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77화 (378/448)

16권-02화

가장 먼저 결단을 내린 갤러해드가 앞으로 나섰다.

“어쩔 수 없지. 애당초 이 싸움에 나설 때부터 목숨 따윈 내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이곳의 싸움도 중요하긴 하지만, 저 위의 싸움이야말로 지구의 운명을 판가름할 터. 이 세계의 운명을 멸망에서 건져낼 수 있다면 내 목숨 따윈 얼마든지 내주겠다.”

“역시 갤러해드!”

“성검탐색자답군

“좋아, 나도 함께하겠다!”

“이런 자리에 내가 빠질 순 없지!”

그러자 원탁의 기사들 중 강자로 손꼽히는 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지원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들 하나같이 자기 한 몸 희생할 각오가 되지 않은 자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전장을 전부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그라베인은 신좌들의 싸움에 참여할 자들을 철저히 실력 별로 선별했다. 하지만 단 한 명만큼은 예외였다.

“랜슬롯 너는 이곳에 남아라.”

“뭣이? 지금 나더러 혼자 추하게 살아남으란 말이냐?”

격분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는 랜슬롯에게, 아그라베인이 침착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 말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한 승리를 위해 저 싸움에 뛰어들 작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전투를 아예 포기할 순 없는 일이지. 그렇기에 너를 이곳에 남기려 하는 거다.”

“그래도 나 아닌 다른 녀석을 남겨도 되는 것 아니냐? 이런 대규모 전투라면 차라리 가웨인이 나보다 더 나을 텐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려 신좌들의 싸움이다. 가웨인 같은 특성을 가진 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너도 그 점을 부정하진 않겠지?”

“으음, 그야···.”

“그리고 넌 무예 하나만 따진다면 적수를 찾을 수 없는 만능의 기사다. 특히 전술적인 전투에서도 남들보다 단연 뛰어나지. 우리가 빠져나간 이 전장을 승리로 이끌 가능성을 가진 자는 네가 유일하다. 그래서 널 남기는 거다.”

“···알았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랜슬롯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아그라베인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자신도 저 무리에 합류해서 세계의 명운을 건 싸움에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여기 남은 병사들과 기사들도 포기할 순 없었다.

“미안하게 됐군. 뒤를··· 부탁한다.”

아그라베인은 그 말만 남기고는 선별한 원탁의 기사들과 저 높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선별된 기사들은 하나같이 그랜드 급 이상의 강자들. 약간의 마법적인 보조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허공을 누빌 수 있었다.

구름층을 꿰뚫고 올라선 그들의 눈에 신화적인 싸움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행성들을 가루로 만들고 주변 행성의 운행마저 뒤틀어버리는 거대한 싸움 앞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사태가 더 심각했다.

성계신은 이미 많은 타격을 입어 존재감이 흐릿해져 가고 있었고, 아서도 이미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다.

전황을 주시한 아그라베인이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바는 명백하다. 어떻게든 신좌들의 시선을 끌고 빈틈을 만든다. 물론 이 과정 중에 우리의 목숨 따윈 한순간에 날아갈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희생이 있어야 일말의 틈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다.”

“알았다!”

“좋아, 내가 먼저 나서지!”

희생을 전제로 세운 작전이지만 어느 누구도 망설이지 않았다. 애당초 여기까지 온 원탁의 기사들은 자신의 목숨 따윈 세계를 위해 내버리기로 작정한 자들 뿐.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다 해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오오오오! 신좌여! 나는 태양의 기사 가웨인! 브리튼의 검이자 아서왕의 첨병이다!”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대로 가웨인이 가장 먼저 나섰다!

그의 전신에서 일어난 폭발적인 영력이 어느새 태양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반경 수천km 사방은 열기와 빛으로 가득 차 버렸다.

“가웨인!”

신좌들의 공격을 견제하고 빈틈을 찾느라 정신없었던 아서는 그제야 가웨인의 존재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원탁의 기사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하, 어디서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투쟁의 좌 오르쿤이 같잖다는 듯 반응했다. 그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방대한 영기가 가웨인과 원탁의 기사들을 향해 거대한 폭풍우가 되어 날아들려던 참이었다.

