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05화
그렇지만 이런 힘을 손에 넣고도 유태진은 부족함을 느꼈다.
전보다 강해진 황제의 존재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서의 기억 속에서 엿봤던 신좌들의 거대한 신위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였다.
“이런 힘으로도 상대가 안 되겠지.”
당시의 아서보다 더 강해지긴 했지만, 신좌를 상대로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그건 자신이 온전한 엑스칼리버를 쥔다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의 신좌들은 지구의 성계신 쥬헬 그리아드의 견제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고, 어지간한 반신급 이상의 파괴력으로 그들의 허를 찔렀던 원탁의 기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을 뒷받침해줄 원탁의 기사들도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랜슬롯이 아직 살아 있긴 하지만, 그는 아발론에 매여 있는 몸이니 직접 나서서 싸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물론 연합이 그냥 보고만 있진 않겠지만, 어디까지 지원해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설령 지원을 해준다 해도 여전히 우려되는 점은 있었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지원이 과연 상위신이었던 쥬헬 그리아드의 전력을 대체할 만할까?
‘아니, 그럴 리 없겠지. 상위신의 힘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니까. 연합의 수호신인 루네리아가 직접 나서기라도 하면 모를까, 연합만의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게 분명해.’
그 말은 결국 고위 초월자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태진의 역량이 아서보다 훨씬 더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굳이 상위신이 아니더라도, 중상위 신은 되어야 할 듯싶었다.
“휴우··· 일단 루네리아 여신에게 요청은 해봐야겠지만, 과연 들어줄지는 모르겠군.”
유태진은 무거운 숨을 내뱉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숙소를 나서자 연정운이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서···성공한 거냐?”
“그래, 어쩌다 보니 간신히 성공하긴 했다. 솔직히 말해 운이 좋았지.”
유태진의 대답에 연정운의 얼굴에도 약간이나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하여간 운도 더럽게 좋은 녀석 같으니. 그럼 우리에게도 조금이나마 승산이 생긴 셈인가.”
“아직 섣불리 단정 지울 순 없어. 황제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정확한 예측이 안 되니까.”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반신 급 초월자가 한 명도 없던 상황보다는 나아진 건 맞잖아.”
연정운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현재 생사경에 올라선 유태진의 전력은 그 무엇보다 가치가 컸으니까.
게다가 조금만 더 버티면 공화국에서 보낸 지원병력과 강자들이 당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황제라 하더라도 승산이 없진 않을 것이다.
헌데 그때였다.
위이잉! 위이잉!
적색 조명이 반복되면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그건 이곳뿐만 아니라 선실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연정운이 눈매를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뭐지? 설마 제국이!?”
“그래, 그 빌어먹을 황제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다른 이들은 못 느끼겠지만 유태진에게는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 멀리서 점점 다가오는 황제의 남다른 존재감이···.
더불어 제국 함대의 군기(軍氣)가 공화국 함대가 있는 곳을 향해 거센 물결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젠장! 언젠가 전투가 재개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하필 이런 타이밍에!”
“황제도 내 기척의 변화를 읽고 있던 거겠지. 아니면···”
‘···더 이상 참고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던가.’
유태진은 하던 말을 속으로 삼키며 전의를 끌어올렸다. 언제든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는 이미 갖춰져 있었다.
“적응할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이 정도쯤은 문제없어. 언제든 전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해.”
생사경의 경지에 올라서게 된 것은 불과 10여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전생의 경험과 아서의 기억 속 감각을 모두 갖고 있는 유태진에게는 그런 적응과정 따윈 불필요했다.
‘하지만··· 그 작자를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내심 그렇게 물음을 던지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황제의 친위함대를 시작으로 아르센티아 주역의 제국함대 전체가 진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공화국 함대 측에서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젠장! 또 시작이군!”
“요 며칠 간 조용하다 싶더니···.”
“제 1종 전투대비태세 발령! 제1종 전투대비태세 발령! 함 내의 모든 승무원들은 지금 즉시···!”
이제 곧 다가올 전투를 위해 공화국 함대의 승무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반면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공화국 함대의 총사령관 브라운 하이더는 슬며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며칠 만에 다시 재개된 전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아르센티아 주역을 놓고 제국함대와 다시 맞붙게 되는 것은 필연이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그 이상할 정도로 거대한 정체불명의 영자 반응이 신경 쓰이는군. 분명 초월자 급 존재가 아니고선 보일 수 없는 규모의 힘이었는데···.’
어쩌면 제국함대가 지금 싸움을 걸어온 것도 바로 그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지원군이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니··· 어떻게든 그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겠군.’
물론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그만한 영력을 다루는 존재가 적으로 출현한다면, 현재 공화국 함대의 전력으로선 감당하는 것조차 어려울 테니까.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건 황제를 상대로 분전해 주었던 연합 출신의 강자, 유태진 뿐이었다.
“어떻게든 최대한 그를 보조하면서 방어를 굳힌다. 지금으로선 시간을 버는 게 최선이야.”
그렇게 방침을 정한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은 함대를 전진시켰다. 그러자 쌍방의 함대가 서로를 마주보는 형국이 되었다.
