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25화
삑삑!
“뭐지, 이건?”
뜻밖에도 감시 센서가 반응한 게 아니었다. 지금 반응한 부저음은 바로, 우라그리 행성 요새의 통신 회선이었다.
그리고 곧 화면 위로 문자가 출력되었다.
“공용통신전문이군. 그런데 이게 뭐지?”
관측병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 내용을 읽어나갔다. 전문은 간단했다.
“바람이 불면 구름이 밀려오고, 그것은 곧 비가 올 조짐을 의미한다···. 이게 전부인데?”
“이게 무슨 뜻이지? 암호전문인가? 마치 시구 같은데?”
“게다가 어디서 온 건지도 안 적혀 있군. 출처도 알 수 없어.”
보통 통신전문을 보낼 경우 송신자의 소속이나 이름을 함께 통신을 보낸 채널 코드나 좌표 등을 표기하는 게 상식이었다.
헌데도 이건 전무했다. 누가 보냈는지 어디서 왔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보내온 방식을 보면 아주 먼 우주에서 워프전송 방식으로 보낸 걸로 짐작되는데, 채널 코드가 없으니 보낸 자나 위치를 추정하기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전문 내용이 어떤 특정 암호문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라이브러리 데이터를 조회해 보기도 했지만, 그와 흡사한 것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고민 끝애 결론을 내렸다.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해야겠어.”
“그래야겠지?”
자신들이 파악할 수 없는 전문 내용을 붙잡고 계속 고민해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지시를 하달 받는 것이 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상부에서도 그 문구에 대해 아는 자가 전무했다는 것이었다.
“뭐지 이건?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어디선가 날아온 출처불명의 전문이라고 합니다. 관측병들이 입수했다고 하는데, 내용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보고를 올렸다고 하는군요.”
“보고 내용을 보니 해당 전문이 꽤 먼 우주로부터 워프방식으로 날아온 모양인데··· 그냥 장난질로 할 만한 일은 아니지. 일단은 조사해 보도록 하지.”
전문이나 데이터 등을 워프형태로 전송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꽤 비싼 비용이 든다. 그냥 장난삼아 보냈을 거라고 치부하기엔 비용부담이 꽤 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상부의 조사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출처불명의 전문과 관련된 암호나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국 조사 끝에 한 가지로 결론 내리게 되었다. 누군가가 수신 주소를 착각해서 우연히 우라그리 행성요새까지 날아오게 된 전문으로.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국경지대의 군사요새까지 날아온 전문이라면 제아무리 사소해 보인다 해도 어떻게든 그 출처를 끝까지 조사해야 하거늘, 그냥 대충 묻어두겠다니.
허나 사정을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공화국 전역이 베이노아 수상의 개혁으로 사회와 체제가 거의 새롭게 개편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재계는 물론 군부까지 전부 물갈이 되는 판국에 이런 사소한 전문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여긴 이때의 결정이 얼마 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올 거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출처불명의 전문으로 잠시 시끄러웠던 것도 잠시 뿐. 우라그리 행성요새는 여느 때나 다름없는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제국과 공화국 사이의 국경을 하릴없이 주시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일상.
헌데 그 일상에 또 한 번 변곡점이 출현했다.
“참 조용하군.”
“그래, 아주 지긋지긋할 정도로 조용하지. 젠장, 여기는 변하는 게 없어.”
잠시 시끌벅적했던 것도 출처 모를 전문사건 때 뿐. 그것이 지나간 이후로는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제국 놈들이 쳐들어오기라도 했으면 좋겠군.”
“이봐 말조심해. 그게 씨가 될 수도 있어.”
“나도 그냥 하는 소리지. 그만큼 지루하다는 말이야.”
관측병들이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그런 대화를 두런두런 주고받던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가 닥쳐왔다.
콰아앙!
성대한 굉음과 함께 요새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얼마나 흔들림이 격렬하던지 서 있던 사관들 중 일부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벽에 머리를 처박았을 정도였다.
“대체 무슨 일이냐! 갑자기 굉음과 진동이라니! 오퍼레이터 무슨 일인지 알아봐! 어서!”
당직사관 중 하나가 당황한 얼굴로 관측병들을 닦달했다.
그가 우라그리 행성요새에서 복무한 지 벌써 10년이나 되었지만, 언제나 지루할 정도로 평화만 반복되던 일상이었다.
전쟁은커녕 사소한 분쟁이나 사건조차 경험해본 적 없는 그가 이런 갑작스런 돌발 사태에 냉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경험이 없는 건 관측병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우왕좌왕 하면서 사태를 파악하는 데에 전념했다.
