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58화 (359/448)

15권-08화

황제의 시선이 유태진을 향했다. 그가 싸우고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상당했지만 초월자의 반열에 올라선 그의 안력은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는데도 저 정도라니···.’‘

황제는 유태진이 전력을 다하지 않고 여력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예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때도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역시 내 계획을 번번이 방해할만한 녀석이군.’

지금으로선 그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예전이라면 윌키아 여신의 권능에 힘입어 상대의 수준을 꿰뚫어봤을 테지만, 이제 겨우 의식을 통해 반신의 영역에 들어선 수준으론 그 정도까지 바라긴 어려웠다.

‘조만간이다. 조만간 모든 걸 다시 되찾게 되겠지. 아니, 그 이상의 신위까지 이 손에 넣어서 우주의 정상에 닿고 말겠다.’

그때였다. 황제의 옆으로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바로 현재 제국 함대의 사령관 직을 맡고 있는 바르투인이었다.

그가 화면 속에서 고개를 깊게 조아리며 사죄해왔다.

[폐하, 송구합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본국에 유리했던 전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에메랄드 헤븐까지 내려주셨는데 이런 꼴이라니···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됐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안다. 귀환코드로 얻을 수 있었던 초전의 이점은 그 정도였겠지. 게다가···.”

알카데인 황제는 바르투인 사령관을 책망하지 않고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유태진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논외다. 애당초 이런 전력으로 어떻게 될 레벨이 아니지. 지금까지 저런 녀석을 상대로 전선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이다.”

[황송하옵니다.]

실패하고도 칭찬을 받는 이 상황이 바르투인 사령관은 어리둥절했지만, 곧 납득하고 말았다. 그만큼 유태진이란 자의 강함이 단연 뛰어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저 녀석을 짐이 맡겠다. 그동안 바르투인, 너는 짐이 이끌고 온 함대까지 지휘해서 단번에 아르센티아 주역의 제우권을 장악하도록.”

[예, 명에 따르겠습니다.]

바르투인 사령관은 그 말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황제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긴 해도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의문을 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게리드. 너도 돕도록 해라. 지금의 너라면 상당한 도움이 될 테지.”

[예, 폐하의 뜻에 따라 참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리치로 부활하게 된 게리드는 생전보다 더 강해졌다. 특히 대규모 전투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네크로맨서인 그가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전황은 크게 호전될 것이다.

“그럼 어디···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녀석을 제압해 보기로 할까?”

알카데인 황제는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기함 로베르타인의 상판을 박차며 우주공간으로 날아올랐다.

* * *

콰아아앙!

“으윽!”

“커억!”

유태진의 검격을 받아낸 마이스터들이 피를 토하며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서로의 영력을 공명시켜 증폭한 힘으로 방어로 일관한 채 버텨왔지만, 이젠 그것도 한계에 이른 것이다.

그나마도 에메랄드 헤븐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버티기는커녕 초전에 전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분전도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젠 승산이 없어!”

“···이렇게 끝나는 건가?”

절망에 찬 얼굴로 유태진을 바라보던 그때, 묵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그들을 일깨웠다.

“물러서라!”

유태진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며 서늘하게 웃었다. 그곳에는 제국의 황제가 오연한 모습으로 우주공간위에 떠 있었다.

“역시 직접 행차하셨군.”

갑작스런 황제의 행차에 마이스터들이 놀란 얼굴로 부르짖었다.

“폐하!”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 지금부터는 짐이 상대하기로 하지. 후방으로 가서 몸이나 추스르도록 해라.”

더 이상 싸우기 힘든 마이스터들을 뒤로 물린 황제는 유태진과 마주하듯 정면에 섰다.

유태진은 그런 황제를 서늘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예전과 다르게 신수가 훤해지셨군. 무슨 회춘의 비약이라도 드셨는지요?”

“최근 그럴 만한 일이 있었지. 그러는 네 녀석도 예전과 비교해 확실히 달라졌구나.”

“이래 보여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나이라서. 그런데 무슨 일로 이런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이런 행위가 제국에 무슨 이득이 있다고.”

“글쎄, 이득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하지만 이 전쟁 질 생각은 없다. 그래서 짐이 나선 거니까.”

쿠구구구.

황제를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패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허나 그런 기세를 유태진은 담담히 받아 넘기며 눈매를 가늘게 떴다.

“···당신, 뭐지? 어떻게 이렇게 달라진 거지?”

“음?”

뜬금없는 그 말에 황제가 의아한 듯 소리를 냈다. 그렇지만 유태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알기로 제국의 황제들은 윌키아 여신으로부터 빌린 힘을 다룬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힘은 그때 라인트라에서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달라. 게다가 당시와 비교하면 격도 조금 더 떨어지고.”

‘이 녀석?’

황제는 내심 깜작 놀랐다. 자신이 예전과 달라진 사살을 바로 알아본다고? 그건 반신이었던 아문조차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그 얼굴! 단순히 성형 따위로 피부의 주름을 편 게 아니라 몸 자체가 완전히 젊어졌어. 마치 환골탈태라도 하듯 말이야. 황제들은 신의 권능을 빌려 휘두를 순 있어도, 그걸로 기본 수명 자체가 늘어나진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에서 잠시 말끝을 흐린 유태진은 상대방을 노려보듯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당신 설마 여신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초월자가 되기라도 한 건가?”

