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71화 (372/448)

15권-21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신성의 분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거대한 영력으로 느껴졌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너무도 선명하게 감지되었다.

그도 영혼만큼은 온전히 반신 급에 도달한 신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

유태진과 서로 마주앉아 있던 연정운도 안색을 굳혔다. 유태진 정도는 아니어도 그 또한 그랜드 급의 강자. 심지어 연합에 소환된 이후로 십수 년 이상 온갖 실전을 경험해온 만큼 이를 못 느낄 리 없었다.

“엄청나군. 이 정도 규모면 평범한 상황은 아니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글쎄, 내가 잘못 느낀 게 아니라면 이 영력은 알카데인 황제의 것이 분명한데··· 이렇게까지 급증하다니. 게다가 규모만 늘어난 게 아니야. 격도 그에 비례해 상승했어.”

“그래. 네 말대로야. 격 자체가 갑자기 높아졌어. 이 정도면 신좌 급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야. 그런데 이게 알카데인 황제의 영력이라고?”

“분명해. 며칠 전에는 직접 손속까지 섞어 봤으니 내가 틀릴 리 없어.”

“으음, 예전에 마주쳤을 때완 느낌이 전혀 다른데? 더 이상 윌키아 여신의 권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초월자가 됐다더니··· 그래서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그 작자가 다루는 힘의 기질과 종류가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으니까.”

하지만 유태진은 그가 초월자가 된 방법이 결코 정상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며칠 전에 맞붙을 때만 하더라도 황제는 반신 급 중에서도 최상위 권의 초월자였다. 그런데 지금 전해지는 신격과 영력의 크기는 그 벽을 한참 넘어서 버렸다.

이렇게 기존의 경지를 단숨에 몇 단계나 건너 띈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특히 초월자들의 눈앞에 펼쳐진 각 단계의 벽은 필멸자들이 겪는 경지의 벽과 비할 수 없이 두텁고 아득한 편이다. 초월자가 된 지 수천수만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던 황제가 이런 비상식적인 성장을 할 만한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금기에 해당하는 편법을 사용했을 경우뿐이다.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 대체 무슨 금기를 범해야 이런 폭발적인 격의 상승이 가능한 거지? 내가 우주로 나온 세월이 아주 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경우는 들어보지도 못했어.”

“그야 알 수 없지. 하지만 결과가 비정상적일수록 치러야 할 대가도 클 게 뻔한데, 알카데인 황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과감하게 저지르는 건지 모르겠군.”

대부분의 금기의식들은 극단적이고 사특하기 그지없어서, 온전한 결과를 얻기 어려웠다. 일시적으로 큰 힘을 얻을지언정,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은 반드시 동반되기 마련이었다.

일개 필멸자를 아무 노력도 없이 초월자로 끌어올려주는 금기의식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섣불리 결과를 예측하긴 어려웠지만, 황제가 치러야 할 리스크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임은 장담할 수 있었다.

연정운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자꾸 늙어가다 보니까 노망이라도 든 거 아니야? 아니면 얼마 안가 노쇠해 죽을 것 같아서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던가.”

“노망이든 뭐든, 문제는 그런 게 아니야. 당장 내일부터 제정신 아닌 그 작자를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는 거지.”

“···이것 참 암담하군. 하필이면 내가 모처럼 지원을 나왔을 때 이런 사태가 벌어질 줄이야.”

베네트 국장이 공언했던 것처럼 바니아스 특무함대를 지원 와준 것은 천외오천인 연정운과 그의 함대 골드 서퍼였다.

이제 막 도착한 그들을 유태진이 몸소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황제를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반신 급은 확실히 뛰어 넘었겠지?”

“적어도 평범한 하급 신 수준은 뛰어넘었어. 하급신 중에서도 상위 수준일지도 몰라. 최악의 경우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그 말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말로 들리는데?”

“아마도.”

“젠장!”

유태진의 그 말에 연정운은 진저리를 쳤다. 윌키아 여신의 권능을 휘두를 때만 해도 감히 상대할 엄두가 안 나던 강자였다. 헌데 그때보다 더 강력한 초월자가 됐다고 하니 암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물론 공화국에서도 마냥 손 놓고 있진 않았다. 베이노아 수상은 물론 공화국의 그랜드 급 이상의 강자들이 아르센티아 주역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반신 급 초월자도 여럿 포함되어 있어서 상당한 전력상승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당도할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충분할 거라 여겼지만, 갑자기 강해져버린 황제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최악의 경우 아르센티아 주역을 내주고 후퇴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체 어디까지 강해졌을까?”

유태진으로선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라인트라 대전 당시 알카데인 황제가 윌키아 여신의 권능을 휘두르던 모습을 봤을 때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물론 그 당시 그의 수준은 그랜드 급에 막 발을 들인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거의 대적불가나 다름없었다.

‘아직 온전한 생사경에도 들지 못한 나로서는 절대 대적 불가지. 어떻게든 전생의 경지를 되찾을 수밖에 없겠어.’

제대로 된 반신의 경지라면 아주 희박하게나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점쳐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버티면서 시간을 끌 수도 있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만이 유일했다. 추가적인 지원병력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이만 후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차라리 함대를 물린 뒤 지원병력과 합류해서 태세를 정비하는 게···.”