“지진은 아닙니다! 센서에 기록된 데이터에 지진파가 계측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 뭐지? 지진도 아니라면 이 진동은 뭐야?”
당직사관이 초조한 목소리로 다시 재촉했다. 차라리 그는 이게 우라그리 행성에서 자연 발생한 지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 또 다른 오퍼레이터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저··· 적의 공격이야! GR-089구역 피탄 확인!”
“뭐라!? 적의 공격이라고?”
아닌 밤중의 날벼락과 같은 소리였다.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공격받지 않았던 우라그리 주역이 공격당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공격당할 때까지 적들의 존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우라그리 행성요새는 광년 단위의 거리를 감시할 수 있는 센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먼 곳에서부터 단숨에 워프항법으로 도약해 온다면 포착할 수 없겠지만, 변동중력원에 의한 워프 아웃 반응이 발생한 정도는 사전에 감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행성요새를 공격한 적들은 대체 무슨 수로 이곳까지 은밀히 접근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의문을 해소하는 게 아니었다. 이게 적의 공격이 분명하다면, 일단 방어 태세부터 갖출 필요가 있었다. 현재 입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어찌됐든 더 이상 피해를 늘려선 곤란했다.
“즉시 방위 시스템을 작동시켜! 배리어는? 배리어는 가동하고 있나?”
“아··· 안 됩니다! 시스템이 전부 먹통입니다.”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야?”
적이 어떻게 들이닥쳤는지도 알 수 없는 판국에, 이젠 대응 시스템조차 전부 무력화 됐다고?
허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충격적인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새의 센서들도 전부 반응하지 않습니다. 적들이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전혀 잡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당장 외부 화상 카메라 영상으로라도 확인해! 일단 적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야?”
하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외부화상이 작동은 하고 있는데 평소 매일 보는 평화로운 우주의 풍경만 비춰주고 있었다.
이곳을 공격하고 있을 적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보이지 않았다. 그건 즉 가장 기초적인 관측법인 외부화상을 통한 목시(目視) 확인조차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이럴 수가!”
사관은 이젠 넋이 나가버렸다. 어떻게 들이닥쳤는지도 모를 적들의 공격에 노출된 상황에서도, 적의 모습조차 볼 수가 없다니!
더군다나 시스템조차 전부 말을 듣지 않아서 반격은커녕 배리어조차 가동할 수 없었다.
‘이건 더 이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애당초 사관에 불과한 자신이 이런 임시사령관 역할을 하는 당직을 서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워낙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다 보니, 윗대가리들이 맡아야 할 책무가 사관들에게까지 넘어온 것이다.
일단 사태가 터진 직후, 오퍼레이터들에게 지시해서 상부에 지금 상황을 알리라고 했지만 그들이 과연 제 때에 당도나 할 수 있을까? 어제도 그들끼리 모여 거하게 술판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취기도 가시지 않은 사령관이 복귀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사령관도 이런 돌발사태에 대한 경험이 없기는 자신과 매한가지였다.
쾅! 콰아앙!
여기저기 박살나고 부서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행성요새 곳곳이 붕괴되는 소리였다.
우라그리 행성요새는 국경을 지키는 핵심 요처중 하나로서, 공화국의 첨단 기술이 도입된 곳이었다. 지어진지는 수백 년이 흘렀지만, 개량을 거듭하면서 막대한 화력과 방어력을 자랑하는 요새가 되었다.
그런데 시스템의 무력화로 이렇게 배리어 한번 가동조차 해 보지 못하고 샌드백처럼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다 전멸할 지경에 놓이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던 거지?”
오랫동안 평화에 젖어 있던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선 의문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대체 적들이 요새의 시스템을 무슨 수로 무력화 시켰냐는 것이었다. 요새의 시스템은 처음부터 폐쇄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서 외부에서 해킹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시스템이 무력화 되다니··· 이건 내부에 적들의 첩자라도 도사리고 있었다는 말인가?
‘서··· 설마!? 그때 그 전문이!?’
사관의 뇌리로 얼마 전 요새를 떠들썩하게 했던 출처불명의 전문 내용이 떠올랐다.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그는 그 전문이 이번 시스템을 무력화되게 만든 원흉일 거라 직감했다.
그것이 요새 내부에 침입해 있던 첩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전문인지, 아니면 시스템을 해킹하기 위한 바이러스의 일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태와 관련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애당초 그때부터 이 요새는 끝장나 있었다는 건가?”
