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52화 (353/448)

15권-02화

만약 이모탈 프로젝트가 성공하게 된다면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그리고 의례법진의 매개로 사용된 각 행성은 어떤 영향이 생길까?

그건 어느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지금 유태진이 손에 넣은 건 기껏 해봐야 개요 수준이었고, 자세한 원리나 술식 같은 건 아예 들어 있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가 결코 좋은 형태로 돌아오지 않으리란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신의 힘까지 손에 넣은 황제가 얌전히 제국으로 돌아가리란 보장도 없었다.

‘아니, 초월자가 되고자 그런 음모까지 꾸며온 황제라면 그만큼 욕망도 크다는 얘기겠지. 어쩌면 지금의 침략을 계속해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최악의 경우 공화국은 물론 연합까지 집어삼키겠다고 야욕을 불태울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그들의 계획을 저지해야 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일단 공화국을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럼 저도 지원하기로 하지요. 아마 연합에서도 이 사실을 알면 공화국을 적극 지원할 겁니다.”

[그렇다면 고맙겠군.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네. 놈들은 인베이더와 손을 잡기까지 했어. 놈들이 이 전쟁에 끼어들지 말란 법도 없지.]

그랬다. 언제든 빈틈을 타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인베이더들의 존재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수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반면 놈들과 손을 잡은 제국은 인베이더의 공격을 염려할 필요가 없으니, 더 막대한 전력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연합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저와 바니아스 함대가 공화국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할파스 상회의 지부 소속이었던 영능력자들도 가세하도록 하지요. 그 정도면 아마 일반적인 함대의 수배에 달하는 전력이 될 겁니다.”

[음. 그들의 전력이 상당한 건 알지만··· 과연 믿을 수 있겠나?]

할파스 상회는 엄연히 공화국을 배신한 세력이었다. 거기에 몸담고 있던 영능력자들이 뒤통수를 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런 베이노아 수상의 우려를 알아챈 유태진은 걱정할 것 없다며 대답했다.

“우려되는 자들에게는 따로 금제를 걸어놓을 것이니 배신할 염려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자의가 아니라 세뇌 때문에 할파스 상회를 따른 것이라서 말입니다. 세뇌가 풀린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협조해줄 테지요.”

수호방위대 중 상당수는 자의가 아니라, 레민티아의 세뇌 때문에 지금까지 할파스 상회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세뇌가 풀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할파스 상회나, 그와 연관 있는 제국에 대해 원한을 품었으면 품었지 이쪽을 배신 할 리가 없었다.

[세뇌를 풀었다고? 마이스터 급까지 걸려들 정도의 세뇌라면 쉽지 않았을 텐데.]

“사전에 손을 써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생각보다는 쉽게 풀었지요.”

레민티아의 세뇌는 전부 지부의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정신제어설비로부터 비롯된다.

유태진이 지하에 숨어들었던 그때, 설비에 세뇌를 붕괴시킬 수 있는 몇 가지 술식을 끼워 넣었고 그것이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제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작은 나무 쐐기 하나에 쪼개지는 것처럼, 세뇌를 구성하는 술식 사이에 끼게 된 작은 파훼식이 그것을 무너뜨린 거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세뇌에서 풀려나 자의식을 되찾은 그들은 유태진을 은인으로 깍듯이 모셨다. 유태진이 무얼 말해도 따를 기세였다.

물론 그 중 몇몇은 세뇌 없이도 상회의 명에 따라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런 자들에게는 따로 금제를 가해서 명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딱히 우려할만한 요소는 전혀 없었다.

[알겠네. 그럼 부탁하지.]

유태진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베이노아 수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본국의 함대가 대거 움직여? 군 최고 통수권자인 내겐 한 마디도 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에 사내가 기가 막힌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론데니움 제국의 모든 군권을 쥐고 있다는 군부대신이자 총사령관 [아문 익스큐터]였으니까.

작은 전함 한척이 움직여도 자신에게 보고가 올라와야 하는 것이 상식이거늘, 제국이 보유한 전력 중 1/3이 대거 움직였는데도 아무런 이야기조차 없다니,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움직인 함대들이 현재 공화국의 제우권을 넘어 침공 중이었다. 인베이더라는 공공의 적을 상대로 힘을 합쳐야 할 입장이거늘, 무려 수백년 이상 이어져 온 동맹을 완전히 망쳐버린 것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분명 황제폐하께서 움직이신 게 틀림없어.’

그가 아는 한 자신 몰래 제국군 함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황제 한 명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야망이 많으신 분인 건 알았지만, 인베이더의 위협이 여전한데도 공화국을 공격하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이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동안 더 나은 경지를 위해 폐관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일단은 황제를 찾아가 일의 자초지종부터 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문 익스큐터는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으로 향했다. 황궁을 지키는 근위대들이 그를 알아보고 흠칫 했지만 저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문은 제국 유일의 오버 그랜드 마스터, 무려 반신 급의 초월자다. 그의 발걸음을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황제께서도 그의 발걸음을 막지 말라고 명하신 만큼 근위대들은 얌전히 통과시켰다.

그렇게 대전에 도착한 아문은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건 대체···?”

