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47화 (348/448)

14권-22화

결국 쿠데타의 거사일은 바로 내일로 결정되었다. 너무 시일이 촉박하긴 했지만, 병력을 동원하기 위한 준비는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사내는 혼란이 빚어지는 순간부터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갈 것을 예견하고는 진작부터 준비해 왔던 것이다.

일단 거사가 결정되고 나자, 사람들의 화제는 자연히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에 참석자들을 위해 마련된 좌석 중 유일하게 빈 좌석을 향해 있었다.

“그건 그렇고··· 할파스 상회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리는군.”

할파스 상회의 회장인 [할파스 무레미안]은 여러 모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외적으로 활동한 적이 없었고, 대부분 대리자를 내세워 일을 처리해왔다.

이번 모임에도 최소한 대리자 정도는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누군가가 냉소하며 말했다.

“애당초 천박한 상인에 불과한 자들이네. 불참했다고 해서 우리까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지. 거사가 끝나고 난 다음에 통보나 해주면 될 일이야.”

그러자 그 말에 여러 사람들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파스 상회에게 여러 모로 뇌물과 정치자금을 받긴 했지만, 그래봐야 상인 나부랭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려를 표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쥐고 있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영향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이런 중대한 자리에 불참한 건 좀 의외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시해 버릴 순 없는 일 아닌가?”

평소 공화국의 정재계 기득권층은 대부분 할파스 상회의 편이었다. 그들이 손에 쥔 막대한 자금이 리베이트와 정치자금 명목으로 제공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좀 달랐다. 평소 호의적이었던 자들 중 상당수가 심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할파스 상회가 가진 힘이 크다는 걸 말이야.”

“그럼 대체 왜?”

“그동안은 우리도 할파스 상회와 여러 가지로 상부상조하며 공생해 왔지만, 이번 실책은 너무나도 컸어. 더 이상 함께 가긴 위험하지.”

“으음.”

그제야 할파스 상회를 옹호하던 자들도 침음성을 흘렸다. 그 말뜻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였다.

그때부터 할파스 상회에 대한 성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금 사태를 보게. 이 모든 게 할파스 상회가 자신들이 주관한 경매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벌어진 일 아닌가. 게다가 장부라니! 이놈들이 우리의 목줄을 쥘 생각이었단 의도가 아닌가.”

“허나 장부가 만들어질 거라는 건 다들 대충 예상하지 않았나?”

“그래. 누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지.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투자한 돈에 대한 증거는 남기고 싶었을 테니까. 거기까지는 이해 해. 그렇지만 그게 베이노아 수상의 손에 들어가게 한 건 명백한 잘못이지.”

“······.”

이제 더 이상 옹호할 명분이 없었다. 자신들의 가장 큰 치부라 할 수 있는 정치자금과 뇌물에 대한 장부가 베이노아 수상의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니까.

“이제 더 이상은 그놈들을 신뢰할 수 없네. 이런 결정적인 실수를 한 이상 말이야. 우리가 그들을 밀어준 건, 이런 문제없이 잘 해나갔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번 일로 정치생명은 물론 우리 안위까지 위험해진 상황이 됐으니 그들과의 오랜 인연도 이제 끊을 때가 됐지.”

“동의하네. 할파스 상회가 우리 공화국 내에서는 가히 무소불위에 가까운 기업이긴 하지만, 이제 정리할 필요가 있어.”

“그래, 일개 기업치고는 너무 지나치게 비대하게 커졌어. 어느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기업은 우리로서도 제어하기가 곤란하지.”

“거사만 끝나면 잘게 쪼개는 게 좋겠군.”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찬성을 표명했다. 물론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린 데엔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할파스 상회에 대한 괘씸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할파스 상회를 해체시키면서 떨어질 떡고물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우주에서는 10대 기업 중 하나였고, 공화국에서는 가히 최대의 기업이었던 만큼, 할파스 상회를 해체하면서 나올 부산물은 적지 않을 게 분명했다.

분위기가 할파스 상회에 대한 해체 쪽으로 기울어지자, 누군가가 또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조금 전에 그놈들로부터 연락이 왔었지.”

“설마··· 할파스 상회에서?”

“그래, 그놈들이지. 우리더러 알아서 잘 결정해서 하라더군. 자신들은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러자 일부 의원들과 재계의 인물들의 얼굴이 분노로 달아올랐다.

“이번 사태를 유발한 진짜 원흉인 것들이 이제 와서 발을 빼겠다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군. 우리가 실패하면 지들도 같이 망한다는 걸 생각 못하는 건가?”

할파스 상회는 베이노아 수상과 레이스컬의 오랜 표적이었다. 이번 거사에 가담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가만 놔둘 리 없었다.

그런데도 거사에 동참하지 않고 발을 빼겠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들도 머리가 있다면 예상을 했겠지. 거사에 가담하더라도 결국 우리 손에 토사구팽 당할 결과를 말이야.”

“그렇다면 더 괘씸하군. 구제해줄 이유가 없겠어.”

할파스 상회에 대한 분노는 더욱 확고해졌다. 이젠 그들을 옹호하는 발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애당초 할파스 상회의 세력이 너무 커서 그들의 돈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껄끄러웠던 그들이었다.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판을 새로 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은 회담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남은 것은 내일 있을 거사를 결행하는 일 뿐이었다.