헌데 그 순간, 우주공간을 불사르는 거대한 폭염이 부채꼴 형상으로 펼쳐지면서 폭풍우를 집어삼켰다.

[그렇게 놔둘 것 같으냐?]

강력한 영언과 함께 쥬헬 그리아드의 맹공이 다시 시작되었다. 분명 좀 전만 하더라도 타격이 커서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던 성계신이었다. 그런데 돌연 신좌들에게도 충분히 위협이 될 만큼 강력한 공격을 펼쳐온 것이다.

[이놈이!]

[아직 그 정도 힘이 남아 있다는 거냐?]

신좌들의 시선이 다시 성계신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필멸자에 불과한 원탁의 기사들은 자신들을 위협할 수조차 없을 만큼 하찮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패착이 되었다. 성계신에 대한 대응을 우선시한 그 순간, 원탁의 기사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쥐어짜내 공격을 전개하였다.

화아아아악!

“자 받아라, 태양의 분노를!”

가웨인. 태양이 떠 있는 때만큼은 그랜드 급을 넘어 반신 급의 무위를 발휘한다는 그의 일격은 필멸자의 그것을 한참 뛰어넘었다.

아니 자신의 모든 생명력까지 전부 담아낸 만큼 거의 하급신에 준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크으! 이 빌어먹을 필멸자 따위가!]

제아무리 신좌들이 중급 이상의 초월자라 하더라도 타격이 아주 없을 리가 없었다. 엑스칼리버에 의해 권능이 봉인당한데다, 성계신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맞았으니까.

심지어 그들을 향한 공격은 가웨인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내 모든 것을 여기에!”

“내 화살은 빗나감이 없나니!”

원탁의 기사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전력을 담아 공격을 펼쳤다.

그들 또한 가웨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명을 전부 쥐어짠 만큼, 위력은 평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개중에선 가웨인과 마찬가지로 특정 조건에 따라 더 강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사들도 여럿 존재하고 있어서, 그들의 총공격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성가시다! 어디서 이런 벌레 같은 것들이···!]

거듭된 타격에 신좌들의 대응이 어지러워졌다. 평소라면 감히 닿지도 못했을 공격들이 권능의 봉인과 성계신의 발악 때문에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물론 타격이라고 해 봐야 인간으로 친다면 새끼고양이에게 물린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절대 입지 않을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이 신좌들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드디어 내 차례군!”

···아직 나서지 않은 한 명의 원탁의 기사가 있었다.

그는 갤러해드. 다른 가웨인과 같이 특정 조건을 갖춘 때가 아니라면, 원탁의 기사 중 최강의 무력을 보유한 강자.

허나 그런 그에게도 남들에게 알린 적 없는 또 다른 힘이 존재했다. 그는 우주 저편을 잠시 응시하더니 낮게 읊조렸다.

“성검이여! 이것은 살기 위한 싸움이고, 자신보다 강대한 사악과의 싸움이며, 또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니··· 내게 힘을!”

작은 목소리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형태를 넘어 우주 공간에 큰 울림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여기에 임하라! 성검의 가호.”

고오오오!

갤러해드를 중심으로 거대한 격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개 필멸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영기였다.

[아니!?]

[이 무슨!]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성좌들이 하나같이 경악에 잠겼다.

지금 저 필멸자에게서 느껴지는 힘의 성질과 크기는 마치 자신들이 지금까지 견제해왔던 창세성검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하지 않은가.

그랬다. 갤러해드는 그냥 창세성검의 편린만 가져왔던 게 아니었다. 그는 성검으로부터 무욕함과 정대한 마음을 인정받아 엑스칼리버를 소유하지 못해도 일시적이나마 그와 흡사한 영역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기회는 단 한번 뿐이었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발동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구의 멸망을 앞둔 이 상황에서, 그 정도 리스크 정도는 그를 주저하게 할 이유조차 되지 못한다.

눈부신 빛에 휘감긴 갤러해드의 신형이 신좌들의 틈사이로 파고들었다. 아니 이미 그의 전신은 빛 그 자체였다.

