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57화 (358/448)

15권-07화

전선은 거의 고착화 된 상태로 계속 유지 중이었다. 전투 자체는 치열했지만, 서로의 전력이 거의 비등했기 때문이었다.

에메랄드 헤븐을 등에 업은 제국군의 화력은 압도적이었지만, 공화국의 부족한 전력을 유태진 개인의 무력으로 충당하였다.

며칠에 걸친 연전 속에서도 공화국 함대가 아르센티아 주역을 사수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유태진의 공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제국 함대에서도 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고위 영능력자들을 모아 특공대를 편성해서 유태진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들은 전부 마이스터 급으로 구성된, 제국 함대에서도 없어선 안 될 전력들이었는데 그들마저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끄아악!”

“앗, 로인! 제기랄!”

섬광처럼 날아든 반투명한 검형에 관통당한 마이스터 급 영능력자 중 하나가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우주공간 저편으로 떠밀려갔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이미 절명한 상태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너무 강해!”

“도무지 이해가 안 가. 내가 전에 봤던 그랜드 급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설마 오버 그랜드 급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반신 급이라면 이 전쟁은 이미 끝났어야지.”

“그럼 대체 이 정신 나간 강함은 뭐야?”

그들은 지금 눈앞의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본래 그랜드 급 영능력자는 마이스터 급 열 명 이상이면 그럭저럭 발을 묶어둘 수 있었다. 물론 그랜드 급에서도 상위의 경지에 든 자라면 몇 명 더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그 정도 수준에서 감당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뭔가? 지금 제국 함대에서 추린 특공대의 전력은 마이스터만 무려 30명이었다. 나름대로 한 지역에서 강자라고 자부하던 그들이 고작 한 명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몰리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심지어 자신들은 에메랄드 헤븐의 막대한 영력을 공급받으면서 평상시보다 2배 이상 강해져 있었다.

그런데도··· 요 근래 이틀 동안 싸우다가 죽은 자만 벌써 열넷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인원은 열여섯 뿐. 서른 명이 합공을 펼쳐도 상대가 안 됐던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느새 반투명한 형태의 무수한 검형들이 제국의 마이스터들을 둘러쌌다. 유태진이 전개한 의기검형이었다.

우주 공간 위에 우뚝 선 그가 마이스터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솜씨들은 나쁘지 않지만 상대가 나빴군.”

“···괴물 같은 놈!”

마이스터들이 치를 떨며 이를 갈았지만, 유태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글쎄, 이 정도로 괴물이라 불리기엔 나보다 더 괴물 같은 것들이 우주에 널려 있어서 말이야.”

고작 이 정도로 우쭐하기에는 우주에 강자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들 대부분이 신적 존재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이제 조만간이다. 생사경은 이제 지척에 이르렀어.’

하지만 생사경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앞으로 대적해야 할 신좌들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경지로 어떻게든 나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경지인지도 이제 조금씩 알 것 같기도 했다.

우주로 나오면서 처음 알게 된 수많은 개념과 지식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이면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치들이 그를 한층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원영신이 완성되지 않아 이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모든 게 완전히 조화를 이루게 될 때야말로 진정한 초월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될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어떻게든 버텨!”

“젠장!”

마이스터들은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유태진의 공세를 방어했다. 무려 절반에 가까운 마이스터들이 죽어나간 상황이라지만, 그들은 에메랄드 헤븐의 보조를 받고 있었다.

막대한 영력으로 방어에만 몰두하자, 유태진이라 해도 쉽게 뚫기 어려워졌다.

‘뭐 작정하고 힘을 쓰면 뚫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굳이 심력 낭비할 필요는 없지.’

유태진은 그렇게 내심 중얼거리면서 또 한 자루의 거대한 의기검형을 구현시켰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 뻗어나가 중형 전함 수 척을 단숨에 관통해 박살내 버렸다.

피하기는커녕 에메랄드 헤븐의 힘으로 출력을 끌어올린 배리어조차 막을 수 없었다.

[리퍼, 덴트라, 사우틴 다운!]

“진짜 미쳤군.”

“우릴 상대하면서도 꼬박꼬박 전함을 침몰시키고 있어.”

“크···진짜 괴물인가?”

유태진은 마이스터들을 상대하면서도 매번 압도적인 전과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침몰된 전함만 해도 이미 세 자릿수에 달했다. 그 중에는 준대형 전함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전과를 올리면서도 유태진의 마음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제국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쟁을 일으킨 거지?’

이런 침략전쟁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니 애당초 이런 침략전쟁을 일으킨 의도조차 짐작되지 않았다.

단순한 정복욕? 아니면 우주를 하나로 통일시키고 싶은 야망?

그렇게 제국을 확장시켜서 얻는 게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도 제국은 우주의 3대 세력 중 하나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제국주의가 확장정책에 있다는 건 잘 알지만, 론데니움 제국의 행보를 그와 동일시하기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단순 침략일 리가 없지. 그랬다면 인베이더 놈들과 손잡는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인베이더들과 손잡은 것도 그랬다. 놈들을 진심으로 믿고 협력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잡고 침략을 시작했다. 그리고 뒤로는 여러 아인종들을 제물로 삼는 등 알 수 없는 일까지 꾸미고 있었다.