사내는 한시바삐 자신의 부대로 돌아왔다. 내일 거사를 위해선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일단 병력부터 다시 재확인했다. 거사를 결행하기로 약속된 시간만 되면 언제든 출동할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내일이 기다려지는군.”

점검을 끝낸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이름은 메세니아 행성방위군 루프라 소장. 메세니아 공화국의 수도행성인 메세니아를 방위하는 부대의 부사령관이었다.

본래대로라면 그는 군부를 좌지우지할 만한 직위에 있지 못했지만, 지금만큼은 사정이 달라졌다. 정재계는 물론 군부의 거두들까지 경매에 참석했다가 사로잡힌 지금, 군부조직 테트라 내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사람이 바로 그가 된 것이다.

그의 두 눈은 야망으로 타올랐다.

‘차라리 잘 됐어. 이번 기회에 나도 권력을 잡아 보는 거야.’

행성방위군의 부사령관이자 소장이라는 높은 직위까지 오른 루프라였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가진 권한과 힘은 생각보다 크지 못했다. 군부에서 나름 권력을 휘두르는 핵심들은 대부분 중장부터였고, 그 위의 대장들은 구름 위의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태로 그들 모두가 사라진 이상, 인생에 둘도 없는 기회가 주어졌다. 내일 있을 쿠데타만 성공시킨다면, 군부의 최고 권력자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창 단 꿈에 빠져 있던 그때였다. 자신이 머무는 관사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센서의 울림에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외부를 확인해보자 자신의 부관의 모습이 보였다.

“다무스 중령인가?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지?”

그는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다무스 중령은 오랫동안 그의 부관으로 일해 왔으며, 누구보다 가장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부하였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가 다급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말부터 꺼냈다.

“부사령관님. 급히 전해야 할 소식이 있어서 이렇게 밤늦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급한 일? 대체 무슨 일인가?”

루프라 소장이 굳어진 얼굴로 되물었다. 안 그래도 내일 거사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급한 일이라니! 설마 쿠데타 정보가 누설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 다음에 나온 말은 기대와 전혀 달랐다. 아니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금 부디 당장 죽어주셨으면 합니다.”

“뭐!?”

죽어달라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루프라 소장이 깜짝 놀라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사이, 어느새 다무스 중령의 손에 쥐어진 작은 단검이 매서운 기세로 파고들어오고 있었다.

‘대체 부관이 왜!? 날 배신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루프라 소장은 흉기를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제아무리 부패 군인이라고는 하나, 그 또한 산전수전 다 겪은 마이스터 급 영능력자였다. 이 정도 공격으로 자신을 해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헌데 그때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 몸이··· 왜 이렇게 느린 거지?’

평소라면 가뿐하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런데 부관의 암습에 대응하는 육체의 반응속도가 평소의 반의반도 못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 의문을 풀기도 전에 부관의 단검은 그의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그가 가진 영력이 급소를 보호하려 했지만, 부관의 단검은 그마저도 가볍게 뚫고 있었다.

“컥! 커으··· 대체 이게 무슨···.”

치명상을 입은 루프라 소장이 바닥 위로 나동그라졌다. 그는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다무스 중령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부사령관도 인간이긴 하군요. 이런 기습 하나 감당 못하고 제 손에 죽게 되다니요.”

“너··· 이 자식! 날 배신한··· 거냐?”

루프라 소장이 숨을 헐떡이며 부관을 노려보았다. 지금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부관이 배신했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다무스 중령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배신? 배신이라니요. 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쿠데타라니요. 그걸 용납할 것 같습니까?”

“어째서··· 쿠데타가 성공하지 못하면··· 너나 나나 모두 숙청될 텐데··· 어째서!”

그랬다. 다무스 중령도 만만찮은 부패군인이었다. 그가 저질러온 부정부패를 열거하자면 다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그는 금전에 관련된 부정은 저질러도, 사람을 죽이거나 누굴 매장해 버리는 그런 종류의 부정은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베이노아 수상의 숙청 대상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터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배신했단 말인가?

“하하하··· 숙청이라니, 제가 말입니까? 아직도 모르고 있군요.”

기가 막힌다는 듯 한 차례 웃어젖힌 다무스 중령이 루프라 소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난 다무스 중령이 아닙니다. 다무스 중령이란 건 어디까지나 위조 신분일 뿐. 제 진짜 신분은 따로 있지요.”

그 말에 루프라 소장이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설마 자신이 믿던 부관이 위조신분을 가진 놈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놈을 자신에게 붙인 자는 누구란 말인가?

“레이스컬의 위장잠입부대. 코드넘버 크로커다일. 그게 내 진짜 신분입니다.”

‘그럴 수가! 레이스컬이 위장 부대까지 운영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첩자가 내 부관이고!?’

루프라 소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베이노아 수상이 만만치 않은 작자임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무스 중령이 자신의 부관이 된 것은 벌써 20년 전이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지금의 상황을 예측하고 일을 꾸미고 있었단 말인가?

“역시 마이스터 답게 오래 버티시는군요. 심장이 박살났는데도 5분 이상 숨이 붙어 있다니.”

루프라 소장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여전히 죽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가 가진 막대한 영력으로 어떻게든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심장이 파괴된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허나 그마저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던 걸까? 다무스 중령은 그에게 다가가 심장에 꽂힌 단검을 지그시 비틀었다. 그러자 심장 주변의 장기가 단검의 칼날에 찢기면서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끄으으···!”

#


0