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63화 (364/448)

15권-13화

‘그렇군. 수십 년 동안 할파스 상회를 통해 여러 아인종들을 비롯해서 엘프 아종들을 모아들이고 있었다는 게 바로 그런 의미였나?’

베이노아 수상은 정치인이기도 했지만, 마법의 종주라는 드래곤에게서 비롯된 용족 드래고니안이자 그랜드 급 경지에 이른 마법사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의식마법이나 각종 금기의 지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정통해 있었다.

때문에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추론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떤 사특한 수법으로 황제의 격을 끌어올린 모양이군. 거기에 인체실험도 행해졌을 테고. 어떻게 필멸자를 초월자로 끌어 올릴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제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역량을 총동원해 연구했다면 아주 가능성이 없진 않았겠어.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반신 급 초월자가 강대하다고는 하나 절대적인 건 아니다. 전세에는 어느 정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순 있어도, 반신 급 초월자 한 명으로 공화국 전체를 전복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연합과 마찬가지로 현역으로 활동 중인 그랜드 급 강자가 여럿 존재하는 데다, 반신 급에 달하는 에인션트 드래곤들도 공화국 내에 은거중인 상태였다.

‘제국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어째서 전쟁을 시작한 거지?’

할파스 상회 덕분에 얻은 귀환코드로 초전에 제국이 많은 이득을 얻긴 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제국이 아르센티아 주역을 점령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설령 가능하다 해도 곧 이어질 공화국의 반격에 다시 탈환될 것이 뻔했다.

그런데도 이런 전쟁을 계속해나간다는 건, 그래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베이노아 수상은 보좌관에게 그 생각을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지? 제국이 이 전쟁을 계속하는 이유 말이야.”

“대체적으로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세 가지? 어디 말해 보게.”

“첫째는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만큼 확실한 패를 가지고 있을 경우지요. 지금은 거의 팽팽하게 대치 상태긴 하지만, 이를 타파할만한 뭔가 강력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이노아 수상도 그럴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숨은 패가 있다고 보기엔 제국 함대의 움직임에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그런 패가 있다면 왜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는 거지?”

“아직 준비가 다 끝나지 않았거나, 혹은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성립되는 것 아닐까요?”

“그렇군.”

베이노아 수상은 보좌관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충분히 생각해 볼법한 추론이었다.

“둘째는 전쟁으로 저희 공화국의 영역을 점령하는 게 제국의 진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지?”

“솔직히 말해 우주는 무척이나 넓습니다. 제국과 연합, 그리고 저희 공화국이 우주의 3대 세력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도 너무나 많지요. 굳이 세력을 확장할 생각이라면 전쟁을 벌일 게 아니라 미지의 지역을 개척하는 게 차라리 더 나았을 겁니다. 전쟁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다대한 인명손실까지 따지면 오히려 우주의 미개척지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보다 더 밑지는 장사니까요.”

“하긴 그렇지.”

3대 세력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실로 넓고 광활하지만, 우주는 그 이상으로 거대했다. 3대 세력의 손이 닿지 못한 미개척지는 얼마든지 널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전쟁을 벌여가며 영역싸움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마지막은?”

“셋째는 황제가 정말로 정복욕에 미쳤을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합리성을 따질 수 없겠지요. 다른 국가들을 하나로 일통시켜 거대 제국을 세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자들이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오랜 역사들을 통해 증명되어 왔으니 말입니다.”

“뭐, 그렇지. 그것도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베이노아 수상은 내심 황제의 정복욕의 가능성을 부정해 버렸다. 그가 알고 있는 알카데인 황제라면 그런 시시한 정복욕 따위에 이끌려 전쟁을 일으킬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목적이 있다는 말인데··· 전쟁을 하는 이 상황 자체가 목적인 걸까? 아니면 보좌관의 말처럼 비장의 패가 따로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확실한 추론을 내놓기에는 현재 주어진 단서가 너무 적었다. 이래서는 황제의 의도대로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베이노아 수상이 결단을 내렸다.

“상황이 이런 만큼 내가 직접 전쟁에 나서겠네. 현재 아르센티아 주역에 나가 있는 전력을 제외한 본국 내의 함대 중 동원할 수 있는 수는 얼마나 되나?”

공화국을 대표하는 수상이 몸소 출전하겠다는 그 말에, 보좌관이 기겁하며 만류하고 나섰다.

“그건 안 됩니다! 저희가 테트라와 콜베르를 정리한 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수상께서 직접 나서시게 되면 정계에 큰 혼란이 빚어질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혼란이야 빚어지겠지만, 그런 문제는 시일이 지나면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수습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제국의 침공사태는 그렇지가 않아. 내 예감에는 아무래도 이번 전쟁이 공화국의 존망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이네.”

“으음···.”

베이노아 수상이 예감을 언급하자, 보좌관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수상의 날카로운 예감은 거의 대부분 들어맞았으며, 그 덕분에 테트라와 콜베르의 온갖 모략 속에서도 레이스컬을 굳건히 지탱해 올 수 있었지 않았던가.

