린다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유태진도 마찬가지로 몸을 띄웠다. 함대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승산은··· 있는 거겠지?”

마른침을 삼키며 묻는 연정운의 그 말에 유태진은 불분명한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 최대한 해보긴 하겠지만 장담할 순 없어.”

“그렇군.”

반신 급에 도달한 유태진조차 승리를 장담 못한다는 그 반응에 절로 표정이 무거워지는 연정운이었다.

“연정운, 황제는 어떻게든 내가 감당해 보겠어. 그러니 넌 공화국 함대를 최대한 수습해 봐. 지금은 일방적인 열세나 다름없어. 이대로라면 십중팔구 패할 게 뻔해.”

“알았다. 어떻게든 해 보마.”

그렇게 연정운에게 공화국 함대를 부탁한 유태진은 우주공간으로 날아올랐다. 저 편에서 다가오고 있는 황제와 맞서기 위해서였다.

“며칠 사이에 신수가 훤해지셨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달라진 거지?”

우주 한복판에서 황제와 서로 마주서게 된 유태진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러자 황제가 갖잖다는 듯 픽 웃으며 대꾸했다.

“짐의 역량을 네놈 멋대로 재단하지 마라. 짐은 만상 위에 군림하는 위대한 태양이니, 고작 하찮은 반신 따위와 비교할 순 없는 노릇이지.”

“꽤 자신만만하군.”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황제의 영압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함을 깨달았다. 이 정도면 단순히 힘의 규모만 따져 봐도 하급신은 훌쩍 넘어섰다.

이미 알카데인 황제는 라인트라에서 마주했던 당시의 역량마저 초월해버린 것이다.

“짐의 첫 공격을 잘도 받아내더구나. 하긴 네놈의 남다름은 잘 알고 있다. 그 무공이란 것으로 역량 이상의 결과를 내놓았었지. 하지만 그게 과연 언제까지 갈까?”

여유로운 그 태도는 확실히 예전과 사뭇 달랐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유태진은 그것이 못내 거슬렸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검을 빼든 황제의 얼굴 위로 살기가 팽배하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고오오오!

천룡무상신공이 본격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했다. 원영신을 완성한 그를 중심으로 무궁무진한 진기가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하면서, 이 일대에 퍼져있던 만상의 기운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유태진은 말 그대로 가진 수단을 전부 사용하였다. 만유합원신기로 더욱 기운을 끌어 모으고, 지금까지 섭렵해온 모든 지식과 수법들을 동원함으로서 반신 급의 역량을 아득히 초월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이라면 점창 외의 무학들은 어지간해서는 사용 안하려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점창파에 대한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다른 문파의 무공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았었지만, 황제를 상대로는 예외를 둘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온갖 마법들과 다양한 계열의 술식, 그리고 정령 등 다채로운 영능들이 조합되어 그의 전신 곳곳에 내려앉는다. 그로 인한 증폭 수준은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황제마저 일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군. 그 정도면 어지간한 초월자들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야. 한낱 반신 따위가 이런 힘을 발휘하다니. 놀랍구나.”

“아직 놀라기엔 일러! 이 힘으로 당신을 상대할 생각이니까. 바로 지금부터!”

그 말과 함께 유태진의 검이 시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이미 그가 쥔 검신 위로는 찬란한 빛으로 조형한 듯한 의형광검이 맺혀져 있었다.

의형광검(意形光劍). 그것은 강력한 힘의 결집체이자, 심검지도에 바탕을 둔 과정보다 결과를 우선적으로 도출하는 인과간섭 공격.

그렇기에 물리적인 속도나 시간의 개념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공격은 황제의 검 앞에 정면으로 가로막혔다.

콰아아앙!

하지만 설사 막아낸다 하더라도 의형광검은 단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도 대륙을 쪼개고 행성의 중추까지 관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무학의 정점 중 하나.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황제는 그 충격을 완벽히 상쇄하고 있었다.

유태진은 안색을 굳혔다.

‘역시··· 이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 건가?’

상대 또한 인과간섭이 가능한 초월자였다. 그것도 무려 반신 급을 뛰어넘은 상위의 초월자.

애당초 이런 인과간섭이 통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단지 황제가 어디까지 본인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 위해 의형광검을 사용했던 것이다.

“재미있군. 어디 본격적으로 해볼까?”

황제는 이번 일격을 받아내면서 흥이라도 난 듯, 유태진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큭!”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공격들이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시간이란 개념을 아득히 초월한 빠름은 그의 인지마저 넘어설 지경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무공들을 섭렵하면서 쌓은 경험들은 황제의 공격 경로를 정확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제아무리 빠르고 강한 공격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날아들지 미리 예상할 수 있으면 막지 못할 것도 없었다.

콰아앙! 쿠구구구!

유태진과 황제가 격돌하면서 만들어낸 여파에 우주공간이 뒤흔들렸다. 그 후폭풍만 해도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는데, 일부 전함들은 거기에 휘말려 박살나 흩어졌다. 그건 제국함대고 공화국 함대고 가리지 않았다.

[미친!? 싸우는 것만으로도 이런 파괴력이라고!?]

[함대를 뒤로 물려! 자칫하다간 말려든다!]

맞붙던 양측의 함대가 서둘러 유태진과 황제의 전투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들의 싸움!

심지어 주변의 무인 항성들도 여기에 휘말려 박살나는 판국에 일개 전함들이 견뎌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싸움이 이어지면서 황제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대체 뭐지? 내 권능이 제대로 사용되질 않고 있다. 그리고 인과간섭도 마찬가지고. 뭔가에 의해 금제라도 당한 것 같은 느낌이군.’

간신히 초월자의 반열에 발을 들인 반신과 제대로 된 초월자 간에 드러나는 격차는 바로 인과의 통제에서 드러난다.

반신 급의 초월자가 과정보다 결과가 먼저 성립한다던가 하는 식의 반쪽짜리 인과를 다룬다면, 하급신부터는 온전한 인과를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과를 활용하기에 따라 존재하던 걸 아예 없던 걸로 만들기도 하고, 어떤 요소를 편집해 전혀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것이 제대로 된 인과의 제어방법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반신 급 초월자들이 하급신 이상의 초월자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인데, 대체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유태진을 상대로는 인과조작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놈의 공격에 대응하는 형태의 인과조작은 가능하지만, 놈에게 적용하는 것들은 안 된다는 말인가?’

권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가진 역천의 권능도 유태진 앞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전 놈과 정면으로 맞붙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진 않았는데, 오늘은 아예 먹통이라도 된 듯 권능이 발현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여유로웠던 황제의 얼굴이 슬며시 일그러졌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 던져온 그 물음에, 유태진이 비웃듯 답했다.

“글쎄, 뜬금없이 정체를 물으면 뭐라 답해야 하지? 내가 누군지는 황제폐하 당신도 잘 알 텐데.”

“건방진 놈.”

황제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내뱉었지만, 그도 유태진이 순순히 답해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이를 통해 확신했다.

‘역시 놈의 소행이군. 이놈이 가진 뭔가가 내 권능에 간섭하고 있다.’

문제는 그게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카식 레코드를 내다보는 신안조차 먹히지 않았다.

이래선 권능을 봉인하는 이 힘의 정체가 뭔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반면 유태진은 여유로운 겉모습과 달리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성공적이군. 설마 이게 제대로 먹힐 줄이야. 기대했던 것 이상이군.’

#38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