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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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에 도착한 아서는 장례부터 치렀다. 이번 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과 기사들의 목숨을 아무 의미 없게 지나갈 순 없었다.
그리고 신좌들을 제약하는 의례법진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시켰다.
이곳 아바론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성지이자 멀린이 구축한 의례법진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이 존재하는 장소.
여기에 엑스칼리버를 봉인함으로서 의례법진의 유효기간을 최소한 천년 이상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걸로 일단락은 지은 셈인가?”
엑스칼리버를 아발론의 중심지에 꽂아 넣음으로서 신좌들을 배제하기 위한 의례법진은 보다 강력해졌다.
하지만 그래봐야 한시적일 수밖에 없는 평화였다. 그 점을 생각하니 아서는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짐을 느꼈다.
“적어도 천년 이상은 유지될 거야. 내 예측대로라면 대략 천오백년에서 2천년 사이 정도? 그 이상은 엑스칼리버가 더 버티기 어려울 거라고 봐.”
멀린의 내놓은 예측에 아서는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휴··· 그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도 우리가 번 시간은 고작 그 정도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아서. 상대는 필멸자와는 격을 달리하는 상위의 초월자들이었으니까. 사실 우리가 이 정도 결과를 낸 것만으로도 거의 기적이라 할 수 있어.”
“······.”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게 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지금의 결과만으로도 가히 기적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같은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를 수호하던 성계신마저 쓰러진 지금, 지구의 전력은 크게 감소한 상태. 특히 쥬헬 그리아드가 무려 상위신이었음을 감안하면 전력감소 비율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봐야 할 터였다.
그때, 랜슬롯이 물음을 던져왔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신지요?”
언뜻 듣기에는 평범했지만, 아서에겐 많은 의미가 담긴 물음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곧 입을 뗐다.
“경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린 멸망을 완전히 극복한 게 아니다. 단지 먼 훗날로 유예시켰을 뿐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브리튼의 재건은 포기하기로 했다.”
“예? 어째서!?”
랜슬롯이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브리튼은 자신과 아서왕의 고향이자 조국이었다. 로마에 의해 멸망했다고는 하나 이렇게 쉬이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곧바로 돌아온 아서의 대답에 랜슬롯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브리튼을 재건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지.”
“······.”
그랬다. 아서의 말처럼 브리튼이 재건된다고 해서 먼 훗날 다시 다가올 멸망의 미래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나라를 세워야 인베이더에게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지 않습니까?”
“당장은 그렇겠지. 하지만 무려 천년에서 2천년 이후에 다가올 일이다. 당장 수백 년 이후도 장담할 수 없는데, 내가 브리튼을 재건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천년 이상 유지될 거라 보나?”
“···아마도 어렵겠지요.”
랜슬롯은 아서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수백 년 이상 유지된 국가도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고작 수십 년 내로 새롭게 세워지고 멸망하는 나라들이 즐비한 상황인데, 하물며 천년 이상 유지되는 국가라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뭐 운이 좋다면 유지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때쯤 되면 나나 우리의 후대들은 인베이더에 대해 까맣게 잊고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을 게 뻔해. 결국 나라를 재건해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지. 내가 그때까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뭘 어쩌실 겁니까?”
“저 우주로 나가볼 생각이다.”
“우주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서의 그 말에 랜슬롯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래, 그동안 멀린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 저 우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지성체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나는 그걸 직접 확인해볼 생각이다.”
현재 지구의 문명 수준은 아직 저 우주로 진출하기는커녕, 우주의 현상을 관측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하지만 마법의 힘을 빌리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물론 상당한 실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의 아서 수준이라면 저 우주로 나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고 불가능하고의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째서 브리튼의 왕인 그가 나라의 재건을 포기하면서까지 저 우주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랜슬롯으로선 그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입니까?”
“멀린의 말에 의하면 인베이더들은 지금도 저 광활한 우주를 넘나들면서 여러 지성체들을 멸망시키고 있다고 하더군. 난 그들을 규합하여 우주 규모의 거대한 세력을 일굴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인베이더를 견제하도록 만들 생각이다.”
상상도 못했던 아서의 장대한 포부에, 랜슬롯은 일순 숨을 삼켰다. 그만큼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고 불가능하고를 논할 게 아니야. 어떻게든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지.”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지는 그 모습에, 랜슬롯은 그제야 새삼 깨달았다. 자신이 그를 주군으로 섬기게 된 이유를.
사실 왕이라는 자리를 제하고 아서라는 인물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는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재능은 말 그대로 평범 이하였고, 그걸 메꿀만한 뛰어난 혜안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남들을 이끌만한 대단한 리더십을 가지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포기할 줄 몰랐고, 한번 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원탁의 기사들이 그를 주군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서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악착같이 이뤄내는 그 모습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눈부셔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재능이 뛰어나고 아무리 능력적인 면에서 앞서면 뭐하겠는가. 왕은 자신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면서 보다 앞선 미래를 위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 저희들의 왕 다우시군요.’