아문은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대전에는 무수한 시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메마른 고목마냥 말라 비틀어져 있었는데, 뭔가에 의해 생명이 빨려나간 듯 보였다. 그리고 대전 전체에는 이 사태의 원인으로 짐작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술식들로 빽빽이 채워진 술법진이 그려진 것도 확인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시게, 군부대신.”

아문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도 잘 아는 알카데인 황제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옥좌에 앉아 있었는데, 그 옥좌가 지금의 목불인견의 사태를 만들어낸 거대한 술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문은 끓어오르는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폐하. 대체 지금 무슨 일을 하신 겁니까. 이 시체들은 또 뭐란 말입니까? 말씀 좀 해 보시지요.”

“후후, 군부대신. 감히 짐을 추궁하는 겐가?”

노쇠한 얼굴 위로 떠오른 가벼운 웃음에, 아문은 더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폐하가 제국의 지존이시긴 하나,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있습니다. 허나 이번 일은 도를 크게 넘어서셨군요.”

“이들은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희생한 것일세. 앞으로 나는 진정한 신이 될 것이고, 이들은 그 밑거름이 되었으니 죽어서도 영광스러울 테지.”

“진정한 신이라니···대체 무슨 일을 꾸미신 겁니까?”

그 순간,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다. 황제는 건국여신 윌키아로부터 받은 권능을 휘두를 수는 있었지만 신이랄 수는 없는 필멸자였다.

그런데 진정한 신이 될 거라고? 그럼 지금 이 많은 자들을 희생시킨 건, 신이 되기 위한 일종의 대법이란 말인가?

“폐하, 심마가 드셨군요. 초월의 길은 오직 개인의 노력과 업으로만 다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희생시켜 신이 되겠다니요. 이건 얼토당토 않는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그의 시선이 황제의 옆으로 옮겨졌다.

“게리드, 네놈인가? 네놈이 황제폐하의 총명을 흐린 거냐?”

그 순간, 황제의 옆으로 로브를 뒤집어쓴 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금까지는 기척과 형상을 숨기고 있었지만, 더는 감출 이유가 없어서였다.

“무슨 소리를. 모든 선택은 폐하께서 하셨다. 나는 폐하의 명을 따랐을 뿐이야.”

“어느새 인간임을 그만두고 리치가 되었군. 그런 네놈이라면 충분히 일을 꾸미고도 남을 일이지. 대체 무슨 수작이냐?”

반신에 오른 아문의 눈은 게리드가 숨기고 있는 본신의 모습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제아무리 환영으로 가려서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뼈만 남은 육신이 고스란히 눈에 비쳤다.

하지만 이에 황제가 게리드를 옹호하고 나섰다.

“게리드는 아무 상관없네. 애당초 게리드에게 이 대법을 알려준 것도 나였으니까. 게리드는 내 명에 충실하게 따라 대법을 준비해줬을 뿐이지.”

충격이었다. 게리드의 부추김에 넘어가 일을 저질렀을 거라 생각했던 아문으로서는 황제가 스스로 그런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참담한 얼굴로 되묻는 그 말에, 황제는 곧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이 심정을 모르겠지. 자넨 제대로 된 초월자니까. 제아무리 반신이라 하지만 그래도 온전한 영원을 바라보고 있지.”

“······.”

“하지만 짐은 아닐세. 신적 힘을 휘둘러도 결국엔 누군가에게 빌려 쓰는 힘에 불과해.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주름으로 가득 찬 팔은 앙상한 가지처럼 보였다.

“짐은 좀 더 오래 살고 싶었네. 그리고 남에게 빌려 쓰는 힘이 아니라 온전한 내 힘을 갖고 싶었지.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한 게야.”

“폐하···.”

아문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토해내고 말았다. 황제와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어긋나게 된 것인지 그 이유도 깨달을 수 있었다.

황제는 오래 전부터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던 것이다. 수백 년 전부터 젊은 모습으로 활동해 왔으며, 황제와는 다르게 아무런 제약도 없이 휘두른 막강한 힘이 이런 돌이킬 수 없는 욕망의 죄업을 저지르게 만들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이토록 많은 생명을 희생시켜가며 얻어야 할 가치가 있는 힘입니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 나는 진정한 신이 될 것이고, 제국은 신이 직접 다스리는 영원하고 유일한 우주의 지배세력이 될 테니까.”

황제는 이젠 대놓고 야망을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그의 노쇠한 모습이 빠르게 젊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어느새 그는 노인의 모습을 벗어나 중년이 되었고, 이젠 희끗희끗했던 머리카락도 고유의 색을 되찾아 짙은 금발이 되었다.

어느새 30대 중반의 모습이 된 황제가 오연한 모습으로 옥좌 앞에서 아문을 내려다보았다.

“의식은 이제 겨우 1단계를 끝낸 상태지만 이것만으로도 짐은 초월의 단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아문, 그대의 존재가 필요 없다는 말이지.”

쿠구구구!

무시무시한 패기가 대전을 지배했다. 황제를 중심으로 줄기줄기 피어오르는 기세의 소용돌이는 주변에 즐비했던 메마른 시신들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날려버렸다.

“이게 황제폐하의 힘!?”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할지 몰라도 아문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발휘되고 있는 이 힘은 더 이상 여신 윌키아의 것이 아니다. 황제가 대법이란 것을 통해 독자적으로 얻게 된 초월에 근반을 둔 힘이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황제는 정말로 초월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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