“···알겠습니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보좌관은 이내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하고 말았다. 일단 결심을 굳힌 이상 베이노아 수상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공화국의 전력 중 베이노아 수상과 함께 전쟁터로 향할 함대를 구성하기 위해 한시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비상이 걸린 것은 공화국뿐만이 아니었다. 아르탈 행성연합에서도 제국의 준동에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진 인베이더라는 공공의 적이 존재했기 때문에 서로를 적대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렇게 천년 가까이 내려온 동맹도 제국의 돌변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번에 공화국의 정권을 완벽히 장악한 베이노아 수상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로서 연합이 공화국에게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공화국이 변함없는 우군이란 사실을 확인한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제국의 침공은 이미 시작되었고, 심지어 알카데인 황제마저 직접 전장에 나섰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연합으로서도 고작 바니아스 함대 하나만 보내놓고 수수방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러모로 돌아가는 사정이 여의치가 못했다.

핫라인으로 보내온 유태진의 연락에, 베네트 국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대강의 사정은 알겠군. 곧 지원병력을 보내기로 하지. 하지만 너무 기대하진 말게. 그렇게 많은 병력을 보내진 못할 것 같으니까.”

[어째서입니까? 이건 단순히 황제의 친정이 아닙니다. 그 자가 무슨 수로 반신의 격을 획득했는지 알 수 없는 지금, 어떤 변수가 일어나도 이상하지않다고 봅니다.]

“그걸 왜 내가 모르겠나. 하지만 병력을 돌릴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이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인베이더들이 대거 준동하기 시작했지. 지금 각 주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침공을 개시했네.”

[으음.]

유태진도 이 순간만큼은 침음성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다 할 만큼 절묘했으니까.

안 그래도 제국과 인베이더가 오월동주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제국의 침공 시기에 맞추기라도 한 듯, 인베이더들까지 날뛰기 시작한 걸 보니 괜한 의심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에티올, 세이븐, 에틸란타 성계를 비롯해서 총 47개의 성계가 동시에 인베이더의 침공을 받고 있지. 그밖에도 여러 성계들이 인베이더의 침공 조짐이 보이고 있고. 이 상황에서 그쪽으로 대규모 지원군을 보내는 건 사실상 무리한 일이다.”

[······.]

유태진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연합의 사정 또한 이러하다고 하니 그도 더 이상 지원군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말게. 많은 병력은 보내주지 못하더라도 믿을 만한 함대를 보내줄 테니까. 골드 서퍼 정도면 되겠지?”

[골드 서퍼라면···! 설마 연정운 그 녀석도 함께 오는 겁니까?]

“그래, 골드 서퍼가 그 녀석의 함대이니 당연하지.”

생각지도 못했던 희소식에 유태진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천외오천 중 일인인 연정운과 골드 서퍼라면 어지간한 함대 대여섯 개보다 훨씬 더 큰 전력이었다.

“일단은 그들만으로 어떻게든 버텨 보도록 하게. 조만간 무슨 수를 쓰든 추가 지원을 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저희들만으로 최대한 노력해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황제가 스스로 반신의 격을 획득했다고 했지?”

[예, 분명 그렇게 보였었지요.]

유태진의 대답에 베네트 국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윌키아 여신의 권능을 빌려 사용할 수 있는 제국의 황제는 그 점만 빼면 사실상 무능력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자가 하루아침에 반신 급 초월자가 됐다고 하니, 직감적으로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일단 우리 관리국에서도 따로 알아보겠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줬으면 좋겠군.”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이곳은 언제 맞붙을지 모르는 전시 상태라서 말입니다. 제가 전투 중일 때는 국장님께 연락할 여유가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군요.]

“정 안되면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에게 말해서 전담 인력을 별도로 할당하도록 하게. 그러면 되겠지.”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아무튼 최대한 지원 부탁드립니다.]

베네트 국장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통신을 종료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백색 대리석으로 꾸며진 거대한 건물의 내부 정경이 그의 시야 안에 펼쳐졌다. 그곳은 평소 그가 기거하던 관리국 본사의 집무실이 아니었다.

그는 뒤편에 자리한 상석을 응시하면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지금 현재 사태가 이렇다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신이시여.”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 앉아 있는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 그녀가 바로 아르탈 행성 연합의 진정한 주인이자 수호신인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였다.

그녀가 넌지시 물었다.

“그대가 직접 나서긴 어렵겠지요?”

“제가 직접 나설 입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도 인베이더들은 본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저까지 자리를 비우면 분명 놈들은 이곳을 노릴 겁니다. 라인트라 대전 때하고는 사정이 다릅니다. 놈들은 저를 철저히 견제할 겁니다.”

베네트 국장의 단호한 그 말에 여신은 조금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하긴 그렇겠네요. 신좌들도 자신들의 계획이 어긋나는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이 안타까워서였다.

베네트 국장은 대외적으로 강력한 사상기의 힘으로 반신급 초월자까지 감당할 수 있는 그랜드 급 강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힘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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