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60화 (361/448)

15권-10화

“크으으··· 이건 또 뭐냐!”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반격에 사용하려던 힘을 방어에 사용해야 했다. 지옥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그를 덮쳐들려던 벼락과 바람은 막대한 영력에 막혀 차단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아주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 벼락과 바람을 뿌린 저것들은 유태진이 소환한 최상급 정령들. 클래스 마법으로 친다면 무려 8클래스 급인 것이다.

그 뒤에도 유태진은 마법과 정령으로 맹공을 퍼부어왔다. 알카데인 황제는 이를 막아내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유태진과 맞닥뜨린 이후로 그가 알던 모든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마법도 모자라 정령이라니! 대체 이놈은···’

정령이야 그렇다고 치자. 정령 친화력만 높으면 다른 영능학에 정통한 자들도 정령사로서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법은 다르다.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수많은 지식을 섭렵해야 함은 물론, 높은 경지에 이를수록 영력의 성질과 특성에 대한 보다 깊은 고찰이 필요했다.

헌데 그냥 보통 마법도 아닌, 그런 초고위 마법을 캐스팅 과정도 없이 불과 시동어만으로 이런 결과를 도출한다고!? 심지어 마법 한 가지만 주구장창 판 것도 아니고, 무공과 정령술까지 함께 익힌 녀석이?

‘더군다나 지금 놈이 구사한 마법들은 전부 하나같이 8클래스 급. 메모라이즈나 스펠 트리거(유비무환) 같은 수법으로 사전에 저장해둔 술식을 발동시킨 것도 아니었다.’

제아무리 그랜드 급과 동률이라는 8클래스 마도사라 해도 캐스팅 과정 없이 8클래스 마법을 구사하긴 어려웠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건 마법으로 반신 급에 다다르거나 혹은 그 이상인 9클래스 초월자에 도달하는 길 뿐이다.

“카오틱 레이저(Chaotic Laser).”

키이잉!

우주공간을 꿰뚫고 날아드는 칠흑빛 혼돈의 광선. 이 또한 8클래스 마법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유태진은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구사한 것이다.

콰아아아앙!

알카데인 황제는 혼돈의 광선을 자신의 검으로 쳐내면서 이를 갈아붙였다. 무공 하나만으로도 성가시기 짝이 없던 녀석이 이젠 마법에 정령술까지 다루면서 상대하기가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뻗어오는 한 줄기 섬광.

물리법칙을 초월한다는 의검무상제의 영역에서 펼쳐진 천룡무상검법 1식 쾌룡무영의 한 수가 빈틈을 파고들어온 것이다.

단지 빠른 게 아니라 속도란 개념 자체마저 초월한 이것은 알카데인 황제라 하더라도 경시할 수 없었다.

그는 또다시 역천의 권능을 사용한다. 그러자 시간의 개념마저 초월해 다가오는 유태진의 쾌룡무영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한없이 느려지고 있었다.

이 순간을 기회라 여긴 알카데인 황제는 깊게 파고들며 치명적인 검격을 뿌려나갔다. 한없이 느려진 쾌검에 비해 황제의 검은 말 그대로 섬광.

거의 빛과 다름없는 속도로 날아드는 검격을, 시간정체 속에 빠져든 유태진으로서는 도무지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허나 그때, 기어가듯 느리게 흘러가던 그의 검로가 기기묘묘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고의 효율을 만들어내는, 한치 낭비도 용납하지 않는 최적의 경로.

정확히 최단 거리를 재단한 유태진의 검은 그토록 느려 터졌는데도 어느새 황제의 검을 정확히 받아내고 있었다.

“헛!?”

황제의 눈매가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역천까지 사용해 상대의 움직임을 묶어두기까지 했는데도 그걸 막아내다니!

그리고 한없이 느려진 시간 속에 사로잡혔어야 할 유태진의 입으로부터 거대한 울림을 담아낸 시동어가 터져 나왔다.

[[메르키아 블레이즈<극열신광파極熱神光波>.]]

그것은 화염의 신 메르키아 아덴의 힘을 빌린 초현계 강령마법. 등급으로 친다면 8클래스와 동급인 8위계 단계에서 전개된 초고위 마법이었다.

그 순간, 황제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화아악!

헬파이어에 뒤지지 않는 강대한 열선이 거대한 화룡의 형상을 한 채 날아들었다. 유태진과 검을 맞부딪친 상태에 있던 황제로서는 미처 피할 새조차 없었다.

콰아아앙!

일순간 주변의 우주공간을 환히 밝힐 만큼 성대한 폭발과 화염이 크게 번져나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황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크으···.”

황제는 신음을 터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번 마법에는 그도 제법 낭패를 봤던 모양인지, 전신이 말 그대로 까맣게 그슬려 있었다.

하지만 알카데인 황제는 격노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마냥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불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건 대체 뭐지? 그랜드 급이라도 그런 초고위 마법을 시동어만으로 구사할 순 없다.”

“왜? 내 마법 실력이 예상 밖이라서 놀라웠나?”

유태진이 빈정대듯 되받아쳤지만, 황제는 그를 노려보면서 공격적인 말투로 내뱉었다.

“네놈의 마법 실력은 냉정하게 봤을 때 기껏해야 7클래스 유저 초입이나 마이스터 급이지. 헌데 그런 네 녀석이 어째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용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냐?”

용언(龍言).

그것은 세상의 조율자이자 수호자로서 섭리와 약정된 용족들에게 주어진 권능의 언어였다.