어쨌든 제국과 인베이더가 협력관계가 됐다면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건데··· 지성체의 멸망을 바라는 놈들과 무슨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수 있었던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알카데인 황제다. 그는 황제들이 대대로 윌키아 여신으로부터 부여받는 신적 권능을 다룰 수 있지만, 그만큼 제약도 많았다.

윌키아 여신이 이런 침략전쟁에까지 힘을 빌려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제국은 당당이 침공을 시작했다. 제국의 가장 큰 전력인 황제의 권능을 전쟁 중에 사용할 수 없을 텐데도, 침공을 감행했다면 뭔가 다른 수가 있기라도 하다는 건가?

‘예감이 좋지 않아.’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런 직감이 유태진으로 하여금 섣불리 활약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이스터들을 상대하면서도 최대한 심력 소모를 최소화 하며 여력을 아끼고 있는 것이었다.

콰아아앙!

“생각보다 전과는 나쁘지 않군.”

바니아스 함대의 사령관 오르트 메이슨은 폭발하는 전함 한 척을 앞둔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유태진이 유독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었지만, 바니아스 함대라고 해서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들은 특무함대로서 일반적인 함대보다 출력이나 성능이 더 월등한데다가, 이런 함대전에 있어선 스페셜리스트였다. 요 며칠 동안 그들에 의해 전멸된 함대만 해도 셋에 이르렀다.

하지만 피해가 전혀 없을 순 없었다. 바니아스 소속의 중형함 다섯 척이 대파되었고, 일곱 척은 반파, 그리고 나머지 전함들도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

그렇지만 이런 대규모 함대전에서 그 정도의 피해로 그만한 전과를 올린 것은 대단히 큰 성과였다.

[하지만 저 분의 전과에 비한다면 빛이 바래는군요.]

“후··· 당연히 비교할 수도 없지. 천외오천 급이라더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어.”

오퍼레이터의 그 말에 오르트 메이슨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지금도 에메랄드 헤븐 덕분에 그랜드 급에 거의 준하는 마이스터들을 농락하면서 전함들을 연거푸 격침시키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제국이지. 왜 이런 의미 없는 전쟁을 계속하는 거지?’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이 볼 때, 이 전쟁은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래선 결국 승자든 패자든 얻을 게 없었다. 설령 제국이 이 전쟁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점령한 지역을 유지할 전력조차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아니면 고착화 된 이 전쟁을 뒤엎을만한 또 다른 패가 있다거나···.’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지만 아주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국이 계속 침공을 진행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그런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돌연 제국 함대 측의 후방에서 대규모 워프 아웃 반응이 검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수의 워프 아웃 반응 포착! 포인트는 제국 함대 후방입니다.]

“결국 오는 건가? 역시 지원군이 있었다 이거지.”

안 그래도 제국이 기습적으로 시작한 침공전쟁이었다. 이렇게 아르센티아 주역에서 지지부진하게 진격이 중단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뭐, 이 정도는 예상했던 바지. 문제는 지원군의 규모나 전력인데···.”

헌데 그때였다. 워프 아웃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제국 함대 중 매우 거대하면서도 위압적인 형상이 보였다.

그것을 본 오르트 메이슨의 두 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크게 벌어졌다.

“저건!? 어서 확인해 봐라! 지금 내가 잘못 본 게 아닌지!”

[라이브러리 데이터 대조한 결과, 알카데인 황제의 전용 기함, 로베르타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역시··· 황제가 직접 나섰다는 건가?”

오퍼레이터의 보고를 들은 그의 목소리가 더없이 무거워졌다. 알카데인 황제가 직접 친정을 나서다니. 이젠 정말로 총력전이라도 벌여 보자는 건가?

그는 승무원들을 향해 즉각 명령을 내렸다.

“다들 태세를 정비하도록. 이제부터 진짜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 지금까지의 전투는 장난으로 여겨질 만큼 말이다.”

지금부터는 막대한 지원병력까지 더해진 제국군을 감당해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신중하고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마이스터들을 몰아붙이던 유태진도 이 상황을 목격하고는 눈매를 가늘게 만들었다.

“저건 제국 황제의 기함? 황제가 직접 나서겠다고?”

한 나라의 황제가 친정을 하는 건 역사를 뒤져봐도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우주시대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특히 황제는 어떠한 정의나 명분도 없는 전쟁에서는 여신 윌키아의 힘을 발휘할 수도 없지 않은가.

“아무 생각 없이 나설 리는 없을 테고··· 설마 신의 권능을 대신할 만한 뭔가가 있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예감이 좋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불길한 예감은 황제의 기함이 나타나면서 더욱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알카데인 황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함 위로 올라선 그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크군.”

그도 그리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할파스 상회를 통해 얻은 귀환코드 덕분에 초전에서는 어느 정도 이득을 얻을 수 있겠지만, 공화국의 전력도 결코 만만한 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공화국이 수백 년 이상 우주의 3대 세력 중 하나로 꼽힐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못했다.

에메랄드 헤븐까지 지원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전선을 더 밀어 올리기는커녕 아르센티아 지역에서 완전히 고착화 된 상태지 않은가? 심지어 전세가 팽팽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제국 측이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를, 황제는 바로 알아챘다.

‘그렇군. 저 녀석 때문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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