라디언스 크로스(Radiance Cross.십자성광참)!

검 끝으로 시작하여 시간을 초월한 듯 그어지는 두 가닥의 참선!

그것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공간을 쪼개는 순간, 무시무시한 신살의 힘이 그들을 덮쳐나갔다.

[크아악! 빌어먹을! 빌어먹을!]

[창세성검이여! 왜 우리의 발길을 방해하는 거냐!]

지금까지 입은 타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갤러해드의 검에 담긴 일격은 바로 창세성검으로부터 받은 가호의 힘!

제아무리 신좌들이라 하더라도 치명적인 데미지를 피할 수 없었다.

가호는 물론 모든 힘을 소진한 갤러해드의 육신이 서서히 산화하기 시작했다. 앞서 죽어간 원탁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생명까지 불태운 그로서는 더 이상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왕이시여! 이 기회를··· 반드시 승리로!”

그는 아서를 향해 작은 유언을 남기고는 곧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소멸하였다.

[아서 팬드래건! 지금이다!]

아서를 향해 크게 외친 성계신 쥬헬 그리아드도 그들의 희생이 만들어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불태우며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이것들이···이렇게 필사적으로 저항하다니! 크으으으!]

폭염의 신이라는 이명답게, 소멸을 각오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 그의 힘은 일순간이나마 그룬베일의 영역에 도달했다. 현재 권능을 사용할 수 없는데다 갤러해드의 일격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그룬베일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모두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아서는 이가 으스러질 정도로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원탁의 기사들이 필사적인 공세를 펼치며 죽어가고, 갤러해드가 성검의 가호를 사용해 신좌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먹였으며, 마지막으로 성계신까지 자신을 던져가며 희생한 그 순간!

신좌들은 일순간이나마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아서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사라져라, 이 침략자들아!”

엑스칼리버를 중심으로 번져나가는 찬란한 섬광! 거기에 휩싸인 아서의 전신이 일순 빛 그 자체가 되었다.

이것이 엑스칼리버만의 엑스트라 스킬, 극광화신(極光化身).

막대한 빛의 힘으로 육체의 구성요소를 전환하여 자기 자신을 빛의 화신으로 만드는 스킬이었다.

한 줄기 거대한 빛줄기로 승화된 엑스칼리버와 아서는 좀 전의 갤러해드와 같이 일직선으로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나아가, 인베이더의 아홉 신좌들을 정면으로 관통해버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개 필멸자 따위에게 우리가···.]

그들은 경악과 불신에 찬 영언을 토해내며 절규했지만, 이미 자신들을 관통한 엑스칼리버의 힘은 그들의 신성과 신체를 좀먹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그들이 소멸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싸울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번 침공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달은 그룬베일이 이를 갈며 말했다.

[크으··· 이것으로 끝나리라 생각하느냐?]

“······.”

[네 녀석들의 필사적인 저항은 과연 눈부신 바가 있지만, 그래봐야 찰나의 시간벌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에겐 영겁의 시간이 있지.]

그 말처럼 그들은 일개 필멸자가 아니었다. 소멸되지 않은 이상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시일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아서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힘을 회복하는 즉시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도 과연 네놈들이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너희를 가호해주던 성계신조차 소멸된 지금. 크크크.]

그룬베일의 말처럼 성계신인 쥬헬 그리아드는 자신의 소멸을 각오하면서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초월자인 그에게 죽음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듯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그 세월은 까마득하게 먼 훗날일 것이다.

과연 신좌들의 재침공이 이르기 전에 그가 다시 완벽히 부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아서의 모습은 생각 외로 담담했다. 격하게 분노하거나 두려움에 빠진 게 아니라, 아주 냉정하기 그지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도 안다. 모를 리가 없지. 네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뼈저리게 깨달았으니까. 이대로 돌려보내면 몇 번이고 우리의 세계를 재침공하겠지.”

[허, 꽤 색다른 반응이군.]

[···이것이 지금 미치기라도 한 건가?]

아서의 그런 모습을 기이하게 여긴 신좌들이 의문을 표한 그 순간이었다.

그들의 영적 직감으로 이유 모를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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