양 측 모두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제국 함대 측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황제의 기함 로베르타인 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국 함대의 선두로 돌출되듯 튀어나온 로베르타인 갑판 위로 한 사람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다름 아닌 알카데인 황제였다. 그가 발신하고 있는 인세를 초월한 존재감 앞에 모두의 시선이 저절로 집중되었다.
[짐의 용안을 보고도 굴복하지 않는 어리석은 것들은 듣거라.]
아르센티아 주역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황제의 묵직한 영언.
전투를 위해 연정운과 함께 우주공간으로 나온 유태진이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이건 또 무슨 꿍꿍이속인 거지?”
서로 피를 볼 대로 본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영언을 보내오다니. 황제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짐은 네놈들의 저항을 보고도 자비심을 갖고 인내하였으나, 그것이 전부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본디 은혜라는 것은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 내려야 의미가 있는 법. 너희 같이 우둔하고 어리석은 것들에게는 개먹이 만도 못하지.]
“웃기고 있네.”
듣고 있던 연정운이 황제의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자비는 무슨 놈의 자비란 말인가? 지금까지 황제가 공화국 함대를 어찌하지 못한 것은 그 힘이 공화국 함대와 유태진의 저력을 압도할 수준이 못되어서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봐준 것처럼 떠들어대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태진은 황제의 그런 망언을 듣고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경각심으로 전신의 온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의 기세가 돌연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확실하게 박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더 이상은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
쿠구구구구!
무시무시한 영력의 힘이 황제가 내민 오른손 안으로 집결되었다. 마치 이 일대 우주의 힘이 전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광경은 영적 감각이 남다르게 발달된 자들에게는 메스껍게 느껴질 정도였다.
[황제로부터 행성요새 급 영자 에너지 집속 반응 포착!]
[설마 이 반응은!? 대량의 중력자가!]
[미친! 터무니없는 시공간의 일그러짐과 질량이 발생! 블랙홀입니다!]
오퍼레이터들이 잇따라 비명 같은 외침을 터뜨렸다.
그래비티 블래스트 같은 중력자 병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함대에게 있어 블랙홀 정도의 공격수단 따윈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물론 블랙홀의 위력은 무척이나 강력하긴 하지만, 이곳에 있는 함대가 힘을 합친다면 굳이 막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규모다. 지금 황제를 중심으로 생성되는 막대한 질량과 중력자가 상식을 아득히 넘어섰다는 것이다.
브라운 하이더 총사령관이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회피! 회피하라! 전 함대는 예측되는 사선상에서 최대한 벗어나라! 진형이 흐트러져도 좋다! 피할 수만 있다면 일단은 얼마든지 개별 행동을 허락한다!”
하지만 그의 명령은 때늦은 바가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손 위로 떠오른 칠흑빛 구체를 들어올렸다.
[이걸로 우선 서전을 장식하마. 신역에 다다른 짐의 손길 아래 먼지 하나 남지 않고 소멸되거라.]
우우우우우!
그의 손끝을 떠난 구체 형상의 블랙홀이 어느새 한 줄기 거대한 칠흑빛 섬광이 되어 우주공간을 집어삼켜온다. 이걸 굳이 표현한다면 블랙홀 블래스터이라 해야 할까?
그만큼 황제의 손 위에 올려놓을 만큼 작았던 구체 형태의 블랙홀은 지금 한없이 팽창하더니 공화국 함대의 정중앙을 그대로 침범하고 있었다.
함대의 모든 출력이 정중앙의 디스토션 필드에 집중되었지만, 그 정도 방어 따윈 한낱 종잇장만도 못했다.
범람하는 칠흑빛 해일! 그것은 물질적인 모든 것을 집어삼켜 무로 되돌리는 힘인 만큼 제아무리 대규모 전투선단이라 하더라도 그 앞에서는 잠시조차 버틸 수 없을 터.
제아무리 운이 좋다 하더라도 선단의 절반 이상이 이 블랙홀의 파도 앞에 소멸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공화국 함대의 앞으로 나선 이가 있었다.
투웅!
내딛는 첫 걸음에 시공간을 뛰어넘었고, 그에 이은 두 번째 걸음에는 거대한 힘의 유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발현! 천룡무상신공(天龍無上神功)!
용성무진(龍成無盡)!
쿠오오오오!
상상을 뛰어넘는 영력이 유태진의 전신으로 몰려들었다. 이미 원영신을 완성해 상중하단전을 하나로 이은 그의 전신은 무궁무진한 힘의 저장소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만유합원신기까지 더해지자, 그가 다루는 실제 힘의 규모는 반신의 격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음!?]
황제조차 갑작스런 힘의 유동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만큼 거대한 영력의 응집이었다.
그리고 막대한 힘의 응집과 가공은 어떻게 반응할 새조차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시간으로 따진다면 0.000000001초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칠흑빛! 유태진의 손에서 시작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은 함대를 집어삼키기 위해 몰려든 어둠을 역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천중무한신공(天重無限神功)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7절. 천중인(天重印)
극의. 멸겁현운광(滅劫玄運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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