사관은 기가 막힌다는 듯 신음했지만, 이미 사태는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요새는 얼마나 파괴되었는지 짐작되지도 않았고, 그로 인한 사상자의 수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때, 외벽을 뚫고 들어온 눈부신 섬광이 그의 눈앞에서 환히 번져나갔다. 그것은 메인 통제센터를 향해 작열한 거센 주포의 빛줄기였다.
통제센터를 운영하던 장병들은 물론 이 사태에 낙담하고 있던 사관들까지 그 거센 빛 아래서 소멸되고 말았다.
* * *
“정말 한심한 것들이군.”
제국의 함대를 이끌고 있는 바르투인 사령관은 주포에 완전히 박살난 우라그리 행성요새의 메인통제센터를 바라보면서 혀를 차고 말았다.
설마 이렇게까지 쉬울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명색이 성계 규모를 파탄 낼 수 있다는 화력과 출력을 가진 행성요새거늘, 이런 간단한 장난질로 무력화 되다니···.
이걸로 우라그리 행성요새는 제국의 함대 아래 완전히 점령당한 거나 다름없었다.
“할파스 상회 놈들도 대단하군. 이런 건 또 어떻게 알아낸 거지?”
바르투인 사령관이 우라그리 행성요새를 아무런 피해 없이 점령할 수 있었던 것엔 단 한 가지 전문코드 덕분이 컸다.
그것은 놀랍게도 할파스 상회가 제국에 제공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코드의 정체는 놀라웠다.
“그 정도 능력은 있으니 그동안 공화국을 좌지우지 하고 있었겠지요. 애당초 공화국의 테트라는 부패하기로 유명한 군부집단 아닙니까. 돈만 넉넉하게 쥐어주면 그런 기밀을 손에 넣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지요.”
“그래, 그랬겠지.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지만, 우리로서는 참으로 득이 되었군.”
부관의 말에 바르투인 사령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화국이 건조한 우라그리 행성요새는 제국의 침공에 대비해 세워졌지만, 당시 먼 미래를 내다본 상층부는 만에 하나 행성요새가 제국에 점령당했을 때를 대비한 플랜도 함께 짜 두었다.
그것이 바로 비상코드 [귀환]이었다.
설혹 적에게 요새가 강탈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언제든 되찾을 수 있도록 메인 시스템 내부에 특정 코드에 반응하는 트랩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귀환 코드가 발동되면 행성요새의 모든 관측 시스템은 먹통이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이 접근하거나, 어떤 이상이 발생해도 무조건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하는 멍텅구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요새를 점령한 제국군이 뒤늦게 사태를 인지해도 마찬가지였다. 화포는 물론 배리어 가동까지 전부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요새 전체가 완전히 무력화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화국군은 시스템이 멈춰서 무장해제된 거나 다름없는 제국군으로부터 요새를 다시 되찾는 것이 귀환 코드의 진짜 시나리오인 것이다.
헌데 이 코드가 하필이면 할파스 상회를 통해 유출되어 제국군이 행성요새를 무력화 하는 데에 사용되었으니··· 만일 행성요새를 건조했던 공화국의 초대 군부 영웅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말 그대로 피가 거꾸로 솟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공화국 사정이 말이 아니군. 심지어 지금의 군부는 이 귀환 코드를 아는 자조차 없다지?”
“그렇습니다. 그나마 이 코드에 관한 기밀을 접할 수 있던 자들은 전부 장성 급들이었는데, 하필이면 지난번 쿠데타 사태 때 테트라 소속으로 전부 숙청당했었지요. 저희로서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아니지. 이건 철저한 설계네. 애당초 본국에서는 이걸 다 계획하고 짠 모양이더군. 꽤 오랫동안 준비해온 모양이야.”
“그랬군요.”
공화국은 지난번 숙청으로 부패한 관료와 정치인, 군인들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그 공백이 만들어낸 여파는 컸다. 당연히 인지하고 있어야 할 [귀환]코드가 전문으로 날아왔음에도 알아보지 못한 것도, 그런 사실들을 전임자들에게 제대로 인수인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긴 그들은 인수인계는커녕 정식 재판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숙청당해 죽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 황제폐하께서 지시하신 대로 본격적인 점령전을 시작해 보도록 하지.”
“예!”
부관의 대답에 바르투인 사령관은 형형한 눈으로 전면을 응시했다. 우라그리 행성요새의 점령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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