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73화 (374/448)

15권-23화

그렇게 해서 강해진 이들을 아서는 [원탁의 기사]라 명명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끌고 브리튼을 평정하기 시작했다.

거듭된 전투 속에서 원탁의 기사들은 빠르게 강해졌고, 브리튼을 일통할 즈음에는 각자 전문 분야에 한해선 거의 아서에 육박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중 일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자들은 이미 아서를 뛰어넘고 있었다.

하지만 수하들의 비약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서는 초조함을 금치 못했다.

‘더 이상은 시간이 없어.’

멀린이 예언했던 멸망의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단 브리튼을 하나로 만들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켜 인류의 힘을 한데 모으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세력을 확장하는 건 이 정도까지만 한다. 지금 현재 가진 전력을 최대한 성장시키는 게 더 나아.’

그는 브리튼을 일통한 것으로 전쟁을 멈춘 뒤, 수하들과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세계를 일통하여 가용한 병력의 수를 대폭 늘리기보단 차라리 질적인 면을 우선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름 자신도 있었다.

원탁의 기사들.

아서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 중 재능 있는 자들을 추려서 심혈을 기울여 육성해온 브래튼 최강의 무력집단이었다.

물론 아서가 터득한 영능의 분야가 폭넓고 다양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총체적인 무력은 아서가 앞서지만, 그들 각자의 전문 분야에 한에선 이미 아서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대로 성장해나간다면 그들은 마이스터 급을 넘어 필멸자가 닿을 수 있는 한계라는 그랜드 급까지 도달할 거라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멀린이 한 가지 정보를 가지고 아서를 찾아와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성검탐색이었다.

“그러니까 멸망의 날을 대비하려면 그 성검이란 게 필요하단 겁니까?”

“그래, 그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가능성이라 해야 할 거야. 우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창세성검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어.”

창세성검. 그것은 우주와 모든 차원들이 창조되던 그때, 창조주가 만약을 대비해 남겼다는 절대신기였다. 물론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섣불리 추측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주와 차원에 닥칠 위험에 대비해 남긴 무기라고 하니 나름 강력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멀린? 확실치도 않은 정보로 귀한 전력을 파견한다는 건 저로선 찬성하기 어렵군요.”

“그래. 네 말처럼 정확한 위치까지는 모르지. 하지만 어디쯤에 있을 지는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단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성검탐색에 부정적이던 아서도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만일 멀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성검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결국 고민 끝에 갤러해드가 성검탐색 임무에 선택되었다. 원탁의 기사 중 최강이라는 강력한 무력에 반해 무욕하기 그지없는 성품 때문이었다.

갤러해드는 원탁의 기사 몇을 이끌고 멀린의 인도에 따라 먼 여행을 떠났다. 단순히 거리가 먼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의 세계로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성검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실치도 않은 일이니, 아예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아서는 멀린과 갤러해드 일행이 성검탐색을 떠난 이후에도 원탁의 기사들을 독려하면서 수련에 열중하였다.

멀린에게 배운 모든 영능을 마이스터 급까지 체득한 그는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무위를 자랑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순 없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원탁의 기사들은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대로 수하들에게 뒤쳐질 순 없었다.

‘역시 내겐 재능이 없어. 끝없이 노력하지 않고선 저 녀석들의 발전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겠지.’

만일 아서가 수많은 영능을 마이스터 급까지 복합적으로 체득했다는 이점이 아니었다면 총체적인 무력조차 원탁의 기사들보다 뒤처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 당장은 어느 정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도 오래 가진 못할 게 분명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어.”

그는 멀린이 만들어주고 간 환상공간 안에서 본격적으로 수련을 재개했다. 물론 이전에도 수련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브리튼을 통일시키는 지난 수년 동안 예전보다 수련양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다.

수하들의 실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도 중요했다.

평범한 경우였다면 왕이 직접 전투에 나서는 일은 최대한 지양해야 하지만, 앞으로 아서가 맞서야 할 것은 멸망 그 자체!

그러니 최대한 강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왕으로서의 업무를 살피는 한편, 시간 나는 틈틈이 환상공간 속에서 수련을 반복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끊어서 환상공간에서 수련하는 방식은, 예전처럼 천년의 시간을 한꺼번에 보내는 것보단 효율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제아무리 수련이 중요하다 해도 왕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업무를 아예 방치할 순 없었다.

‘역시 잘 안 느는군.’

오늘도 환상공간에서 수련을 마친 아서는 쓰게 웃고 말았다.

멀린과 갤러해드가 떠난 뒤에도 쉬지 않고 수련해 왔건만, 정작 그의 실력 향상은 그야말로 완만하기 그지없었다. 딱히 성장했다는 느낌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실력 향상 자체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수련 강도와 소요된 시간에 비한다면 가히 미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아서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수련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노력뿐이었다.

허나 이렇듯 매일같이 현실과 환상공간을 오가길 반복하자, 점점 기억이 흐려지고 시간관념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루 업무를 마친 뒤 환상공간에서 무려 수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되니, 현실감각과 기억이 둔화되는 것도 그리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제 올라왔던 안건이 뭐였던가?”

