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76화 (377/448)

16권-01화

조용히 눈을 뜬 유태진은 뭔가 기이함을 느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육체와 혼에 가해지는 무지막지한 압력 탓에 의식을 잃던 그 순간을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도약의 실패는 곧 죽음. 그래서 절망감에 휩싸인 채 정신을 잃었었는데, 영문도 모르고 깨어난 지금은 모든 게 고요하기만 했다.

진기는 잔잔한 호수마냥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정신은 그 어떤 때보다도 더 맑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부를 관조해본 유태진은 뜻밖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완성했나, 천룡무상신공 11성을···?”

그랬다. 모든 게 완전무결했다.

상중하로 구분되어 있던 단전은 완벽히 하나가 되었고, 전신을 가득 채운 무궁무진한 힘이 꿈틀거렸다.

이젠 피륙으로 이루어진 필멸자의 육신을 벗어나, 완전한 원영신을 이룬 반신 급 초월자가 된 것이다.

‘이제야 간신히 전생의 경지를 되찾은 건가?’

아니, 단순히 격만 따진다면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강함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전생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다.

천화운 시절에는 오로지 무공과 도가의 술법을 다룰 수 있을 뿐이지만, 지금은 마법이나 정령술을 비롯해서 다룰 수 있는 영능의 폭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힘을 얻게 된 게 다 아서 그 사람의 기억을 얻은 덕분이라는 거지.’

정신을 잃고 아서의 과거의 기억을 엿봤을 뿐인데도 이런 결과가 펼쳐졌다. 그만큼 아서가 쌓은 노력과 공부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싸워야 할 멸망은 너무도 강대했다.

“그게 바로 신좌라 이거지?!”

엑스칼리버를 손에 넣고 강해진 아서는 그로부터 몇 년 뒤, 드디어 멀린이 예언하던 멸망의 그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거듭된 수련과 실력을 가다듬고, 수하들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아서는 나름 자신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일개 필멸자들이 고위의 초월자들을 상대로 승산을 점친다는 게 우습긴 했지만, 그에게는 엑스칼리버가 있었고 성계신인 쥬헬 그리아드까지 가세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인베이더라는 침략자들과 맞닥뜨리게 된 아서는 그런 판단이 완벽히 오산임을 깨달았다.

“이런 괴물들이!”

신좌들이 아니더라도 인베이더들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개체 하나하나가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강인함을 보유하고 있었고, 타입에 따라 까다로운 특성들까지 지녔다.

상당히 수련을 쌓은 기사들조차 상대하기 버거운 판국이었으니, 일개 평범한 인간들이 대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투의 무대가 지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쥬헬 그리아드는 성계신의 권능으로 그들을 차원의 이면으로 끌어들였고, 덕분에 싸움의 여파를 걱정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세는 절망적일 만큼 불리했다.

“끄아아악!”

“사···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여기저기서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죽음이 난무했다. 인베이더들의 수는 끝이 없었고, 그들이 보유한 병력과 기사의 수에는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서가 그동안 육성해온 병력의 질이 단연 뛰어났던 데다 세계 각지에서 이변을 알아채고 찾아온 강자들이 힘을 보탠 덕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인베이더의 병력은 밀고 당기는 형태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바로 신좌들이었다.

그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했다. 그냥 갓 초월자가 된 것도 아니고 무려 하나같이 중급 이상의 존재들.

그런 존재들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아홉! 그래서 구대 신좌라 불리는 그들은 성계신인 쥬헬 그리아드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크으! 역시 버겁나?]

쥬헬 그리아드는 거듭된 공세 속에서 신음을 토해내었다.

본디 아홉이나 되는 신좌들을 상대로 버틴다는 건 상위신인 그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지금은 아서의 엑스칼리버가 있기에 그나마 가능했다.

특히 엑스칼리버는 초월자들의 권능을 봉쇄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으로 신좌들이 가진 실제 역량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절망적이었다.