유태진의 추론에 황제는 감탄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흐음, 거기까지 꿰뚫어보다니 놀랍군.”

“뭐!? 정말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황제는 신의 권능을 휘두를 뿐인 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초월자의 경지까지 올랐다고?

‘그럴 리가.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어.’

라인트라 대전에서 도무누스를 격퇴하고 에메랄드 헤븐을 일검에 베어버릴 때만 하더라도 황제는 신의 권능을 휘두를 뿐인, 평범한 필멸자였다.

물론 나름대로 수련을 쌓은 듯 보였지만, 도저히 초월자를 노릴만한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동안에 반신급 이상의 초월자가 되었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전생의 깨달음을 갖고 다시 태어난 나조차도 이제 겨우 그 문턱을 넘보고 있는데, 그럴만한 밑바탕도 안 되어 있던 자가 1년 사이에 초월자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의심에 찬 유태진의 뇌리로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래, 분명 제물이라고 했어.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수십 년 이상 지속되어 왔고. 설마··· 그렇다면!?’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얻게 된 단서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꿰어 맞춰졌다. 그리고 그는 곧 진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유태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랬군. 네놈, 고작 인신공양과 실험을 통해 초월자가 된 거였나?”

그러자 황제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역시 예리한 놈이군. 거기까지 꿰뚫어보다니 말이야.”

“제국의 황제씩이나 된 주제에 그런 외도의 길을 택하다니. 제국민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나?”

유태진이 차갑게 비난했지만, 황제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네놈은 모를 거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짐의 심정이 어떤 지를 말이야. 게다가 짐에게 주어진 권능이란 건 여신의 허락 없이는 제대로 휘두를 수도 없는 제약뿐인 힘이었다. 그딴 건 있으나 마나지. 이건 만인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여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신세였으니까.

그래서 선택한 거다. 짐을 비롯한 역대 황제들을 구속하고 있던 여신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로 말이야. 그리고 최근에야 간신히 성과가 나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짐이고.”

“······.”

그 순간부터 황제의 기세가 더욱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젠 전장으로 삼은 아르센티아 주역의 일부가 그의 존재감 아래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서늘하게 가라앉은 유태진의 눈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더욱 차디찬 시선으로 황제를 경멸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알카데인 황제는 그런 유태진이 불쾌했다. 딱히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자신이 이룬 이 길을 매도하는 저 표정을 그냥 놔둘 순 없었다.

“그런데 그 눈빛만큼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 이제부터 짐이 이룬 성과를 네놈을 상대로 시험해 보도록 하지.”

황제의 허리춤에 매여 있던 검이 드디어 그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검을 중심으로 막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그건 마치 이 주변의 우주공간이 검을 향해 빨려들어가는 듯 느껴졌다.

“자아, 짐의 검 앞에 목숨을 내놓아라!”

* * *

황제와 유태진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반신 중에서도 최상위의 수준에 오른 황제와 이제 겨우 반신의 문턱에 다다른 유태진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격차가 있었지만, 놀랍게도 둘의 대결은 팽팽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황제는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는 유태진이 이해되질 않았다. 아니, 갈수록 공격을 받아내며 반격하는 것이 수월해지고 있었다.

놈은 마치 자신의 상식을 벗어난 미지의 생물 같았다.

‘힘의 규모도, 그리고 권능도 내가 크게 앞서 있다. 놈이 이길 요소 따윈 전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황제는 경악과 불신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더욱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가 검을 두를 때마다 우주공간이 이지러졌고,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면서 모든 걸 비틀어버렸다.

그에 반해 유태진의 공격은 수수하기 짝이 없었다. 검으로 휘두르고 막고 흘리고 베면서 대적할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황제의 막강한 공격을 전부 받아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때 유태진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역시, 어설프군?”

“뭐? 뭐라고?”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황제가 되물었지만, 유태진은 노골적으로 대꾸해줬다.

“어설프다고 했다. 얼간이 황제. 단지 힘에 취해서 외도의 길을 취했으니 그럴 수밖에.”

“건방진!”

자신을 조롱하는 소리로 받아들인 황제의 검 끝으로 다시 막강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반신의 격에 어울릴 만큼 막대한 힘의 응집이었다.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준대형 전함 수척을 단숨에 일소할 만큼 강력한 힘이었지만, 유태진의 검 끝에서 피어오른 극쾌의 검광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듯 뻗어와 그 결을 양단해 버렸다.

결국 구심점을 잃어버린 힘은 다시 맥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타인을 희생시켜 이룬 격이니, 스스로 노력해 쌓은 건 아무것도 없지. 결국 거저 주어진 격과 힘이니 그걸 다루는 것도 어설플 수밖에. 그걸 몰랐다면 황제, 당신은 머저리에 불과해.”

“이놈이!”

황제는 분노에 차서 더욱 맹공을 가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분노한다고 해서 그의 기교나 솜씨가 달라질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이 모든 것은 유태진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제아무리 편법으로 격을 쌓아올린다 해도 그건 결국 부실시공에 지나지 않는다. 평생 동안 최선을 다해 수련해 본 적도 없는 황제가 제대로 된 기반도 없는 힘과 권능을 잘 다룰 리가 만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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