연정운이 회의적인 얼굴로 후퇴하는 것이 어떨지 의견을 내놨지만, 유태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말처럼 후퇴하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전술 중 하나겠지. 하지만 황제가 이쪽이 후퇴하는 걸 그냥 호락호락 놔둘 것 같아?”

“물론 쉽진 않겠지. 하지만 정면으로 맞붙는 것보다는 피해가 적을 텐데.”

“그 뿐만이 아니야. 아르센티아 주역과 맞닿아 있는 주변 성계들 중 피난이 끝나지 않은 곳도 더러 있어. 우리가 후퇴하면 제국 함대는 그들을 가만 놔주지 않을 게 분명해.”

“···그야 그렇지. 휴우.”

연정운도 유태진의 지적에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처럼 아르센티아 주역과 맞닿아 있는 공화국 소속 유인 성계는 상당히 많았고, 아직 피난을 끝마치지 못한 곳도 상당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주변 유인 성계들의 인구수는 모두 합해 무려 천억에 달한다. 그들을 일제히 대피시키기 위해선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막대한 대규모 수송선단이 필요한데, 제아무리 공화국이라 해도 그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리고 후퇴하고 싶다 해도 공화국은 우리와 입장이 전혀 달라. 영토와 국민을 이대로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건데··· 베네트 국장이라도 있었다면 뭔가 수가 있었을까?”

“글쎄···.”

베네트 국장의 고유스킬 [징벌자의 저울]은 반신 급 신격을 가진 자조차 제약해버리는 강력한 능력이다. 그것이 과연 하급신 이상의 온전한 초월자에게도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만일 통하기만 한다면 승산은 몇 배로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베네트 국장이 어지간해서는 아르탈 행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기대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나와 같은 천외오천이라도 더 모인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

연정운이 입술을 지근지근 씹으며 초조해하던 그때, 유태진이 돌연 지나가는 듯한 말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방법이 생길 지도 몰라.”

“뭐? 정말!?”

깜짝 놀라 유태진을 바라보는 연정운. 하지만 유태진은 불분명하다는 투로 대답해줬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아직 나도 확실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시도해볼 만한 게 한 가지 있어. 도박성에 가깝지.”

“그래? 확률은?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데?”

“한 0.7%? 정확한 건 아니야. 대충 어림짐작으로 그쯤 된다는 거지.”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아주 허황된 것도 아니다. 평범한 하급신도 아니고 상위급 하급신이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는 황제를 상대로 사실상 승산은 전무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0.7%라는 확률은 무척이나 높은 것이다. 물론 이게 황제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확률인 건 아니다. 황제와 그나마 대적할 만한 수단을 손에 넣을 확률이 0.7%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 0.7%에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0.7%라. 그래도 그 정도면 꽤 높은 편이지. 우리 승산이 0.000001%도 안 되는 것에 비한다면 말이야. 그 정도면 해볼 만하겠어. 모바일 가챠 게임으로 친다면 SSR급 유닛 픽업 당첨 확률인데 말이야.”

자신이 언급한 확률을 고작 가챠 확률과 빗대어 표현하는 연정운의 모습에, 유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투덜거렸다. 역시 오타구들의 집단인 천외오천에 이름을 올린 녀석 다운 비유였다.

“하지만 인생은 게임이 아니라 실전이지. 몇 번이든 돈만 있으면 재도전 할 수 있는 가챠 따위와 비교할 수 있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성공하길 빈다.”

연정운은 그런 응원의 말을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나갔다. 지금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유태진에게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녀석.”

유태진은 연정운이 자신의 의도를 눈치 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황제를 상대로 승산을 엿볼만한 수단은 몇 가지되지 않는다.

그 중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그 자리에 남겨진 유태진은 결연히 중얼거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룡무상신공을 11성 경지로 끌어올린다.”

* * *

“아아아···!”

황제는 열띤 목소리로 희열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전신을 맴도는 전능감.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쾌감이었던 것이다.

피부에 와 닿는 모든 것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전부 느껴졌다. 그리고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모조리 이해될 것만 같았다.

“이것이 진정한 신의 힘인가.”

그는 자신의 눈앞으로 오른 손을 들어 보이더니 천천히 주먹을 거머쥐어 보였다. 단순히 주먹을 쥐었을 뿐이지만, 행성 하나를 박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그 안에서 크게 요동쳤다.

물론 이 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경험해 봤었다. 아니 질리도록 체험해 봤었다.

단지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윌키아 여신이 계약을 파기하거나, 혹은 자신의 금기를 저지르면 언제든 거둬갈 수 있는, 빌렸을 뿐인 권능.

하지만 이 힘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온전한 자신만의 힘과 권능이었다.

그는 의념을 일으켰다. 그러자 눈앞의 공간이 기이한 형태로 일그러지더니, 마치 자신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 같은 형태가 되었다.

“정말로 젊어졌구나. 그래, 이젠 늙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하하!”

빛을 굴절시켜 비쳐준 공간의 왜곡장에는 젊어진 황제의 모습이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20대 초반의 얼굴.

진정으로 초월자가 된 이상 이 젊음은 우주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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