권능이 봉쇄된 다른 신좌들이야 성계신 혼자서도 감당할 만 했지만, 유독 단 한 존재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신좌들 중 가장 강력한 존재!

인베이더 세력의 수좌이자 최상급 신위에 발을 걸친 제 1신좌 그룬베일은 권능이 봉쇄된 지금도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만일 엑스칼리버가 없었더라면 이 전쟁은 진작 지구의 멸망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창세성검의 편린을 가공해 만든 무구라. 꽤 골치 아픈 걸 들고 있군.]

[이 정도 패가 아니라면 어찌 당신들에게 대적할 수 있을까. 나와 당신과의 격차는 이미 상정해 두고 있었다.]

[재미있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몸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쿠콰콰콰!

그룬베일이 한번 손을 휘저을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력이 밀려들었다. 그 힘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행성을 박살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쥬헬 그리아드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내면서 신좌들을 견제했다. 하지만 그룬베일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네 녀석은 정상적인 상태도 아니군. 엑스칼리버라고 했던가? 그걸 만드느라 본신의 역량 중 상당수를 허비했구나. 적어도 회복하는 데에 수백 년 이상 걸리겠지. 그런 상태로 내게 대적하겠다는 게냐?]

가소롭다는 듯 내뱉는 그룬베일의 영언. 그만큼 쥬헬 그리아드의 현재 역량이 평상시와 비교해 극도로 저하되어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게다가 제아무리 대단한 신기라 하더라도, 그걸 다루는 자의 역량 역시 중요하지. 고작 필멸자가 들기에는 너무도 벅차 보이는구나.]

“큭!”

재앙처럼 밀려드는 영력의 소용돌이 앞에 아서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내며 뒤로 밀려났다.

엑스칼리버의 신좌들 같은 신적 존재들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역량이 그들에게 미친다는 건 아니었다.

인과섭리에 간섭하는 모든 권능이 봉쇄된 탓에, 현재 다룰 수 있는 힘은 이와 같이 직접적인 영력에 의한 공격이 전부이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아서의 발을 묶기엔 넘치도록 충분했다.

“빌어먹을!”

그는 자신의 무력함에 욕지기를 내뱉었다. 신좌들의 권능을 봉쇄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권능을 제외하고도 그들이 가진 역량이 상상을 뛰어넘었다는 것이었다.

창세성검의 힘을 일부 가진 엑스칼리버 덕분에 아서는 상대가 그룬베일이라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면 무엇 하겠는가. 정작 상대를 맞출 수가 없는데···.

콰아아아앙!

아서가 휘두른 일검이 상대를 빗겨나가 차원의 이면에 구현된 위상행성 중 하나를 그대로 베어냈다. 단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 달보다도 더 큰 행성이 한순간에 소멸되는 것은 가히 경이적이었다.

헌데도 그룬베일은 그런 아서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정말 형편없구나. 너 같은 한낱 미물의 손에 그런 귀물이 주어지다니.]

그랬다. 제아무리 신에게 닿을 수 있는 강력한 일격도 일단은 적중을 해야 소용이 있는 법이다. 권능을 제외하더라도 그룬베일의 역량은 아서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그는 엑스칼리버에 의존한 아서의 모든 공격을 피하거나 흘려냈다.

이래선 신들의 카운터 무기를 지녔어도 별 의미가 없었다.

‘또 내 재능에 발목이 붙잡히는 건가?’

아서는 절망감에 젖어들었다.

엑스칼리버를 손에 넣은 그는 그토록 닿기 어려웠던 그랜드 급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가 체득한 모든 영능들이 전부 그런 건 아니었다. 오직 단 한 가지, 검술 하나만큼은 그랜드 급에 도달하지 못했다.

물론 이번 도약으로 한없이 그랜드 급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진짜 그랜드 급과 비교한다면 명백한 격차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멀린과 성계신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네가 깨달음을 얻은 건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업, 그리고 재능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크게 증폭된 탓이지. 그렇지만 검술만큼은 예외다.]