아서가 회의장에서 어색한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신하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어, 전란을 대비한 식량비축에 대한 안건이었습니다.”

“아아, 그랬었지.”

말을 듣고 나니 비로소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았다. 물론 안건에 대한 내용이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부분부분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런 아서를 신하들이 우려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서를 보좌하는 비서 역할을 도맡아 하는 베디비어는 사정을 더 잘 아는지라 더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랜슬롯이 입을 열며 나섰다.

“폐하. 베디비어 경에게 듣기론 멀린 경이 만든 환상공간에서 매일같이 수련에 전념하신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렇네. 수련을 등한시 할 수 없어 그곳을 활용하고 있지. 작은 시간을 활용하기엔 그곳만큼 좋은 곳도 없으니까.”

“하지만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단 하루만 발을 들여도 심신이 피폐해지는 그런 곳을 매일같이 드나들다니요. 심지어 이젠 기억까지 흐릿해지신 걸 보니 당분간 수련은 중단하시고 안정부터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젠 원탁의 기사들도 모르지 않았다. 아서가 어떻게 수련해 왔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강해졌는지를.

그건 도저히 인간의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오로지 수련만 하면서 견딘다니···.

원탁의 기사들도 아서의 권유로 다들 한 차례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채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그곳에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물론 그 덕분에 실력은 크게 증진되긴 했지만, 그곳에 다시 들어가라고 한다면 원탁의 기사들 중 어느 누구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헌데 그런 곳을 아서는 매일 같이 드나든다고 하니, 그 지독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경의 말처럼 무리를 하긴 했지. 하지만 이러지 않고는 내가 성장하기 힘들다는 걸 잘 알지 않나.”

“······.”

“이제 멸망의 날이 그리 머지않았네. 조금 무리라 해도 이 정도쯤은 감수해야지.”

랜슬롯을 비롯한 원탁의 기사들은 더 이상 아서를 만류하지 못했다.

십수 년 전부터 들어온 예언의 때가 슬슬 다가오고 있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아도 부족할 판국인데, 아서가 무리를 감수하는 것을 막기도 뭣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서는 환상공간에서 혹독한 수련을 반복하면서 많은 일들을 진행시켰다.

그가 브리튼을 일통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안정화 된 건 아니었다. 외세의 침입은 언제나 있어온 데다, 내부의 혼란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처리하면서 나라의 전력을 정예화 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백성들의 불만도 적지 않았다. 예전에 비한다면 충분히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게 하지 못하고 항상 전시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아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멀린이 오래 전부터 널리 퍼뜨렸던 멸망의 예언을 브리튼 내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백성들에게는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허무맹랑한 소리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부의 불만은 쌓여가고, 그것을 다독거리는 것도 쉽지 않던 그때 드디어 성검탐색을 나섰던 일행들이 무사히 귀환하였다.

“이것이 그 창세성검인가?”

아서는 그들이 가져온 작은 빛 덩어리를 손에 든 체 당혹스럽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명 멀린은 창조주가 남긴 성검이라 했거늘, 정작 가져온 것은 이런 작은 빛 덩어리라니.

물론 이 안에서 감히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격과 힘이 느껴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자 멀린이 입을 열어 설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창세성검이 우리에게 넘겨준 혼의 결정이지. 아주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창세성검의 고유한 힘이 담겨 있어.”

“하아··· 일부라니. 그럼 멀린, 이건 창세성검이 아니라 그 작은 조각만 가져왔다는 겁니까? 대체 이걸 어떻게 사용할 겁니까?”

아서로선 기가 막혔다. 이건 무기도 아닌, 고작 작은 빛을 뭉쳐 만든 듯한 작은 구슬이었다.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다가오는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서, 나의 왕. 진정하도록 해. 우리가 가져온 이 결정은 일종의 재료에 지나지 않아. 제대로 사용하려면 제작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제작이라고요? 이걸 가지고 무기를 만든다는 겁니까?”

“그래, 우린 아주 강력한 초월신기를 만들어낼 거야. 비록 창세성검의 진체보다는 못하겠지만, 지구를 침공하기 위해 다가오는 인베이더의 신좌들에게 대적할 수는 있겠지.”

멀린의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서야 아서는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단 지구에 멸망을 가져올 침략자들에게 대적할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전부일까? 아서는 문득 뇌리로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들었다.

“그런데 이걸 무기로 제작해야 한다면··· 그 과정이 그렇게 평범하진 않겠군요.”

그러자 멀린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아서. 이 결정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만들기 위해선 성계신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해.”

“성계신이라면···.”

처음 들어본 그 말에 아서의 표정 위로 의문이 떠올랐다. 성계신이란 명칭을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들어봐서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신격들과는 전혀 다른, 이 세상을 관장하는 진짜 주인이지. 애당초 창세성검에 대한 정보를 내게 전해준 분도 바로 성계신이셨고.”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아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성계신이란 존재가 자신들을 돕는 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적인 존재가 자신들을 적극 돕는다면 다가올 멸망을 극복해야 할 자신들에게는 큰 힘이 되어 줄 것이 분명했다.

“자, 그럼 지금 만나 뵈러 갈까?”

아서는 멀린의 그 말에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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