그들은 용언으로 자신의 역량 이상의 마법과 권능을 부릴 수 있으며, 모든 종족을 압도하는 것이 가능했다. 심지어 나이가 차지 않아 초월에 닿지 못한 때에도 그들은 용언을 통해 9클래스 마법을 제한적으로나마 다룰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난데없이 용언이라니. 유태진으로서는 다소 황당하기만 했다.

“용언? 뜬금없는 소리군. 차라리 언령이라 했다면 이해나 가지.”

“아니, 방금 그건 용언이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이제야 시동어만으로 8클래스 마법을 구사한 능력의 정체를 알겠군.”

황제는 유태진이 마법을 구사한 힘이 용언임을 확신하는 듯했다.

“멀쩡한 사람을 용으로 몰아가는 거냐? 차라리 언령이라고 하지.”

유태진이 기가 막힌다는 듯 대꾸했지만, 황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언령과는 다르다. 언령은 경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거지만, 용언은 그와 전혀 다르지. 자신의 역량 밖의 힘을 시동어만으로 구사할 수 있는 건 용언밖에 없어.”

유태진은 황제가 어째서 자신이 마법을 구사한 능력을 용언과 착각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하긴 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가 용언이라 단정 짓는 것도 그리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하하하··· 그랬군. 그랬었나?”

유쾌한 기분이 들어 한 차례 웃어젖히는 유태진의 모습에, 황제의 두 눈썹이 꿈틀거렸다.

“짐 앞에서 감히 조롱하듯 웃어대다니. 대체 무엇이 웃긴 거냐?”

“당신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어서.”

“착각?”

“그래, 착각. 방금 내가 구사한 건 용언이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그런 능력은 용언이 아니고선···.”

“이 넓은 우주에 역량 이상의 고위 마법을 시동어만으로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권능이 오직 용언뿐이라고 당신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나?”

“······.”

알카데인 황제는 그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황제는 우주의 광활한 영역을 다스리는 제국의 지배자였지만, 그도 우주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다. 제국이 품고 있는 영역 이상으로 우주는 끝없이 넓고 거대했으니까.

그 너머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존재할 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유태진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창안하고 체득한 무공인 천룡무상신공과 천룡무상검은 천룡의 기상과 힘을 추구하지.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사되는 심검의 경지인 천룡무상은 용이 부리는 조화를 그대로 재현해 다룰 수 있어.”

그랬다. 천룡무상은 심검지초이자 사상기로서, 용의 권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용들은 태생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풍운조화를 일으키며 세상의 섭리에 간섭한다.

그렇기에 유태진은 용들이 다루는 용언과 같은 힘도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터무니없군. 무공이란 게 그런 것까지 가능한 거였다니···.”

고작 영능을 다루는 학문에 불과한 일개 무공이 인간을 초월에 닿지 않고도 용과 같은 존재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분명 저것은 사상기의 일종. 하지만 그 만능에 가까운 특성은 가히 사기적이었다.

황제는 그 시점에서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상황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심각하게 굳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래 전 너와 같은 인간이 있었다. 나는 직접 보진 못했지만, 론데니움 제국을 건국한 초대 황제는 그에 대한 기록을 제국의 황실에 남겨 두었지.”

황제의 눈이 유태진의 폐부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보겠다는 듯 한차례 훑었다.

“초월에 닿지 못한 필멸자이면서도 우주에 현존하고 잇던 온갖 영능들을 닥치는 대로 체득했다는 강자. 심지어 과학은 물론 마도공학까지 통달해서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지. 그래서 다들 그를 만능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태진은 황제의 그 말에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말이 이어질수록 그 느낌은 더욱 명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황제의 물음이 던져졌다.

“그런데 네놈은 그 제노디안과 대체 무슨 관계인 거냐?”

* * *

신은 물질계에 간섭할 수 없다. 그건 섭리가 정한 법칙이었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이 항상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들은 지성체들에게 섬김을 받았고, 그렇게 전해 받은 신앙으로 물질계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 영향력을 획득했다.

그 간섭력으로 신들은 지성체들에게 계시를 내려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필멸자의 몸을 빌려 내려와 그들의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새벽의 여신 윌키아도 그런 경우 중 하나였다. 새벽을 상징하는 그녀는 모든 시초를 의미하는 자.

그렇기에 제국의 초대 황제가 론데니움 제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건국하는 것을 인정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제국을 건국하는 시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국을 도운 건 아니었다. 초대 황제는 순수하면서도 올곧은 열망을 가진 자였다.

그녀는 거기에 감복했고, 그를 적극 도와주었다.

인간으로서 신의 권능을 휘두를 수 있도록, 그에게 자신의 권능 일부를 빌려준 것이다.

물론 제약도 많았고, 사사로운 일에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신의 권능을 발휘하는 황제가 지배하는 제국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철옹성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황제는 오래지 않아 수명이 다해 죽음을 맞이했다. 윌키아 여신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기까지 했지만, 인간의 수명마저 초월하진 못했기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그것이 섭리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해진 수명을 초월하게 해주려면 상상을 넘어서는 간섭력이 필요했다. 제아무리 신의 권능을 부여해준 여신 윌키아라 해도 그만한 간섭력은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초대 황제가 죽고 다음 대의 황제가 그 자리를 계승하였다. 그리고 윌키아가 내려준 권능도 그 다음 대 황제에게 자연스럽게 이양되었다.

그런데 근래부터 수상한 조짐이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권능을 빌려간 대상인 알카데인의 존재가 간혹 관측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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