랜슬롯은 그렇게 또 한 번 아서의 의지에 감복하면서 그 앞에 부복했다.
“알겠습니다. 왕께서 그렇게 결정하셨다면 따르겠습니다. 무슨 명령을 내리시든 반드시 이행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랜슬롯 경.”
하지만 짐작했던 것과 달리 랜슬롯이 아서와 함께 우주로 떠나는 일은 없었다. 우주를 향해 떠나려던 아서가 그에게 한 가지 임무를 맡겼으니까.
“경은 이곳에 남아서 아발론을 지켜줬으면 좋겠네. 매우 힘든 임무가 될 게야. 기약 없이 홀로 남아서 이곳을 지키는 일은 인간에겐 참기 어려운 고통일 테니까.”
“그렇군요.”
아서의 말처럼 견디기 힘든 임무임에는 틀림없었다. 신좌들을 제약하는 의례법진의 예측 한계 수명은 천오백년에서 2천년 사이. 그때까지 이곳을 홀로 지킨다는 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긴 세월은 인간의 수명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임무였지만, 아서와 멀린은 인간의 영혼을 아발론에 고정시킴으로서 수명 문제를 극복할 방안도 마련해 두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아발론을 벗어날 수도,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는 몸이 되겠지만 적어도 수명에 의한 사망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점 하나만 해결된다고 해서, 그게 과연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일일까? 아마도 그 긴 세월을 홀로 버티다간 영혼과 정신부터가 무너질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아서는 이를 랜슬롯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경 한사람에게만 이곳을 맡긴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는 잘 아네. 하지만 지금은 부탁할 사람이 그대밖에 없더군.”
이미 원탁의 기사들 대부분은 사망한 상태고, 살아남은 인물들 중 실력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천년 이상의 세월을 견디면서 아발론을 지킬 수 있는 정신력과 실력을 두루 갖춘 자는 랜슬롯이 유일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선 견디기 어려운 임무라는 것도 깨닫고 있지요. 허나 그렇기에···.”
랜슬롯도 이 임무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지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지 않고 결연한 표정으로 아서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이 임무 제가 맡고 싶습니다. 왕께서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전 이곳에서 왕의 검을 지키면서 기다리겠습니다.”
결국 아서는 멀린과 함께 지구를 떠나게 되었다. 그런 왕의 뒷모습을 아발론에서 지켜보던 랜슬롯은 내심 중얼거렸다.
‘이제 떠나시는군요. 참으로 머나먼 이별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왕께서 다시 돌아올 날까지 전 살아서 기다릴 겁니다.’
그랬다. 그가 아발론의 수호 임무를 순순히 받아들인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서는 언젠가 다시 지구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수백 년 뒤가 됐든, 천년 이후가 되었든 아서는 반드시 돌아올 수밖에 없을 터.
그때 귀환하는 아서를 자신이 맞이해주고 싶었다. 그때쯤에는 지구인들 중 어느 누구도 아서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자신 한 사람만이라도 어떻게든 살아서 그를 반갑게 맞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무사히 돌아오시길.’
그의 마지막 소원을 끝으로, 아서는 기약 없는 저 먼 우주여행을 떠났다.
그것이 유태진이 이번에 본 기억의 전부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좌들에게 대적하려면 엑스칼리버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건데···.”
문제는 지금 상태로는 사용 자체부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엑스칼리버는 지구의 사상과 모든 생명체들의 의념, 그리고 성계신의 힘이 더해져 지금의 형태로 가공되었다.
허나 지구의 성계신이 소멸한 지금으로선 같은 방법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루네리아 여신과 접촉해 봐야 하겠군.”
지금으로선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에게 협조해줄만한 상위신은 그녀뿐이었으니까.
그녀와 직접 접촉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오래 전 연합을 세웠던 아서에게 협력했던 초월자인 만큼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전에 저 황제부터 어떻게 해야겠지.”
안 그래도 초월자 반열에 오른 황제는 얼마 전보다 더 급격히 강해졌다. 대체 또 무슨 의식을 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반신 따위가 아니라 명백한 하급신 이상의 초월자로 거듭나 있었다.
그건 이 아르센티아 주역 전체를 한 차례 뒤흔든 거대한 파동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유태진은 주먹을 쥔 자신의 손아귀가 더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의식을 잃은 순간 아서의 기억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수많은 깨달음과 지식을 얻었고 그것을 밑바탕 삼아 한층 더 강해졌다.
이제는 반신 급 중에서도 상위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그가 현재 도달한 경지는 바야흐로 천룡무상신공의 11성 경지.
이건 일반적인 신공의 경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점창이 보유하고 있는 여러 신공절학들의 장점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 바로 천룡무상신공인 만큼, 한 단계 올라설 때마다 급격히 강해지게 된다.
단 1성이 추가되었을 뿐이지만, 지금의 그는 어지간한 하급신과도 맞붙어볼 수 있을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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