“예?”

[네가 타고난 재능들은 대부분 평범하거나 평범 이하지만, 검술에 관련한 재능은 특히 더하다. 거의 밑바닥 수준이지. 그 때문에 엑스칼리버의 도움으로도 그랜드 급을 단번에 넘어서지 못한 거다.]

“······.”

아서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기사를 지망했던 자신이 그 무엇보다 검술에 대한 재능이 가장 떨어진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그래서 멸망의 그날이 올 때까지 끝없이 노력했지만, 결국 검술만큼은 그랜드 급을 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차라리 엑스칼리버가 다른 종류의 병기였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마법을 보조하기 위한 석장이었다 하더라도 이보다는 더 잘 다룰 수 있었을 테니까.

허나 엑스칼리버는 어디까지나 검술을 발휘하기 위한 무기. 기본적으로 검술에 대한 역량이 일정 이상이 되어야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제기랄!”

엑스칼리버를 손에 쥔 순간부터 모든 역량이 크게 상승한 아서의 감각으로 수많은 죽음이 감지되었다.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인베이더에게 살해당하는 광경도 느껴졌고, 아직까지 필사적으로 싸우는 원탁의 기사들의 상황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가다간 처절한 패배 끝에 전멸할 터.

‘그럴 순 없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초월자들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의 강대함은 단지 권능과 힘의 규모만이 아니었다.

신적인 힘을 제외하더라도 각자 신좌들의 역량은 가히 신역에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아서가 그동안 열심히 갈고 닦아온 모든 게 그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엑스칼리버를 쥐게 되면서 다룰 수 있게 된 초고위 마법들은 구사되자마자 즉각 카운터 당해 소멸되거나 흩어졌고, 그가 소환한 정령왕 급 정령들도 맥을 못 추긴 마찬가지.

이건 어디까지나 그가 다루는 영능의 격이 부족하기보다는, 그걸 운용하는 실질적인 역량이 따라주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찮구나. 고작 권능을 봉쇄했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겼더냐?]

그룬베일이 광포한 영언을 토해내면서 더욱 맹공을 가해왔다.

반면 성계신 쥬헬 그리아드는 엑스칼리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한 권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열세에 처해 있었다.

격에 있어서도 그룬베일에게 처지는 데다, 엑스칼리버를 제작할 당시 막대한 본신역량까지 희생하였다. 심지어 신좌는 그룬베일 외에도 무려 여덟이나 더 되니, 혼자서 감당키 어려운 것도 당연했다.

[크으으···!]

그나마 성계신이라는 홈 그라운드의 이점 덕분에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이대로 가다간 신좌들을 물리치기는커녕, 놈들을 타격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멸망당하게 될 지경이었다.

그리고 급박한 이 상황은 지상에서 인베이더의 병력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던 원탁의 기사들까지 알아채게 되었다.

성멸급 인베이더 하나를 막 베어버린 가웨인이 동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쩌지?”

짧은 물음이었지만,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자 아그라베인이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이 전쟁의 승패는 저 위의 싸움에 달려 있다. 여기서 우리가 승리한다 해도 신좌들이 이긴다면 다 무의미한 일이지.”

“그렇다면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소리군.”

“······.”

그 말에 다들 고민에 잠겼다. 현재 이곳의 전투만으로도 브리튼 군의 전력은 턱없이 부족한 판국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강자들이 합류했다곤 하지만, 인베이더들의 전력은 그마저 한참 뛰어넘었다. 그나마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승산을 논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원탁의 기사들 중 탁월한 실력을 자랑하는 몇몇 소수의 강자 덕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성계신과 아서의 싸움에 개입하려면 적어도 이곳에서 가장 강한 전력인 그들을 차출해야 가능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이곳의 전투는 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냉정하게 따져보면 무엇을 우선시해야할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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